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01
#500.
시작하다 (5)
부우우웅.
강진호는 슬쩍 고개를 돌려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될 대로 되라는 얼굴로 차를 몰고 있는 조규민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보조석에 타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제가 많이 모셔다 드렸는데, 운전에 재미를 들이시고부터는 영 제 차에 타신 적이 없네요.”
“결국은 수고를 끼쳐 드리는 거니까요.”
“수고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강진호 씨를 모셔 드리는 것은 제게 있어서 업무의 연장이니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강진호 씨와 뭔가를 한다는 핑계로 일을 다 미뤄놓고 합법적으로 땡땡이를 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었죠. 이제는 그럴 수 없겠지만.”
뭔가 아련아련해지는 조규민을 보며 강진호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차 팔까요?”
“그러실 것까지야.”
여기서 장난으로라도 그러라고 했다가는 강진호는 정말 미련 없이 차를 팔아버릴 것이다.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니까. 그 끔찍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 조규민은 오랜만에 정색을 했다.
“안 그래도 차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네?”
“저번 사건 때 제 금동이가 완전 박살이 났거든요.”
“아, 그랬죠.”
“비슷한 걸 제 개인적으로 구해보려고 했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죄송하지만 같은 걸로 하나 더 주문 가능할까요?”
“금동이요?”
“네.”
그랬지. 그거 자전거였지. 자전거…….
조규민의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강진호가 그 자전거에 금동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만 해도 그건 자전거라고 부를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그건 자전거의 개념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현대의 자전거는 운송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바이크에 넘겨주고 이동 수단과 레저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결국 같은 힘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멀리 나아가는가가 자전거의 아이덴티티를 결정한다.
하지만 금동이는 그런 현대 자전거의 패러다임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자전거였다. 강진호의 강렬한 페달링을 견디지 못하고 이틀에 한 번 꼴로 페달이 부러져 나가자, 결국은 무게고 개뿔이고 부러지지 않는 데만 모든 초점을 맞춘 페달이 탄생했다.
프레임이고 뭐고 결국에는 다 같은 방향으로 조금씩 개조되다 보니 나중에 금동이는 프레임만 천만 원이 넘는 초경량화 자전거라는 명예로운 시작과 다르게 쌀 배달 자전거보다 무거워졌다.
‘그냥 하나 주문 제작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일반인에게는 자전거의 경량화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튼튼하다고 한들 차보다 무거운 자전거가 존재한다면 아무도 그 자전거를 타지 않을…… 아니, 못할 테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다르다. 이 사람은 자전거가 망가지지만 않는다면 차보다 무거운 자전거도 잘 굴리고 다닐 사람이 아닌가.
‘재경중공업에 이야기해서 시험작을 한 번 만들어보라고 해야겠어. 실험용으로 쓸 게 있다고, 아무리 무거워도 상관없으니 절대 부러지거나 망가지지 않는 자전거를…….’
그런데 그쯤 되면 그걸 자전거라고 할 수 있을까?
조규민은 때 아닌 개념의 혼란에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이 사람 때문이다.
조규민은 조금 얄밉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슬쩍 돌아보았다.
지금 자기는 강진호가 한 말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가고 있는데, 태연하게 자전거 이야기라니.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분노를 담아서 조규민이 대답했다.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조규민은 멍하게 도로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뭔가 서글퍼졌다.
“그런데 황정후 회장님 이야기는 뭡니까? 이게 황정후 회장님과는 무슨 관계가 있다고.”
“이사장으로 앉히면 모양이 나지 않을까요?”
“이, 이사장이요?”
조규민이 놀라서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그, 그게 그렇게 됩니까? 아니, 황 회장님은 그쪽으로는 별로 관심이 없으시거든요. 일전에 강진호 씨 때문에 이사장을 잠시 역임하시기는 했지만, 그건 생색내기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장 자리요?”
강진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어떤 방향에서 극의를 추구하든 결국에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무학도 마찬가지였다.
정공을 익히든, 마공을 익히든 어느 순간 사람은 벽을 만나게 된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을 말이다. 수많은 무인들이 벽을 넘지 못했다.
누군가는 결국 거기에서 안주하고 말았고, 누군가는 벽을 넘으려는 시도를 끝까지 하다가 결국 성공하지 못하여 폐인이 되어갔다.
지금 황정후가 맞이한 것도 비슷한 벽일 것이다.
결국 벽을 넘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는 없다. 하나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오르고 또 오른다면 언젠가는 벽의 끝에 도달하게 된다. 그 과정이 너무도 험난하고 고통스럽지만 말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무학이 아닌 다른 것에서 힌트를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때로 무인들은 산에 칩거하여 낚시를 즐기기도 하고, 괴이한 기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건 그저 단순히 무인들이 괴팍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무인들은 무학에만 심취하여 평생을 무학에 전념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벽에 부딪힐 정도로 깊은 무학을 익힌 자들은 평생 무학 외에는 아무것도 돌보지 않은 이들이기 일쑤였다.
결국 일반적인 상식이 다른 이들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평범한 이들이 살아가며 겪고 느낄 일들을 반의반도 겪어보지 못하니까.
