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63
#562.
회의하다 (2)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회주 자리를 확실하게 보장 받은 방진훈이 희희낙락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이현수가 핀잔을 주었지만 방진훈의 얼굴은 조금도 굽혀지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딱히 기분이 나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일단 회의 하지?”
“네…….”
이현수가 꼬리를 내리자 방진훈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살짝 모양이 빠지기는 했지만, 지금 굳이 그 부분을 지적할 사람은 없었다.
“결국 강진호 씨의 말씀대로라면 앞으로 주변국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겠군요.”
“그렇겠죠.”
“그런 의미에서 정보원의 보충이 필요합니다.”
“……정보원?”
“예.”
방진훈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은 정보가 필수인 시대입니다. 이미 타국의 정보원들은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다고 하던데…….”
강진호의 시선이 장다징에게로 향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장다징에게 듣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다. 아무래도 며칠 전까지는 홍왕계의 한국 정보원이었으니까.
강진호의 시선을 받은 장다징이 헛기침을 했다. 아무리 이제는 소속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과거에 이곳을 염탐했었다는 사실을 제 입으로 말하기에는 민망했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송구하지만…….”
장다징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한국은 정보전에 있어서는 딱히 평가할 가치가 없는 나라입니다.”
“좀 더 명확하게.”
강진호의 다그침에 장다징이 머리를 긁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평가할 거리가 없어요.”
장다징이 다른 이들의 의문 어린 눈빛을 받으며 설명을 이었다.
“정보전이라는 건 쉽게 말해 정보를 빼앗기느냐 빼앗느냐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자국의 정보가 타국인들에게 넘어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대한 정보를 모으면서 단 한 번도 한국 정보원들에게 위협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강진호가 뚱한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자 방진훈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이현수가 대신 변명을 해주었다.
“이건 저희 잘못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음?”
“굳이 정보원들과 신경전을 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최근 급격한 위상 변화가 일어났을 뿐, 한국은 동아시아에서는 그저 완충지대에 불과했으니까요. 중국도 일본도 최근에 들어서야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그러니 정보원을 막을 필요도 없었고, 정보원을 파견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죠. 사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한 겨울에 느닷없이 태풍이 불어 닥친 거나 마찬가지라서, 왜 미리 태풍에 대비하지 않았냐고 하면 저희야 억울하죠.”
그리고 기상청도 억울하겠지.
강진호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하지만 이제는 필요하겠군.”
“물론입니다. 예산만 지원된다면 정보 조직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장다징을 바라보았다.
“마침 적절한 조교도 있고 말이죠.”
“에?”
장다징이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는 바토르 님의 보좌로 이곳에 왔습니다.”
“보좌해.”
이현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그 보좌라는 게 보모는 아닐 거 아냐? 24시간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그럼 남는 시간에는 네 일을 하면 되지. 지금 네 일이 정해졌군.”
황당함의 파도가 장다징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여긴 원래 이런가?’
장다징은 얼마 전까지 홍왕계의 정보원이었다.
말이 좋아 정보원이지 이쪽의 어감으로는 스파이에 가깝다. 그런 이에게 뭘 믿고 저런 중책을 맡긴다는 말인가? 그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생각 이상으로 파격적이고 제정신이 아닌 곳이었다.
더 문제인 것은 이현수의 이 정신 나간 의견에 누구도 반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 그룹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 역시 강진호를 감시하면서 총회의 성향에 대해 어느 정도는 파악이 끝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파격적일 줄은 몰랐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려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바토르가 입을 열었다.
“주인.”
“음?”
“제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네가?”
“내력의 증진이 더딘 몸 좋은 놈들을 뽑아주십시오. 제가 외공을 가르치겠습니다.”
강진호가 흥미롭다는 듯이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나쁘지 않군.’
사람은 결국 많은 부분을 재능의 의존하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좋은 교육체계와 지도가 있다고 한들, 내력을 제대로 모으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이들에게 외공을 가르친다면 확실한 전력의 상승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외공은 강진호의 전문 분야가 아니기에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바토르라면 믿을 수 있지.’
이자보다 외공에 정통한 이는 세상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저도 한 수 거들 수 있겠군요.”
나이트 위긴스도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제 무학을 전수한다는 것이 불만스럽던 차였습니다. 그런 방식이라면 저도 최선을 다할 수 있겠죠.”
“음.”
강진호가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현수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총회 내에는 강해지고 싶지만 강진호 씨의 스타일은 받아들일 수 없는 젊은 무인들이 넘쳐나거든요.”
