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45
#544.
응집하다 (4)
때로는 천 가지의 행동보다 한 가지의 말이 더 많은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지금 나온 말이 딱 그랬다.
― 강진호를 상대한다.
그 한 문장이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던져 준 화두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를 상대한다고?’
모두가 강진호를 떠올렸다.
그 악마 같던 모습을 말이다.
“…….”
침묵.
싸늘한 침묵이 방을 타고 흘렀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그들이 수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음에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것은 강진호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곳에 온 이들 중 절반 정도는 어떻게 강진호의 노기를 건드리지 않고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가를 목적으로 삼고 온 이들일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강진호의 제거를 논하고 있으니, 분위기가 차갑게 식는 것은 당연했다.
“……입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기 마련입니다. 방 회주에 대한 불만은 쏟아내는 정도라면 단순한 뒷담화로 끝날 수 있겠지만, 거기서 더 나가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잖습니까.”
“조 이사!”
“제가 무슨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조 이사라 불린 이가 탁자를 살짝 움켜잡았다.
“압니다, 알아요. 그는 강하지요. 어떻게 해볼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강합니다. 하지만 그뿐이에요.”
“그뿐이다?”
“예. 그뿐이라 이겁니다. 그는 혼자예요. 개인입니다.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함께 싸워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전에야 영남회를 친다는 명분이 있어서 우리가 그의 뒤를 받쳐 주었을 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총회에서 그의 편을 들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들 두려움과 긴장이 섞인 눈으로 조 이사를 바라보았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여기가 어딥니까. 무도 총회 아닙니까? 저희의 피땀이 어린 곳이에요. 지금까지 누가 총회를 만들어왔습니까? 방진훈 회주가 총회를 주무른다? 이해한다, 이거예요. 그런데 총회 출신도 아니고, 어디서 굴러 들어온 이가 총회를 제 발아래 두고 부리는 거 아닙니까. 다들 이 상황을 납득하시는 거예요?”
그 말은 매우 아픈 말이었다.
이사들과 장로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른 것은 몰라도 총회에 대한 애정이라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이들이다. 젊은 시절을 다 바쳐 이룩한 총회를 어디서 굴러 들어온 놈이 날름 삼켜 버렸는데, 누가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물론 외부인이라도 합리적으로 이끌어 나간다면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럴 정도로 저희가 꽉 막히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마공이라니. 평생을 바쳐 일구어온 총회를 넘긴 대가가 아이들에게 마공을 가르치고, 양놈들의 무학을 가르치는 거란 말입니까? 이건 총회의 정통성이 훼손되는 문제예요!”
조 이사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직접적으로 강진호에 대한 말을 꺼내려 하지는 않았다.
‘정말 굉장하지.’
이중걸은 새삼 강진호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강진호를 인정한다.
그 강한 힘 때문에?
아니다. 이중걸이 정말로 감탄하는 것은 강진호의 심계였다.
강진호의 계획은 영남회로 쳐들어가기 한참 전부터 서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은 딱히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었다.
달아나지 못하게 막는다고?
그럴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처음부터 몰살시킬 생각도 없는데.
정말 소수를 단숨에 박살 내 전체적인 패닉을 유도해 희생을 줄일 작정이었다면 뒷길을 열어주는 게 옳다. 달아날 곳이 없는 이들은 저항하니까. 달아날 곳이 있어야 좀 더 쉽게 패닉에 빠지고 등을 보여 달아나는 것이다.
그럼 왜 그런 식으로 일을 치렀을까?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총회에도 말이다.
너희가 나를 적대시한다면 나는 언제든 너희에게도 같은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감히 너희가 나를 감당할 수 있을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이런 명료한 메시지는 아니었겠지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런 느낌을 전하려 한 것만은 분명했다.
하나의 일로 하나의 결과를 만들지 않는다.
하나의 일로 여러 가지 결과를 그렸고, 자신에게 이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게 강진호의 정말 무서운 점이었다.
이런 사람과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자와 적이 되는 걸 선택한 대가로 이중걸은 모든 것을 잃고 뒷방으로 물러났다. 지금 그가 맡고 있는 일은 그저 방진훈이 골머리를 썩는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한다거나, 총회를 이끌어 나감에 있어서 현실적이고 금전적인 부분을 조언하는 수준이었다.
‘불만이 없을 수는 없지.’
이중걸 역시 각오한 일이었다.
패한 자는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는 수밖에 없다. 그가 그걸 납득할 수 없었다면 패배를 인정하지 않거나, 은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납득했다. 그리고 이해했다.
이현수라는 놈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건 이중걸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결국 방진훈은 이끌어가는 리더는 될 수 있지만, 실무에 정통하지는 못했다. 이중걸의 도움 없이는 총회라는 거대한 집단을 움직일 수 없다. 아무리 천태훈이 돕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건 시작부터 이중걸에 대항하기 위한 방진훈의 근본적인 한계였다. 총회의 실무진은 이중걸이 꽉 잡고 있고, 총회의 안정된 운영을 위해서는 이중걸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남회와 병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산적해 있는 문제들은 이중걸의 필요성을 더욱 강화시켜 줄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하기로 한 것에는 그런 계산도 있었다. 겉으로는 회주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지만, 그 영향력만 손에 쥐고 있다면 회주라는 자리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현수가 그 모든 계획을 부숴 버렸다.
