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37
#536.
정리하다 (1)
“다녀왔니?”
“…….”
강진호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주무시는 게 아니었나?’
문밖에서 기척을 느꼈을 때는 분명 자고 있었다. 위치는 소파. TV는 틀어진 채였고, 어머니는 분명히 깊게 잠들어 있었다.
문제가 뭐였을까?
저 빌어먹을 도어락인가?
왜 우리 집 도어락에는 음 소거 기능이 없단 말인가.
그렇게 조심해서 들어왔는데도 어머니가 깨어나다니!
“……네.”
“늦었구나?”
“일이 좀 있었어요.”
“흐음…….”
어머니의 목소리에 미묘한 불편함이 묻어 나왔다. 강진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점검했다.
‘피 냄새는 모두 지웠고.’
옷도 갈아입어서 더러운 것도 다 없앴다. 그리고 박살이 나버린 신발도 갈아 신었다. 적루와 청루는 일단 차고에 짱박아뒀으니 문제가 없고…….
모든 것이 완벽하건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안 그러더니 갑자기 새벽에 들어오는구나. 친구들이랑 놀았니?”
“……예.”
“그래, 얼른 들어가 쉬어라.”
살았다.
어머니는 눈으로 ‘네가 이렇게 늦게 들어온 것이 내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도 나이가 있고 다 큰 성인을 밤늦게 들어온다고 잔소리하는 것이 좀 너무한 것 같아서 이만큼 불편한 마음을 억지로 내리눌러 주마. 그러니 다음에는 좀 일찍일찍 집구석으로 기어 들어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 의미를 너무도 잘 알아들은 강진호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일찍 다닐게요.”
“그래. 우리 아들, 착하구나.”
‘다음에 또 늦게 들어오면 그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겠다’와 동의어로 들리는 말이었다.
“어머니도 들어가 주무세요. 혹시 다음에 제가 늦더라도 별일 있는 거 아니니까 소파에서 주무시지 말구요.”
“응, 그래. 아들이 빨리만 들어와도 그런 일은 없을 텐데. 그지?”
“……죄송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에게 살려 달라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말은 엄청 이상한 거야, 아들.”
“네?”
“부모가 어떻게 자식 걱정을 안 해.”
“…….”
“엄마가 갑자기 연락도 없이 새벽까지 안 들어오면 아들은 괜찮아?”
“아뇨.”
안 괜찮다.
아마 강진호는 온 서울을 뒤지고 다닐 것이다.
시간이 생각 이상으로 늦어진다면, 아마 총회의 모든 무인들이 서울을 이 잡듯 뒤지고 다니게 될 것이다.
‘아!’
거꾸로 생각하니 그랬다.
“앞으로는 늦는다 싶으면 전화 먼저 드릴게요.”
“그래주면 참 좋을 텐데. 그게 잘 안 된다. 그지?”
“…….”
“농담이야.”
어머니가 강진호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장성한 아들내미 품에 안겠다고 이러고 있는 내가 주책이지. 엄마도 알아. 그런데 그게 참 잘 안 되네.”
“아닙니다. 제가 잘못한 건데요.”
“그래그래. 괜히 내가 피곤한 애 잡아두고 있네. 얼른 들어가서 쉬어.”
“네.”
“자기 전에 꼭 씻고. 피곤하다고 그냥 자지 말고. 안에 수건이 있는지 모르겠다. 들어가 보고 수건이 없으면…….”
“제,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어머니.”
“어머, 내가 또 주책 부렸네.”
백현정이 호호, 웃으면서 안방으로 향했다.
“얼른 자, 아들.”
“네.”
백현정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호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이현수의 말이 떠올랐다.
아들로서, 친구로서 드러나 있는 강진호와 무인으로서의 강진호를 공존시킨다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그에 대한 대답을 뭐라 했더라?
“별로.”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별로.
