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23
#522.
자각하다 (2)
나이트 위긴스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뭐, 이런…….’
왜 그들의 모든 계획이 비틀어졌는가.
왜 그들이 이런 상황까지 몰리고 말았는가.
그 모든 이유가 지금 그의 눈앞에 있었다.
‘이러니 실패할 수밖에.’
모든 계획은 상대를 파악하는 데서 출발한다. 정보라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상대의 전력과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모든 계획의 시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탁은 시작부터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슈발리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여러 의미에서 말이다.
가진바 강함이라는 측면에서도 슈발리에들이 상대하기는 벅차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예측이 안 된다.’
저런 급격한 기질의 변화를 보이는 자는 흔치 않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대부분 커다란 악의(惡意)를 품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악의 때문에라도 보통은 높은 위치까지 이르지 못하기 마련이었다.
성장해 나가는 와중에 반드시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고, 제거당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개중에 자신의 성격을 어떻게든 감추거나, 너무도 강하기에 제거가 불가능한 이들이 존재했다. 그런 이들은 대부분…….
‘악마가 되지.’
세상을 뒤흔드는 악마가 말이다.
엘레나의 말을 들으면서도 믿지 않았다. 그녀의 눈으로 보는 강진호와 그의 눈으로 보는 강진호가 동일할 수는 없으니까. 엘레나는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이라도 그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강진호를 눈으로 직접 본 소감은 매우 간결했다.
‘이자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무력보다는 판단력이었다. 그리고 그의 판단력은 본능에 기대는 바가 컸다. 이성적으로라면 당연히 무시했어야 할 엘레나의 경고를 결국은 입에 담아버린 것도 본능적인 껄끄러움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의 본능이 지금 소리치고 있었다.
이자와 적대하지 말라고.
절대 이자와 맞서지 말라고 말이다.
“위긴스?”
강진호가 묘한 눈으로 나이트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서로 맞닿는 순간, 나이트 위긴스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저 눈이 마주쳤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이트 위긴스는 강진호가 금방이라도 그에게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다는 공포를 느꼈다.
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관계라는 것은 합의하에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처음 마주하는 이가 언제라도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인간을 집 밖을 나서지도 못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의가 없는 한에는 결코 상대를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기에 인간은 무리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자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이자가 지금 당장이라도 나이트 위긴스의 머리를 쪼개 버린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되레 지금 당장 달려들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런 자에게 어떻게 공포를 느끼지 않겠는가.
“네.”
얼어 있는 나이트 위긴스 대신 엘레나가 대답을 했다.
“나이트 위긴스세요. 원탁을 책임지시는 나이트 중 하나이시죠. 그리고…….”
엘레나가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제 아버지세요.”
강진호는 엘레나의 말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대화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대화라…….”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쪽에서는 대화할 상대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모양이지?”
엘레나는 입을 다물었다.
강진호가 무엇을 지적하는지 알고 있었다. 모습을 감추고 숨어 있던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믿어주세요. 그럴 의도는 없었어요. 저희는 강진호 씨가 나타나는 대로 바로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강진호가 가만히 엘레나를 노려보았다.
“정말이에요. 저, 저는 강진호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요. 그런 제가 이런 얄팍한 수작으로 강진호 씨를 속이려고 들 리가 없잖아요.”
“숨어서 기다렸던 이유는?”
엘레나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끼어들어서는 안 되니까요.”
“끼어든다?”
“……당신의 일상에.”
강진호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생각해 보면 엘레나는 이미 한 번 그의 일상에 마구 끼어들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성인이고 머리가 있는 이상 한 번 경고받은 일을 다시 하지 않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조심스럽게 그에게 접근해 온 이도 없던 게 사실이다.
그 사실이 강진호를 조금 흡족하게 만들었다.
“납득이 가는군.”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엘레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넘긴 것이다.
“그럼 대화를…….”
“나중에.”
“네?”
“오늘은 좀 피곤하군. 내일 보지.”
“가, 강진호 씨.”
“그쪽에도 나쁜 제안은 아닐 거야.”
강진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더니, 자신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엘레나가 손을 뻗어 그를 잡으려 하자, 나이트 위긴스가 엘레나의 손을 움켜잡았다.
“나이트?”
영문을 모르겠다는 엘레나의 반응에 나이트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이 맞다.”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은 도저히 정상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도, 그리고 그도.”
“…….”
이유는 다르지만 말이다.
강진호는 살의가 들끓어 올라 무슨 말이 나오더라도 격정적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고, 그는 지금 무척이나 질려 있는 상태였다.
