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55
#554.
정비하다 (4)
‘주인이라고?’
장다징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바토르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주인을 뵈러 간다고 말이다.
주인이라니.
바토르에게 이토록이나 어울리지 않는 말이 있단 말인가.
세상 누가 감히 바토르의 주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 홍왕조차도 감히 바토르의 주인을 자처하지 못했다. 바토르는 그의 명령을 들어야 했으나, 그들은 주종 관계가 아니었다. 그저 계약으로 얽힌 사이였을 뿐이다.
그런데 주인이라니.
“……바토르 님, 지금 뭐라고?”
“차를 준비해라, 장다징.”
“…….”
바토르의 부리부리한 시선이 장다징에게로 향했다.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너는 알고 있겠지?”
바토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지금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원하신다면 알아내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알아내라. 그분께 가야 한다.”
장다징이 마른침을 삼켰다.
“바, 바토르 님.”
감히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무례일 수 있지만,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어째서 강진호를 주인이라 칭하시는 겁니까?”
“그가 나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바토르 님! 바토르 님께서는 위대한 초원의 전사이십니다. 초원의 전사에게 주인 따위는 없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존재하는 것이다.”
“바, 바토르 님, 저, 정신 차리십시오. 어떻게 강진호 따위가 바토르 님의 주인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장다징.”
바토르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흘러나왔다.
“더 이상 나의 주인을 욕되게 한다면 아무리 너라고 한들 용서하지 않겠다. 네 죽음으로 무례를 사죄하고 싶지 않다면, 그 오만한 혓바닥을 함부로 놀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장다징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의 눈가에 습기가 차오른다.
바토르가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이 너무도 억울하고 서럽다. 그 와중에 ‘아무리’라는 말로 얼마 되지 않은 인연의 장다징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를 내보인 것이 더더욱 서글프다.
“……안내하겠습니다.”
단호한 바토르의 목소리에서 타협의 여지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바토르는 더 이상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만나 설득해야 할 사람은 바토르가 아니라 강진호였다. 장다징이 굳은 얼굴로 몸을 돌렸다.
부우우우웅.
엔진음마저 낮고 무겁게 들린다.
바토르를 실은 개조 밴이 도로를 무겁게 달렸다. 장다징은 정보원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강진호가 있음직한 곳으로 향했다.
정확하게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굳이 그걸 알아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그들은 강진호를 암살하러 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장다징이 휴대폰을 꺼내 저장되어 있는 번호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한참 울리고서야 건너편에서 조금 나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강진호 씨.”
[누구시죠?]“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장다징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뵈었죠.”
[장다징?]“바토르 님을 보좌하며 뵈었습니다.”
[기억나는군. 그래서 무슨 일이지? 이 번호는 어떻게 안 거고?]“하나씩 대답드리겠습니다.”
장다징이 핸들을 고쳐 잡았다.
“우선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강진호 씨의 신상 정보는 이쪽 계열의 이들에게는 공공재나 다름없으니까요. 마음만 먹으면 신입 정보원이라도 3분이면 알아낼 수 있죠.”
[그리고?]강진호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역시나군.’
강진호가 자신의 개인적인 정보에 민감하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용무는 간단합니다. 바토르 님께서 당신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지금?]“예. 지금 당장.”
건너편에서 전화기를 뗀 강진호가 뭔가를 묻는 듯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30분 뒤, 앞쪽 카페에서 보지.]“위치는요?”
[문자로 보내주지.]“알겠습니다.”
전화가 뚝 끊기자 장다징이 전화를 움켜잡았다.
짧은 통화이지만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바토르가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했음에도 강진호는 그 사실에 조금의 의혹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그가 이 상황을 미리 예측했다는 뜻이다.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한 것이냐, 강진호!’
이곳은 무인계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 바로 무인계였다.
하지만 그 무인계에서 평생을 살아온 장다징으로서도 타인의 정신을 제 마음대로 조종해 종으로 삼을 수 있는 사술(邪術)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아니, 듣기는 했지.’
전설 속에서 말이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전해 내려오는 옛 무인들의 전설.
인간이 하늘을 날고, 세상을 뒤엎는, 그 환상 같은 이야기 속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다른 이의 정신을 조종하여 제 종처럼 부리는 이들이 당대에는 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전설 아닌가!
봉황이나 용이 실존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누가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곧이곧대로 믿는단 말인가.
“빌어먹을.”
장다징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었다.
만나면 알게 되겠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이다.
장다징은 룸미러를 통해 보이는 바토르의 굳은 얼굴을 보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 * *
“이거 봐, 이거! 맞잖아.”
“와, 진짜네?”
카운터가 붐비고 있었다.
“맞다니까! 이 얼굴 맞다고! 헤어스타일 좀 바꾸고 메이크업 좀 하면 딱 이 얼굴이라니까!”
“……나 슈퍼맨이 왜 맨얼굴로 다니는데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지 알 것 같아. 분위기가 이렇게 다르나?”
“그렇다니까!”
언제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던 피부 관리실 니베오는 오늘 날을 만난 듯 시끌벅적했다. 물론 몸에 익은 조용함이야 어디 가지 않아서 속닥거림 이상의 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니베오에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최연하 친구라더니, 맞네! 같은 드라마 출연하면서 친해진 모양이지?”
