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40
#539.
정리하다 (4)
‘왜 자꾸 이렇게 사고를 치냔 말이야.’
이현수는 살짝 넋이 나가서 등을 기댔다.
나이트라니.
빌어먹을, 여기서 그 이름이 왜 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그 나이트가 왜 총회로 이적을 한단 말이냐고!
정확하게는 총회로 이적하는 것이 아니라 강진호의 휘하에 들어오는 것이지만…… 그게 뭐가 달라. 강진호가 총회고, 총회가 강진혼데.
그래. 좋다, 이거다.
이적하는 것은 좋다.
뭐, 소속이라는 게 사람 목에다가 개 줄을 채워놓은 것도 아니고, 자기가 옮기고 싶으면 옮기는 거지.
그런데 그걸 왜 전 소속사와 상의를 안 하고 이쪽으로 마음대로 옮겨오냐고.
저 양반은 자신의 지위에 대한 자각이 없나?
나이트다.
나이트란 말이다.
나이트라는 것은 그저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탁의 의사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나이트는 원탁의 운용과 그간의 행적,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비리를 모두 알고 있는 로그와 다름없다는 뜻이다.
총회의 입장으로 보자면, 방진훈이나 이현수가 일본이나 중국으로 전격 이적한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것도 그간의 일을 어떻게 함구할 것인가에 대한 어떠한 합의도 없이 말이다.
‘난리가 나지, 당연히 난리가 난다고.’
안 그래도 심상치 않은 원탁과 총회의 관계가 지옥까지 가버릴 것이다.
이건 이현수의 구상과는 완전히 어긋난다.
원교근공(遠交近攻).
예로부터 내려오는 가장 지당하고도 당연한 전략이다. 중국과 일본, 가까이 있는 두 국가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한국으로서는 어떻게든 원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미 슈발리에들이 쳐들어오면서 많은 것이 틀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여지가 있었다. 강진호는 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현수는 슈발리에들에게 빼먹을 것을 적당히 빼먹은 다음에 그들을 조건으로 협상을 할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이건 문제가 전혀 다르다.
‘나이트라고, 빌어먹을 나이트!’
일반 기업체에서도 임원급을 빼앗아가면 서로 원수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일반 기업체도 아니고, 기업체 이상으로 민감한 무인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대체 무슨 결과가 닥쳐올 것인가.
이현수의 머릿속에 패닉이 몰려왔다. 이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 아니, 잠시만요. 이거…… 이거, 보, 보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생전 말을 더듬어본 적이 없던 이현수가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상황의 급박성을 따지면 바토르가 쳐들어온 사태만 하겠냐마는, 그 대처와 나중에 벌어질 2차 충격까지 합치면…… 이건 바토르 사태를 뛰어넘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 모든 뒤치다꺼리를 맡아야 하는 이현수에게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일인가?”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현수는 얼굴을 감쌌다.
‘제에~발! 말을 하고 뭐든지 좀 하라구요!’
이게 뭐 그리 어려운 요구인가.
그가 허락을 받으라 했나, 결제를 맡으라 했나.
그냥 미리 언질만 한 번씩 달라고 하는데, 그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자꾸 사고를 치고 나서 일을 던져 주느냔 말이다.
이현수는 지금 직장인의 비애를 미친 듯이 실감하고 있었다.
‘망할 상사 놈!’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생각 없는 상사’가 지금 그의 앞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다른 건 일단 접어두고라도 이 일이 성사되면 원탁과 우리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어집니다.”
“우리가 원탁과 관계가 있나?”
“지, 지금은 없죠. 하지만 앞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관계가 최악으로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상관없지 않을까?”
“…….”
“그쪽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서 딱히 이쪽을 위해서 뭔가를 해줄 것 같지는 않은데. 필요할 때 병력을 빌려줄 것 같지도 않고, 금전적인 지원이야 있을 수도 있겠지만, 딱히 돈이 필요하지도 않은 것 같고.”
“물론 그렇지요. 물론 그렇지만!”
이현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병력적인 지원과 금전적인 지원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굳이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아요. 다만, 그럴 수 있다는 가정만으로도 주변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단 말입니다. 저쪽에서 이쪽을 치려고 한다면 그 ‘혹시나’라는 가정을 완전히 배재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 가정이 현실로 이루어졌을 때를 감안해서 병력을 구성해야 하죠. 그 구성되는 병력이 많을수록 억제력이 늘어나는 법이죠.”
“일리가 있군.”
드디어 강진호가 알아들은 듯하자 이현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순순히 말을 들으면 강진호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외부에서 오는 미묘한 수준의 병력’에 기대는 것보다는 나이트 위긴스를 통한 전력의 증강을 노리는 쪽이 맞지 않을까? 실제로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힘에 기대서 억제력을 발휘하다가 그쪽이 그것조차 누를 만한 힘을 갖추게 된다면 한 번에 쓸려 버릴 것 같은데?”
“……거기까지 가지 않게 하는 게 정치고, 운영이겠죠.”
“내 생각은 그래. 존재할지 하지 않을지 모르는 위협을 겁내서 당장 눈앞의 이익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나하나씩 해 나가는 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들었거든.”
이현수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대체 강진호 씨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준 멍청한 작자가 누굽니까!”
