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64
#563.
회의하다 (3)
장다징은 눈앞에 보이는 집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이런 곳에 바토르 님을 모시라는 말인가?’
눈앞에 보이는 곳이 딱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마당 딸린 2층 양옥집을 나쁜 곳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바토르의 지위와 격을 생각한다면, 이곳이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최고 호텔 스위트룸에 묵던 분이 아닌가.
“음…….”
바토르가 눈앞에 보이는 집을 보며 볼을 긁었다.
“바토르 님, 이건 바토르 님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대문은 개조를 좀 해야겠는데? 허리를 너무 굽히고 들어가야겠군.”
“바토르 님!”
너무도 태연한 바토르의 반응에 장다징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무슨 무례를 저질렀는지를 깨닫고 입을 가렸다.
“왜 화를 내고 그러나?”
“……죄송합니다, 바토르 님. 제가 정신이 나가서.”
“됐으니, 왜 화를 냈는지부터 말해봐.”
장다징이 살짝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바토르 님, 이건 바토르 님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바토르 님에게 겨우 이런 숙소를…….”
“장다징.”
“예, 바토르 님.”
“나는 초원의 전사다. 파오에서 잠을 청하던 내게 이 정도의 집이 나쁠 리가 있느냐?”
“그래도…….”
바토르가 턱을 긁었다.
“이곳은 외각지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딱히 이곳보다 좋은 집이 있는 것도 아니잖느냐. 이현수라는 자가 지낼 곳이 마련될 동안 임시로 머물라고 했으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솔직히 감지덕지지.”
장디징은 한숨을 쉬었다.
‘이분은 자신의 가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신다.’
“그리고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 하나 지으면 그만이지. 굳이 왜 저들에게 숙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냐?”
“스포츠 선수를 영입해도 집과 차를 해주는 세상입니다. 바토르 님의 가치가 한낱 스포츠 선수만 못할 리가 없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이곳은 신생 구단이고, 이제 막 투자를 시작한 마당이다. 그런 곳에서 내 커리어를 다시 시작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명문 구단과 같은 대접을 바라서는 안 되는 법이지.”
장다징이 ‘오오!’ 하는 얼굴로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이런 반격을 받을 줄이야.
“나도 미식축구 같은 건 좋아하거든.”
“……대단히 어울리십니다.”
어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저 몸만 보면 미식축구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지. 보호구가 없어도 보호구를 입은 것 같은데.
“그러니 쓸데없는 투정은 하지 마라.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예, 바토르 님.”
장다징이 입맛을 다셨다.
사실 불만을 늘어놓고 있기는 하지만, 이현수에게는 이미 사과를 받았다.
제대로 된 숙소가 마련될 때까지만 임시로 지내 달라고, 그 와중에 생기는 불편은 최대한 빠르게 해결해 주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터였다.
그럼에도 불만이 나오는 것은, 장다징이 지금 이 상황을 영 마음에 들어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들어가자.”
“예, 바토르 님.”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바토르를 보며 장다징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그런데 바토르 님.”
대문을 통과한 바토르가 허리를 펴고 뒤를 돌아보았다.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무얼 묻는 건지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다오.”
“……이들이 일본과 중국을 상대한다는 것 말입니다.”
바토르가 조금 굳은 얼굴로 턱을 긁었다. 대답을 해야 하지만, 대답이 마뜩찮다는 얼굴이었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어림도 없겠지.”
“그렇지요? 역시?”
장다징의 얼굴에 불안이 떠올랐다.
그들은 안다.
홍왕계가 얼마나 강한지.
그 홍왕계 하나만 하더라도 감히 총회가 상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거기에 중국에는 홍왕계와 비등한 세력이 둘이나 더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야.’
한국의 무인계를 무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한국 정도의 전력을 유럽에 가져다 둔다면 지역의 패자를 자처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의 국가들에 순위를 매긴다면, 한국도 상위권에 안착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늑대가 나름 무서운 야생동물이라고 해서 호랑이와 사자, 곰이 놀고 있는 사파리에 풀어놓으면 맛있는 한 끼 식사가 될 뿐이다.
그런데 그 늑대를 먹이고 훈련시켜서 저 사자들과 대등하게 만들 수 있을까?
장다징은 부정적이었다.
강자 하나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심지어 주인이 세계 제일의 무인이라 하더라도 한국을 이끌고 타국과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역시 그렇겠죠.”
바토르의 의견도 장다징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지원하시기로 한 겁니까?”
장다징이 의문 어린 눈으로 물었다.
강진호가 하는 일을 바토르가 따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주체적으로 강진호가 하려는 일을 도맡아 나서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가능성이 있다고 보니까.”
“예?”
바토르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그저 주인의 명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지루할 것 같아서, 그리고…… 말한 대로 나는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전에는…….”
바토르가 장다징의 말을 끊으며 치고 들어왔다.
