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07
#506.
마주하다 (1)
강진호가 전해준 마공의 비급은 이현수의 손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현수는 바쁜 와중에 그 비급을 번역해서 다시 마공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달했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 강진호에게 다시 번역한 비급을 전달해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말이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안 봐주시면 안 됩니다.”
비급이란 애초에 뜬구름을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급만으로 완벽하게 무학을 익힐 수 있다면 지금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강진호가 죽었다고 해서 마교의 무학이 모두 절전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수백 년 동안 쌓아 올린 무학은 비급으로 착실히 정리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비급을 통해 무공을 익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위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아래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마교의 무학은 변질되고 실전되었다.
비급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통해 바른길을 지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무학은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강진호도 그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홀로 강해진 것이 아니니까. 그에게 무학에 대한 개념과 기초를 잡아준 스승이 없었다면 강진호가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었다고 해도 적천마존이라는 지고한 위치에 오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름 각오는 하고 있었다만…….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강진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일 줄 내가 알았나.’
강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아니, 이걸 저더러 어쩌라구요?’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진호는 가장 앞에 앉아 있는 이명환을 보고 물었다.
“뭐가 문제지?”
“……문제요? 문제가 아닌 게 뭔지를 물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일단 다른 건 다 접어두고, 이걸 뭐 어떻게 익혀야 하는 건지를 모르겠습니다. 일단 첫 부분부터 이해가 안 갑니다.”
“어째서?”
“첫 부분은 일단 기운을 돌리는 것을 설명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일단 여기서부터 이해가 안 가는데, 외부에서 흡입한 기운을 단전이 아니라 백회로 가져가라고 되어 있거든요?”
“음…….”
“그걸 어떻게 합니까?”
“응?”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기운을 돌려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외기를 받아들이는 순간, 몸에서 차곡차곡 단전으로 기운을 모아버리는데요.”
“…….”
강진호는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에 직면했다.
빠르게 달리는 법을 가르쳐 줬더니, 걸음마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감싸 쥐었다.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인가.’
나름 이해가 가는 일이기는 했다.
범용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마공은 두 가지로 나뉜다. 기초부터 마공을 익히는 이들을 위한 정법(正法)과 중간부터 마공을 익히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사법(邪法)이 그것이다.
무학을 추구하고 교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정법을 익히는 것이 옳겠지만, 박해받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이민족과 귀화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마교의 입장에서는 새로 마교에 귀화한 이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 마공이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사법이다.
사법은 타문의 무공을 익힌 자들도 쉽게 새로이 마공을 익힐 수 있게 만들어졌다. 덕분에 정법에 비해 그 깊이가 부족했고, 부작용도 꽤나 있었다. 하지만 필요악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중용될 수밖에 없었다.
보통 강호에 풀려 문제를 일으키는 마공서라는 것들이 대부분 이 사법서였다. 정공은 일정 이상의 수준에 오른 이들이라면 익힐 수가 없었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강진호에게 배우겠다고 나선 이들은 정법을 익힐 수 있을 정도로 약했다. 그렇기에 적당한 정법서를 던져 준 것인데…….
‘아무리 난해하다고 해도 중원의 무인들이었다면 그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텐데.’
세상은 발전하기 마련이지만, 무학의 이론은 오히려 퇴보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한국의 무인계가 예전부터 답이 없었던가.
“그러니까, 일단 기운을 백회로 끌어 올리는 것부터가 문제라 이거지?”
“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만도 하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론이라 딱히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생각해 보니 이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겠다.
마공은 정공과 다르다.
정공을 익힌 무리들은 마공이 악마가 되기 위한 무학이기에 정공과 그 궤를 달리한다고 보지만, 실제로는 그 방식이 다른 것이었다.
일반적인 정공이 외부의 기운을 받아들여 단전에 저장하는 것에 비해 마공은 기운을 단전에 저장하되 복부가 아닌 백회로 기운을 받아들인다.
백회혈은 곧 정수리를 말한다. 전신으로 흡수한 외기를 정수리로 밀어 올려 척추를 따라 일직선으로 단전으로 내려보내는 것이다.
이건 마교가 곧 종교이기에 가능하던 방식이다.
중원의 모든 무학은 불교를 기초로 한다. 중원의 무학은 인도에서 전파되었고, 인도의 무학은 불교에서 파생했다. 그렇기에 정공은 스스로의 육체를 강건하게 만듦으로써 언젠가 깨달음을 얻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수련 역시 고행의 일종이고, 고행으로 격을 높여 나가 마침내는 등선, 혹은 열반에 드는 것이 목적이기에 안정성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마교는 달랐다.
스스로가 부처가 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인 불교와 달리 마교, 스스로를 신교라 부르는 이들은 성화(聖火)와 하나가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들은 세상 모든 것에 성화가 녹아 있다 생각했고, 그 성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백회로 기운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흡수한 기운을 단전으로 바로 보내는 것에 비해 백회로 한 번 돌려 받아들이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은 있었지만, 그들이 원한 것은 효율이 아니라 성화였기에 선택한 길이었다.
