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47
#546.
평화롭다 (1)
“어? 유민이 형?”
연습실 안으로 들어간 박유민은 익숙한 얼굴의 인사를 받으며 희게 웃었다.
“정우, 오랜만이다.”
최정우가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박유민의 앞으로 달려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예전에 팀 나가실 때 뵈고 처음 뵙네요.”
“응. 엄청 반갑네.”
박유민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 그가 프로게이머였던 시절에 연습생으로 있던 이가 최정우다.
‘상황이 역전됐네.’
당시 최정우와 박유민의 위상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최정우는 흔하디흔한 연습생이었다. 프로 데뷔를 꿈꾸지만 한 끗 차이로 프로가 될 실력을 갖추지 못한, 그런 연습생.
반면에 박유민은 한동안 본좌 라인에 이름을 올렸을 만큼 확고한 원 톱 프로게이머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반대로 된 것이다.
박유민은 이제 입단 테스트를 치르러 온 연습생이 되어버렸고, 최정우는 팀의 신뢰를 받는 프로게이머가 되어 있었다.
달라진 위상에 박유민이 신기하다는 듯이 웃었다.
“연락 몇 번 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감히 연락드려도 되나 싶어서…….”
“그런 게 어딨어? 연락하고 싶으면 연락하면 되지.”
“그래도요. 저 같은 허접쓰레기가.”
황송하다는 듯이 자꾸 고개를 숙이는 최정우를 보며 박유민이 손을 내저었다.
“왜 그래? 사람 당황스럽게.”
“……여전하시네요, 형.”
최정우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박유민은 예전에도 그랬다.
연예인이 그렇듯 프로게이머도 자신의 위상이 올라간다 싶으면 사람이 변하기 마련이었다.
인성이 영 별로다 싶은 이들도 많았다. 거기에 잘하는 게이머들에게 대놓고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구조까지 더해지다 보니,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계급제 사회가 만들어졌다.
게임단에 따라서는 정말 군대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팍팍한 예의와 행동을 요구했고, 부조리가 심한 곳도 많았다.
하지만 그가 몸담은 곳은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팀을 대표하는 게이머인 박유민 때문이었다.
박유민은 톱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일을 남에게 미루는 법이 없었고, 되레 당연히 연습생들이 해야 하는 일도 몰래 자신이 해놓기도 했다.
과도한 연습 때문에 항상 피곤에 찌들어 있는 연습생들을 고생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천사였지, 천사.’
그 박유민을 연습생들이 얼마나 좋아했던가.
이제는 갤럭시 리그가 폐지되어 전 프로게이머들이 개인 방송을 하는 시대였다. 덕분에 예전 대단하던 프로게이머들이 뒤에서 얼마나 폭군처럼 굴었는지에 대한 썰들이 마고 쏟아지고 있었다.
우상처럼 여긴 프로게이머의 좋지 않은 뒷모습에 팬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지지를 거두는 시대이건만, 과거 박유민에 대한 위상은 되레 올라가고 있었다.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니까. 심지어 예전의 프로게이머들조차 박유민은 논외로 놓고 오로지 찬양만 하다 보니, 박유민교라느니 교주님이라는 호칭이 새로 붙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럴 만하지.’
최정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박유민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도 인간이다 보니 다른 이들이 인기를 얻으면 배가 아프지만, 박유민에게 있어서만큼은 절대 그런 질투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저희 북돋아주러 오셨어요?”
“아니.”
그때, 뒤쪽에서 감독이 걸어 들어오며 웃었다.
“입단 테스트 하러 온 거야.”
“예?”
최정우가 놀란 눈으로 박유민을 돌아보았다.
“챌린저 상위권 찍었으니까, 자격이야 충분하지.”
“와! 형, 진짜요?”
“응. 그렇게 됐어.”
“……형,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두 종목에서 다 상위권을 찍지?”