하지만 그 대답은 솔직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 역시 때때로는 이러한 상황이 힘들고 귀찮게 여겨질 때도 있었으니까. 정확한 대답은 별로가 아니겠지.
“그럴 가치가 있어.”
그래, 이게 맞는 대답이다.
바깥에서는 악귀처럼 굴더라도 집 안에서는 자랑스럽고 아직은 놓고 싶지 않은 아들로 남고 싶은 게 그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어쩌면 이기적인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살기와 투기에 찌들어 피폐해진 머리를 끌고 집으로 들어왔을 때 따뜻한 눈으로 그를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안정시키는지, 그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강진호만큼 실감하고 있는 이도 없을 것이다.
욕실 안으로 들어가 샤워기를 튼 강진호가 벽에 머리를 기댔다.
“우욱…….”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지금껏 몇 번이고 삼켜 넘기던 핏덩어리를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뱉어냈다.
“후우우…….”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바토르는 강했다.
아니, 약하다.
아니, 강했다.
강약의 개념이 혼재해 있다.
과거, 그가 적천마존으로서 무의 정점에 달한 시절이었더라면 바토르와 드잡이를 벌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바토르가 당시의 무학에서 이룰 수 없던 육체의 정점을 찍은 이라고 한들, 마공의 극한에 오른 강진호의 상대는 아니었다.
손짓 한 번.
진의를 실은 손짓 한 번이면 바토르의 육체를 산산조각 냈을 것이다. 그때의 강진호에게는 그리 쉽던 일이 지금의 강진호에게는 이만큼이나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현수든, 위긴스든.
지금 이곳의 상황은 그의 강함으로 인해 지탱되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그들의 눈에 강진호가 바토르를 쉽게 처리해 내는 것과 힘겹게 처리해 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러니 속이 망가져 다리가 덜덜 떨리더라도 앞에서는 이를 꽉 깨물고 버텨야 하는 것이다.
“우욱!”
또 한 번 핏덩어리를 뱉어낸 강진호가 찬찬히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다.
‘큰 문제는 없군.’
내부가 뒤틀리기는 했지만, 회복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며칠 정도만 정양한다면 금세 회복할 것이다.
“후우…….”
샤워기를 머리 쪽으로 돌린 강진호가 눈앞에 보이는 거울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느린 건 아냐.’
그가 무학을 다시 익히기 시작한 기간은 아직 채 십 년도 되지 않았다.
과거, 그만한 무위에 오르기 위해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에 비한다면 과도하게 빠른 발전이었다. 두 번째 삶에서 그가 서른이었을 때에 비한다면 몇 배는 더 강할 것이다.
그러니 느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부족해.’
갈증을 느낀다.
아무리 납득을 하려고 해도 부족하니까. 하늘을 날던 이의 날개를 떼어내고 바닥에 떨어뜨린 뒤에 언젠가는 날개가 다시 자랄 테니 지금은 그 튼튼한 두 다리로 만족하라고 한다면 만족할 수 있겠는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 강해져야 한다.’
강진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현수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방법이 없어진 홍왕계가 한동안은 그를 건드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현수의 말대로 화친의 손을 내밀어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뒤는?
그리고 일이 그렇게 풀리지 않았을 때는?
그저 그럴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측으로 안도하기에는 그의 어깨에 걸린 것이 너무 많았다.
눈을 뜨고 거울을 본다.
그곳에 강진호가 있었다.
적천마존이 아닌 강진호가 말이다.
‘조금 힘이 든가?’
조금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고 동경하게 된다.
그가 아닌 적천마존을.
그 거칠 것 없던 정신과 막을 수 없던 힘으로 강호를 종횡하던 그의 모습을 말이다.
이곳에 있는 것이 강진호가 아니라 적천마존이었다면, 지금쯤 그는 중국으로 밀고 들어갔을 것이다. 눈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리고 잡아 찢어버리며 홍왕의 목을 따버렸겠지.
그래, 그는 그만큼 강인하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손을 뻗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지워 버렸다.