“어머, 어머, 혹시 둘이 사귀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면 그 도도한 최연하가 굳이 자기 친구라고 사람을 여기까지 데려올…….”
“주둥아리!”
등 뒤에서 흘러나온 나직한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바짝 세웠다. 어느새 이미연 실장이 실장실에서 나와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가십 떨고 싶으면 퇴직해. 카페 가서 수다 떨어.”
“……죄송합니다, 실장님.”
“고객님이 누굴 만나든, 길에서 노상방뇨를 하든 신경 끄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어디 가서 입 함부로 놀리고 다니면 내가 누구 입에서 이 말 나왔는지 반드시 찾아내서 가만 안 둔다. 알았어?”
“예!”
이미연이 몇 번 눈을 부라리고는 관리실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넘었는데…….’
이미 30분 전에는 끝났어야 할 관리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이미연이 조심스레 관리실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자, 관리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미연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팩을 한 강진호가 침대 위에 석상처럼 누워 있고, 관리사가 강진호의 얼굴을 장난감처럼 주물러 대고 있었다.
“시, 실장님.”
“죄송합니다, 고객님. 잠시 관리사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미연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물론 누워 있는 강진호의 눈에 그게 보일까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잠시 봐요.”
“네.”
관리사가 시무룩한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왜 아직 팩을 하고 있어? 이제 팩 시작한 거야?”
“아, 아뇨. 마사지까지 다 끝났는데, 고객님이 다른 팩도 해보고 싶다 하셔서…….”
“흐응?”
이미연에게서 알 만하다는 뜻의 콧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게 지금 손님한테 뭐 하는 짓이야?’
입 모양만으로 면박을 주자 관리사가 시무룩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끝나요.”
“정신 차려, 해송 씨.”
“……네.”
정해송이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이미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생긴 건 알아 가지고.’
심심찮게 연예인들이 찾아오는 곳이건만, 그것도 톱 연예인이 찾아오는 곳이라 나름 덤덤하기도 하련만, 눈이 하트로 변해 있었다.
하기야…….
이미연도 비포(Before) 사진을 찍기 위해서 강진호를 자세히 보다가 가슴이 덜컹거리는 느낌을 받았으니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잘생긴 남자에게 마음이 가는 거야 뭐 당연한 일이니까.
‘그래도 분수를 알아야지.’
더구나 저 남자는 최연하에 소개로 온 남자다. 관리사가 자기 남자에게 꼬리를 쳤다는 말이 최연하의 귀에 들어간다면, 장담하건데 이 관리실은 끝장이었다.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게 둘 수는 없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문이 열리고 관리사와 강진호가 걸어 나왔다.
“와…….”
“헐…….”
카운터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음…….”
이미연조차 순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피부를 정리하고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강진호의 얼굴은 보는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들었다.
‘저 사람은 캐릭터가 필요 없네.’
잘생겼다고 다 뜨는 건 아니다.
배우치고 잘생기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그들도 다들 무명 시절을 거치기 마련이고,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톱이라 불리지 못한다.
개성 있고 빛나는 배역을 만나지 못하면 그 잘생긴 얼굴만으로는 인기라는 환영을 손으로 잡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을 뭐라고 해야 할까?
배역이고 뭐고 없이 1화 출연만으로 신드롬을 불러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 고객님.”
“네?”
“사,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이미연이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저 사람이 다시 옷을 입기 전에 얼른 사진을 찍어야 한다.
차라리 가운이 나으니까.
“조심해서 가세요!”
“다음에 꼭 또 오세요!”
“또 들러주세요!”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강진호가 휘청휘청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등 뒤에서 고개를 숙이는 직원들의 얼굴이 뭔가 울먹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신 안 와야지.’
강진호는 절대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두 장을 찍는 대가로 3년 무료 이용권을 받았지만, 절대 이걸 사용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피부 팩을 하고 전신 마사지를 받으면서 몸이 나른해지고 풀리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불편함이 강진호를 괴롭혔던 것이다.
“이게 무슨 휴식이 된다는 거지?”
강진호는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아무래도 최연하의 기준과 그의 기준은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 강진호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피부에서 광이 나는 느낌이 난다.
운공 직후의 그 말끔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걸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좀 신기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사우나를 막 마친 듯한 나른함과 상쾌함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한 번은 더 와볼까?’
강진호가 피식 웃으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곳이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강진호가 이런 휴식에 익숙하지 않은지는 몇 번의 경험이 더 있어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진호는 건물을 빠져나와 고개를 돌렸다.
아까 분명 1층에서 카페를 본 것 같았다. 그 주소를 장다징에게 보내주었으니, 아마 그 카페에…….
그 순간, 강진호의 눈에 아직 카페에 들어가지 않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장다징과 바토르의 모습이 들어왔다.
바토르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큰 걸음으로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강진호는 편안한 얼굴로 그런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후우…….”
강진호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바토르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 강렬한 눈빛에 노출되었음에도 강진호의 몸에는 여전히 조금의 긴장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쿠웅!
바토르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 바토르가 주인을 뵙습니다!”
강진호의 입가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