“음.”
“게다가 강진호 씨의 시험에서 탈락한 이들도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겠죠.”
지금 총회에 산적한 문제 중 가장 큰 문제가 이것이었다.
강진호의 시험에 합격한 이들은 어떻게든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그들의 수련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보니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강진호의 카리스마 때문에 대놓고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찰나에 이런 강자들이 아이들을 가르쳐 줄 수 있다면 분명 총회에는 커다란 이득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이현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반발은 더 클 겁니다. 총회의 정체성이 훼손된다고 날뛸 이들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요.”
“도대체 그 정체성이라는 게 뭐지? 총회는 이래야 한다는 매뉴얼이라도 있나?”
“……저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결국 총회는 한국에서 나온 무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개념이겠죠.”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양복 입고 출근하는 양반들이 전통을 따지고 있군. 그럴 거면 옷부터 한복으로 바꿔 입으라고 하지.”
이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전통이 아니라 기득권이니까 그렇죠.’
그들이 우려하는 것은 총회의 순수성이 아니었다. 그들이 쥐고 있는 총회 내의 권력이었다. 강진호의 등장으로 안 그래도 그들의 권리가 깡그리 날아갈 판인데, 거기에 외부 인력까지 충원되기 시작했으니 그 불안함이야 오죽하겠는가?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강진호 씨의 말이 맞지만, 인간은 그리 합리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이 극단적으로 반발할 상황도 고려해야 합니다.”
강진호의 입가가 말려 올라갔다.
“반발하면 뭐가 달라지지?”
“…….”
“마음대로 하라고 해.”
나이트 위긴스가 이현수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언제나 발전은 진통과 함께하는 법입니다. 특히나 급격한 발전은 도태와 반발을 낳는 법이죠. 하지만 언제나 역사는 발전하는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반발이 무섭다고 정체되겠다는 것은 역사의 흐름에 뒤처지겠다는 것밖에는 안 되죠.”
“동의한다.”
바토르마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일신우일신. 무학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 나아가는 것에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항상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더 나아갈 수 없는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지. 그럴 때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른 이의 무학을 보고, 내게 부족한 것을 찾아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말이야.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발전은 없다.”
바토르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조직 역시 마찬가지라고.
그리고 지금이 그 시점이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시선이 방진훈에게로 모였다. 그러자 방진훈이 깊이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고이면 썩기 마련이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습니다. 다만 저 혼자 감당하기는 힘든 일이니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음.”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방진훈이 굳은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명확하게 말씀해주십시오. 강진호 씨. 당신이 바라는 것은 침범 받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복하는 것입니까?”
“…….”
“우리가 힘이 더 강해져 저들을 무릎 꿇릴 수 있다고 했을 때, 저들이 침범해 오지 않는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때는 평화를 얻으실 겁니까? 아니면 저들에게 쳐들어가실 겁니까?”
“그게 중요합니까?”
“네. 중요합니다.”
방진훈이 불타는 듯한 눈으로 말했다.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야 방향을 정확하게 설정하고 최단 거리로 뛸 수 있는 법이죠.”
강진호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그의 마음속에서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아니, 정리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정해 주십시오. 강진호 씨는 이제 더 이상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그때그때 목표를 정해도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거시적인 목표를 설정해 주십시오. 그럼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뛰겠습니다.”
강진호가 방진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방진훈 역시 강진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혀 들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저도 마음을 정하도록 하죠.”
짝!
강진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현수가 박수를 쳤다.
분위기를 한 번 환기시킨 이현수가 주위를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그럼 정리하죠. 일단은 가장 먼저 타국을 감시할 수 있는 정보조직을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바토르 이사님과 위긴스 이사님의 구미에 맞는 아이들을 물색해 보죠.”
다들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진훈은 침음을 삼키며 턱을 괴었다.
‘무섭도록 빠르게 변화하는군.’
돌이켜보면 강진호가 영남회를 집어삼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미 총회에서는 대격변이라고 불러도 좋을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무게를 잡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이다.’
그러니 걸어봐야지.
이 시도가 그들의 파멸을 불러올지, 아니면 웅비를 낳을지 말이다. 방진훈은 생각에 잠겨 있는 강진호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변화의 결과가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한동안 심심할 일은 없을 것이다.
변화의 격류 속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들이 시작될 것이다.
“회의 끝났으면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방진훈이 가만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책임이 막중함을 느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