“물론 강진호라는 무인이 혼자서 이곳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주인은 단순한 무인이 아니지.”
바토르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인이다. 그것도 이제껏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던 마인이지.”
“……그렇습니다.”
“전설에나 있던 마인이 이 세계에 나타난 것이다. 거기다…… 내게 한 짓을 보면 그의 머릿속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봐야지.”
바토르의 얼굴은 조금 미묘했다.
기대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겁에 질린 사람 같기도 했다. 강진호에 대한 그의 감정이 그만큼이나 복잡하다는 뜻이리라.
‘확실히.’
장다징은 바토르의 말을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치더라도 바토르를 이리 제압한 것 하나만 봐도 강진호는 그저 강한 무인이라 평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얼마나 더 기괴한 것들이 들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차피 이곳에서 일정 이상을 머물러야 할 것이라면, 나는 강해지는 쪽을 택하겠다. 그게 조직의 강함이든, 나 개인의 강함이든 말이다. 그게 네가 말한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나는 이대로는 주인을 이길 수 없다.”
장다징이 의문 어린 눈으로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토르 님, 그 승부는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었습니까?”
“종이 한 장?”
바토르가 피식 웃었다.
“네 눈에는 그리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결코 좁혀지지 않을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열 번이 아니라 천 번, 만 번을 다시 싸운다고 해도 나는 주인을 이길 수 없다.”
장다징이 침음을 흘렸다.
지금 이 발언이 바토르가 냉정하게 내린 판단의 결과인지, 그게 아니면 강진호에게 억눌려 있는 그의 의식이 본인은 결코 주인에게 이길 수 없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토르 님…….”
“착각하지 말도록.”
바토르가 딱 끊어 입을 열었다.
“나는 주인을 존중한다. 존중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그 존중이라는 건 주인의 강함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주인,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지. 객관적으로 내가 주인보다 강하다고 해도 나의 마음은 한 치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장다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건 단순히 강진호의 힘에 굴복한 것 이상으로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내리는 평가는 치우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나는 주인을 이길 수 없다.”
“어째서입니까?”
“주인이 강해지는 속도가 나보다 빠르기 때문이지.”
바토르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말했다.
“물론 네가 그리 본 것도 납득은 간다. 주인이 나를 봐주면서 싸운 것은 아니니까. 그의 전력과 나의 전력은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날의 컨디션과 상성에 따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차이였지. 다만…….”
바토르가 선언하듯 말했다.
“그건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간단하다. 전투가 끝날 무렵에 주인과 나의 차이는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그, 그게 가능한 겁니까?”
“가능하지. 내 눈으로 보고, 내 몸으로 느꼈으니까.”
바토르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날의 그 기분을 다시 느낀다는 듯이 말이다.
“주인은 발전하는 게 아니라 마치 잃은 것을 되찾는 것처럼 강해졌다. 그리고 나와의 승부를 바탕으로 더욱 강해지겠지. 그가 어디까지 강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 성장 속도는 이제까지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음…….”
바토르의 눈이 단호해졌다.
“그러니 나는 주인을 이길 수 없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어. 착각하지 마라, 장다징. 주인에 대한 충성이 나의 호승심을 누르지는 못했다. 나는 그에게 충성할 것이다. 그가 뛰어들라고 하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겠지.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이냐. 내가 주인보다 더 강하다고 해서 주인에게 충성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들은 왕보다 못하기에 그들에게 충성을 바쳤는가?”
“아닙니다, 바토르 님. 당신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분이십니다.”
“지금은 아니겠지. 하지만 나는 그리되고 싶다. 그러면 나 역시 더 강해져야 한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나는 나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주인과 대등해지기 위해서는 나의 무공을 해체하고 처음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다징은 그제야 바토르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무공을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겠군요. 강제적으로 기초적인 부분부터 다시 정리해야 할 테니까요.”
바토르가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나는 너를 좋아하지. 굳이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거든.”
“바토르 님의 뜻을 미루어 짐작하지 못한 점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랄 게 없다.”
바토르는 설명이 끝났다는 듯이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장다징, 나는 지금 주인에게 굴복한 몸이다. 하지만 주인에게 굴복했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에 만족할 생각은 없다. 나는 강해질 것이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주인을 위해서. 그 누구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 나의 무학을 재정립하고 필요하다면, 주인의 마공조차 받아들일 것이다.”
“……바토르 님.”
“강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새삼스레 알게 되었지. 그동안 나는 너무 물렀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바토르를 보며 장다징이 얼굴을 주물렀다.
‘그래, 달라지지 않았어.’
강진호에게 종속되었다 한들 바토르는 바토르였다. 그 위대한 무인 혼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의 일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는 끝까지 바토르를…….
“장다징!”
“예?”
고개를 번쩍 든 장다징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깨가 너무 넓어 현관에 끼어버린 바토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가서 기름이라도 좀 가져와.”
“예…….”
끝까지는 모르겠다.
끝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