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57
#556.
도약하다 (1)
장다징은 조금 신경질적으로 차를 몰고 있었다.
강진호 쪽으로 합류하는 것이 결정된 이상 모든 생활권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홍왕계가 지원하는 곳에서 생활할 수는 없으니까. 이제 그들과 바토르는 원수가 된 것이다.
강진호는 우선 두 사람에게 총회로 합류하라는 명을 내렸다.
‘내가 미쳤지.’
장다징은 고개를 살짝 들어 룸미러를 바라보았다. 룸미러로 보이는 바토르의 얼굴은 더없이 평안해 보인다.
그 사실이 장다징의 속을 긁고 있었다.
‘개 같은 놈.’
알고 있다.
강진호가 그리 나쁜 놈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굳이 그들을 나쁜 놈과 좋은 놈으로 분류해야 한다면, 나쁜 놈에 속해야 하는 것은 장다징과 바토르다. 홍왕계에 딱히 적대적이지 않게 잘살고 있던 강진호에게 쳐들어가서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 한 것이 이쪽이니까.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른다는 인식은 있었다. 그렇지만 장다징은 평범한 사람이다. 자신의 죄에 냉정하고 객관적일 수 있는 이는 사람을 가리켜 선인이라 부른다. 장다징은 아직 선인이 되지 못한 사람이기에 자신이 저지른 일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반성할 수는 없었다.
과하다.
강진호가 바토르에게 내린 벌은 너무 과했다.
그리고 그 과한 벌에 장다징마저 휘말리고 말았다.
낮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바토르는 덩치가 너무 크기에 특수 제작된 밴이 아니면 차를 타고 이동할 수가 없었다. 버스를 대절한다고 해도 웬만한 버스의 좌석에는 앉을 수조차 없다.
결국 그가 합류하지 않았다고 해도 총회까지 바토르를 모시는 게 그의 마지막 일이 되었을 확률이 크다. 거기서 돌아오느냐, 아니면 돌아오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너무도 컸다.
‘이제쯤 난리가 나겠군.’
지금쯤 아마 남아 있는 정보원들도 그가 바토르와 함께 한국으로 투항해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곧 높은 이들에게도 이 보고가 들어갈 것이고, 홍왕계는 그들을 잡아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겠지.
배신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 것이 무인계의 철칙이니까 말이다.
홍왕계가 그를 적대시할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져 온다. 하지만 장다징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이것 말고는 없었다.
바토르를 강진호에게 노예로 내주고 나서 발 뻗고 살 자신이 도저히 없던 것이다.
“빌어먹을.”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나오고 말았다.
알고 있다. 상황이 이리 흐를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그 상황을 납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장다징.”
그런 장다징의 마음을 아는지 바토르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예, 바토르 님.”
“지금이라도 돌아가라.”
“…….”
“너는 굳이 나와 함께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너는 홍왕의 휘하에 있던 자. 굳이 나와 운명을 함께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이라면 너는 빠져나갈 수 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 말씀은.”
장다징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바토르 님.”
“어째서인가?”
“……이게 마음이 더 편하니까요.”
“다시 권할 수 없게 만드는군.”
바토르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다른 대답이 나왔다면 그 역시 반론을 제가할 수 있었겠지만, 저건 반박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었다.
“장다징.”
“예.”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장다징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까지 바토르가 보인 모습으로 짐작해 보자면, 바토르에 대한 강진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지 않다. 어느 정도의 파형이 있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의 이성을 어느 정도 되찾을 때도 있었다.
강진호에게서 멀어질수록, 그리고 그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을수록 바토르는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벗어나는 건 힘드십니까?”
“불가능하다.”
바토르가 눈을 감고 말했다.
“지금까지 저항했다. 저항을 지속했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심혼은 이미 그에게 사로잡혔다. 마치 악마와 계약을 한 것처럼 말이다.”
“……역시.”
강진호의 자신만만한 태도에서 결과는 이미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괴로우십니까?”
“저항할 때는.”
“얼마나…….”
“영혼이 타들어 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육체의 고통이라면 얼마든지 저항하겠지만, 내 존재 자체가 소멸될 것 같은 고통에는 도리가 없다. 더 두려운 것은 ‘그’에게 저항하는 것만으로 정말 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정 이상 저항하다가는 백치가 될 수도 있다.”
“개자식.”
장다징이 다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말해다오, 장다징.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그와 관련된 일에는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 지금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는 너밖에 없다.”
장다징이 핸들을 꽉 움켜잡았다.
무거운 책임감.
그리고…… 미묘한 감동.
그가 바토르를 믿고 따르듯이, 바토르도 그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는 바토르를 버릴 수 없었다.
“마음을 놓으십시오, 바토르 님.”
“…….”
“일이 이렇게 된 이상은 강진호를 믿고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를 믿으라고?”
“다른 수가 없잖습니까.”
장다징이 한숨을 쉬었다.
