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18
#517.
수련하다 (2)
축 처져 있는 뱅상과 마티외를 남겨두고 세 사람은 밖으로 나섰다.
방진훈은 슬쩍 고개를 돌려 멘탈이 터져 버린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찼다.
‘불쌍하게도.’
그의 앞에서 걸어가는 두 악마를 만난 것이 저 두 사람의 불행이었다. 악마 중 하나는 정도라는 것을 모르고, 다른 한 악마는 정말 말 그대로 악마 같은 놈이었다.
모든 것을 토해내는 뱅상과 마티외를 살살 구슬리고 윽박지르며 원하는 것―프랑스어로 말하고 있는데도 해석이 될 지경이었다―을 뽑아내는 이현수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마, 그 자체였다.
‘무서운 새끼.’
강진호가 없었다면 저 능수능란함이 총회를 상대로 사용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새삼 소름이 돋았다. 그 와중에 강진호에 대한 감사가 더욱 깊어졌음은 물론이고 말이다.
“생각보다 쓸모 있는 게 많네요.”
“다 믿을 수 있는 건가?”
“시연도 봤으니 괜찮겠죠.”
“흐음…….”
강진호는 매우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배운 무공이기는 하지만, 그는 일대 종사의 영역에 오른 무인이다. 체계가 전혀 다른 무학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구현 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부분이 완전히 상이하다는 느낌이라…….”
“확실히 그런 면이 있더군요. 이걸 과연 조화시킬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방진훈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나도 좀 같이 이야기합시다.”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저들이 말하는 마법이라는 것 있잖습니까.”
“그렇지. 그거 정말 신기하더만.”
방진훈은 조금 황홀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말 그대로 마법 같았어.”
“마법이니까요.”
그들이 보여준 것은 마법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육체를 이용하는 방법은 그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동양의 무학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다고 할 것은 없지만, 딱히 나은 부분 역시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낯설음을 감수하고 그들의 무학에 접목할 필요가 없다. 그 효용이 크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마법은 달랐다.
“일단 다른 건 몰라도 그 아공간인가 뭔가 하는 건 정말 끝내주더군요.”
“음…….”
강진호는 이현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강진호가 이들에게 흥미를 느낀 이유도 그것이었으니까. 그저 신기한 수준에 지나지 않고, 무척이나 실용성이 높은 기술이었다. 이 방법이 왜 지금까지 동양으로 전파되지 않았는가 궁금할 정도로 말이다.
무학을 익히는 이들은 대부분 무기를 쓴다.
아무래도 맨주먹으로 공격하는 것보다는 무기를 사용할 때 살상력이 더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무기를 들고 이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강진호가 청루나 적루를 들고 집을 나선다면 채 십 분도 걷기 전에 달려온 경찰들에게 체포당해 유치장 신세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무인들은 필수적으로 차를 끌고 다녀야 했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차가 있는 곳은 사람이 지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인들은 사람의 눈을 피해야 한다. 결국은 한적한 곳에 차를 대고 무기를 들고 올라가서 싸우고, 그 무기를 다시 차에 싣는 과정을 거처야 하는데…… 이게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예전 강진호가 자객을 상대했을 때처럼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 습격이라도 당한다면, 무기가 있을 때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적에게도 고전할 수밖에 없다.
이건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하지만 저 아공간이라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면 이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된다. 아공간에 애병을 넣고 다니는 것으로 모든 무장을 갖출 수 있다. 그러니 어찌 탐나지 않겠는가.
“이 기술 하나만으로도 저들을 살려줄 가치는 있었습니다.”
강진호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만은 아니지만.’
꽤나 흥미로운 기술이 몇몇 있었다. 특히나 기운을 소모하지 않고 자연력으로 전환하는 능력은 강진호의 관심을 제대로 끌었다.
강진호의 기준으로 본다면 약해 빠진 이가 손에서 어렵지 않게 불꽃을 만들어냈을 때는 정말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이 세계로 돌아와 이렇게 놀라본 적은 진심으로 흔치 않았다.
강호에서는 적어도 화경에 들어야 삼매진화를 피워낼 수 있다. 그런데 강호 기준으로 겨우 이류에 들어 보이는 무인이 맨손에서 불을 마구 피워내다니…….
물론 그 위력이야 감히 삼매진화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 효율만은 정말 놀라웠다. 강진호조차 그거 어떻게 한 거냐고 당장 물어보고 싶었을 정도로 말이다.
“단순히 유용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들이 사용하는 무학은 확실히 우리가 사용하는 무학보다 효용성이 높습니다.”
“음.”
강진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느끼는 바였다.
“잘 연구한다면 재미있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야 하겠지만…….’
강진호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모두 하지는 못했다.
‘잘 연구한다면 말이지.’
이건 효율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다. 두 가지 무학을 하나로 융합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게 가능한 이를 강호에서는 종사(宗師)라 불렀다. 그 길고 길던 강호의 역사 속에서도 일대 종사(一代宗師)라 불린 이들이 얼마나 적었던가를 생각해 보면, 이 일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이현수에게 바라는 것은 원숭이가 키보드를 두드려서 햄릿을 뽑아낼 확률과 비슷했다. 이현수가 유능한가, 무능한가로 답이 정해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조건이 부족하다.
