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36
#535.
결착 나다 (5)
끼이이익.
차가 천천히 멈춰 섰다.
덜컥.
이내 차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그러지.”
이현수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강진호는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집을 보며 이현수가 내민 담배를 받아 들었다.
“음…….”
강진호가 침음성을 흘리자,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옷이야 갈아입었지만, 그래도 상기된 느낌은 있을 텐데. 어머니가 보시면 또 한소리 할까 봐 걱정되는군.”
“……네?”
이현수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해석하자면, 싸우고 들어온 걸 엄마가 알아서 잔소리 들을까 봐 겁이 난다는 건가?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지?’
생각해 보면 저 나이대의 청년이라면 당연히 할 만한 걱정이었다.
그래, 자연스럽다. 조금 전에 저 인간이 그 사람 같지 않은 바토르를 피 떡으로 만들어놓지 않았다면 말이다.
‘진짜 이중인격자야.’
진정한 의미로 이중인격자였다. 보통 이중인격자라는 것들이 자신이 컨트롤하지 못하는 두 가지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게, 강진호는 상황에 따라 다른 인격을 꺼내 쓰는 느낌이었다.
거기서 오는 이 미묘한 메스꺼움을 빨리 극복해야 하는데.
“……주무시겠죠.”
할 말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찰칵.
강진호의 담배에 불을 붙여준 이현수가 곧 자신의 담배에도 불을 붙였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괜찮아.”
“지금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혹시라도 패배한다면 어찌할 생각이셨습니까?”
“패배?”
“예. 패배입니다.”
이현수가 담배를 깊게 빨았들였다가 천천히 내뿜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셨잖습니까. 바토르와 싸우러 간다는 걸 말입니다.”
“그랬지.”
“바토르에게 한 말 그대로입니다. 만약 거기서 강진호 씨가 패했다면 남겨진 이들은 그걸 모조리 감당했어야 할 겁니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아들, 오빠, 그리고 친구……. 총회를 지탱하고 있는 강진호. 강진호 씨의 부재에 시달려야 했을 그들에게 조언이라든가 마지막 말 정도는 남겨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어째서요?”
“패할 일이 없어.”
“…….”
이현수의 얼굴이 살짝 멍해졌다.
이게 정확한 파악으로 절대 지지 않는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에 하는 말인지, 그게 아니면 절대적인 자신감의 발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설령 내가 패한다고 한들 그런 말을 남길 일은 없어.”
“……그건 또 어째섭니까?”
“달라질 게 없으니까.”
“…….”
강진호가 연기를 천천히 뱉으며 말했다.
“부재라는 것은 그리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야. 얄팍한 말 한마디로 위로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돌아오지 못할 때에 대한 대비 같은 게 아냐. 뼛조각 하나가 남더라도 돌아와서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필사의 각오지.”
이현수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상하게…… 상황에 조금 어울리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살짝 격동되는 느낌이다. 투박하고 직설적인 말이지만, 진심이 실려 있었다. 언제나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흔들기 마련이니까.
“세상은 바뀔 겁니다.”
뜬금없는 이현수의 말에 강진호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 해명을 요구하는 시선에 이현수가 입을 열었다.
“강진호 씨가 오늘 해낸 일은, 강진호 씨가 생각하는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음…….”
강진호는 미묘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교주님이 하신 일은, 교주님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일입니다. 제가 그리 만들겠습니다.”
‘정말 청마처럼 말하는군.’
이현수와 청마가 비슷한 면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말까지 비슷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입니다.”
“딱히 부정하는 건 아냐. 그리고…… 부정한다는 것도 우습군.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말은, 나는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는 뜻 아닌가.”
“아, 설명드리겠습니다.”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바토르는 강자입니다. 물론 중국에는 그 이상 가는 강자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강진호 씨가 바토르를 꺾어버린 이상, 강진호 씨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강자는 그리 흔치 않을 겁니다.”
“음…….”
“그리고 그런 강자가 있다고 해도, 그만한 강자는 쉽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균형 때문인가?”
“예. 하나하나가 자리를 비우는 것이 치명적인 전력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아마 그들은 서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그 와중에 단독으로 빼내 강진호 씨를 저격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바토르였겠죠.”
합당하게 들리는 분석이다.
“그 말은 이제 더 이상 이쪽으로 전력을 쏟아낼 수 없다는 건가?”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제가 홍왕계를 움직인다고 가정했을 때, 강진호 씨를 잡기 위해서는 이제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하거나, 아니면 정말 핵심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할 이유가 없죠. 아마…… 아마 곧 화친의 손길을 뻗어올 겁니다.”
“화친?”
“예. 쓰러뜨릴 수 없다면, 손을 잡아야죠. 당연한 겁니다.”
강진호가 뚱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죽어라 싸우던 이들이 손을 잡고 하하호호를 한다고?”
