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60
#559.
도약하다 (4)
발전이라는 것이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것이라면 누구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노력이 힘든 이유는 그 노력의 대가가 즉각적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수련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무인이 수련을 하게 되면 그 효과가 바로바로 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무인의 수련은 자신의 키보다 큰 거대한 계단을 오르는 것과 비슷했다.
계단 한 칸을 오르기 위해서 바둥거리는 동안에는 자신이 강해졌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전신이 노곤해질 만큼의 노력으로 겨우겨우 그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자신이 조금 전보다 높은 곳에 올랐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앞에는 조금 전보다 더 높은 계단이 자리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이명환은 지금까지 그걸 당연하게 알고 살아왔다.
무인이라면 숙명적으로 겪어야 하는 것이 무학의 벽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하지만…….
‘이건 미쳤어.’
강진호에게 마공을 전수받은 순간부터 그가 알고 있는 무학의 세계가 깨어지기 시작했다.
마공이 왜 사람을 극단적으로 강하게 만들어주는지 알 것 같았다.
마공은 인간을 노력 없이 강해지게 만들지 않는다. 그저 무학을 익히며 올라야 하는 그 거대한 계단을 갈아엎어 거대한 비탈길로 만들어 버린다.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올라간다.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는 무인이 아니면 알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키보다 높은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노력이 충분치 못해서 계단을 오르지 못한다면 다시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실패한 것을 다시 시도해야 한다. 처음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조건으로 말이다.
이 끔찍한 벽 앞에서 얼마나 많은 무인들이 발전하기를 포기하고 안주를 선택했는가.
하지만 마공은 그렇지 않다.
비탈길을 오르다 멈춘다 해도 스스로 굴러 떨어지지만 않으면 그 자리에서 다시 오를 수 있다. 그리고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조금이나마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실시간으로 강해진다는 쾌감.
그 쾌감은 무인에게는 그 어떤 마약보다 강렬했다.
마공과 일반적인 무공의 뭐가 그리 다르기에 마공을 익힌 이들이 급속도로 강해지는지에 대한 해답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물론 뭐, 부작용이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씨발 새끼가?”
“뭐, 이 새끼야?”
이명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시작이네.’
마공의 부작용은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소문으로 듣던 것처럼 피를 갈구하게 된다느니, 살인에 집착하게 되고 인육을 먹게 된다느니 하는 건 그냥 다 헛소리였다. 그 정도 정신병에 걸린 놈이면 마인이고 뭐고 다 잡아 죽여야 할 것이다.
그가 겪은 마공의 부작용은 그보다는 조금 사소할 수 있지만…… 그보다 몇 배 더 심각한 문제였다.
“이 개자식이!”
콰앙!
수련을 하다 눈이 마주친 놈들끼리 주먹질을 해 대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돌겠네, 진짜.’
마공의 부작용은 아주 간단했다.
팔월의 미칠 듯한 땡볕을 걷던 도중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비를 쫄딱 맞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 와중에 자꾸 설사가 나서 속이 안 좋은데, 습기가 미친 듯이 올라와서 전신에 땀이 줄줄 흐른다면?
아마 누군가가 어깨를 스치기만 해도 세상을 폭파시키고 싶은 짜증에 시달리지 않을까?
이놈들이 딱 그랬다.
차라리 피의 갈증에 시달린다거나 파괴 본능에 몸을 맡긴다면 대처 방안이라도 간결하고 시원할 텐데, 이놈들은 신경성 과민증 환자처럼 사소한 것 하나에도 짜증이 폭발해 신경질을 부리고 주먹질을 해 대기 일쑤였다.
과민해졌는데 자제력은 줄어든 결과였다.
지금도 보라.
두어 번 주먹질을 하던 놈들의 싸움이 번져 주변에 피해를 끼치자, 열 받은 놈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패싸움으로 번지고 있지 않은가.
이명환이 얼굴을 감쌌다.
‘빌어먹을, 저 새끼들을 다 잡아 죽여 버리면 내가 좀 편해질…….’
이명환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뭐,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이명환이라고 해서 마공의 부작용에 자유로울 수는 없고, 그도 이미 몇몇과 주먹질을 하고 몇 번의 패싸움을 거친 이후였다. 그래도 동기 간에 싸움질을 할 때는 내공을 쓰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없었더라면 이미 여기서 죽어 나간 이가 수십은 될 것이다.
‘진짜 이래도 괜찮을까?’
물론 강해진다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지만, 그 부작용이라는 게 만만치 않았다.
자체적으로 결단을 내려 민간인들과 만나는 것을 통제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중 한 놈만이라도 거리에 풀어놨다가는 경찰 기동대가 아니라 군대가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이명환의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잘하는 짓이군.”
이명환의 몸이 움찔했다.
머리가 생각하기 전에 몸이 자동으로 부동자세를 잡는다. 번져 가던 패싸움도 어느새 멈춰 있었다.
강진호가 그 목소리를 낸 것만으로 들끓던 기세가 순식간에 차게 식어버렸다. 공포의 질린 시선이 이명환의 뒤쪽으로 쏠렸다.
‘이런 기분인 건가.’
강진호의 앞에 있느라 그 시선을 고스란히 느끼는 이명환은 기이한 기분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이 많은 인원.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이 많은 무인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공포와 경외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 시선은 감히 이명환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에게 경외를 받는 것이 당연한 절대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시선이었다.
