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86
#485.
잡아놓다 (5)
“이번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로군.”
주영기는 매우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했다.
“나도.”
박유민 역시 영 대책이 안 서는 일이었다.
“…….”
주영기는 평생 공부와는 담을 쌓은 사람이다. 최근 들어서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은 공부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중이지만 말이다.
박유민도 마찬가지였다.
게임을 잘하는 방법이야 하루 종일 떠들 수 있지만, 공부에 대해서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야, 박유민.”
살짝 민망해진 주영기가 화살을 돌렸다.
“넌 인마, 애들 관리한다는 애가 애들 공부도 안 가르치고 뭐했냐? 밥 해주고 빨래 해주면 끝이냐?”
“내, 내가 할 수 있는 거여야 뭘 해보지.”
“그래도 너는 대학 갔잖아.”
“나 특기자 전형으로 간 거란 말이야. 특기자 전형 아니었으면 대학 문턱도 못 밟았어.”
물론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박유민이 공부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것도 사실이다. 게임도 머리가 좋아야 하는 것이고, 게임을 그만큼이나 잘하는 사람이 공부에 열의를 쏟았을 경우 제대로 못할 일은 없겠지만…… 그건 학생 때의 이야기고, 지금은 답이 없었다.
“그래서 뭐? 손 놓자고?”
“아니. 손 놓자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는 거지.”
“너도 그래, 인마.”
주영기가 강진호에게 눈을 부라렸다.
“야, 너 재경대생이잖아. 이 새끼야, 재경대생이 고졸이랑 야매 대학생한테 공부에 대해서 물어보면 우리가 뭘 어떻게 해줘?”
“…….”
강진호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이 중에서 학력으로는 강진호가 가장 우월하다. 강진호는 수능에서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올린 전적이 있는 사람이니까.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내가 뭘 알아야지.’
강진호는 성적을 강제로 얻어낸 케이스였다.
공부를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아니라 강화된 집중력과 뇌공으로 끌어 올린 연산력, 기억력 등으로 수능을 돌파해 낸 케이스다. 다시 말하자면, 강진호와 같은 방식은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니가 가르치면 안 되나?”
“무리.”
강진호가 깔끔하게 손을 내저었다.
강진호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은 전형적인 좋은 선수이지만, 좋은 감독은 되지 못하는 케이스였다.
사람을 가르치는 것에는 재능이 없다. 그가 좋은 선생이 될 수 있을 때는 배우는 쪽도 목숨을 걸고 어떠한 학대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일 때다.
하지만 공부를 하는 애들에게 목숨을 걸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과정과 도달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무학과는 다르게 공부는 강진호에게도 먼 세상의 이야기였다.
우등생이라고 해서 항상 모범생은 아니니까.
“뭐가 무리라는 거냐?”
“사람을 가르칠 줄 모른다.”
주영기가 어이없다는 듯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아니, 너는 재경대생이라는 놈이 애들 공부 하나 못 가르친다고?”
“…….”
“넌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
매우 억울했지만, 항변할 방법이 없었다. 그가 억울해하는 와중에 주영기는 주영기 나름대로 이 대책 없는 친구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 미친놈들이 지들은 대학생인 놈들이 고졸인 사람 불러놓고 애들 어떻게 공부시킬지를 물어보고 있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인마, 내가 그걸 알았으면 고등학교 졸업했지.”
“고졸이라며?”
“어? 어, 음…… 넘어가, 새끼야.”
말을 섞을수록 학력이 낮아지는 주영기였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돼?”
“나한테 묻지 말라고, 이 미친놈들아!”
주영기가 입에서 불을 뿜을 기세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어느 미친 대학생이 중졸한테 공부를 물어봐?”
“학력으로 차별하는 사회는 나쁜 거야.”
“여기서는 차별 좀 해야 돼, 인마!”
차별하는 사회를 권장하는 주영기였다.
주영기는 멍한 얼굴로 앉아 있는 두 친구를 한 번씩 둘러보고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내 인생에서 너희를 만난 건 정말 커다란 복이자 재앙이다, 재앙이야!”
“우리 인생에서 네가 나타난 것은 참 큰 복인 것 같아.”
“동감.”
“끄으으응.”
졸지에 대학생들에게 공부에 대한 것을 가르쳐야 하는 브레인이 되어버린 주영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상황부터 정리해 보자. 그러니까 지금…… 애들이 공부는 하고 싶은데, 공부를 제대로 못한다는 거잖아.”
“그렇다네.”
“그게 무슨 개소린지부터 이해해야 할 것 같은데. 공부는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냐?”
강진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야 하면 되는 건데 제대로 못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학교생활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주영기와 강진호를 보며 박유민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요즘은 그냥 교과서나 문제집 보는 걸로는 진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나 봐.”
“뭐?”
“응?”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두 사람을 보며 박유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어디 가서 공부가 어쩌니 하는 말하면 욕먹는데.’
학창 시절에 관해 떠오르는 기억이라고는 애들 때린 거랑 점심시간, 그리고 잠잔 것밖에는 없다 말하는 주영기야 그렇다 치고, 강진호까지 저러면 어쩌자는 것인가.
“요즘은 애들이 학원을 다 다니니까, 보통 진도도 거기에 맞춰진대. 애들이 학원에서 다 배워온 걸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보통 이 정도는 알고 있다는 전제로 수업을 하는데, 그러다 보면 학원을 안 가는 애들은 따라잡기가 힘든 거지.”
“그게 무슨 개소리야? 학교는 당연히 다녀야 하는 거고, 학원은 옵션인데, 그럼 학교에 학원이 맞춰야 하는 것 아냐?”