그는 놀라운 실무자였고, 순식간에 총회와 영남부의 실권을 거머쥐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결코 방진훈에게 적대하지 않았다. 완벽하다고 박수를 쳐줘야 할 처세로 방진훈의, 아니, 강진호의 오른팔이 되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이중걸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일마저 모조리 이현수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그놈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 자리에 나와 있을 일도 없겠지.’
아직 여든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뒷방으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쓸데없이 높아져 버린 지위는 그가 다른 일을 맡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지만, 그 속도가 과하면 결국에는 범람하기 마련이다.
지금 이곳에 그 범람하기 직전의 들끓는 물길들이 가득하다.
이중걸은 술을 마시는 척 슬쩍 입을 가렸다.
표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왁자지껄 떠들던 이들이 소리쳤다.
“상황이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회주가 방진훈이라지만, 여기에 모인 이사가 몇이고, 장로가 몇입니까! 일국의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장관들이 모두 반대하는 일을 할 수는 없는 거예요! 여기가 무슨 북한도 아니고.”
“맞습니다. 최소한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은 필요한 겁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최근에 방 회주에게 자기 의견 말해본 사람 있으십니까?”
대답이 없었다.
생각 이상으로 방진훈이 독불장군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전 회주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굳이 그걸 저에게 묻는다고 해도…….”
“그래도 회주님께서는 총회를 몇 십 년간 이끌어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때는 잡음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개판 아닙니까, 개판!”
이중걸은 웃음을 참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그때는 문제가 없었어?’
이중걸파와 방진훈파로 나뉘어 서로 칼부림을 한 게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뭐? 문제가 없어?
머저리 같은 소리일 뿐이었다.
문제는 언제나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이들이 그 문제의 피해자일 뿐이지. 이중걸은 이 머저리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들과 같이 생각하고 진행하는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냉정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확실히…… 방 회주의 독단이 조금 지나친 면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많이 지나치지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그런 뒤, 이중걸은 말을 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분위기가 고조되도록 말이다.
모두의 시선이 확실하게 와닿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중걸이 입을 열었다.
“하나는 대화로 푸는 것이지요. 여러분에게 이런이런 불만이 있다는 것을 제가 방 회주에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람도 말을 못 알아먹는 사람은 아니니, 아마도 일정 부분은 해결이 될 겁니다. 완전히는 어렵겠지만요.”
살짝 불만 어린 표정들이 보인다.
알고 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이런 온건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리 회주라고는 하나 방 회주는 그들의 첫 제자들과 비슷한 연배였다. 그런 이가 어려워 말도 꺼내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실효성이 조금 떨어집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총회라는 곳은 방 회주가 아닌, 그 강진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강진호에게 직접 말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의외로 그 사람도 말이 통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과연 이곳의 장로나 이사들에게 신경을 쓸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신경을 썼다면 지금처럼 소 닭 보듯이 하지는 않겠지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렇다면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데…….”
이중걸은 입을 닫아버렸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내가 리스크를 져야 할 말은 하지 않는다. 이중걸이 스스로 말을 해서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것과 사람들이 직접 이중걸을 옥좌 위로 올리는 것에는 그 차이가 극명했다.
그 역할을 맡을 이는 따로 있었다.
“강진호를 쳐야지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조 이사.
그가 굳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지금 총회는 강진호라는 독이 파고든 상황입니다.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금세 전신으로 독이 퍼질 겁니다.”
“하지만…… 강진호는 방 회주의 신임을 얻고 있지 않소? 아니,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해도 될 상황입니다만.”
“독이 파고든 부분은 통째로 도려내야 합니다. 어설프게 해약을 찾다가는 심장까지 독이 파고드는 법입죠.”
“……그 독을 어찌 해결하는지가 문제 아니겠습니까? 도려낼 방법이 없는데.”
조 이사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 방법을 알아낼 사람은 우리가 아니지요. 우리가 언제 그런 걸 고민하는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럴 능력이 안 됩니다.”
“그럼?”
“고민하는 분이야 항상 계시지 않았습니까. 저희야 그분의 손발이 되어 최선을 다해 움직이면 될 일이지요. 그게 총회 아니었습니까? 저 변질된 총회가 아닌, 순수한 총회 말입니다.”
교묘한 언변에 모두의 시선이 이중걸에게로 쏠렸다.
고민을 해야 할 사람.
이끌어 나가는 사람.
그 사람이 이중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과중합니다.”
“해주셔야 합니다.”
“……그럼 그전에 하나를 논의하고 넘어가고 싶습니다만.”
이중걸이 살짝 운을 뗐다.
지금이다.
지금이 적기다.
“본인에게 강진호를 처리할 방법이 있다고 하면 다들 어쩌시겠습니까?”
실내의 공기가 급격하게 싸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