“계속하지그래?”
엉켜 있던 이들이 늑대를 만난 양 떼처럼 기겁을 하며 벌떡벌떡 일어섰다. 순식간에 오와 열이 맞춰진다.
‘군대가 따로 없네.’
불시에 검문을 들어온 사단장을 보는 사병들처럼 보였다.
아니, 확실히 그 이상이다. 사단장이 할 수 있는 거라고 해봐야 사병을 재판에 회부하거나 영창에 보내는 수준이겠지만, 강진호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들의 목을 쳐버릴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뭐라고 해야 할까…….
‘이상하게 예전보다 더 무섭다.’
조금 다른 느낌으로 말이다.
과거에는 머리로 이해하고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본능적인 공포심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들이 익힌 마공이 강진호가 익힌 마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명환.”
“예!”
이명환이 대답을 하며 즉시 몸을 돌렸다.
“적당히 치고받게 해주라고 했을 텐데? 왜 단체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지?”
“죄, 죄송합니다.”
“농담으로 한 게 아냐. 통제를 하고 싶다면 혈기를 빼줘야 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제가 왜?’
그는 딱히 이들의 상급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자신이 이들을 통제해야 한단 말인가.
“주기마다 대진표 짜서 돌려. 서열 정리도 해야 할 테니.”
“명심하겠습니다.”
강진호가 슬쩍 모두를 한 번 둘러보고는 눈을 찌푸렸다.
“발전은 하고 있군. 하지만 생각보다 느려.”
“…….”
“아둔한 건가?”
“노, 노력하겠습니다.”
“노력해야 할 거야. 노력하지 않으면 그 대가를 치를 테니까. 이곳의 방식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내 방식은 딱히 인간적이지 않거든.”
“……명심하겠습니다.”
강진호가 모두를 가만히 보다가 눈을 돌렸다.
“저…….”
그 순간, 정렬해 있는 무인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뭐지?”
“질문해도 괜찮습니까?”
“해봐.”
가운데에서 손을 들고 있던 이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올바른 방식으로 익히고 있는지 걱정됩니다. 점검은 필요 없습니까?”
“이미 했다.”
“……아!”
강진호가 그들을 둘러보던 시선을 떠올린 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 괜찮은 건가?’
그냥 눈으로 훑어보는 것만으로 잘못되고 있는지, 잘되어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아무리 마공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다지만, 그게 정말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 거냐고 다시 물을 담량은 없었다.
“그럼 초식이라든가…….”
“아직 일러.”
강진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릇을 먼저 만들어라. 너희가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생각하면 내가 직접 너희를 끌고 갈 거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아, 알겠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질문?”
“……저희가 좀 과격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도 당연한 겁니까?”
“감수해야 할 부작용이지. 처음부터 설명했을 텐데?”
“생각보다 좀 심한 것 같아서…….”
“심해?”
강진호는 웃고 말았다.
과거 마교에서 마공을 익히던 이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거리를 저질러 댔는지 안다면 저런 소리는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간이란 대단하지.’
인간이 대단하다기보다는 교육과 문화가 대단한 것이다.
과거의 마교에서도 이런 부작용을 우려하여 내공을 금제했다. 하지만 내공을 금제당한 마인끼리도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허다했다.
주먹으로 사람을 패 죽이기도 하고, 도끼로 목을 내려쳐 버리기도 했다.
동료를 상하게 한 이들에게 엄한 벌이 내려졌음에도 그런 일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어떠한가.
이 많은 이들이 함께 마공을 익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상자 하나 나오지 않았다. 동등한 수준의 충동을 참아내는 인내력이 차원이 다른 것이다.
사람이 길에서 죽어 나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던 야만의 시대에 비해 인간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였다.
‘덕분에 조금 말랑하지만 말이야.’
비슷한 수준의 마공을 익힌 이들에 비해서 거칠고 칼날 같은 느낌이 많이 덜했다. 조금은 싱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뭐, 오히려 장점이라 봐야겠지.
“노력해.”
강진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노력해라. 그것만 하면 내가 너희를 강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예!”
커다란 대답이 들려왔다.
막 강진호가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강진호에게 말을 전했다.
강진호가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바로 가지.”
“예.”
전령이 나가자 강진호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딱히 말은 필요 없겠지.”
“예!”
“이명환.”
“예!”
“말했던 것 보고서로 작성해서 이현수에게 승인받도록.”
“알겠습니다.”
“간다.”
강진호가 몸을 돌려 수련장을 빠져나가자 나직한 한숨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숨도 못 쉬겠네.”
“아니. 분명히 예전보다 사람이 좀 부드러운 것 같은데, 왜 옛날보다 더 무섭냐? 난 쌀 뻔했다.”
“……난 이미 조금 지렸는데?”
“에이, 씨바. 더럽게!”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이들을 보며 이명환이 얼굴을 굳혔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정말 아무도 항명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되겠군.’
지금도 이만큼이나 두려운데, 이 두려움이 더 커지면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자라나는 것은 총회의 전력이 아니라 철저한 강진호의 사병이었다.
“뭐, 난 차라리 그게 더 낫지만 말이야.”
이명환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 꼴통들을 어떻게 서로 붙여야 제대로 쌍코피가 터질지를 고민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