‘승리만으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사람들은 때때로 착각하니까.
승리만이 모든 것을 가져다준다고.
그건 맞는 말이지만, 또한 틀린 말이다.
중요한 건 승리가 아니라, 어떤 것에서 승리하는가였다.
적천마존은 항상 승리했다. 마지막에 패하기는 했지만, 그의 인생은 오로지 승리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가질 것 없는 승리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강진호는 그가 가진 힘을 동경하지만, 그의 삶을 동경하지는 않았다.
‘힘들어도 상관없어.’
짊어지고 나아간다.
이 무게를.
피하지 않고 말이다.
그럴 때, 비로소 이 승리가 진정한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강진호는 샤워기를 들어 바닥에 쏟아진 피를 씻어냈다.
지독한 전투의 여운까지 씻어내듯 말이다.
“아들, 잘 잤어?”
“예.”
강진호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았다.
‘제대로 봤는데?’
그답지 않게 조금 늦잠을 잤다. 그리고 이 시간이면 아버지가 이미 출근을 했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직 집에 남아 계신다.
“어머니는요?”
“아침에 약속 있다고 나가더구나. 아들내미 밥도 안 차리고 말이지.”
“밥이야 제가 차려 먹으면 되죠.”
“그 말 안 나왔으면 혼냈을 거야.”
“하하…….”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가끔 저렇게 함정을 파는 아버지였다.
“아침 먹을 거냐?”
“딱히 생각이 없네요. 점심 챙겨 먹죠, 뭐.”
“그래? 그럼 준비해라. 오랜만에 아버지랑 가게 가자.”
“……네?”
“오늘 약속 있니?”
“오늘…….”
약속이랄 게 없다. 강진호의 일정이란 건 항상 그런 식이었으니까. 뭔가를 하기는 하는데…… 딱히 꼭 이 시간에 해야 한다는 것은 없었다.
“예, 가죠.”
강진호의 대답에 아버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차 안 타시구요?”
“얼마 걸린다고 차를 타니. 기름 값 아깝게.”
“제가 태워 드릴게요.”
“이리 와, 인마.”
아버지가 손짓을 했다.
강진호는 군말 없이 그의 옆에 섰다.
“사람은 말이다.”
“예.”
“한 번씩은 걷는 것도 필요한 거야.”
“네?”
“너, 차에 익숙해진 이후로는 어디만 가면 일단 차 몰고 나가는 게 버릇이 됐지?”
“…….”
“사람은 그래. 편해지면 다시 불편한 곳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지. 그런데 말이다, 편하고 빠르게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이 생기지.”
강유환이 앞서 걷기 시작했다.
강진호도 두말없이 가만히 강유환을 따라 걸었다.
“조금 꼰대 같은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안 그래요.”
“차로 가다 보면 못 갈 곳도 생기고, 차를 타고 가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물론 빠르게 가지. 그리고 편안하게 가지. 그저 저곳에 도착한다는 것만 생각하면 차를 타고 가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겠지. 그런데 진호야, 사람이라는 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게 아냐.”
“…….”
“행복하려고 사는 거 아니겠냐. 그럼 조금 늦어도 되는 거야. 봐라.”
건물을 지나 도심 공원으로 접어들자, 우거진 신록들이 눈에 들어왔다.
강진호는 그 광경에 일순 눈을 빼앗겼다.
별다를 것 없는 광경이다. 조금만 교외로 나가도 이런 것들쯤은 얼마든지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별다를 것 없는 광경이 이 도시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차를 타고는 오지 못하는 곳이지.”
“……그러네요.”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이곳에서는 잘 들을 수 없던 풀벌레 소리가 그의 귀로 들려오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들어올 수 없던 공원길에 우거진 나뭇잎들 사이로 뜨거운 여름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나쁘지 않지?”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네.”
나쁘지 않네요.
정말…….
“나쁘지 않아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 같은 환한 미소가 강진호의 입가에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