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54
#553.
정비하다 (3)
“탈의를 해주셔야 해요.”
“……탈의요?”
탈의라는 것은 옷을 벗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체 옷을 왜 벗어야 한단 말인가.
강진호는 관리실 안으로 보이는 기묘한 모양의 베드를 보며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인간이란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는 미지의 것을 보면 거부감부터 느끼기 마련 아니던가.
각종 화초와 비싸 보이는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는 관리실부터가 강진호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영화에서 본 에이리언 굴에서 느끼는 그 기묘한 위화감이 이곳에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자리한 마사지 베드는 더더욱 강진호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다.
“피부 관리를 받는데 꼭 탈의를 해야 하나요?”
“네. 피부 관리와 동시에 전신 마사지를 받게 되실 거예요. 오일을 사용하기 때문에 탈의를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요?”
강진호는 떨떠름한 얼굴로 바지춤을 잡았다.
“여기서?”
“아, 아뇨, 고객님! 이쪽으로!”
기겁을 한 관리사가 강진호를 한쪽에 보이는 문으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탈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캐비닛의 한 세 배쯤 되어 보이는 개인 옷장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랄까?
“안에 가운과 속옷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환복하고 나서 가운을 입고 나와주시면 됩니다.”
“……속옷?”
“네.”
강진호는 전투에 나가는 병사와 같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관리사 역시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탈의실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카운터로 가서 한숨을 쉬었다.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다. 최연하 친구라던데,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사람이 좀 어리숙해 보이는 것도 같고.”
“그 와중에 잘생겼어.”
“…….”
모두의 눈초리가 한쪽으로 꽂혔다.
“아니, 진짜라니까. 정말 잘생겼어. 똑바로 다시 봐봐.”
“난 그런 느낌 못 받았는데?”
“정말이야. 나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예전에 최연하하고 같이 드라마 나온 그 사람 아냐?”
“누구?”
“그 있잖아. 얼마 전, 최연하 나왔던 드라마에서 1회에만 나왔는데 난리 났던 그 사람.”
“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고 보니…….”
“에이, 아니지. 그때 얼마나 난리가 났는데. 그 사람이면 저렇게 평범할 리가.”
“잘생겼다니까! 진짜 잘생겼다고! 아까 실장 언니 사진 찍고 난리 난 것 못 봤어?”
“흐음…….”
그 순간,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강진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다들 입을 열지 못했다.
‘잘생겼다.’
‘진짜 잘생겼네?’
‘쟤는 옷을 왜 입고 다니지? 봉인구인가?’
기묘한 일이었다.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딱히 특별한 점이 없어 보이던 강진호가 가운 하나를 걸치고 나오자 되레 얼굴이 살아 보인다. 옷이 날개라더니, 강진호는 옷으로 되레 얼굴을 죽이고 있던 것이다.
‘차라리 벗고 다니지.’
‘저 다리근육 좀 봐.’
‘피부가…… 와, 피부가!’
카운터에 몰려 있는 이들이 다들 말없이 바라보고 있자, 강진호가 불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제 뭘 해야 하나요?”
“아! 죄송합니다, 고객님!”
관리사가 화들짝 놀라 강진호에게 달려갔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관리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어, 언니, 오늘 바쁘다고 안 했어요? 제가 해드려도 되는데?”
“나 안 바빠. 하나도 안 바빠.”
강진호는 뭔가 다급해 보이는 관리사의 손에 이끌려 관리실로 따라 들어갔다.
‘이거…… 잘하는 짓일까?’
조금 전부터 의문이 몰려오고 있었다.
최연하가 시키는 것에 딴지를 달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시작한 일이라 여기서 멈추기도 뭐하지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만은 끊이지 않았다.
“여기 누우시면 됩니다.”
“……네.”
뭔가 그새 관리사의 목소리가 한결 밝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뭐랄까, 기분 탓이겠지?
베드에 눕고 나자 커다란 담요가 몸에 덮였다. 그런 후, 머리 위에 자리 잡은 관리사가 화사한 얼굴로 웃었다.
“관리받아 보시면 피로가 확 풀리실 거예요.”
“…….”
뭔가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 * *
장다징의 얼굴은 검게 죽어 있었다.
며칠째 벌써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으니 얼굴이 상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서 좀 쉬어.”
“아니. 괜찮네.”
“이러다 자네까지 쓰러지네.”
“무인이 며칠 잠 못 잤다고 쓰러질 일이야 있겠나. 신경 쓰지 마.”
“미련하긴.”
동료들이 걱정을 해주었지만, 장다징의 귀에는 그 말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굳게 닫혀 있는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바토르 님.’
바토르는 깨어난 그날 바로 퇴원을 하고는 저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장다징의 출입마저 거부하고는 방 안에 틀어박힌 것이다.
다른 이들은 바토르 님이 패배의 충격으로 상심하여 그런다고 생각하지만, 장다징만은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니야.’
장다징이 머리를 흔들었다.
깨어난 바토르가 한 ‘그 발언’이 그의 뇌리를 뒤흔들었다.