자연히 극단적으로 좁아진 시야가 무학을 깊이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벽을 만나고 나서야 그것을 느낀 이들이 단시간 내에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하고자 기행에 가까운 생활을 시도하는 것이다.
무척이나 어리석은 방법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도 정론이다. 당연히 겪어야 할 일들을 겪지 못하여 이해도가 떨어져 벽을 넘지 못한다면, 그 이해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나만 보고 살아온 사람이 그 길에서 벽에 부딪혔다면, 다른 길을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는 법이죠.”
“하지만 본인이 하지 않으려고 할 텐데요.”
“그건 제가 설득해야 할 문제입니다.”
“으음…….”
본인이 직접 알아서 하겠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조규민은 살짝 굳은 얼굴로 전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믿을 구석은 그 양반들뿐이다.’
그로서는 더 이상 강진호를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를 막아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점점 도시에서 멀어져 가는 도로를 보며 조규민이 이를 악물었다.
‘믿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뜬금없이?”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행동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진짜 만렙 찍으신 것 같네요.”
방진훈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강진호는 그런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있는지도 모르게 데굴데굴 굴러다니다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주변이고 뭐고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직선으로 달려 버리는 사람.
예전 영남회와의 전쟁 때도 그랬고, 최근 나나호시 구미를 박살 낼 때도 그랬다. 바로 전날까지도 방진훈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런 예상을 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왠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행동력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적어도 옆사람들이 보조를 맞춰 같이 달릴 수 있도록 신호라도 보내줬으면 싶다. 그게 그리 어려운 요구도 아니잖은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그의 옆에 이현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이현수는 강진호의 미묘한 움직임만으로 신호를 포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가장 싫은 인간이었던 이현수가 있어서 안심할 수 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강진호라는 규정 불가의 인간을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막 ‘대체 그 말이 뭐냐’고 물으려는 찰나, 방진훈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저 양반, 왜 저래?’
강진호와 함께 온 조규민의 표정이 무척이나 간절했다. 문제는 그 간절한 시선이 바로 방진훈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강진호와 조규민이 함께 총회를 방문한 적은 없었다. 영남회를 치러 가기 전 버스에서 잠깐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총회로 들어온 적은 처음이었다.
뜬금없이 처음으로 총회를 방문한 조규민, 그리고 저 간절한 표정. 그 두 가지만으로도 지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 정도도 알아채지 못한다면 총회 회주라는 자리를 내놓고 농사나 지어야 할 것이다.
방진훈은 심호흡을 했다.
뭔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만, 이미 시작된 일. 마음을 단단히 먹는 수밖에 없다.
마음을 굳힌 방진훈이 넌지시 물었다.
“그래서…… 말씀하고 싶으신 게 뭡니까?”
“……재단요?”
“네.”
“재단요?”
“……네.”
“재단이요?”
“…….”
조규민은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방진훈은 어떠한 계산도 없이 황당하다는 표정과 세 번의 되물음만으로 지금 강진호의 멘탈을 우주 저 멀리로 날려 버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고, 고소해.’
깨소금 맛이다.
하늘 위에서 깨소금의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강진호는 당황한 듯 주춤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조규민의 가슴에 사이다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저 양반도 한 번 당해봐야지.’
자기가 생각 없이 던진 말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시달리고 고생을 하는 건지 한 번은 느껴봐야 한다. 예상 이상의 역할을 해주는 방진훈을 보며 조규민이 마음속으로나마 박수를 보냈다.
“어, 음, 상당히 예상외네요. 재단이라…….”
강진호가 나름 보육원 쪽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방진훈이지만, 그렇다고 강진호가 이쪽으로 본격적으로 뛰어들 거라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방진훈의 머릿속에서 강진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귀에 가까운 것이다. 살인마가 운영하는 복지 재단이라니.
“예. 뭐, 알겠습니다. 알겠는데…….”
방진훈이 여전히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그것과 이 시간에 갑자기 여기를 찾아오신 일과의 연관성을 도통 모르겠습니다. 제게, 그리고 총회에 뭘 원하시는 겁니까?”
강진호가 가만히 방진훈을 보며 물었다.
“총회에서 이 일에 얼마나 지원을 해주실 수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지원이요?”
“예.”
“어떤?”
“금전적으로든, 인력적으로든요.”
방진훈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건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쉽게 말하자면, 강진호가 총회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을 수치화해서 총회 내의 여력을 얼마나 강진호에게 할애해 줄 수 있는지를 말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걸 알고 말하는지, 모르고 그냥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방진훈으로서는 쉽사리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방진훈이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뭘 얼마나 지원해 드릴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가 회주이긴 하지만 그런 수치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약하니까요. 이런 부분은 이현수와 상의하시고, 제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는 하나인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 답변을 드리자면…….”
방진훈이 입술을 축였다.
살짝 고문을 하는 듯 고개를 숙인 방진훈이 다시 고개를 들고는 강진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제 개인적인 호오와 관계없이 만일 강진호 씨께서 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총회는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할 것입니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하십시오. 목숨을 걸고 도와드리겠습니다.”
조규민이 세상이 무너지는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망했어!’
저 인간은 눈치도 없다.
그렇게 한국 무도 총회 회주실에서 조규민의 가슴을 무너뜨리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