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43
#542.
응집하다 (2)
“……서양인에게는 인기가 많은 타입이신가 봅니다.”
수련장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이현수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강진호는 이현수의 반응에 눈을 찌푸렸다.
“상황이 그리된 것뿐이지.”
“그래도 인덕이 있는 모양입니다. 자체적으로 이곳에 남으려고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인덕이라니.”
강진호는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중원에서 이 말이 나왔으면 그놈 혀가 잘렸을 텐데.’
강진호가 아니라 강진호를 증오하는 이들의 손에 말이다.
적천마존과 인덕이라는 말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대항하는 자들은 모조리 부수고 목을 쳐버리던 적천마존에게 인덕이라니.
‘지금도 딱히 다른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기본적으로 강진호의 행동은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데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
그 차이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쪽으로서는 한 명이라도 더 남아주는 게 이득이죠.”
“그렇겠지.”
“바게트 빵으로 부릴 수 있던 이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조금 쓰라리지만요.”
강진호가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사실 좀 쓰리기는 하다. 하지만 그 대신 나이트 위긴스라는 강력한 조력자를 손에 넣었으니까.
“방 회주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던데.”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분은 그래도 한국 전래 무학의 계승자이시니까요.”
“음…….”
“하지만 받아들여야죠. 더 나은 것이 있는데 다른 곳의 우월한 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은, 우리는 그동안 유선 전화기를 써왔으니 그 전통을 계승하여 휴대폰을 쓰지 않겠다는 말과 같거든요.”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전통이니 뭐니 하는 것은 변하기 마련이었다. 인류는 발전하니까. 그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분명 잡음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변화란 언제나 통증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그게 사람이 되었든, 조직이 되었든 말입니다.”
“맞는 말이지.”
“그들의 무학에서 이점을 취할 수 있다면, 총회의 전력을 상승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일단은 그것만 생각해야죠. 방해가 있다면 짓눌러서라도 말입니다.”
“음…….”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향성을 확실하게 이끌어주는 이가 있다는 건 편한 면이 많았다. 강진호 혼자였다면 지금처럼 간결하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불만이 엄청 많아 보인 건 마찬가지였는데 말이야.”
“불만이야 지금도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니라 방식에 불만이 있는 거죠. 제발 다음에는 저와 상의를 좀 해주십시오. 제가 설마 강진호 씨가 하려고 하는 것을 막기야 하겠습니까. 같은 방향과 같은 목적으로 나가더라도 조금 충격이 덜한 방법이 있고, 부작용이 덜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걸 논하기 위해서 제가 여기에 있는 거죠.”
“미안하군. 다음에는 꼭 생각하지.”
“그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그도 알고 있다.
이번 일은 그와 상의할 수 없을 만큼 급박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리 진행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부분을 이야기했을 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이가 있고, 다음에는 조심하겠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강진호 씨가 후자라 다행이야.’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배려할 마음이 있는 사람을 따른다는 것은 아랫사람의 복이었다. 과거 김석일과 함께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것이 모두 진리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태도적인 측면에서 강진호와 김석일은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그리고 머리도 말이야.’
워낙에 다른 이들에게 묻는 경우가 흔해서 그렇지, 강진호의 머리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아니, 때때로는 이현수도 깜짝깜짝 놀랄 만큼 번뜩이는 면이 있었다.
“총회는 결국 변화를 감내해야 하겠지.”
“그렇습니다.”
“그럼 이들은 어떨까?”
강진호가 눈앞에 보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발을 멈췄다.
‘익숙한 느낌이군.’
마기.
진득한 마기가 느껴진다.
마기는 참 특이한 기운이었다.
딱히 이쪽을 향한 적의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다. 은근히 배어든 농밀한 살기가 바늘로 사람을 찔러 대는 것 같다.
과거에는 이런 느낌을 자주 받았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받을 수 없던 느낌이다. 제대로 된 마기를 활용하는 이는 중국에서 본 장민뿐이었으니까. 그 외에 그가 만난 마인이라는 것들은 마인이라 칭하기도 민망한 이들이었다.
내뿜는 기운조차 마기라고 호칭해 주기도 싫은 조잡한 기운이었다.
강진호는 가만히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그 다시 느낄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마기가 이 안에 가득하다.
순식간에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교의 마인들이 수련을 할 때면 이런 기운들이 마교를 잔뜩 뒤덮고는 했으니까.
“기분이 이상합니다.”
이현수의 말에 강진호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기에 익숙하지 않은 이현수이니만큼 불쾌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여러 번 보지 않았나?”
“강진호 씨에게서요?”
“그래.”
“……그것과는 다르죠. 사람이 바다를 보았다고 해서 옹달샘에 익숙하겠습니까?”
“미묘한 비유로군.”
하지만 적절한 비유이기도 했다. 성냥불과 산불은 동일한 불이지만 전혀 다른 불이니까. 같은 마기라고 한들 얼마나 정제되어 있고,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서 그 느낌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주목!”
