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53
#552.
정비하다 (2)
“사진요?”
[금방 알 거예요. 귀찮게 묻지 말고.]“아…… 네.”
의문은 한가득이지만, 저 여자의 저 짜증스런 목소리를 뚫고 해석을 요구할 용기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빠르게 용건을 듣고 전화를 끊고 싶은 심정이니까.
이미연은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한 분이 처음 오시는 거죠?”
[네, 그래요. 피부 관리부터 마사지까지 풀코스로.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거예요.]“물론이죠. 누구 추천으로 오시는 분인데요.”
[뭐, 내가 이렇게 말 안 해도 알아서 잘 모시겠지만.]이미연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저 어투 속에 ‘니베오의 서비스를 믿는다’가 아니라 다른 의미가 숨어 있었다.
[여하튼 제 친구니까, 잘 부탁드릴게요. 다시 말하지만, 잘 부탁드려요.]“네. 걱정 마세요, 최연하 님.”
만약 자기 친구에게 어설픈 서비스가 들어간다면 ‘내 친히 한국으로 가 너희 원장 머리채를 뜯어주마’쯤으로 들리는 말이었다.
[한 10분 내로 도착할 거예요. 그럼.]뚝.
전화가 끊기고 나자 이미연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익숙한 손길로 서랍을 열어 두통약을 꺼내 입으로 털어 넣었다.
‘이거였구나.’
그동안 그녀를 괴롭히던 두통의 원인이 뭔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지금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며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텀블러에 담긴 녹차를 벌컥벌컥 마셔 알약을 배 속으로 밀어 넣은 이미연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얘들아! 준비해라! VVIP 온다!”
“네? VVIP요? 누, 누구요? 최연하? 전송미? 아니면 사모님급?”
“처음 오시는 분이란다!”
“처음 오시는 VVIP요?”
직원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처음 오는 VVIP라는 말은 그저 니베오에 많은 돈을 써서 VVIP가 된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인 명망이나 영향력이 누가 봐도 어마어마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손님이 제일 무섭다.
처음 오는 사람인 만큼 서비스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이고, 다시 오지 않을 사람이라면 업체에 대한 악평을 옮기는 데도 주저함이 없기 마련이다.
언제나 첫 손님은 그들을 가장 긴장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게다가…….
“최연하 친구래.”
“헐.”
이건 VVIP 수준이 아니라 악마가 온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이미연이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는지 알게 된 직원들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럼 준비해야죠.”
“선영아, 1호실 온도 높여라!”
“예, 언니!”
다들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VVIP에다가 최연하의 친구라면 그 까탈스러움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실장님, 그 손님 언제 오기로 하셨죠?”
“10분 내로 온다는데?”
“지, 지금 엘리베이터 쪽으로 한 분 오시는데요?”
“벌써?”
“그런데…….”
모니터를 주시하던 직원이 조금 이상하다는 투로 화면을 가리켰다.
“이 손님 맞으세요?”
“맞겠지.”
이미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니베오가 입주해 있는 건물에서 니베오가 있는 층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회원제 운영을 위해서 전용 엘리베이터를 마련한 것이다.
이쪽 엘리베이터는 니베오의 회원 카드를 찍거나 위쪽에서 엘리베이터를 열어줘야만 탈 수 있었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 접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확인을 위해 종종걸음으로 모니터로 다가간 이미연은 왜 직원이 그런 식으로 반응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남자야?”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사람은 누가 봐도 남자였다. 체구는 약간 작은 편에 속하는 것 같지만, 체형은 옷발이 잘 받는 살짝 마른 체형이었다.
전형적인 연예인 체형.
여기까지만 보면 당연히 최연하가 말한 사람이 맞겠지만, 선뜻 문을 열 수 없는 이유는 그 옷에 있었다. 화면으로 보기에도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은 남루한 느낌이 확연했다.
“으음…….”
이미연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스트리트 패션 아닐까요?”
“……그게 더 비싸, 이 기집애야.”
“네.”
일부로 빈티지하게 입었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정말 옷이 좀 바래고 늘어난 느낌이랄까?
화면 속의 남자는 엘리베이터 앞에 설치된 인터폰을 보며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하기야 웬만한 곳에서는 엘리베이터에 인터폰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를 보기 힘들 테니까 당황할 만도 하다.
이미연은 마이크를 잡고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혹시 소개로 오신 분이신가요?”
인터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남자의 시선이 카메라 쪽으로 향했다.
[네.]“문 열어드리겠습니다. 들어오세요.”
[네.]엘리베이터 문을 연 이미연이 낮게 한숨을 쉬자 직원이 당황한 듯 물었다.
“그, 그것만 확인해도 돼요?”
“응.”
“그래도 누구 소개 받고 왔는지 정도는…….”
“안 해도 돼.”
“네?”
이미연이 혀를 찼다.
‘못 봤구나, 얘들.’
순간적으로 고개가 카메라 쪽으로 향했을 때, 이미연은 이미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연예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연예인 씹어 먹는 얼굴이구만.’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걸로 자격은 충분했다.
