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488
#487.
교육하다 (2)
“사람이 왜 늘어났어?”
조규민이 황당하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남는 상황은 드물긴 해도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적으로는 한 반수 정도는 빠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거실 안의 사람 수는 분명히 더 늘어나 있었다.
“이게…….”
박유민이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야, 너희는 실업계잖아.”
“실업계는 대학 못 가요?”
“아니…….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박유민이 조금 우물쭈물거리자 바로 반격이 들어왔다.
“우리도 대학 갈 수 있으면 공부시켜 줘야죠. 이런 식으로 인문계 애들만 뭐해주는 건 차별 아니에요?”
“맞아.”
박유민이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니들이 언제부터 그리 공부에 목을 맸다고, 공부해라, 공부해라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면서 잔소리를 해도 귓등으로 듣던 것들이!
실업계 애들도 툴툴대기는 마찬가지였다.
“건물 방음이나 좀 잘해주든가. 안에서 말하는 거 다 들리니까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누가 욕을 엄청 하더라고. 돈만 받아먹는 기생충 같은 것들이라고.”
조미혜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어!”
“틀린 말은 아니지, 뭐.”
씁쓸한 얼굴을 한 아이들도 있었다.
“나라에서 해주는 거야 좋다고 받아먹고 입 닦겠지만, 그게 아닌 건 토해내야지.”
“토하려고 해도 뭐 토할 게 있어야 토할 거 아냐.”
“그러니까 그걸 지금 만들려고 온 거잖아. 배 채우자고.”
느물대는 아이들의 얼굴을 본 조규민이 피식 웃고 말았다.
‘애들은 애들이네.’
이 중에서 정말 자신이 열정적으로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려보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대부분은 군중심리에 휘말리거나 다른 애들이 한다고 하니까 어떻게든 한 번 같이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온 아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건 조규민이 원한 바가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조규민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만,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조규민의 목소리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누가 하는가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조규민은 사람에게 말을 전달하는 데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주영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부 못했으면 사기꾼이 되었을 사람이다.
“학력이라는 것은 성공으로 가는 길을 조금 더 평탄하게 만들어줄 뿐,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해. 때로는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겨우겨우 이 정도 자리에 왔는데, 쟤는 나보다 공부도 안 했는데 왜 성공했지?’ 하는 불합리함을 느껴야 하는 상황도 온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조규민이 씨익 웃었다.
“어쩌면 지금 공부를 선택했기 때문에 다른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어떻게든 공부를 해서 성공하겠다고 하는 사람만 남자고. 어설픈 각오로 달려들었다가는 이도저도 안 될 테니까.”
살짝 침묵이 감돌았다.
보통은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기특하다고 칭찬을 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공부를 하는 게 다른 길을 막을 수 있으니, 잘 생각해 보라는 조규민의 발언은 현실적이면서도 어려운 말이었다.
다들 정해진 답을 찾고 싶은 나이다.
하지만 지금 조규민은 정해진 답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공부를 하겠다고?”
조규민의 시선이 한진성을 쫓았다.
그러자 한진성이 움찔했다.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네가 제일 공부를 안 하게 생겼으니까.”
“헐.”
한진성은 황당해했지만, 다른 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오, 사람 보는 눈.”
“믿음이 간다.”
“호오, 신뢰도가 상승하고 있군요.”
“뭐든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한진성이 이를 갈았다.
“더러운 배신자들.”
“진정해, 형. 우리는 단 한 번도 형의 편인 적 없었어.”
“적절한 팩트다. 아주 적절해.”
한진성이 깊이 한숨을 쉬었다. 누가 이곳을 가족적인 보육원이라고 했던가. 이곳은 정글이다. 아니, 사바나겠지. 하이에나가 득실거리는.
“공부를 하겠냐고 물으신 거예요?”
“그래.”
“사실 조금 고민인데…….”
한진성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이해했어요. 듣고 보니 알겠더라고요.”
“뭘?”
“성공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요.”
“응?”
조규민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내 말뜻은 그런 게 아닌데.”
“아뇨. 그렇게 말하시더라고요. 공부를 안 해도 더 성공하는 애들은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여기 그럴 애들이 없어요.”
“…….”
한진성도 훌륭한 한 마리의 하이에나였다.
“그건 재능이 있는 애들이겠죠. 한 분야에 특출 나게 뛰어나다든가, 센스가 있다든가, 일머리가 휙휙 돌아간다든가……. 사막에 던져 놔도 모래로 성을 지어서 잘 먹고살 그런 애들. 그런 애들이야 공부 안 해도 성공하겠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 제가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여기에는 그럴 애들이 없어요. 다 한심한 것들뿐이죠.”
“뭐라는 거야? 제일 한심한 사람이.”
“닥쳐, 이것들아!”
한진성이 입에서 불을 뿜었다.
“차라리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이해가 쉽네요. 저는 공부 안 하면 평생 성공 못할 거라는 사실을요. 그럼 해야죠. 나중에 저는 공부 안 하고 얘들은 공부해서 저만 쓰레기로 살고 있으면 배 아프잖아요.”
조규민이 우울하게 말했다.
“그런데 진성 학생, 네가 공부한다고 얘들보다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는 거 같은데…….”
“……이러시깁니까.”