이현수가 크게 목소리를 내자 수련을 하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꽂혔다.
이현수는 입을 다물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강진호에게 자리를 비켜준 것이 아니다. 일제히 몰린 시선과 기운이 그를 자신도 모르게 물러나게 만든 것이다.
‘이 정도나?’
물론 마공이라는 것이 속성의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가 기세에 겁을 집어먹을 정도로까지 발전했을 줄이야.
이현수의 얼굴이 굴욕과 기대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이 치욕스럽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그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던 이들이 단기간에 이만큼이나 발전했다는 사실이 흥분되기도 했다.
“오셨습니까.”
강진호와 나름의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실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들의 수장쯤이 되어버린 이명환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문제는?”
“……산적해 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체계의 무학을 받아들이고 체화한다는 게 영 쉽지는 않아서요.”
“그렇겠지.”
강진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뿐이지, 지금까지 익혀온 무학과 다른 무학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눈에 보일 만큼의 성과가 있습니다.”
“그래 보이는군.”
“지금이라면 예전처럼 쉽게 당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있습니다.”
“그래?”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자 이명환이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하겠다는 게 아니라요.”
이명환이 당황하자 이현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거들었다.
“애가 받아쓰기 백 점 받아왔다고 자랑하면, 그냥 받아주시는 겁니다. 얼마나 제대로 익혔는지 확인하려 들지 마시구요.”
“원한다면 해주는 것도 좋은 방안 같은데.”
“원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아직은요.”
“그거 아쉬운 일이로군.”
강진호가 가만히 수련장을 채우고 있는 이들을 응시했다.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피부를 따갑게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좋군.’
단순히 마기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하던 이들이 확실한 전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수련 방식을 바꿀 때가 되었군.”
“예?”
“결국 마공이라는 것은 실전적인 무학일 수밖에 없지. 첫 의도는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는 패도적인 무학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들끓는 혈기를 달래는 방법도 필요한 법이지. 이대로 계속 수련만 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해서 사고를 치기 마련이야.”
이명환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느끼고 있었다.
그 스스로가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말이다.
수련 중에 벌어지는 작은 트러블에도 이전과는 달리 과도한 화를 쏟아내게 되었다. 스스로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과거의 그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 그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이 그런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과격해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강진호의 입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이성을 잃고 파괴 충동에만 시달리는 마인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던 것이다.
“마기가 높아지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예전보다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지.”
“……계속 이렇게 되는 건 아닙니까?”
“내가 폭력적으로 보이나?”
“예.”
“…….”
“아, 아니라고 대답했어야 합니까?”
강진호가 조금 시무룩한 듯하자 이현수가 재빨리 이명환에게 눈치를 줬다.
“아, 무, 물론 평소에는 안 그러시니까요. 저희도 평소에만 안 그러면 별문제가 없습니다. 싸울 때야 당연히 폭력적이어야죠.”
일단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이명환이었다.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의료진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누굴 때리시려구요! 이 정도 발언으로 사람을 패시면 안 됩니다.”
“그게 아니라…….”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들에게 그의 이미지는 어떤 것이란 말인가.
“부상자가 꽤 발생할 테니까.”
“아, 수련!”
알았다는 듯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필요합니까?”
“이중 절반…… 아니, 그 이상이 다칠 테니,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수배하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수련을 하시는데……. 많이 위험합니까?”
“위험하지.”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짐승끼리 치고받는데 위험하지 않을 리가 없지.”
“서, 설마?”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를 풀지 못하는 짐승들을 서로 치고받아서라도 화를 풀어야 하는 법이지. 지루한 수련은 끝났다. 이제는 싸우자고. 서열 정리도 해야 할 테니까 말이야.”
이현수가 살짝 질린 얼굴로 강진호와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폭력성과 혈기를 제어하기 힘드니 너희들끼리 치고받아서 그걸 풀어내라는 강진호도 엽기적이지만, 더욱 그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그 말을 들은 이들의 반응이었다.
그 황당한 말을 들었음에도 이들은 조금도 반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눈여겨 봐둔 이들이 따로 있다는 듯이 서로를 둘러보며 상대를 찾기 바빴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네.’
이현수는 이제야 이들이 마공을 익힌 마인들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아무리 나름 정제된 정종 마공을 익혔다고는 하나 마인은 마인. 일반인과 동일하게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젠가 이들이 동료가 아닌 적을 향해 그 이를 드러낸다고 생각하자 소름이 돋았다.
‘독이야.’
통제되지 않는 힘은 독이다. 독일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스스로를 파괴하니까.
그런 이현수의 걱정을 알아챘는지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할 것 없어.”
“예?”
“나는 짐승에게 물려본 적이 없으니까.”
“…….”
이현수의 눈에 강진호의 커다란 등이 들어왔다.
‘그렇겠지.’
이 사람이 이 짐승들의 왕이니까.
‘강진호 혼자도 그렇게 무서운데, 이 사람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부하들을 이끌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현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곳에서 전설로만 들어오던 그 마교가 부활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저 강진호를 중심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