‘저 정도로는 안 돼.’
하나의 무학을 다른 무학에 접목하는 것은 종사급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쪽에는 동양의 무학에 정통한 강진호가 있지만, 건너편에서 그 역할을 해줘야 할 이의 무학이 그 급에 오르지 못했다.
뱅상에게는 너무도 무거운 짐인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강진호가 저들의 무학을 기초부터 익혀서 종사급에 오르는 수밖에 없는데…….
‘쉽지 않은 일이지.’
말이야 간단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의 무학에 정통한 이가 다른 방식의 무학을 익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방식이 달라지면 기운이 뒤틀리고, 결국은 충돌하게 한다. 그게 바로 주화입마다.
같은 동양 무학 내에서도 방식이 다른 무학을 섞으려 하면 주화입마의 위험을 피할 수 없는데, 방식이 전혀 다른 무학을 익힌다면?
당연히 그 위험은 몇 배로 치솟을 것이다.
얻어낼 것에 비해 위험이 훨씬 크다면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
“천천히 하지.”
“예?”
“서두르면 체하기 마련이니까.”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일단은 몇몇을 뽑아 그가 전수하는 것을 익힐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겠습니다. 노력은 하는데 영 수준이 오르지 않는 녀석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해 보죠.”
“좋은 방법이로군.”
강진호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려하시는 바가 뭔지 알고 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심정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뒤늦게 부작용이 나타나면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요.”
“음.”
강진호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더 강했어야 해.’
이왕이면 좀 더 강한 이가 필요했다. 강호에서 괜히 수많은 이들이 고수에게 사사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뛰어난 이가 반드시 좋은 스승이 되지 못하는 법이지만, 무학의 경우는 달랐다.
무학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오르면 오를수록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는 법이다.
낮은 산에 오른 이는 겨우 주변을 볼 수 있지만, 높은 산에 오른 이는 천하를 볼 수 있다. 주변을 보는 이와 천하를 보는 이의 가르침이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강진호는 스스로가 강해질 수 있던 첫 번째 이유로 스승을 뽑았다.
그의 스승은 강했다.
훗날 그가 마교의 교주 자리에 올라서야 스승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을 정도로 말이다. 적천마존의 이름을 얻고 마교의 모두를 그의 발아래 두었음에도 그는 스승을 뛰어넘었다고 자신하지 못했다.
오히려 높이 올랐기에 알 수 있었다.
그의 스승의 등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그가 얼마나 지고한 경지에 올라 있었는지.
어째서 스승의 이름이 천하에 울려 퍼지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거드름을 떨던 무당의 장문인도, 천하제일이라 불리던 소림의 방장도 감히 강진호의 스승에 견줄 수는 없었다.
그런 스승에게 사사를 했기에 강진호는 적천마존이 될 수 있었다. 그가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시작부터 마교에 투신했다면, 그저 그런 마졸로 일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어떠한 스승에게 배우는가가 중요했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보면 뱅상은 좋은 스승이 될 자격이 부족했다.
‘마지막 퍼즐이 맞아떨어지지 않는군.’
강진호는 이현수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한국의 무인계는 다르다. 아무리 강진호가 있다고는 하나 강진호 혼자서 이들의 모자라는 전력을 모두 보충해 줄 수는 없다.
강진호는 인간의 선함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조직의 선함은 더더욱 믿지 않는다. 이현수의 말대로 언젠가는 파국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 그 파국이 도달하기 전에 반드시 총회를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마공을 전수하고 서양의 무학을 연구하는 것이 모두 그 일환이었다.
서양의 무학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높은 사람이 한 명만 있었어도 조금 더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이지.”
“예?”
“아니, 아무것도.”
강진호가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 * *
“이건 아니야.”
엘레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도 알고 있다. 그녀는 그저 일개 폰에 불과했다. 저 강진호와 총회를 상대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괜스레 일을 해결해 보겠답시고 들쑤셔 댔다간 괜히 강진호를 자극하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이 그리 흘러 버린다면 그 모든 책임은 그녀가 져야 할 것이다. 원탁은 결코 그녀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먹잇감을 찾은 승냥이처럼 그녀를 물어뜯을 것이다.
빤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원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총명한 그녀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엘레나는 그 모든 것을 예상할 수 있음에도 모험을 선택했다.
“어떻게든 강진호 씨를 설득해 봐야 해.”
그녀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영웅심?
그게 아니면 활약할 기회?
개나 주라지.
그녀가 지금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는 수많은 슈발리에들이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그들을 방치한다면 원탁은 더 이상 그녀가 믿고 따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입술을 질끈 깨문 엘레나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원탁이 안 하겠다면, 내가 해버리면 그만이지! 내가 구해내겠다고!”
그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건 조금 위험한 발상이군.”
엘레나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