바로 거기서 의외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전신의 세맥으로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에 비해 백회를 넓혀 임독양맥으로 바로 기운을 받아들여 단전에 저장하는 방식이 몇 배 더 뛰어난 효율을 보인 것이다. 예측과는 달리 말이다.
덕분에 마공은 정공에 비해 과도하리만큼 빠른 진전을 보였고, 그걸 본 이들에게 ‘사공(死功)’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백회는 정수리다. 그리고 정수리는 곧 뇌가 있는 곳이다. 백회를 통해 기운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극도의 효율을 낳았지만, 필연적으로 뇌를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마공의 창안자들은 백회를 통해서 성화와 접하기를 원했지만, 정제되지 않은 기운들이 뇌리로 파고드는 방식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폭력성이 증가했고, 비인간적인 심성을 지닌 자들이 양산되었다.
복부에 쌓인 탁기는 몸을 조금 망가뜨리는 수준에서 끝나지만, 머리에 쌓인 탁기는 인간의 심성을 마비시켰던 것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학살자와 살귀들이 마공을 휘둘러 댔다.
그런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보완하고 또 보완하여 마침내 부작용을 최대한 덜어낸 마공을 완성시켰을 때는 이미 마교의 이미지가 악마와 동급이 되어버린 후였다.
‘옛이야기지.’
강진호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버렸다.
‘그럼 일단 이 방식으로 기운을 도인해 주면…….’
그때, 이명환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거, 이야기 들어보면 다른 사람들은 마공을 잘도 익히고 그러더만. 혼자 비급 얻어서 뚝딱뚝딱 익히고 그러는데, 저희한테는 왜 이런 걸 주는 겁니까?”
강진호가 당황한 눈으로 이명환을 바라보았다.
“저만 못 익히면 제가 멍청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겠는데, 이게 저만 못 익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이만한 사람들이 다 못 익힌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사람 놀리시는 것도 아니고.”
“맞습니다!”
“제대로 된 걸 주십시오.”
강진호의 이마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백 개의 마공이 담겨 있었다. 그중 저들이 말하는, 저잣거리에 떠도는 저급한 마공보다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역으로 무시를 당할 줄이야.
이들이 익힐 수 있는, 적당하고도 위력이 높은 마공을 골라낸다고 얼마나 고심을 했는데…….
그가 이들에게 던져 준 ‘염혼신공(炎魂神功)’은 과거 중원에 풀렸다면 수많은 문파들이 서로 가지겠다고 피바람을 피워 올리며 싸울 만한 신공이었다. 그런데 그 신공이 이런 대접을 당하다니.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더니, 보물이 있어도 그 보물을 알아볼 눈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과거의 강진호였다면 ‘그럼 관둬라’라는 말로 사태를 정리했겠지만, 지금의 강진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의 그는 과거의 적천마존이 아니다.
아랫것들이 아무리 무능하다 하더라도 나의 강함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폭군이 아니었다. 따라오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어르고 달래서라도 이끌고 가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그 부분이 어렵다는 거지?”
“예.”
“그럼 도와주지.”
“네?”
“일어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려줄 테니까.”
“아!”
이명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혹시 그 빌미로 사람을 괴롭히시려는 건?”
“나는 도인을 해줄 뿐이다. 기운이 들어가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려줄 테니, 다음번에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아, 알겠습니다!”
“이리 와서 등을 보이고 서라.”
“예.”
이명환이 희희낙락해서 강진호에게 달려와 몸을 돌렸다. 자연히 그가 모든 이의 앞에 선 형상이 되었다.
‘조금 뻘쭘한데…….’
그래도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어색함이야 참아낼 수 있었다.
강진호는 낮게 심호흡을 하고는 이명환의 등에 손을 댔다.
감정은 없다, 감정은.
이건 절대 마공이 무시당했다는 것 때문에 열 받아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절대로. 모든 것은 무학을 바르게 익힐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강진호의 입가에 살짝 미묘한 미소가 맺혔다.
우드드드드드득.
강진호의 기운이 이명환의 등을 파고들면서 전신의 뼈가 모두 부러지는 것 같은 소리가 강당 안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모두가 기겁을 하여 이명환을 바라보았다.
“…….”
이명환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찢어질 듯 벌어진 입과 질끈 감은 눈, 그리고 오그라들 듯 살짝 뒤틀린 손발이 그가 지금 얼마나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받아들인 기운을…… 백회로 끌어 올려서…….”
우우우웅.
낮은 소리와 함께 이명환의 몸이 벌벌 떨렸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듯 그의 입에서 침이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백회에서 단번에 단전으로 내리꽂는다!”
쿠우웅!
사람 몸 안에서 폭음이 터졌다.
어느새 강진호가 이명환의 몸에서 손을 떼고, 이명환은 그 자리에 쓰러져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금 이 감각을 잊지 말도록. 양맥에 탁기가 많이 쌓여 있기에 초반에는 좀 고통스럽겠지만, 반복하다 보면 괜찮아질 거다. 그러면…….”
강진호가 이명환에게서 고개를 돌려 모두를 바라보았다.
“다음.”
싸늘한 침묵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오늘 사람 잘못 건드렸다는 걸 실감하는 모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