“네. 그게 정치니까요.”
강진호는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저런 유형들이 하는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언제나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현실이 되곤 한다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정말 저들은 생각하는 바가 그와는 전혀 다른 것 같았다.
“그런 눈으로 보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눈으로 보고 싶은 건 되레 저니까요.”
“음…….”
“아마 곧 움직임이 있을 겁니다. 그 와중에 우리가 얼마만큼의 이득을 취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은 제가 하겠죠.”
“음…….”
그건 마음에 든다는 듯 강진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게 좀 얄밉네.’
물론 바토르를 쓰러뜨린다는 커다란 업적을 달성해 준 강진호다. 그는 휴식을 취할 자격이 있었다.
이현수가 바닥을 담배를 튕겨 끄고는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차에 올랐다.
“푹 쉬십시오. 바토르의 처리에 관해서는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러지. 수고했다.”
“예. 그럼.”
이현수의 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강진호는 가만히 차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제 나오지.”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강진호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자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한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
나이트 위긴스.
공간을 일그러뜨려 은신하고 있던 나이트 위긴스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감상은?”
다짜고짜 물어오는 강진호의 말에 나이트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못했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 몇 번이고 주저하던 나이트 위긴스가 고개를 저어버리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소.”
나이트 위긴스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장다징과 이현수뿐이다. 바토르도, 강진호도 그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이트 위긴스를 그곳에 데려간 사람은 강진호였다.
모든 것을 결정하기 전에 당신의 실력을 정확하게 알고 싶다는 말에 강진호는 그저 따라오라는 말을 했을 뿐이다. 바토르 역시 처음에는 그를 조금 신경 썼지만, 그가 승부에 개입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없는 사람 취급했다.
물론 그들의 승부에 영향을 줄 정도로 위긴스가 강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내 생각 이상…… 아니, 이제 이런 말은 의미가 없겠군. 내 안목과 머리가 쓰레기 수준이라는 것을 이미 증명해 버렸으니까.”
나이트 위긴스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 정도까지 차이가 날 줄이야.’
동양과 서양의 무학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차이가 그렇게 클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태어난 이후로 서양은 단 한 번도 동양에 뒤진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 차이라는 것도 곧 극복될 수준이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전력이라는 부분에서는 그들이 압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체계적으로 전투원을 길러내고 그들을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서양이 확실하게 앞서 있다. 주먹구구로 운영되는 총회를 보며 그것을 확실히 느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면 상황이 급변한다.
나이트 위긴스가 저 바토르를 상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변명의 여지도 없이 패했겠지.’
그는 원탁을 대표하는 나이트다. 그리고 영국을 대표하는 무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상대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 바토르를 강진호는 어린아이 다루듯이 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차이를 어떻게 납득하란 말인가.
‘게다가…….’
나이트 위긴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를 정말로 당황하고 놀라게 만든 것은 두 사람의 무위가 아니었다.
독랄함.
정말 서로를 찢어 죽일 듯이 달려들고, 서로의 모든 것을 걸고 쓰러뜨리고, 그리고 쓰러진 자에게조차 자비를 베풀지 않는…… 그 악마 같은 모습들이 그를 뒤흔들어 놓았다.
다르다.
이들은 강해지는 이유 자체가 자신들과는 다른 것이다.
과도한 합리성을 추구한 결과, 그들은 무력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 무력 말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이들처럼 멍청하게 강해지는 것이,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모든 것의 해결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랬다.
이들은 불합리하고, 멍청하고, 저열하다.
그런데 그 덕분에 이들은 강해졌다.
그 사실이 나이트 위긴스를 참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합리적이라 해서 경쟁심이 없겠는가.
강해지고 싶다는 열의는 수컷이라면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저 현실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는 것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삶에 나름의 만족감을 느끼고 있던 나이트 위긴스였다. 그런데 저 강진호라는 이름이 그의 인생에 끼어들면서 모든 것이 뒤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답을 듣고 싶은데?”
“…….”
나이트 위긴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던 나이트 위긴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소이다.”
“얼마든지.”
“……나 역시 조금은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인데…….”
조금 뜸을 들인 나이트 위긴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조금 붉어진 눈으로 물었다.
“내가 당신에게 협조하면 나 역시 강해질 수 있소?”
강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내가 당신에게 주는 것만큼 당신도 내게 줄 수 있냐는 것이오. 내가 지금이라도 더 강해질 여지가 있소?”
강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강해진다는 것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어.”
“그, 그럼?”
“스스로가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겠지. 묻겠는데, 너는 그럴 의지가 있나?”
“후우…….”
나이트 위긴스가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왼 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렇다면 모셔야겠지, 당신을 나의 로드로.”
백발이 성성한 나이트 위긴스가 강진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