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48
#547.
평화롭다 (2)
“성격?”
“네, 형.”
최정우가 조금 긴장되는지 음료수 잔을 몇 번 들었다 놓았다.
“게임에 성격이 문제가 된다고?”
“이걸 성격이라고 해야 할지, 성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조금…… 음……. 네, 그런 것 같아요.”
“정우야, 내가 이해를 잘 못해서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니?”
최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 예전에도 그랬잖아요. 게임하는 스타일이 뭐라고 해야 할까, 좀 이창호 같다고 할까?”
“이창호? 바둑 선수?”
“네. 그런 느낌이 강했어요. 확실하게, 정말 확실하게 이득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쉽게 안 들어가고, 느긋하게 그냥 운영만 하는 것 같은데 어느새 반쯤 이겨 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금 더 밀어붙이면 완전히 끝낼 수 있을 것 같아도 혹시나 모른다 싶으면 이득만 보고 멀티해서 더 크게 이기는, 그런 타입.”
“음…….”
“그때는 그게 먹혔죠. 그게 잘될 수 있죠. 그런데 그건 개인 게임이고, 이건 팀 게임이잖아요.”
“그렇지.”
“형이 갤럭시에서 팀플을 했어도 그런 식으로는 게임을 못했을 거예요. 형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생기니까. 그런데 이건 더하잖아요. 내가 상대방 라인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도 다른 라인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건데.”
“…….”
“그런데 형은 조금 더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사리고 사려요. 적보다 조금 더 세면 된다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니 상대 선수가 여기저기 움직여도 확실하게 대처가 안 되는 거죠. 이 게임에서 정말 인기를 끌고 실력적으로 확실하다는 말을 듣는 애들은 다들 적극적이거든요. ‘게임은 지더라도 내가 너는 박살 낸다’라는 느낌으로 게임하는 애들이 보통 상위권으로 올라가요.”
박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감독이 해준 조언과 일맥상통하는 말이었다.
“적극성이라는 거지.”
“적극성이라기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쪼잔할 정도의 승부욕과 집요함. 뭐, 그런 게 좀 필요하거든요.”
“음…….”
“피지컬이고 운영이고, 그건 그다음이에요. 일단은 내가 상대를 찍어 누르겠다는 공격성이 있어야 해요. 아까도 그렇잖아요. 일대일할 때보다 오 대 오에서 문제가 크게 생겼으니까.”
박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 팀 감독과 선수에게서 같은 말이 나왔다면,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문제는 확실하게 파악했다. 이제는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럼 그걸 어떻게 길러야 할까?”
“어려운 문제네요.”
최정우가 음료를 쭉 빨아들이고는 말했다.
“성격적인 측면이나 이런 걸 어찌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게이머잖아요. 게임적인 문제는 게임으로 풀어야죠. 예를 들면 굉장히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과 같에 게임을 한다든가. 아무래도 같이 게임을 하다 보면 닮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선배도 챌린저고 준프로급인데, 그 수준에 맞춰줄 수 있는 저돌적인 타입의 게이머를 구하기가 어려울 텐데요. 막상 구한다고 해도 그 사람도 거의 프로급이니 자기 나름의 스타일이 있을 거고.”
“……있어.”
“예?”
박유민의 말에 최정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딱 있어. 그, 니가 말하는 상대방을 죽이면 게임이 어찌 되든 나는 상관없고…… 내가 죽든 말든 저놈에게는 안 진다는 마인드로 게임하는 프로급 선수가.”
“그, 그런 사람이 있어요? 스케줄도 비는?”
“스케줄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있긴 해. 지금 당장은 프로급이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열흘 만에 프로급이 될 수 있는 애가 있어.”
“……농담하는 거 아니시죠?”
물론 진담이었다.
그것도 심각하게.
“다른 건 다 모르겠지만…….”
박유민이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말한, 그 적을 반드시 죽여놓겠다는 의지력이라면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제일 심한 애가 하나 있어.”
너무 과해서 탈이지만 말이다.
“게임을 같이 해달라고?”
“응.”
강진호가 뿌루퉁한 얼굴로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박유민은 그 시선을 받으며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나랑 다시 게임을 하면 성을 간다며?”
“……아니, 진호야. 그게 아니라…….”
강진호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그 표정에 드러난 감정이 강진호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심술이라는 것을 박유민만은 알아챌 수 있었다.
“그, 그때는 내가 게임 보는 눈이 워낙에 없어서 네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어.”
이럴 때는 달래는 것이 최선이었다.
“흐으으음?”
하지만 강진호는 의외로 노련한 협상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달라붙는 박유민을 슬쩍슬쩍 밀어내면서 말이다.
“내가 필요하시다, 이거지?”
“그, 그럼.”
“이봐, 박유민.”
강진호가 거만한 자세로 의자에 등을 기댔다. 한 다리를 꼰 강진호의 입가에 재수 없는 미소를 담았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거야. 그게 우주의 진리지.”
“…….”
“뭘 해줄 텐가, 친애하는 친구여?”
“뭐, 뭘 바라는데?”
“담배 한 보루.”
“…….”
박유민은 멍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저 진지한 눈으로 농담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거면 돼?”
“좀 과한가?”
“…….”
박유민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열 보루 사 줄게.”
‘얘는 사람도 아냐.’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말이다.
하나는 사람인 이상 저렇게 뒤를 안 돌아보고 앞으로만 돌진할 수는 없었다. 인간은 위기에 처하면 뒤로 물러나기 마련이다. 위기인 게 빤하고, 자신의 캐릭터가 죽을 것이 빤한데도 일단 앞으로 가서 눈앞에 있는 놈을 죽이고 말겠다는 식으로 게임을 하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강진호는 그걸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는…….