“희망적인 부분이라면, 제가 그동안 봐온 강진호라는 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가 아닙니다. 스스로의 권위를 내세우는 타입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부하들에게도 꽤나 무관심합니다.”
“음…….”
“바토르 님을 일단 잡아놓기는 했지만, 어떻게 활용해야 하겠다는 계획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그의 밑에서 숨을 죽여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그건 바토르 님에게 달렸습니다.”
장다징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강진호의 말대로라면 바토르 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강진호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더 강해지십시오. 그리고 저 빌어먹을 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십시오. 제가 그동안은 최대한 바토르 님을 보좌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명을 절대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를 기만하려는 네 목을 부러뜨려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고 있다. 이런 내가 무슨 수로…….”
“합치되기 때문입니다.”
“합치?”
“예. 강진호를 위해서 강해진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를 위해 일하는 이가 더 강해진다면, 그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과정만 같으면 됩니다. 결과를 뒤트는 것은 제가 하겠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로군.”
그 말을 끝으로 바토르가 눈을 감고 팔짱을 꼈다. 눈을 감은 그의 얼굴에 고뇌가 떠오르고 있었다.
‘바토르 님.’
장다징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희망적으로 생각하자.’
그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강진호가 그리 나쁜 리더는 아니라는 점이다.
강진호를 감시하면서 그가 느낀 점은, 저자는 중국에서라면 이미 입고 있던 속옷까지 다 털리고 남을 놈이라는 점이다. 사람을 너무 믿고, 그 사람에게 족쇄를 채우지 않는다. 신뢰라는 얄팍한 것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외부인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는 멍청해 보였지만, 그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자 조여져 있던 목줄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건 기회야.’
홍왕계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단으로 무시받다가 끝날 그의 인생이었다.
어차피 망한 인생이라면 도박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말이다.
장다징은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달랬다.
저 멀리 보이는 총회의 건물이 더없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 * *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뭘 그리 걱정하는 거냐?”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엘레나는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이트 위긴스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아버지는 이미 모든 것을 이루셨잖아요.”
“그래 보이더냐?”
“나이트는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니까요.”
“그래, 그랬지. 나도 그리 생각했단다.”
“물론 불만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알아요. 세상 어느 곳이 마음에 꼭 들어맞겠어요. 어딜 가더라도 당연히 마음에 차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고, 불만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불만으로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아버지답지 않아요.”
‘솔직히 좀 꽉 막힌 타입이시잖아요.’
엘레나는 뒷말을 조용히 집어삼켰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다.
하지만 위긴스는 그런 엘레나의 속마음을 안다는 듯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너무도 가까운 사이이지만, 때로는 부모와 자식이기 때문에 서로 이해 못하는 부분도 있는 법이지.”
“…….”
“이제 와 네게 말하는 것이지만, 나는 내가 나이트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을지언정, 내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고 있다는 것에 미련을 느껴본 적은 없단다.”
“네?”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무언가를 쌓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 세상을 바꿔보고 싶은 것이지.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없다면, 그곳을 떠나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원탁은 이해하지 않을 거예요.”
“세상은 언제나 이해를 필요로 하지. 하지만 때때로는 다른 이들이 이해하지 않는 일도 해야 한단다.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을 뿐이지.”
“이제는 그 용기가 생겼다는 건가요?”
“용기가 생겼다라…….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내게 용기를 주었다고 해야겠지.”
“아버지,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대체 강진호 씨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말이에요. 저는 그를 더없이 위험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총은 위험하지.”
나이트 위긴스가 커피를 홀짝이고는 말했다.
“하지만 총이 위험하다고 해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전쟁에 나갈 수 없단다. 위험하다는 것은 회피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더 깊이 이해해야 할 이유가 될 뿐이다.”
나이트 위긴스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를 도울 것이다. 그가 이 세상을 바꿔 나가도록. 그러면서 나는 그가 원하는 세상을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바꿔 나갈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요?”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세상에 어디 쉬운 일이 있더냐. 내가 해야 할 것은 노력하는 것이지. 나이트 위긴스가 아니라 앨런 위긴스로 말이다.”
엘레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이것이라면, 그를 응원해 주는 것이 가족의 도리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다.
“힘내세요, 아버지.”
“고맙구나. 그럼 너도 이제 그만 복귀하려무나.”
“네? 복귀요?”
“그래. 나야 원탁에서 나왔지만, 너는 아니잖으냐. 이제는 슬슬 돌아가야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가 여기 계신데 제가 어떻게 돌아가요?”
“너는 이미 10년 전부터 네 길을 걸었다. 굳이 나를 따를 필요는 없지. 원탁도 그리 꽉 막히지는 않았으니, 너를 이해할 것이다. 그게 아니면 마스터에게 편지라도 한 통 써주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대답은 엘레나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서 나왔다.
뱅상이 굳은 얼굴을 한 채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