조규민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많이 모였어. 어쩌면 내가 너희에게 준 시간이 너무 짧았을지도 모르겠다. 내일까지 조금 더 생각해 봐. 그래도 결국 나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사람들만 끌고 갈 거야. 억지로 너희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규민이 강진호를 가리켰다.
“그럼 이쯤에서 강선 실세께서 한말씀을.”
“…….”
아이들이 기대에 찬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아니, 그…….”
뭔가 고민하는 듯하던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공부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너희에게 해줄 말이 없다. 다만 한 가지…….”
강진호의 눈이 살짝 빛났다.
“세상 어느 분야든 노력하지 않는 자가 성과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당장은 요행으로 잘나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노력하지 않는 이들은 밑천을 드러내기 마련이야. 노력이란 게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만,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기회도 없는 법이지.”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내가 공부에 이해도가 잘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열심히 해봐. 조 실장님께서 도와주실 거야.”
한진성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렀다.
“그래서 대학이 어디시죠?”
“재, 재경대.”
“위선자.”
“와…… 사람 죽이는 클라스 보소.”
“재경대생이 공부를 잘 모르신단다. 뭐하냐, 이 공알못들아. 반성 안 하고.”
“우리 같은 쓰레기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어.”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팩폭에 강진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는가.
짝!
박유민이 박수를 쳐서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각자 방으로 돌아가자. 상의할 것 없고, 남 눈치 볼 것 없어. 본인이 생각하면 되는 거니까.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한진성이 느물거리며 말했다.
“바로 저런 분이 공부 못해도 성공하시는 거다. 재능충.”
“…….”
조미혜가 눈을 부라렸다.
“오빠,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왜?”
“심지어 유민이 오빠는 재경대생이란 말이야! 공부도 잘해.”
“아이코! 내가 그걸 몰랐네. 더러운 세상.”
궁시렁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던 박유민이 조규민에게 물었다.
“제, 제가 뭘 잘못했나요?”
조규민이 웃으며 박유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재능충은 이해 못하는 서민들의 세상이 있는 법이죠.”
“…….”
“그럼 일단은 애들은 정리된 것 같고…….”
조규민은 박유민이 타 온 커피를 받아 들었다.
“크읍.”
“……아니, 왜 그러세요?”
커피를 받고 눈가를 훔치는 조규민을 보며 박유민이 당황하여 물었다.
“아뇨. 뭐랄까, 한 십 년 만에 드디어 남이 타 주는 커피를 받아보는 상황까지 왔더니, 제 자신이 뿌듯하달까?”
“…….”
박유민이 안쓰러운 얼굴로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도 참 대단한 사람인데, 주변에 있는 사람이 황정후 회장이라든가 강진호 같은 놈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잡일만 하는 것 같았다.
다른 회사로 갔으면 훨씬 더 높은 자리에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충분히 높은 자리이지만…….’
대재경그룹의 비서실장이라는 자리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니까. 특히나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재경은 비서실의 파워가 워낙 강력한 곳이다.
회장실의 권력이 강할수록 비서실의 권력이 강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재경은 대한민국에 다시없을 수준으로 회장실의 권력이 막강한 곳이었다.
오죽하면 조규민이 황 회장의 숨겨둔 아들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의욕은 있어 보여서 다행이네요.”
“그 의욕이 얼마나 갈지…….”
박유민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주영기가 피식 웃었다.
“야, 네가 애들을 제일 아끼는데, 네가 애들을 제일 못 믿으면 어쩌자는 거냐?”
“경험한 게 많아서 그래.”
“뭔 소리야?”
“내가 게임이 너무 좋아서 프로게이머를 했잖아.”
“그렇지?”
“그런데 막상 프로게이머를 업으로 삼고 게임을 하니까 게임이 즐겁지가 않은 거야. 이기면 좋기는 한데, 예전처럼 부담 없이 게임을 할 수는 없더라고.”
“……그야 그렇겠지.”
“그러니까 좋던 것도 싫어지더라. 예전 같았으면 쉬는 시간에 어떻게든 게임 한판 더 돌려보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컴퓨터는 쳐다보기도 싫은 거야.”
주영기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다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게임을 좋아해서 시작했는데도 그렇게 열정을 잃어갔는데,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는 애들은 오죽하겠어? 처음에야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하려고 들겠지. 그런데 이게 워낙에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
“음…….”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결국 공부라는 것은 마라톤이다. 한순간 열정을 가진다고 해서 뭔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의 인내가 필요한 것이 공부다.
“시작부터 겁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애들은 항상 보기보다는 어른스러운 법이거든요.”
조규민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해야 할 건 아이들을 다독이고 보채는 게 아니라 방법을 알려주고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그렇긴 하지만…….”
우물쭈물대는 박유민 대신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시려구요?”
“네?”
“상황만 보자면 이미 또래보다 조금 뒤떨어진 것 같은데, 그런 애들을 어떻게…….”
“참 새삼스러운 말이네요.”
조규민이 다리를 꼬며 의자에 허리를 기댔다. 그 거만한 자세로 조규민이 내뱉은 말에 다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있습니까?”
“…….”
“제가 돈 쓰는 법을 보여 드리죠.”
박유민은 자신이 품고 있던 조규민의 성공한 남자라는 이미지에 재수 없는 남자라는 항목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