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25
#524.
자각하다 (4)
“그가 바토르 님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빤한 소리로군.”
바토르는 나이프를 들어 말린 양머리를 잘라내었다. 그리고는 고기 한 점을 입안으로 던져 넣었다.
“……맛있으십니까?”
“한 점 하겠나?”
“사양하겠습니다.”
장다징은 다리 달린 것이라면 책상 빼고는 모두 먹는다는 중국인이지만, 저 말린 양머리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저걸 한국으로 가져오느라 그가 한 고생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맛이라.”
바토르가 빙긋 웃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먹을 게 얼마나 많은가. 이것 말고도 더 맛있는 것은 많지.”
“그럼 왜 굳이?”
“잊지 않기 위해서지.”
바토르는 말을 하면서 양의 머리를 잘라내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다 보면 내가 몽골인이라는 사실을 때때로 잊게 된다는 말이야. 이 발달한 문명에 몸을 녹이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대초원이 불편해지지. 인간은 편함을 추구하기 마련이니까.”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 먹는 거다. 내가 대초원의 자식임을. 이곳을 헤매고는 있지만 나의 혼은 언제나 저 드넓은 초원에 있음을 말이야.”
바토르가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이런 고급 정장을 입고 할 말은 아니겠지만.”
장다징은 바토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말하는 혼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고, 굳이 그렇게까지 자신의 출신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바토르가 그것을 원하기에 따를 뿐이다.
“안색이 좋지 않군.”
“……죽을 뻔했으니까요.”
“쿡쿡쿡쿡.”
바토르는 빤히 예상이 간다는 듯이 웃었다.
“짐승 아가리에 피비린내 나는 생고기를 밀어 넣었으니 손목이 잘릴 만도 하지.”
“그걸 시키신 분은 바토르 님이십니다만?”
“그래서 살아 돌아올 방법도 마련해 주지 않았나.”
“……그렇죠.”
병 주고 약 준 격이다. 물론 병에 걸리기 전에 미리 약을 줬으니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예상대로 나왔는가?”
“예. 그런데 알고 있다고 해서 쉽게 대처가 되지는 않더군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그랬겠지.”
바토르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강진호 정도 되는 마인이 내뿜는 살기는 보통의 무인이 감당할 수 없다. 강진호가 조금만 더 독한 마음을 먹었다면 장다징은 심장마비로 죽었을 것이다.
“강진호가 그런 식으로 나올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미리 예측하셨습니까?”
“예측이 아니야. 빤한 거지.”
“그게 그 말 아닙니까?”
“굳이 예측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이 하찮은 일이라는 거다. 그도 굶주려 있을 테니까.”
“……죄송합니다만 바토르 님. 저는 바토르 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머리가 좋지 않습니다.”
“쯧쯧.”
바토르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맹수를 우리에 가둬두면 어떻게 되겠는가?”
“……적응하지 않을까요?”
“그럴 것 같나?”
바토르가 코웃음을 쳤다.
“자네가 아는 동물원에 갇혀 있는 맹수들은 인간의 손에 사육되어 자란 개체들이지. 야생에 있던 맹수들을 바로 가둔 것이 아니란 말이야.”
“예. 저도 그리 알고 있습니다.”
“맹수는 맹수지. 가둔다고 해서 그 야성이 사라지지 않아. 아무리 때마다 먹이가 들어오고 사는데 별 불편함이 없다고 해도 맹수는 길들여지지 않아.”
장다징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바토르가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강진호에게는 이 한국이라는 땅이 거대한 우리와 같다는 말이지.”
“……아.”
장다징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바토르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 것 같았다.
“이곳에는 모든 것이 다 있지.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어. 게다가 그의 능력 정도라면 이 나라를 쥐고 흔들 수도 있겠지. 돈, 권력, 여자. 원하는 것은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도 있지.”
“그게 야성입니까?”
“그래. 짐승처럼 들끓는 야성. 강자와 싸우고 그 피를 마시고 싶다는 욕망. 그 욕망은 이곳에서는 결코 충족시킬 수 없어. 이곳의 수준으로는 결코 그를 만족시킬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 앞에 내가 나타난 거지.”
바토르가 씨익 웃었다.
“거의 첫사랑을 다시 만난 기분 아니었을까?”
“……그 비유는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속이 좋지 않아서요.”
“문학성 없는 친구 같으니라고.”
“이건 문학성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바토르 님.”
바토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어서 호텔 창가로 향했다.
“보게.”
커튼을 걷어내자 눈부신 야경이 그들의 앞에 펼쳐졌다.
“인간은 마침내 여기까지 도달했지. 하지만 무인들의 세상은 반대로 몰락하고 있지.”
“몰락입니까?”
“내가 보기에는 그래. 어둠 속에서 예전보다 더한 영화를 누린다고 지껄이는 것들도 있지만.”
바토르가 어깨를 으쓱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숨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거꾸로 우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장다징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다들 억눌려 있는 거지. 나도, 그리고 강진호도.”
바토르의 목소리는 조금 씁쓸하게 들렸다.
“그 억눌려 있는 와중에 탈출구를 열어주니 달려들 수밖에 없는 거지.”
장다징은 미묘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나 인정하시는 건가?’
