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20
#519.
수련하다 (4)
기운이 백회를 통해 단전으로 내리꽂히는 것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일전에 강진호가 그의 육체를 통해 시범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자신이 기운을 움직이는 것과 타인이 움직여 주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육체로 밀려 들어온 기운이 일정한 흐름에 따라 백회로 올라가 연속적으로 내리꽂히는 과정은 이명환에게 기이한 감각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무인이고, 기를 사용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주로 익혀온 것은 기를 발출하는 방법이었다. 미세하게 모인 진기를 단번에 발출하는 것만 반복하던 이가 이만한 기운이 단전으로 직접 밀고 들어가는 감각을 언제 느껴보았겠는가.
“흐읍.”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에 이명환이 심호흡을 했다. 지금 이 감각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몇 번이고 이 과정을 반복한 이명환이 눈을 번쩍 떴다.
“……강진호 씨.”
그의 눈앞에 무심한 얼굴의 강진호가 서 있었다.
“혹시?”
“아니.”
혹여나 강진호가 그의 과정을 도왔느냐는 질문에 강진호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혼자 한 거야.”
“아…….”
이명환의 얼굴에 환희가 어렸다.
‘마침내.’
이 말도 안 되는 무학을 익히겠답시고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끝자락조차 잡을 수 없던 일이 한 번 감을 잡은 순간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익힌 겁니까?”
“다음에도 할 수 있다면.”
“그럼 지금 바로 다시 해봅니까?”
“서두를 것 없어.”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머리로 익히지만, 몸에 새기는 거야. 자연스럽게 몸이 알아서 운공할 수 있도록 되어야 완성이라 할 수 있지. 지금 한두 번 더 겪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 차라리 백지부터 새롭게 깨달아가는 과정을 두어 번 반복하는 것이 훨씬 나을 거야.”
“아, 알겠습니다.”
이명환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이 과정을 돌파했다는 생각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기쁘기도 한 반면, 어떻게든 이 느낌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강했다.
“급히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지.”
그런 이명환에게 딱 적절한 조언이었다. 강진호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싸해졌다.
무학에 있어서 서두름보다 큰 적은 없다. 단계를 제대로 밟아 나아가는 것이 느려 보여도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후우웁.”
이명환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심호흡을 몇 번 하자 들뜬 마음이 한결 진정되는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은?’
일반적으로 운공이라는 것은 은밀한 곳에서 행해지기 마련이다. 운공 중인 무인은 외부의 공격에 무척이나 취약하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한 채, 한 채 집이 따로 떨어져 있던 과거와는 다르게 지금의 집들은 밀집되어 있는데다 외부의 자극에 취약했다.
게다가 지금 그들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대부분의 인원들이 강당과 연무장에 모여서 운공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이들이 들어왔다.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광경이네.’
이곳은 총회였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총회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는 마공을 익힌 자들을 잡아서 처단하는 것이었다. 마공을 익힌 이들은 ‘모두가’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같이 인성이 마비되어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 마련이었다.
기본적으로 외부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이성조차 없기에 그들이 사고를 치면 일이 커졌다.
그나마 예전에는 미디어가 크게 발달하지 않아서 큰 사건이 발생해도 재빠르게 덮을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무슨 일이 터졌다고 하면 기자들이 개떼처럼 달려들고, 평범한 사람들조차 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세상에서는 사건을 은폐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고, 그 방지가 바로 마인들의 척살이었다.
그런데 그런 총회에서 젊은 무인들이 단체로 마공을 익히겠답시고 끙끙대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새삼 놀라웠다.
그 모든 것의 원인이 된 이가 지금 그의 옆에서 운공을 하고 있는 이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
그들에게 있어서 강진호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었다.
강진호가 마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것은 그들이 그토록이나 경원시하던 마공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마공을 저런 말도 안 되는 경지까지 익혀냈음에도 불구하고 인성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마공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벽하게 깨진 것이다.
눈앞에서 마공의 효용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식에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본인이 직접 마공을 전수한다고 하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다만…….
이쯤 되니 한 가지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마공을 익히는 것은 매우 실험적인 일이다.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공으로 가는 동아줄을 움켜잡은 이명환은 모두가 마공을 익힐 수 있게 된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걱정이 결국은 말이 되어 흘러나왔다.
“저…… 강진호 씨.”
“음?”
“한 가지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만.”
“뭐지?”
강진호가 태연하게 반문했다. 이명환은 그의 머릿속에 있는 이 복잡한 생각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부드럽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저희가 이 마…… 아니, 무공을 익히는 것 말입니다.”
“음.”
“협의가 끝난 겁니까?”