‘아니라고!’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토르처럼 강인한 정신을 가진 이가 어찌 한 번의 패배로 상대에게 완벽히 승복을 한단 말인가.
그 홍왕에게 패했을 때도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 그의 종을 자처한 바토르였다. 그런데 강진호 따위가 어찌…….
“으아아아아아아아!”
방 안에서 거대한 괴성이 흘러나왔다.
장다징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저 괴성에 놀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바토르는 그것을 거부했다. 허락 없이 방 안으로 발을 들일 경우 사지를 찢어 죽여 버리겠다며 붉은 눈으로 소리치는 바토르의 앞에서 장다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별일 아니다.
그들이 겪은 일은 말이다.
그저 한 사람이 다른 이에게 도전했다가 패배한 것뿐이다. 그 과정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단순하게 평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심상치 않다.
장다징을 잠 못 이루게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가 아는 바토르는 한 번의 패배로 이렇게 상심할 이가 아니었다. 그런 이가 이처럼 타인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바토르의 안에서 말이다.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렇다면 그 원인은 하나뿐이다.
강진호.
그자가 바토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바토르가 저리 괴로워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저 강인한 바토르가 저 토록이나 괴로워한단 말인가.
장다징이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바토르에 대한 걱정과 강진호에 대한 소름 돋는 공포가 동시에 밀려온다. 버틸 수 없을 만큼 말이다.
“……바토르 님.”
나직한 그의 목소리에는 도무지 힘이 실리지 않고 있었다.
“흐으…….”
바토르는 머리를 움켜잡고 있었다.
아니, 그저 움켜잡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바토르의 강인한 손에는 핏발이 잔뜩 돋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는 손이 주는 압력을 버티지 못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더 주면 바토르는 스스로의 머리를 터뜨려 버리고 말 것이다.
“강……진호.”
바토르가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의 눈은 마치 피 칠갑이라도 한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눈의 실핏줄이 모조리 터져 마치 악마와도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토르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간단했다.
거부.
모든 힘을 다해 저항하는 것.
그의 머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전신이 덜덜 떨릴 만큼 고통스럽고 힘이 든다.
“흐으으으…….”
바토르의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들려온다.
목소리가.
그를 강압하는 목소리가 말이다.
― 복종하라.
“아니야!”
바토르가 거칠게 소리치고는 이를 악물었다.
아니다.
결코 그럴 수 없다.
그가 왜 강진호에게 저항한단 말인가. 당연히 복종…….
아, 아니! 왜 복종한단 말인가! 당연히 저항해야 하는 것을!
“빌어먹을!”
바토르가 입을 헤에 벌렸다.
그는 미쳐 가고 있었다.
그의 사고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지배를 거부하고 있었다. 강진호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전신이 겁먹은 강아지처럼 오그라들고, 그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분노한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공포스럽기 짝이 없다.
복종해야 한다.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아니라고! 으아아아아아아아!”
바토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보이는 테이블을 걷어찼다. 주먹을 휘둘러 침대를 부숴 버리고, 다시 TV를 걷어찬다.
“나는 너의 종이 아니다! 나, 나는!”
― 바토르!
“아니라고! 나는! 나는 바토르다! 푸른 초원의 전사, 바토르란 말이다!”
이상을 발견한 것은 눈을 뜬 직후였다.
강진호를 욕하는 장다징의 가벼운 언사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를 느끼고 말았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이성을 잃었다면 장다징은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닐 것이다.
마치 광신도가 자신의 신을 모욕당한 것처럼 바토르는 이제껏 느껴본 적이 없던 거대한 분노와 적의를 느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이상을 깨닫고 저항하려는 바토르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 선언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복종하라.
그 목소리는 절대의 선언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그리고 결코 거부해서는 안 되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바토르는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움켜잡았다.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말았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너의 종이 아니야! 나는 푸른 초원의 전사, 바토르다! 나는…….”
― 복종하라!
“나는!”
― 바토르!
눈을 감자 거대한 핏빛의 불꽃이 그를 덮쳐 왔다. 그의 영혼 전부를 태워 버리겠다는 듯이 말이다. 강진호를 거부하려 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신을 지배한다.
바토르조차 겁먹은 개처럼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거대한 고통이 말이다.
육체의 고통은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영혼을 으스러뜨리는 듯한 이 고통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 바토르!
동공이 풀려 버린 눈으로 바토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작은 중얼거림이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쿵!
문이 거칠게 열렸다.
“바, 바토르 님!”
장다징이 기겁을 하여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 문 뒤에는 태산과도 같은 바토르의 웅장한 육체가 당당히 서 있었다.
장다징이 떨림을 가득 담은 눈으로 바토르의 얼굴을 살폈다.
“아!”
장다징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동안의 모든 갈등을 날려 버렸다는 듯이 바토르가 심지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극복하셨구나!’
장다징의 가슴에 환희가 차올랐다.
“장다징.”
“예! 바토르 님!”
“차를 준비해라.”
“……어,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바토르가 당연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강진호, 나의 주인을 뵈러 간다.”
장다징의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