바토르의 말끝마다 묻어난다. 바토르가 강진호를 무척이나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저 오만한 자가.
바토르는 상사로 모시기에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실력도 없이 허세만 가득한 놈들에 비한다면 모실 기분이 절로 나는 상사였다.
하지만 무공에 대한 부분은 달랐다.
바토르는 무학에 있어서만큼은 자부심이 끝도 없는 사람이다. 그 홍왕에게 도전할 만큼이나 자신의 실력에 확신이 있었다. 그런 바토르가 강진호를 이만큼이나 인정한다는 것 아닌가?
“바토르 님.”
“으음?”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어쩌면 무척이나 무례한 질문이 될 수도 있어서…….”
“그럼 하지 마.”
“…….”
“농담이네. 물어봐. 대답해 줄 테니.”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바토르 님은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질문을 좀 더 구체화해 줬으면 좋겠는데.”
“강진호 말입니다.”
바토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진호와의 승부에 승률이 얼마나 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바토르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확실히 무례한 질문이로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질문이기도 해. 일단 두 가지를 먼저 지적해 주지.”
“예?”
바토르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승부에 승률을 따지는 것처럼 멍청한 짓이 없다. 이기는가 지는가만 있을 뿐이지. 인간은 항상 자신의 힘을 백 프로 발휘할 수 없어. 컨디션이 좋은 날이 있고, 나쁜 날이 있지. 이렇게 생각해보게. 내가 컨디션이 좋은 날 100의 힘을 낸다면 나쁜 날은 50의 힘을 낼 수 있겠지.”
“예.”
“그런데 어떤 이가 컨디션에 따라 60에서 30의 힘을 낸다고 해보게. 내가 그를 항상 이길 수 있겠나?”
“아닙니다.”
바토르가 컨디션이 최저일 때, 최고의 상대와 붙는다면 바토르가 패할 것이다.
“물론 이리 단순히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말이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승부라는 것은 기계적으로 승률을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그리고 설령 한 번 승부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음에도 똑같은 결과가 날 것이라 예상할 수 없다는 거야.”
“그럼?”
“그러니 확신할 수는 없겠지. 다만.”
바토르가 빙그레 웃었다.
“지금 그와 나의 차이는 누가 더 좋은 상태인가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지.”
“아…….”
바토르의 목소리에 확신이 묻어 있었다.
“좋은 상대지. 내 피가 끓을 만큼 말이야. 중원에서도 이만 한 상대는 구하기 쉽지 않아. 분명 전력을 다해 싸울 가치가 있는 존재지만…….”
바토르의 눈이 가라앉았다.
“나는 바토르다.”
그 말이 장다징을 안심시켜 주었다.
그렇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이는 바토르다.
그 홍왕이 인정한 자인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자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바토르 님. 제가 멍청한 질문을 했습니다.”
“아니. 덕분에 나도 조금은 긴장하게 됐군. 이렇게까지 말해 놓고 지기라도 한다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야겠지.”
바토르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검군.’
이곳의 하늘은 너무도 검었다.
중국의 하늘도 이와 별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토르는 이 검디검은 하늘에 한줄기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대초원에서 보는 하늘과는 너무도 달라.’
뭔가 음습한 느낌마저 든다.
바토르는 가만히 이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그저 거쳐 가는 곳이다. 그는 곧 강진호를 처리하고 홍왕에게 다시 도전할 것이다. 그리 어려울 것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
‘왜 자꾸 이렇게 침착해지지 못한다는 말인가?’
바토르가 눈앞에 보이는 유리창에 손을 댔다.
살짝 차가운 감각이 손끝에 와 닿고서야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강진호.’
바토르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그의 이 달뜸은 강진호만이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 *
“바토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나이트 위긴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원탁의 임무는 세상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 그렇기에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강자들은 반드시 체크를 해야 했다. 그 목록 안에 저 이름이 있었다.
바토르.
초원의 지배자.
“그와 싸운다고요?”
강진호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잠시만요, 강진호 씨. 그건 무모합니다.”
“무모?”
“예!”
나이트 위긴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절대의 강자입니다. 중국 내에서도 바토르라는 이름을 경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활동하는 곳이 중국이 아니었다면 한 지역의 패자로 불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자입니다. 그런 이와 싸운다는 것은…….”
“후우우.”
강진호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
나이트 위긴스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지금 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슈발리에들을 풀어주는 대신 그에게 투항하라는 제안이 그의 머리를 뒤집어 놓았고, 이어지는 이 말이 그를 허탈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러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강진호가 바토르에게 지기라도 한다면 그와 강진호가 나눈 대화는 모조리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강진호가 지금의 지위를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
어떻게든 강진호를 말려야 한다.
“강진호 씨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토르를 상대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합니다. 그는…….”
“위험하지.”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서 가는 거야. 위험하니까.”
“…….”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았거든. 그 위험이라는 것과.”
강진호의 얼굴에서 광기가 엿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든다.
“위험한 건 그쪽도 마찬가지겠지? 그렇지 않아?”
이를 드러내고 웃는 강진호를 보며 나이트 위긴스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어쩌면 이 승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짐승의 싸움은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니까.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나이트 위긴스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