최정우가 정말 놀란 눈으로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일반인의 눈으로 본다면 게임이라는 것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겠지만, 직접 게임을 하는 게이머들에게는 전혀 다르다.
축구와 농구는 둘 다 구기 종목이지만, 축구에서 톱을 찍은 스타 플레이어가 농구에서도 같은 수준에 오를 수 있겠는가.
타고난 운동능력과 피지컬이 있으니 상급까지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최상급은 불가능하다. 그 조던조차도 농구에서는 황제였지만 야구에서는 평범한 마이너리그 선수에 불과했다.
그런데 입단 테스트라니.
“형, 진짜…… 와! 역시 유민이 형이에요.”
“아냐. 아직 그럴 수준 안 되는데, 감독님이 자꾸 오라고 하셔서 온 거야. 한참 멀었어.”
“테스트야 받을 만하지. 그렇다고 우리 유민이를 다른 구단에 뺐길 수도 없고. 네가 다른 구단에서 데뷔하는 일 벌어지면 그날로 나는 인터넷에서 화형당하는 거야, 인마.”
“그렇죠. 맞죠.”
최정우가 맞장구를 치자 박유민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포지션이 어디세요?”
“미드.”
미드라는 말을 듣자 최정우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의 포지션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어? 미드요? 그럼 제가 테스트 봐야겠네?”
“그래. 준비해.”
최정우의 시선에 살짝 불안함이 담겼다. 그들 팀의 미드는 곽현태다. 실질적으로 팀의 에이스를 맡고 있기도 하지만,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곽현태의 실력이 아니었다.
‘안 봐줄 텐데.’
무자비한 성격.
실력 있는 어린 에이스가 가지고 있는 과감한 자신감과 상대를 찍어 누르겠다는 의지.
그 팔딱대는 생선 같은 역동성을 과연 박유민이 감당할 수 있을까?
“프로게이머 시절에 엄청 좋아했어요, 박유민 선배님.”
“응, 고마워.”
“그런데 이건 다른 게임이잖아요. 괜찮으시겠어요?”
박유민이 대답을 망설이는 순간, 감독이 입을 열었다.
“너, 입 조심해.”
“에이, 그냥 한 번 한 말인데…….”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유민이 없었으면 너는 직장도 없었어, 인마. 우리 팀이 유지될 수 있던 게 다 유민이 덕이라는 걸 명심해.”
“아, 네.”
곽현태가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 아니면 내가 게이머 데뷔 못했나. 다른 데서 했겠지’라는 중얼거림이 얼핏 들려왔지만, 감독은 굳이 그 말을 집어내지 않았다.
인성을 중시하니 어쩌니 밖으로는 항상 그리 말하자면, 결국 프로게이머는 실력이 전부다. 실력만 있으면 어디서도 살아남는다. 그 냉정한 현실을 그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이제는 박유민이 보여줘야 할 때였다.
“유민아, 준비해라.”
“예.”
“운영도 보면 좋겠지만, 운영이야 빤하지.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 라인전부터 보자. 미드로.”
“예.”
등에 멘 가방에서 장비를 꺼내며 박유민이 의지를 다졌다.
‘있는 만큼만 보여주면 되는 거야.’
아직은 어색해 보이는 컴퓨터로 향하며 박유민이 마우스를 움켜잡았다.
“일주일 뒤에 테스트 한 번 더 볼게.”
“……네.”
“원래 다 그래. 테스트 와서 제 실력 발휘하는 애가 어딨냐. 너도 알잖아.”
“예.”
“그 정도면 잘한 거야. 일단 다음에는 조금만 긴장 더 풀고.”
“네.”
“그래, 고생했다.”
감독의 말에 박유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래. 다음 주에 보자. 형이 톡할게.”
“예, 감독님.”
박유민이 몸을 돌려 걸어 나가자 감독이 안타까운 눈으로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프레셔에 약했지.’