“아버진데…….”
“…….”
분위기가 싸해졌다.
방진훈은 ‘아니, 어떻게 강진호 씨 아버지께 그런 말을?’이라는, 세상 놀랐다는 얼굴로 이현수를 바라보았고, 강진호의 얼굴도 미묘했다.
“……아, 아니, 제 말은…… 그러니까…….”
천하의 이현수조차 이 순간만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시무룩해서 고개를 숙이는 강진호를 보니, 그가 뭔가 크게 잘못했다는 자각이 마구마구 밀려왔다.
“오, 오햅니다. 이건, 에…….”
“흐음, 알겠습니다.”
그 순간, 나이트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그의 옆에 한국어로 진행되는 회의를 실시간으로 통역해 주는 엘레나가 있었다. 엘레나에게 모든 말을 전해 들은 나이트 위긴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생각보다 무척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친…….”
저 인간이 대체 뭘 들은 거지?
이현수가 막 인상을 찌푸리려는 찰나, 나이트 위긴스가 말을 이었다.
“……독재 정권이네요.”
아…….
제대로 들었구나.
아주 잘 들었어.
갑자기 나이트 위긴스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하는 이현수였다.
* * *
삐. 삐. 삐. 삐. 삐.
장다징은 피곤함이 잔뜩 담긴 눈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시그널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침대 두 개를 이어 붙여 만든 거대한 특수 침대 위에 한 사람이 누워 있다.
바토르.
초원의 전사가 이곳에 누워 있는 것이었다.
그의 거대한 근육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지만, 그 근육들에 붙어있는 이런저런 의료 기구들이 그를 예전보다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바토르 님…….”
이곳이 한국이란 한들 홍왕계의 손이 닿은 병원이 존재하지 않을 리 없다. 장다징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병원으로 바토르를 이송했다.
강진호는 굳이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수준이라 했지만, 바토르를 모시는 장다징의 입장에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으니까.
검사 결과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되레 의료진을 경악하게 만드는 초인적인 회복력으로 그나마 있던 상처들마저 급속도로 아물어 버렸다.
이제는 외상은 없다고 해도 좋을 수준이건만, 여전히 바토르는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장다징이 눈두덩이를 주물렀다.
바토르의 육체는 확실히 경이롭다.
그 강인함, 그리고 인간을 초월한 회복력.
그 사실을 실감할 때마다 장다징은 다른 한 가지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강진호.’
그는 너무도 두려운 자다.
이 강인한 바토르를 피 떡으로 만들어 버린 강진호의 모습을 떠올리자 지금도 등골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더없이 강하고, 또 더없이 잔인하다.
‘대체 그를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홍왕계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강진호는 너무도 골치 아픈 존재였다. 턱 밑으로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는 비수라고 해야 할까? 당장에라도 손을 뻗어 막고는 싶은데, 그 비수가 다가오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평소라면 그렇다 해도 손을 뻗겠지만, 홍왕게의 두 손은 지금 다른 왕들이 날린 무기를 막아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니 그저 지켜볼 수밖에.
언젠가는 턱 끝에 닿은 비수가 턱을 뚫고 머리로 파고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저 필사적으로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손을 쓰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모든 것을 다 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장다징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혹이 더 일고 있었다.
손을 사용하면…….
창왕과 흑왕을 막기 위해서 뻗은 그 손들을 돌린다고 해서 과연 강진호를 막을 수 있을까?
이제까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일이다.
홍왕계는 위대하다.
중국을 삼분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계파는 타국의 전력을 가볍게 상회했다. 그런 이들이 진심으로 달려드는데, 소국에 불과한 한국이 감히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바토르의 패배를 눈앞에서 지켜본 장다징의 머릿속에 불신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는 강하다.
강진호는 너무도 강하다.
그 강한 강진호를 정말 처리할 수 있는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지금 강진호를 제거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른다면 언젠가 홍왕계의 모든 것을 동원해도 강진호를 감당할 수 없는 때가 오고 말 것이다.
이건 이성이 아닌, 본능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이가 또 있는 모양이다.
“으…….”
바토르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바토르 님!”
장다징이 잡념에서 깨어나 바토르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평온하던 바토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의 얼굴이 살짝 떨린다 싶더니, 이내 굳게 감겨져 있던 두 눈이 서서히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내가 살아 있었던가?”
바토르의 목에서 거칠게 쉬어버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예, 바토르 님! 살아 계십니다.”
“……자비롭군.”
그의 목소리가 살짝 허탈하게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바토르가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머리를 꾹꾹 눌렀다.
“상태가 말이 아니로군.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바토르 님께서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바토르 님을 여기로 옮겼습니다.”
“살려준 건가?”
“예. 그 간악한 강진호 놈이…….”
그 순간이었다.
바토르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끅…….”
바토르가 머리를 움켜잡았다.
“바토르 님?”
그 기이한 변화에 장다징이 바토르에게 손을 뻗었다.
쿵!
그 순간, 바토르가 손으로 침대를 내려쳤다.
일격에 박살이 나버린 침대.
바토르의 몸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바, 바토르…….”
“간악한?”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장다징의 입을 틀어막았다.
“감히 그분께 그따위 말을 쓰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장다징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뭔가…….
뭔가 잘못됐다.
뭔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