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69
#568.
설득하다 (3)
“너,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네?”
“어떻게 그렇게 성향이 확 달라져서 오냐? 야, 내가 공격성을 장착해서 오라고 했지, 미친개가 되어서 오라고 한 건 아니잖냐.”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건 없지. 내가 바라는 게 그런 거니까.”
오진형은 자꾸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거지.’
그의 팀은 전력이 탄탄하다는 평을 받지만 항상 한 끗 차로 우승을 놓쳐 왔다.
다음에는 된다, 다음 시즌이야말로 우승할 적기다.
그 말만 벌써 몇 년째 듣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마지막에 가면 승리하지 못했다.
오진형은 항상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리고 결국 결론을 찾아낼 수 있었다.
크랙.
어느 스포츠든 마찬가지다.
잘하는 선수를 모으는 것만으로도 상급의 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우승을 위해서는 그 이상이 필요했다. 혼자 힘으로 게임을 뒤집을 수 있는 크랙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크랙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했다.
지독한 공격성.
머리로 계산하고 안정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으로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뿐,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스타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스타가 될 자질을 지닌 선수가 나타난 것이다.
‘그게 이 녀석이라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말이지.’
스타는 스타지.
갤럭시 역사상 박유민보다 커리어가 뛰어난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박유민보다 인기가 많은 게이머는 많았다. 그게 지금 박유민의 업적이 살짝 폄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격적인 측면 때문에 있던 업적도 깎이는 놈이었는데, 그런 녀석이 이런 스타일로 다시 나타날 줄이야.
“고생했다.”
오진형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사람이 자신의 스타일을 일변해서 나타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는 잘 알기 때문이었다.
“별말씀을요.”
“사실…… 음.”
오진형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일반적인 새내기를 연습생으로 받아들일 때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가 뭐라고 말을 해도 건너편에서는 받아들여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 그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이는 박유민이다.
그가 아무리 감독이라고 하더라도 저만한 선수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오늘 보여준 모습으로만 보면 네가 당연히 주전이 되어야겠지만…… 솔직히 그건 보장해 주기 어려울 것 같다.”
“당연하죠.”
박유민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게임은 장기 레이스다. 일시적인 폼만 보고 주전을 바꿀 수는 없다. 특히나 서로 간의 호흡이 중요한 팀 게임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유민아, 사실 네가 활동하던 시절에 비하면 평균 연봉이 많이 오른 건 사실인데…… 내가 네 연봉을 맞춰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예.”
“보통 일반적인 연습생보다야 당연히 더 받아야지. 네가 온다고 하면 사장님도 당연히 연봉 팍팍 내실 거다. 그런데…… 예전에 네가 받던 연봉급은 솔직히 힘들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요. 그냥 연습생 연봉만 맞춰주셔도 괜찮습니다.”
“에이, 그건 아니지. 그건 말도 안 돼. 너 온다고 하면 네 유니폼이랑 굿즈 미친 듯이 팔릴 건데. 그것만 해도 보통 선수급은 받아야 돼.”
“그래도…….”
“아니다. 이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야. 어쨌든 감안을 해줬으면 좋겠다. 예전만큼은 주기 힘들어.”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감독님.”
“그래.”
오진형이 부드럽게 웃었다.
이놈…… 이런 놈이었지.
예전에도 딱히 물욕이라는 게 없는 놈이었다. 그 당시에는 돈 욕심이 없어 연봉이고 상금이고 통장에만 박아놓는 이놈이 안타까워 잔소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얘가 현명한 거지.’
당시에 박유민과 비슷한 연봉을 받은 선수들 중 지금 박유민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주식이고 투자고 어설픈 데 손을 댔다가 싸그리 날려 먹거나, 흥청망청 써 대다가 탕진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놈이 현명한 건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나올 수 있냐?”
“……통과한 거예요?”
“응?”
“그거부터 말씀을 해주셔야죠.”
“야.”
오진형이 어이없다는 듯 웃다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인 오진형이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우리 팀 에이스를 박살 내놓은 애를 안 통과시키면 누굴 통과시켜야 하냐?”
박유민의 얼굴이 살짝 상기됐다.
“원래라면 내가 이 타임에 프로게이머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를 막 설교해야 할 타이밍인데…….”
오진형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었다.
“너한테는 그런 거 못하겠다. 네가 더 잘 알 텐데 내가 뭔 말을 하겠냐. 앞으로 잘 부탁한다.”
“예, 형.”
“그래. 이제 대답해야지. 언제부터 나올 수 있냐?”
“음,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그래, 그렇겠지.”
박유민의 사정을 빤히 하는 오진형이라 더 이상 재촉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여기도 예전 같지는 않아. 옛날보다 외출이나 외박도 자유롭고, 경기 없을 때는 집에도 보내준다. 그러니까 너무 각 잡고 안 와도 돼.”
“헐, 그래요?”
“니가 게이머 하던 시절 이야기하지 마라. 애들이 쌍팔 년대 이야긴 줄 알고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할 거다.”
“헤에.”
박유민이 씨익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만 가볼게요.”
“그래, 진짜 수고했다. 언제부터 나올 수 있는지 정해지면 연락주고. 그리고 너 인마, 잘 알아서 하겠지만, 내가 잔소리 좀 해야겠다. 테스트 통과했다고 게임 손에서 놓지 마. 순식간에 폼 떨어져. 정리는 하더라도 게임하면서 해.”
“예. 걱정 마세요.”
“에이, 원래 이런 건 너한테는 하면 안 되는 말인데, 내가 나이가 들었는지 잔소리만 많아져서는…….”
