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3
#52.
졸업하다 (2)
“합격하셨습니까?”
“아뇨.”
무뚝뚝한 강진호의 대답에 동명 재단 이사장 대리 조규민은 웃음을 참으며 커피를 내주었다. 강진호가 저벅저벅 걸어와 소파에 털썩 앉았다.
“또 떨어지셨습니까?”
“예.”
‘기분이 나쁘시군.’
강진호의 얼굴은 그저 무표정해 보였다.
하지만 조규민은 그 표정 사이로 강진호의 기분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운전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무슨 말이죠?”
“기사가 있으면 되는 일이죠. 기사 한 명 고용하지 그러십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면허는 필요하대요.”
“그렇기야 하지만…….”
누가!
강진호를!
합격시켜 줄 것인가!
조규민은 이미 학과 시험에 붙고 나서 도로주행 연습을 하러 나가는 강진호의 차에 동승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조규민은 다시는 강진호가 모는 차에 몸을 싣지 않았다.
차라리 깔끔하게 죽으면 죽었지, 눈앞에 살아온 과거가 쉴 새 없이 스쳐 지나가는 경험 따위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많은 과거를 본 나머지 조규민은 자신도 잊고 있던 옛 기억들을 굉장히 많이 되찾는 기적을 경험했다.
“요즘 세상은 면허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저보고 포기하라고 하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강진호는 커피를 들어 홀짝였다.
“그래서 다음 시험은?”
“접수하고 왔어요. 삼 일 뒤라더군요.”
“예, 그렇군요.”
조규민은 다시금 강진호의 차에 타게 될 시험관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 말씀 때문에 오신 겁니까?”
강진호가 커피 잔을 내려놓고 목을 가다듬었다.
“용건이 있어요.”
“용건요?”
조규민은 이 신기한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껏 조규민이 강진호에게 무언가를 요구한 적은 있어도 강진호가 조규민에게 요구를 해온 적은 없었다.
과거 성심 보육원의 건물 문제와 자전거에 대한 문제가 있은 다음부터는 강진호는 단 한 번도 조규민에게 뭔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 보육원과 자전거도 황정후 회장에게 말한 것이지, 조규민에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보필하라는 명을 받고 온 조규민이 실제로 강진호에게는 아무것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괴이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밥값을 할 때가 온 건가?’
조규민은 쾌재를 불렀다.
매번 보고하러 가서 ‘별다른 말씀은 없었습니다’라는 상투적인 대사를 하기에도 민망하던 참이었다.
이번에야말로 그의 존재 가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월한 그의 업무 처리 능력과 강진호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재경 그룹의 파워라면 세상에 못할 일은 얼마 없었다.
확실하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 줄 자신이 있다!
“말씀하시죠!”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경대학교 말입니다.”
“예? 재경대학교요?”
“예.”
“갑자기 재경대학교는 왜?”
강진호는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입을 뗐다.
“특례 입학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특기자 전형이 있던 것 같은데요.”
특기자 전형이야 웬만한 대학에는 다 있는 것 아닌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는 않지만, 재경대학교에도 분명 특기자 전형이 있었다.
“예, 있습니다.”
“알아볼 수 있나요?”
조규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특기자 전형?
그게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강진호는 이미 대학 자유이용권을 끊은 상태였다. 마음만 먹으면 대한민국에 있는 어느 대학이라도 자유롭게 갈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왜 특기자 전형이 필요하단 말인가.
“무슨 특기 말씀이신가요? 마음만 먹으신다면 일반 전형으로도 얼마든지 장학금 받고 입학이 가능하실 텐데요?”
“저 말구요.”
“예?”
강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유민이가 들어갈 수 있는지 확인해 보려구요.”
“……박유민 말입니까?”
“예.”
조규민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박유민에 관련된 정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유민 군은 이미 프로 게이머로 진로를 잡아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을 예정인 걸로…….”
“수명이 짧더라구요.”
“프로 게이머 말입니까?”
“길어봐야 5년이 한계인 직업이라 학업을 포기해 버린다면 그 이후가 문제죠.”
“그렇긴 합니다.”
프로 게이머.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극소수 중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 자리를 유지하는 사람은 더욱 극소수였다.
대부분은 프로 게이머 생활을 접는 순간, 생활고와 더불어 게임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실감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번듯한 대학 간판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그런 번거로운 방법이 아니더라도 그냥…….”
돈을 주면 되는 것 아닌가?
돈이야 넘쳐 나는 것이 황정후고, 그 황정후의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강진호였다.
강진호가 마음만 먹는다면 박유민은 평생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뭐하러 그런 번거로운 방법으로 삶을 지원한단 말인가.
“자기가 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음…….”
“받은 것은 당시에만 좋을 뿐이죠.”