박유민의 성격에 조금만 독기가 있었어도 평가가 두 배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예전에도 저런 프레셔를 이기지 못해서 당연히 잡아야 할 상대를 잡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이해는 한다.
다른 종목, 그리고 이제는 프로게이머로서 적지 않은 나이. 어릴 때처럼 한 차원 위에서 다른 애들을 찍어 누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잘할 때는 드러나지 않은 성격적인 결함이 크게 보이는 거겠지.
더구나 이미 쌓아놓은 업적이 있으니 두세 배의 압박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원하는 만큼 손이 움직이지 않았겠지.
다만…… 그걸 해결한다고 해도 과연 다시 데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좀 더 근본적인…….
“감독님,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최정우가 부리나케 뛰어나가자 감독이 손을 뻗었다.
“야! 인마! 좀 있으면 스크림 짜야 하는데, 너 어디 간다고!”
“그쪽에 제가 일이 있다고,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나중에 고기 산다구요.”
“인마, 그게 너 혼자 미안하다고…….”
이미 저 멀리 뛰어가 버린 최정우를 보며 감독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우리 유민이가 인복은 있지.’
모난 성격으로 최고가 되어 사람을 잃느냐, 아니면 저 성격으로 최고는 못 되어도 사람을 얻느냐.
그로서도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업계에서 박유민이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를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형! 형!”
박유민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쫓아온 최정우를 바라보았다.
“어? 정우야?”
“형, 뭘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는데요.”
“……아니, 뭐 굳이 인사까지 받아?”
“그래도 그게 아니죠, 형. 커피라도 한 잔 사 드…… 아뇨. 사 주세요, 형.”
박유민이 피식 웃었다.
“갑자기 왜 ‘사 주세요’로 바뀌어?”
“생각해 보니까 형이 벌어놓은 돈이 어마어마한데, 제가 커피 사는 것도 건방진 것 같아서요.”
“……사 주면 좋은 거지.”
“그래요? 그럼 제가 살게요.”
“됐어. 내가 살게. 가자.”
박유민이 최정우를 이끌고 가까이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 자리에 앉은 박유민이 조금 어색한 얼굴로 최정우를 보았다.
“위로해 주러 온 거야?”
“에이, 형. 위로는요, 무슨. 제가 형을 위로할 깜냥이나 되나요.”
“망한 게 사실인데 뭐.”
“형, 솔직히 두 종목에서 그만큼 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너는 했잖아.”
“저는 갤럭시에서는 형 발톱의 때도 안 됐죠. 그리고 지금 여기서도 예전의 형 정도 위상은 꿈도 못 꾸고 있는데요, 뭐. 흔한 선수일 뿐이에요. 그런데 형은 그쪽에서는 원 톱 찍고, 이쪽에서도 프로급까지 올라오신 거잖아요.”
“말은 고맙다. 그런데…… 프로급은 아직 아닌 것 같아. 오늘 실감했어.”
겸손이 아니었다. 박유민은 지금 좀 낙담한 상태였다.
게임을 하고 티어가 올라가면서 나름 프로게이머들과도 자주 게임을 했다. 그들도 적당히 상대할 만해서 이제는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지.’
예전의 그도 그렇지 않았던가. 공방에서 아마추어를 상대할 때와 진짜 프로들과 게임을 할 때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그가 전력을 다해 상대하는 유일한 아마추어는 강진호뿐이었다.
“정우야.”
“예, 형.”
“내가 뭐가 문제인 거 같아?”
“네?”
“네가 보기에 내가 어떻게 해야 좀 더 나아질 것 같아?”
최정우는 입을 다물었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더구나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은 한때 그의 우상이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해야 한다.
그게 박유민을 도와주는 거니까.
“형, 제 생각인데요…….”
“응.”
최정우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손이나 뭐, 이해도나 이런 문제가 아니라…… 제가 보기에는 그냥……. 네, 성격적인 문제 같은데요.”
“성격?”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을 들은 박유민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