궁시렁거리는 감독을 두고 박유민이 감독실에서 나왔다. 그러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정우가 희희낙락대며 박유민에게 다가왔다.
“형, 어떻게 됐어요?”
“나오라는데?”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최정우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일도 아닌데 자기 일처럼 즐거워해 주는 최정우를 보니, 박유민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 시작인데 뭐.”
“그렇죠. 이제 시작이죠. 기뻐하는 건 우승하고 나서도 늦지 않죠.”
“시작부터 너무 큰 꿈 꾸는 거 아냐? 나 그렇게 도움되는 사람 아냐.”
“에이, 형. 우리 전력 탄탄해요. 만날 한 끗 차로 우승 못해서 그렇지, 별명이 무관의 제왕이란 말이에요.”
“콩 라인이라던데?”
“아…… 보셨구나.”
최정우가 머리를 긁었다.
“근데 형이 와서 도와주시면 우승할 수 있을 거예요. 애들도 다들 열심히 하거든요.”
“나야 뭐 후본데, 내가 뭘 돕겠어. 그냥 연습이나 같이해 주는 거지.”
“이 형 또 이러시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 안 하시면서.”
최정우가 빙그레 웃었다.
겉으로는 항상 엄살을 부리지만,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 박유민이었다.
‘진짜 도움이 될 거야.’
설사 박유민이 그가 생각하는 대로 주전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한 팀원들이 박유민을 보고 자극만 받아줘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익이었다.
그리고 어설픈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녀석들이 박유민을 보며 느끼는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형, 대체 어떻게 그렇게 스타일을 바꾼 거예요? 그게 안 쉬운 건데.”
“……살아야 했어.”
“예?”
박유민이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만 하면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놈이 있어서, 상대하다 보니까 어느새 이렇게 되더라. 덕분에 미친놈이 앞에서 날뛰기 시작하면 뒷사람들이 편해진다는 것도 알았고…….”
“아…….”
최정우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친구분 말씀하시는 거죠? 중간중간에 같이 연습하시던.”
“응, 맞아. 진호.”
“……그 형, 갤럭시에서도 그러시더니, 이거도 똑같이 하시나 봐요?”
“아니.”
박유민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갤럭시에서는 사람이었어. 지금은 짐승이야.”
“…….”
“전쟁에서는 져도 되는데, 전투에서는 지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 미친놈이야, 진짜로.”
최정우가 입을 다물었다.
한때 박유민의 친구 ‘Kill. Y. M.’이 배틀넷을 뒤집어놓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는 프로게이머 부캐라 생각했고, 누군가는 숨겨진 재야의 고수라고 생각했다.
게임 판수는 많지 않지만, 한 번씩 접속할 때마다 쟁쟁하던 프로게이머들을 모조리 개박살 내던 그 사람…….
‘우리 팀 말고는 그 사람 정체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
뭔가 엄청나게 많은 사연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냥 박유민이랑 아웅다웅하며 게임하는 박유민의 친구일 뿐이었다.
‘그때부터 공격성이 쩔었지.’
길게 가는 게임이 없었다.
조금의 틈만 보인다 싶으면 미친 듯이 달려들던 그 저돌성에 얼마나 많은 프로게이머들의 멘탈이 하늘로 승천했던가.
그런데 그때는 사람이었고, 지금은 짐승이라니.
“같이 게임 한 번 해볼래? 아주 새로운 세계가 열릴 텐데?”
“사양할게요, 형.”
최정우는 자신의 멘탈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았다.
“그래, 잘 부탁한다. 그리고…….”
박유민이 안쪽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
“인사하고 가고 싶은데, 지금은 안 하는 게 낫겠지?”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흠.”
박유민이 의자에 박힌 듯 앉아 있는 곽현태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잘 달래줘라.”
“좀 놀려도 되요? 저 새끼 좀 건방져서 깨져 봐야 하는데.”
“그러지 마. 너는 안 그랬어?”
“……하기야 저도 그랬죠.”
최정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원래 프로게이머들은 승부욕이 강하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애가 가득한 이들이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다들 한 번쯤은 하는 실수다.
“같은 팀원이잖아. 잘 다독여 줘. 이게 시작이라는 거 알면 쟤도 열심히 하겠지.”
“알았어요, 형. 걱정 마세요.”
“그래. 그럼 나는 간다.”
“예, 형.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최정우는 연습실을 나가는 박유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그때처럼 따라 나갈 필요가 없다. 박유민은 오늘 승리자니까.
‘기분 묘하네.’
한때 그의 우상이었던 사람이 다시 돌아와 그와 함께 게임을 하게 된다니, 기분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클 조던이 은퇴한 사이 데뷔한 농구 선수가 마이클 조던의 복귀를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박유민이 꾸준히 톱클래스를 유지할 확률은 높지 않다. 복귀란 언제나 그런 것이니까. 예전만큼은 할 수 있다는 기대로 시작한 복귀는 언제나 현실의 벽을 만나기 마련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후보로 한 해 정도 있다가 방출되거나 코치가 되는 게 박유민의 미래겠지만…….
‘혹시 또 모르지.’
최정우는 어쩐지 그렇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저 사람은 박유민이니까. 그 박유민이니까.
“형! 연습 안 할 거예요?”
“어. 들어간다.”
팀 게임 시간이 되었다. 최정우는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그런데 대체 그 형은 게임을 어떻게 하기에 저런 말을 듣는 거야?”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한 번은 강진호와 같이 게임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최정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