조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강진호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노력해서 얻지 않은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고 그 소중함을 알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야 아무리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고 해도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껏 보육원에서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긍정적으로 살아온 박유민이라면 더더욱.
그런 사람을 돈의 힘으로 물들이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었다.
돈이란 사람을 타락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런 면에서…….’
황정후 회장과 이 눈앞에 있는 강진호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황정후는 그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도 그리 큰 집착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고, 눈앞의 강진호 또한 돈이라는 것에 그다지 관심도 없어 보였다.
만약 자신이 강진호처럼 저 나이에 수백억의 돈을 굴릴 수 있다면 미래 따위는 걱정도 하지 않을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하지만 강진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튼튼한 자전거를 구입하는 것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가 돈을 쓴 유일한 곳은 성심 보육원을 지원하는 일뿐이었다.
심지어 최근의 유일한 씀씀이라고 할 수 있는 새집은 강진호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에게 황정후 회장이 건넨 돈으로 구입한 것이다.
‘대단한 건지, 순진한 건지.’
나이가 있는 황정후라면 돈에 초연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강진호의 나이에 돈에 초연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조규민조차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일이니까.
조규민은 본론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그래서 박유민 학생을 특기생으로 재경대학교에 입학시키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박유민 학생의 성적은요?”
“…….”
조규민은 한숨을 쉬었다.
대답이야 안 들어도 빤했다.
“하기야 성적이 좋으면 일반 입학을 하면 되겠죠. 많이 안 좋습니까?”
“…….”
“그래요…….”
조규민은 고민에 빠졌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을 입학시키려면 다른 이들이 납득할 정도의 확실한 성과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촉망 받는 연예인이거나 스포츠 스타라거나.
홍보로 벌어들이는 돈과 인지도의 상승효과가 그 학생이 성적이 부족함에도 그 대학의 일원이 될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반발이 거세다.
대학이라는 것은 재단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적인 반발과 총동창회, 총학생회 등의 움직임을 모두 감안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네요.”
그러나 박유민의 성과는 미미했다.
기껏해야 대회에서 4강에 오른 정도.
우승도 아니고, 일개 게임 대회에서 4강에 오른 정도로 특례 입학을 한다?
아무리 프로 게이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지금이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우승자도 어려울 마당에…….
“한 번 알아는 보겠지만…….”
“어렵나요?”
“일단 이미 전형이 결정되어 있는 상황이라 박유민 군을 위한 특별 전형을 따로 마련하기에는 늦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전형 내에서 박유민 군이 경쟁력을 가질 만한 곳이 있는가를 판단해야 하는데, 전산 특기자로서 프로 게이머를 인정해야 할지라는 부분에 논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 말구요.”
“그럼요?”
“장애인 전형이 있죠?”
“……아?”
조규민이 입을 벌렸다.
있다.
장애인 특별 전형.
교과부의 방침으로 4년제 이상의 대학은 반드시 장애인에 대한 특별 전형을 마련하게 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전형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분명 있긴 했다.
“있습니다.”
“성적이 조금 딸리기는 하지만 주변 상황이 워낙에 좋지 않고 그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것으로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그 상황에서 대회 입상 경력도 있으니.”
조규민은 입을 가리고 생각에 빠졌다.
뭔가가 잡힐 것 같았다.
확실히 장애인 전형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프로 게이머로서 특기를 살린다면 그럴싸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한가요?”
“말씀하신 부분으로 접근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으며 학업과 생업을 병행한 학생. 거기에 나름의 성과도 올렸고…….”
조규민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 사건을 잘만 이용한다면 박유민을 학교에 들이는 것으로 대학과 재단의 이미지를 상승시킬 수 있는 복안이 될 수도 있었다.
“저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닙니다. 회장님과 대학 이사장님, 그리고 교수단 등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저야 그저 강진호 씨의 말을 회장님께 전하고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수준의 일밖에는 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강진호는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됩니다. 자격이 안 되는 박유민이 끼어들어서 다른 사람이 합격하지 못하게 된다면, 차라리 합격 못하는 게 낫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깐깐하다.
어찌 보면 조금 결벽에 가까울 정도다.
그럼에도 팍팍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원칙이 확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친구라도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돕지 않는다는.
“부탁드릴게요.”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규민의 말에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나가죠.”
“예?”
조규민이 멍하게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나가다니?
“어디를 나간다는 말씀이십니까?”
강진호는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떨어졌다니까요.”
“……그래서요?”
“연습해야죠.”
“…….”
“안 도와주실 겁니까?”
“하…… 하하……. 저는 지금 바빠서…….”
“하는 일 없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조규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안 도와주실 겁니까?”
“도……와드려야죠.”
조규민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강진호의 뒤를 따라갔다.
‘하느님, 제발 오늘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조규민은 몇 년 만에 하느님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