양쪽이 모두 침착하지 못한데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서로가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렇게나 살기를 내뿜어 대고 있는데도 자신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일반적인 무인이 그만한 살기를 뿜어냈다면 자신의 살기에 휘둘리고 말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피를 보려고 날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너무도 농밀해서 숨이 막힐 것 같은 살기를 순식간에 회수해 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보면 볼수록 만만치가 않아.’
나이트 위긴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최선의 선택이 될지, 최악의 선택이 될지는 지켜봐야겠군.’
어쩌면 이 일이 그의 생각 이상으로 복잡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벽에 등을 기대는 나이트 위긴스였다.
다음 날 아침.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엘레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대문을 열고 나온 강진호가 그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음.”
나이트 위긴스가 주변을 확인해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실드를 걷어냈다. 그들이 보는 것에는 변화가 없지만, 이제 그들의 모습이 다른 이들 눈에 보일 것이다.
강진호는 매우 흥미롭다는 듯이 나이트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이트 위긴스의 반응 역시 평범하지는 않았다.
‘저자가 어제 내가 본 그자인가?’
다른 사람 같았다.
어제 그가 본, 짐승 같던 강진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평범한 이십 대 청년이 거기에 서 있었다. 절대 평범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순간적으로 사람이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강진호의 변화는 극단적이었다.
엘레나와 다른 정보원들 간의 정보가 전혀 들어맞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른 정보원들이 이런 강진호의 모습만을 봤다면 딱히 위협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 이상으로 미친놈이로군.’
어떻게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자신을 숨길 수 있을까?
너무도 다른 강진호의 모습에 그의 머리가 복잡해지려는 찰나,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생각이 많아 좋을 건 없지.”
“으음…….”
정곡을 찔러 들어오는 강진호의 말에 나이트 위긴스가 침음을 삼켰다.
“대화를 하러 왔다면 대화를 해주지. 하지만 딱히 대화할 거리가 없는 것 같은데?”
나이트 위긴스는 자세를 바로 했다.
강진호가 대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 자리는 결코 사적인 자리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명령을 어기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해도 그는 나이트. 원탁을 대표할 수 있는 자였다.
“먼저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강진호 씨.”
나이트 위긴스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자였으나, 상대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용건이 있는 쪽에서 예를 표하는 것이 맞았다.
“강진호다.”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대답이지만, 나이트 위긴스는 흥분하지 않았다. 어제의 ‘그’ 강진호를 생각한다면,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드릴 말씀은 많지만…… 자리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용한 곳으로 가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원하는 대로.”
위긴스의 손짓에 따라 걸음을 옮기는 강진호의 모습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몇 마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분위기만으로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나이트 위긴스가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흥분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 그가 싸워야 할 곳은 칼이 날아다니는 것보다 더 살벌한 곳이니까.
나이트 위긴스가 군말 없이 강진호의 뒤를 따랐다.
“홍차라도 시켜줘야 하나?”
“저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굳이 선호를 따지자면 맥주지만 말이다.
영국인 중에서도 홍차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나이트 위긴스는 주문을 하러 가는 엘레나를 보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여기가 조용한 곳인가.’
물론 아침 일찍부터 연 카페라 손님도 없고 나름 조용하기는 하지만, 대화를 나누기에 적당해 보이지는 않았다. 특히나 각국을 대표하는 무인이 앉아 대화하기에 이곳은 너무도 개방되어 있었다.
살짝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강진호가 여기면 충분하다는 얼굴인데 뭘 어쩌겠는가.
“후우.”
낮게 한숨을 내쉰 나이트 위긴스가 강진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피차 시간이 많지는 않을 테니.”
“……그것 역시 나쁘지 않겠군요.”
좀체 대화의 주도권을 가지고 오기가 힘들었다.
대화가 오가야 화술을 발휘해 볼 텐데, 강진호는 대화라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이럴 거면 굳이 이동할 필요도 없었을 것을.
나이트 위긴스가 살짝 주먹을 쥐었다 폈다.
상대방의 페이스에 말려서는 안 된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대화의 주도권을 끌고 가야 한다. 그렇다면 조금 강하게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리를 끝낸 나이트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귀국에 억류되어 있는 프랑스의 슈발리에들을 방면해 주십시오.”
강진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들어갔다.
“그걸 왜 나한테 이야기하지?”
“당신이 실권자니까요.”
“엉터리 정보로군.”
“강진호 씨.”
나이트 위긴스가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를 욕하는 것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 정보가 틀렸다는 말씀은 말아주십시오. 그건 목숨을 걸고 이 정보를 얻어온 정보원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저는 그들의 정보를 절대적으로 신뢰합니다.”
나이트 위긴스는 흔들림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기품 있는지, 음료를 들고 돌아오던 엘레나마저 일순 멈춰 멍하니 나이트 위긴스를 바라보았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하찮은 신뢰로군.”
나이트 위긴스의 얼굴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