“무슨 말이지?”
강진호는 이명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뇨. 그러니까, 회주님이 승인했다는 건 알겠는데…… 이걸 다른 이사님들도 알고 계시나 싶어서…….”
“글쎄, 잘 모르겠군.”
강진호는 딱히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러나저러나 상관이 없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이명환은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회주님과 부장님이 알고 있다고 해도 이사님들이 이 사실을 모른다면 반드시 문제가 될 겁니다. 그분들이 마공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은 우리와는 그 궤를 달리하니까요. 분명 총회 내에 마인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계속해 봐.”
이명환이 침을 꿀꺽 삼켰다.
“강진호 씨의 귀에는 이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마공을 익힌다는 것에 저항감이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 마공이라는 것 자체에 저항감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그저 내가 익히지 않겠다는 수준이 아니라는 거죠. 저희도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하겠다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마공을 익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면 반발했을 겁니다. 그래도 젊어서 새로운 것에 저항감이 크지 않은 저희가 그리 꺼려하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구나 저희는 마공의 폐해를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예전에는 마공을 익힌 이들이 사람을 떼로 죽이거나 총회의 무인들과 충돌을 일으켜 사람들을 살상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그런 이들이 하나하나 제거되어 나름 평화로운 세상이 온 건데, 총회에서 마인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명환이 말끝을 흐렸다.
해야 할 말은 모두 했다. 강진호라면 그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심각한 마음과는 다르게 강진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실 문제가…….”
“문제가 뭐지?”
“예?”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문제가 뭐냐고.”
“…….”
이명환은 입을 다물고 강진호의 말을 곱씹었다.
문제? 문제라고?
“기존 이사진들의 반발이…….”
“그리 걱정할 문제가 아냐.”
“어째서입니까?”
“그들이 걱정하는 건 너희가 이성을 잃은 마인이 되어 날뛰는 것 아닌가?”
“……그렇겠죠.”
“그게 아니라는 걸 너희가 증명할 텐데, 뭐가 문제지?”
이명환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물론 그렇다.
강진호가 전한 마공은 지금까지 그들이 알던 마공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증명되기만 한다면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증명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당장 그들이 별 이상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하는 이들이 생겨날 것이다. 비급을 주고 확인하라 해도 발견할 수 없는 어딘가에 수작질이 펼쳐져 있을 거라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믿고 싶지 않을 테니까.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체계가 같은 새로운 무학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 사람인데, 마공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건 별문제도 아냐.”
“예?”
“결국 변화는 일어난다. 변화가 일어나면 두 종류의 사람이 생겨나지.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과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
이명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방법을 쓴다 하더라도 충돌은 일어나기 마련이야. 그리고 마지막에는 옳던 쪽이 반대쪽을 흡수하게 되는 거지. 너희는 너희가 옳았다는 걸 증명하면 그만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겁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해결 방안 같은 건 없어.”
“…….”
“겉으로는 더없이 깔끔해 보이는 해결법도 안으로는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지. 변화란 그런 거야. 모두에게 이롭고, 모두에게 편안한 변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어. 그 불편함을 감수하느냐, 아니면 반발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방진훈 회주의 장악력은 이중걸 회주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젊은 층의 지지를 다수 받고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장로들이나 이사들에게는 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이걸 구실로 방 회주를 쳐내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건 막아야 하지 않습니까?”
“왜?”
“……예?”
“왜 그걸 막아야 하지?”
“…….”
이명환은 혼란에 빠졌다.
강진호는 방진훈을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아니면 회를 장악할 수만 있다면 회주가 누가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려 강진호를 살핀 이명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강진호가 무척이나 섬뜩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견 무표정해 보이지만, 그 안에 차가운 살의가 들끓고 있는 것 같은 얼굴. 오로지 강진호에게서만 볼 수 있는 그 얼굴이었다.
“상처가 곪으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가?”
“……상처요?”
이명환은 제대로 생각을 해보지도 못하고 대답했다.
“치료해야죠.”
“도려내야 한다.”
“…….”
“위험한 건 상처가 곪는 게 아냐. 상처가 어딘지 모르는 거지. 어디가 곪고 있는지를 모르면 도려낼 수조차 없으니까.”
‘이 사람, 설마?’
찾아내겠다는 건가?
총회 안의 곪고 있는 부분을? 그들을 이용하여?
어쩌면 강진호가 그들에게 마공을 전수하는 건 단순한 전력의 강화 때문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더 먼 곳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는 볼 수 없는, 그 먼 곳을 말이다.
“기다리면 된다. 그럼 눈에 띄겠지. 곪아서 부풀어 오른 곳이 말이야.”
강진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