‘야, 이걸 살아남네.’
이제는 그러는 와중에서도 살아 나오는 플레이가 되고 있었다. 게임에 적응해 가면서 말도 안 되는 피지컬로,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저 새끼, 뭐냐?
― 오토네. 신고해라.
― 아니, 저게 오토라고 되는 거냐고. 오토랑 게임 한두 번 하냐?
― 프로게이머 부캐 아냐?
― 저따위로 게임하는데?
‘그래, 확실히 저따위로 게임하기는 하지.’
박유민은 상대편의 마음을 이해했다. 축구로 따지면, 굳이 수비가 다섯 있는 곳으로 공을 몰고 들어가서는 기어코 그 수비들을 돌파해 골을 쑤셔 박는 플레이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통한다.
무지막지하게 비효율적이고 생각 없는 플레이를 반복하는데 그게 성공하니, 막는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인 것이다.
‘무뎌지네.’
같은 꼴을 두어 번 당하고 나자 건너편의 컨트롤이 눈에 띄게 둔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게임이든 뭐든 사람이 하는 것. 자기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당하면 멘탈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멘탈이 무너지면 손이 무뎌진다.
경기력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한 가지가 전체에 영향을 준다.
‘이게 다른 거였어.’
박유민은 개인 경기 프로게이머였다. 그러다 보니 팀 경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던 것이다. 내가 전부를 조율할 수 없다면, 내가 있는 부분에서 확실하게 변수를 만들어내야 한다.
강진호가 공격성으로 변수를 만들어내면, 박유민이 이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인지를 최대한 고민하고 실행한다. 그러면서 공격성이 가지는 이점을 확실하게 배우고 있는 것이다.
‘난 이렇게는 못하겠지만…….’
박유민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건 안다고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아니었다. 그저 저런 식으로 하면 되는가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감독님이나 최정우가 말한 공격성, 그리고 적극성이라는 것도 저런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걸 보면 얘를 데리고 가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네.’
아니, 아니다.
팀 게임에서 강진호는 독과 같다. 강진호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박유민도 강진호와 함께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다른 이들이야 말로 해 뭐 하겠는가.
아마 강진호의 생각과 공격성을 따라가지 못해서 트러블이 벌어질 것이다.
“이겼다.”
미묘한 흐뭇함을 애써 감추는 강진호를 보며 박유민이 말했다.
“음료수 한 잔 하고 계속하자. 너도 담배 한 대 피워야 하잖아.”
“그래야지.”
“가자.”
“그래.”
치이익.
캔을 따는 소리가 조금은 날카롭게 들렸다. 박유민은 거품이 끓어오르는 콜라를 입에 가져가는 강진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 콜라는 질리지도 않나 봐.”
“응?”
“너는 커피 아니면 콜라만 먹잖아.”
“음…….”
강진호가 콜라 캔을 가만히 들었다.
“한때는 이거 한 모금 마시는 게 소원이던 시절이 있었거든.”
“……부모님이 탄산을 싫어하셨나 보다.”
강진호는 대답 없이 웃었다.
이제는 그가 귀환자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그와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박유민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알게 되는 게 박유민에게 딱히 좋을 게 없었으니까.
친한 친구끼리는 서로 비밀이 없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일지 몰라도, 강진호는 우정이라는 게 반드시 서로를 다 내보여야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쪽에서 문제가 좀 있는 모양이지?”
강진호가 말을 돌리자 박유민도 자연스레 이쪽 화제로 따라왔다.
“음, 그런 것 같아. 아직은 더 연습해야지.”
강진호는 빙그레 웃었다.
여러 가지 일에 시달리는 와중에 박유민을 보고 있으면 배울 것이 많았다.
주변이 시끄럽기로는 박유민만 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예전부터 그에게는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쉽사리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박유민은 불평불만도 없이 자신의 꿈을 향해 매진하고 있었다.
“슈퍼맨이네.”
“응?”
“아니, 아니야.”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는 감히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사는 이들이 말이다.
“유민아.”
“응?”
“힘들지?”
“아니. 힘든 게 아냐.”
박유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저번에 그랬잖아. 경쟁을 통해서 정말 죽도록 열심히 해서 1등이 되느니, 그냥 조금 뒤처져서 부드럽게 살아보고 싶다고.”
“그랬지.”
“그런데 막상 내가 좀 뒤처진다 싶으니까, 그게 또 참을 수가 없더라.”
강진호는 웃고 말았다.
‘예전부터 그랬지.’
겉으로는 호인이지만, 그 안에는 누구 못지않은 승부욕이 있는 사람이 바로 박유민이다. 그런 이가 자신이 남들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유민아.”
“응?”
“잘해라.”
“……싱겁게 왜 그래?”
“아냐.”
강진호는 다 마신 콜라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자, 이제 다시 연습해야지.”
“너…… 그런데 이렇게 계속 해줘도 돼? 너 바쁘잖아?”
“해야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박유민을 도와주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어.”
“웃기고 있네. 놀고 싶어서 그러면서.”
“들켰네.”
킥킥 웃으며 피시방 안으로 향하는 강진호를 보며 박유민이 부드럽게 웃었다.
‘고마워.’
알고 있다.
강진호가 무척이나 많은 일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굳이 강진호를 불러낸 것은, 최근에 이런 시간을 거의 가지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자신의 욕심이었음을 말이다.
강진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 말 없이 그와 어울려주고 있었다.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나이가 더 들더라도.
시간이 더 흐르더라도.
변하지 않는 친구로 말이다.
“같이 가.”
박유민이 강진호를 쫓아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