“학교야 수능 치려고 다니는 곳이 된 지 오래니까.”
“……나라 꼴 잘 돌아간다.”
주영기가 혀를 찼다.
일찌감치 국가교육대계에서 탈락한 그는 공교육에 대한 확고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또한 현실적이기도 했다.
“뭐, 현실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럼 애들 학원 보내면 되는 거 아냐?”
“지혜 말로는 이제부터 학원을 간다고 해도 이미 학원을 다니던 애들이랑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수준이라는데.”
“그 수준이 될 때까지 넌 뭘 했고?”
“……갑자기 팩트로 때리지 마.”
“한심한 인간들.”
주영기가 혀를 찼다.
“내가 보기에 이건 우리끼리 짱구 굴린다고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끼리 고민하면 답이 나오겠냐. 다 노답들인데.”
“……그렇지.”
“인정.”
“그러니까 이건 답이 있는 사람을 불러야 해.”
“그럼 어쩔 수 없지.”
“전화할게.”
모든 문제가 일사천리로 처리되고 있었다.
보육원 마당에 검은 세단이 들어섰다.
천천히 멈춰 선 세단의 운전석이 열리더니, 한 사내가 느릿하게 내렸다.
검은 명품 슈트.
슈트 끝으로 살짝 보이는 하얀 와이셔츠의 소매, 목에 매어져 있는 정갈한 넥타이.
리젠트로 깔끔하게 말아 올린 머리와 검은 선글라스.
사내는 주변을 살짝 둘러보고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입에 담배를 물었다.
치익.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담배 끝이 타들어 가며 불꽃이 튀었다.
사내는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이고는 느긋하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 모습이 마치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후후후후후.”
낮은 웃음을 흘린 사내가 몇 번 빨지 않은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그러고는 사뿐사뿐한 발걸음으로 보육원 안으로 들어섰다.
익숙한 동작으로 보육원 안의 탕비실로 걸어 들어간 사내가 문을 열자 안에서 열렬한 환영이 쏟아졌다.
“조 실장님!”
“실장님!”
“기다렸습니다!”
“후후후후후.”
멋들어지게 안경을 벗어 제낀 조규민이 새하얀 잇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저를 찾으셨다구요?”
구원자가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에…….”
모든 설명을 들은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은 상황이군요.”
“심각합니까?”
“기본적으로 교육이라는 것은 단계를 밟게 되어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올라타고만 있어도 사람을 위로 올려주는 방식이죠. 문제는 실수나 질병 등으로 몇 걸음이 뒤처지게 되었을 때, 이들을 따로 이끌어주는 교육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근성이 있고, 여건이 되는 애들이라면 학원이라든가 다른 방법으로 뒤떨어진 만큼 따라갈 수 있겠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몇 걸음이 몇 십 걸음이 되고, 이제는 몇 층의 차이가 나버린 상황이죠.”
“으음…….”
강진호의 얼굴이 조금 심각해졌다.
“하지만 뭐, 괜찮습니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는 법이죠.”
“오!”
“불가능하다면 가능하게 만든다. 그것이 샐러리맨 아니겠습니까?”
박유민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건 샐러리맨이 아니라 샐러맨더나 유니콘이 해야 할 일 같은데요?”
샐러리맨은 시키면 다 해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저런 양반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다수 회사원들의 삶이 팍팍한 것이다.
“후후, 방법이 없으면 만들어야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아니겠습니까?”
“저와는 조금 다른 시대를 사시는 것 같네요. 시차가 느껴져요.”
“그렇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조규민이 박유민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웃었다.
“박유민 씨가 프로게이머에 실패하고 어디라도 취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저와 같은 시차로 진입하시지 않겠습니까?”
충고와 협박이 가득 담긴 그 목소리에 박유민은 정말 열심히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사실 학생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세 가지뿐이죠.”
“세 가지요?”
“네. 공부에 대한 열정, 그리고 효율적인 공부 체계, 마지막으로!”
조규민이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지원.”
“……하겠습니다.”
강진호의 대답에 조규민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애들을 모아볼까요? 누가 공부를 할 마음이 있는지 알아보는 건 참 즐거운 일이죠.”
어깨를 으쓱하며 밖으로 나가는 조규민을 보며 주영기가 나직하게 물었다.
“저 양반, 대학 어디 나왔대?”
“대학? 내가 알기로는 한국대 나오셨는데…….”
“하, 한국대?”
“응.”
주영기가 존경 어린 눈으로 조규민의 등을 바라보았다. 한국대라면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 아닌가.
“게다가 예전에는 우리 학교 이사장 대리 하셨고, 한 반년 동안 재경대에서도 총장 비선가 뭐가 하셨어. 조 실장님이 학교에 이사장 대리로 있을 때 우리 학교가 엄청 많이 바뀌어서 지금 애들이 우리 학교 가려고 난리라던데?”
“저 양반은 못하는 게 없네.”
“그렇지?”
“너희랑은 완전히 반대다, 야.”
“…….”
친구의 통렬한 디스를 받으며 박유민이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애들을 모으는 것은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참 이상한 기분이네.’
박유민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원래라면 그가 해야 할 일이건만, 그가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것을 강진호가 알아채 주고, 조규민이 해결을 해준다.
언제부터 이런 관계가 시작되었던 것일까?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잖아.’
이 보육원의 아이들도 말이다.
자꾸만 좋아지는 기분에 박유민이 슬쩍 웃고 말았다.
“뭘 잘했다고 쪼개냐?”
“…….”
주영기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