강진호는 열리는 엘리베티어 문을 보며 입을 살짝 벌렸다.
‘신기하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더니, 이런 엘리베이터도 있구나 싶었다.
“흠.”
가볍게 헛기침을 한 강진호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엘리베이터가 닫히며 자동으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신기하다니까.’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그건 최연하의 한마디에서 시작했다.
[그러니까, 휴식은 해야 하겠는데, 휴식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니까, 쉬는 법을 알려 달라?]“대충 그런 것 같네요.”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무슨 문제라도?”
[아뇨. 뭐랄까, 참 강진호 씨다운 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면에서 참 감사드려요. 강진호 씨 아니면 내가 어디 가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여하튼 좋아요. 내가 가장 확실하게 푹 쉬고 재충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리죠. 대신에 한 가지만 먼저 약속해요.]“약속이요?”
[네.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것. 이거 말고 다른 걸로 알려 달라는 말 없기!]강진호는 고민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동의해서 나쁠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죠.”
[좋아요. 그럼 내가 이따가 톡으로 주소 보내줄 테니까, 내일 점심 먹고 여기로 가요.]“……거기가 어딘데요?”
[가보면 알아요.]강진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생각을 좀 더 해보고 대답을 했어야 하는데.’
일단 엘리베이터 안의 인테리어만 봐도 여기가 좀 범상치 않은 곳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그리고 채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가 꼭대기층에 도달했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좌우로 정장을 입은 여자들이 정렬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
강진호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자 직원들도 움직이지 못했다. 강진호는 당황하여 움직이지 못했고, 직원들은 강진호가 말이 없으니 더더욱 움직이지 못했다.
살짝 침묵이 감돌았다.
서로가 어색함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던 그 순간,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엘리베이터는 무정하게 그 문을 닫아버렸다.
“헐…….”
“문 열어. 문 열어! 빨리!”
다급하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연타하자 문이 다시 열렸다.
“고, 고객님,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아…… 예.”
강진호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온 건가?’
이미연은 그럴 것이라 확신했다. 이곳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듣고 왔다면 저리 당황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 ‘최연하’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미연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이미연은 강진호를 이끌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음료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차 종류와 커피가 있습니다.”
이미연이 메뉴판을 펴자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여기 카페인가요?”
“푸웁!”
이미연이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정말 얼떨떨한 얼굴로 물어오는 강진호를 보고 터지고 만 것이다.
‘최연하 친구 맞나?’
그 최연하의 친구라기에는 너무도 순수한 모습이었다.
“아닙니다, 고객님. 여기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피부 관리실입니다.”
“피부 관리요?”
“네. 피부 관리와 종합 체형 관리, 그리고…….”
말을 하다 말고 이미연이 입을 다물었다.
눈앞의 말끔하게 생긴 남자가 왜 되물어왔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피부 관리라니. 잠깐만.’
이미연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저걸 관리하라고?’
그녀는 최상위급 회원제 피부 관리실의 직원이다. 그만큼이나 수많은 이들의 피부를 봐왔다. 이곳을 드나드는 이들의 특징이라면 나이 대에 비해서 다들 피부가 백옥같이 곱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이곳에 출입하는 이들은 한 달에 피부 관리로만 수백만 원을 처바를 수 있는 재력을 지닌 이들뿐이었다. 피부에 좋다는 것은 바퀴벌레즙이라도 바를 수 있다는 그 의지 앞에 하늘이 무심할 리는 없는 법. 다들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고운 피부의 소유자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앉은 남자의 피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이미연은 잡티 하나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자, 장난 아니다.’
피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꿀 수밖에 없는 피부였다.
무학을 통해 불순물을 완벽하게 제거해 낸 강진호의 피부는 아직도 아이와 같은 촉촉함을 유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피부를 뭘 어떻게 관리하란 말인가. 되레 그녀들이 강진호에게 피부 관리법을 전수받아야 할 판이건만.
프로 축구 선수가 어린이 축구 교실에 축구를 배우겠답시고 온 격이다.
“피, 피부 관리하러 오신 것 맞죠?”
피부 관리실에 피부 관리를 하러 오지 않으면 무얼 위해 왔겠냐마는, 이미연은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대답 역시 심상치 않았다.
“그냥 가라고 해서 왔는데요?”
“네?”
“가면 피로 풀어준다고…….”
“아…….”
이미연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고객님. 미리 최연하 님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간단히 관리받으면서 체험하시는 걸로 하겠습니다.”
“네. 그래주세요.”
“다만, 그전에 고객님.”
“네?”
이미연이 슬그머니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사,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네?”
“피부 사진을 관리실 내부에 전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면 저희가 무료 회원권을 드리겠습니다. 1년, 아니, 3년 동안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게 해드릴게요. 사, 사진 한 장! 아니! 사진 두 장만!”
“……네?”
“최연하 님도 사진 한 장은 괜찮다고 했거든요.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꼭!”
강진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최연하가 고심(?)해서 짠 강진호 휴식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게 과연 강진호에게 휴식이 될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