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7
#56.
졸업하다 (6)
쇄애애애액!
차를 타고도 30분은 걸릴 거리를 불과 10분 만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한 강진호는 자전거를 구석에 대고 자물쇠로 잠갔다.
기종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자물쇠를 끊어서라도 자전거를 가져가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신경 쓰다 보면 자전거를 상전으로 떠받들게 되어버린다. 강진호는 무엇이 우선인지 구분할 줄 알았다. 자건거는 그저 이동 수단일 뿐이었다.
비싼 이동 수단이라 해서 귀한 대접을 받다 보면 결국은 사람보다 자전거를 더 우선하게 된다. 비슷한 경우를 몇 번이나 봐온 터라 그런 케이스는 사양이었다.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백만 원도 아닌, 천만 원이 넘는 자전거를 길가에 대놓을 생각은 절대 하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돈이 있어도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는 강진호지만, 그 태도 자체가 평범이랑은 거리가 멀다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왔어?”
박유민이 손을 흔들었다.
“너, 오늘 경기 없냐?”
“신년부터 무슨 경기야? 방송국도 좀 쉬어야지.”
“프로답지 못하군.”
강진호의 일침에 박유민이 울상을 지었다.
“나 좀 살려주라.”
강진호는 피식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요즘 박유민이 연습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강진호는 박유민의 노력이 보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노력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보상 받을 수 있는 세상은 아니다. 특히나 박유민이 살고 있는 세계는 노력과 실력이 일치할 수 없는 세계다. 그런 세계의 허무함을 강진호는 이미 충분히 겪어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했다.
노력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하려면 노력해야 하는 세계.
가혹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감독님이 합숙소로 들어오라 했다고?”
“응. 이제 학교도 졸업하고 하니까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빨리 합류해서 연습하래.”
“어쩌게?”
“원래라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네 덕분에 잘 모르겠다.”
“나?”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투로 말하자 박유민이 뚱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정말 생각이 안 나는 건가?
“원서 넣었잖아.”
“아!”
박유민은 강진호의 강권에 못 이겨 재경대학교에 원서를 넣은 상태였다.
붙을 확률도 없고, 대학도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는 박유민의 거절에 강진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협박하여 강제로 원서를 받아냈다.
“내가 대학을 가서 뭐하게.”
“나중에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거기 가면 또…….”
박유민이 말끝을 흐렸다.
아마도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이 적응하는 것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괜찮다.”
“응?”
“전공은 경영학이다.”
경영학?
박유민의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아니, 컴퓨터 관련 학과가 아니었단 말인가?
“응? 내가? 내가 왜?”
“내가 경영학에 넣었으니까.”
“헐…….”
박유민은 자신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전공을 택해 버리는 강진호의 패기에 할 말을 잃었다.
“공대 아니었어?”
“넌 프로 게이머다.”
“응.”
“프로그래머가 아니지.”
“……응.”
“네가 온갖 수식과 기호들이 난무하는 공대에서 버틸 수 있을까?”
박유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깊게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절대 무리였다.
동급생들과의 관계를 논하기 전에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여 자퇴를 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나랑 같이 다니면 된다. 내가 설명해 주지.”
“너, 벌써 붙은 것처럼 이야기한다.”
“너 말이냐, 아니면 나 말이냐?”
박유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친구이기는 하지만, 이럴 때는 한 번씩 얄밉다.
“너야 당연히 붙겠지!”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붙을 거다.”
“어떻게 알아? 아직 면접도 안 봤는데.”
“알 수 있다.”
“어떻게?”
“그런 게 있어.”
강진호는 대충 얼버무렸다.
강진호와 박유민이 입학하려는 재경대학교는 재경 재단의 소속이었다. 그 학교의 입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은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박유민의 합격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꼭 합격시키려면 못 시킬 것도 없겠지만, 박유민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강진호의 원칙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같은 전형에 지원하는 이들의 평균 성적이 박유민의 성적을 까마득하게 뛰어넘었던 것이다.
고민을 거듭하다 보고를 올린 조규민을 보며 황정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고 한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그냥 전형을 하나 더 만들고, T.O를 하나 더 늘리게.”
황정후다운 해결 방식이고, 황정후스러운 방법이었다.
황정후의 말을 전해들은 강진호조차 일순 멍해질 만큼 말이다.
그리고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어찌 보면 비리에 가까운 편법이기도 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편법을 혐오하거나 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목적한 것은 반드시 이루고 마는 현실주의자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적천마존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마교에서 버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야! 강진호!”
“음?”
한세연이 소리쳤다.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안녕하십니까.”
“오냐.”
한세연이 싱긋 웃더니 그를 잡아끌었다. 자기보다 한참 위에 있는 어깨에 낑낑거리며 손을 올린 한세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가자.”
“어딜?”
“간만에 노래방 달려야지!”
“또?”
“또라니? 언제 가고 안 갔는데? 너, 나 없을 때 많이 간 모양이다?”
강진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골치 아프군.”
“골치는 무슨! 어차피 자정까지는 술도 못 마시는데, 그전까지 놀아야지!”
“자정?”
“몰랐어? 자정부터 우린 성인이거든! 술 먹어도 된다고! 난 꼭 1월 1일 새벽부터 술집에 가고 싶었어.”
“……그래.”
정인규 등은 한세연의 말에 환호했다.
성인으로 인정받는 게 그리 좋을까?
성인이라는 말에 책임이라는 무게가 숨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강진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여하튼 가자고.”
강진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어머니…….’
강진호는 어머니를 찾으며 눈을 감았다.
‘이곳은 지옥입니다.’
강진호는 술 한 방울 들이켜지 않은 청춘남녀가 정신 줄을 놓고 몸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저 밀폐된 공간에서 빵빵한 스피커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이리 신나서 놀 수 있는 것인가?
강진호의 눈이 연신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원래 사람들은 이렇게 노는 건가?
제대로 된 유흥 문화를 접하기도 전에 다쳐서 방콕 폐인이 되었다가 중원으로 넘어가 거문고나 뜯으며 놀던 강진호에게 현대의 놀이 문화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분명 저번 노래방은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강진호는 스테이지로 나오라고 자신을 잡는 손들을 필사적으로 뿌리치며 구석으로, 구석으로 틀어박혔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시간을 보낸 그들은 자정이 되기 전 밖으로 나왔다.
“빨리 가자.”
힘들지도 않나?
세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날뛴 이들이 너무 편안한 모습으로 재촉을 해 댄다. 가만히 앉아만 있던 강진호가 더 지친 것 같았다.
“어딜?”
“종 치잖아. 가서 소원 빌어야지.”
“…….”
“빨리 와! 네가 항상 제일 느려!”
강진호는 아이들에게 이끌리다시피 하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
박유민이 미소를 지었다.
“타종하잖아.”
“타종?”
“응.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의식이지. 종을 108번 쳐서 새해가 무사 안녕하기를 비는 거야.”
그러고 보니 그런 의식이 있던 것 같기도 했다.
중원에서도 신년을 맞을 때는 제사를 지냈다.
뭐, 강진호와는 딱히 관계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군.”
하지만 그 하나만으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현대는 미신과 거리가 먼 시대다. 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식을 진짜로 믿어서 이곳에 나온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재미로 나온 것일까?
새해라면 차라리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오붓하게 맞이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뭘 그리 생각해?”
“아냐.”
딱히 입 밖으로 내서 좋을 말은 아니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을 모두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말이니까.
“이걸 꼭 해야 하나?”
“뭘? 타종?”
“아니, 여기서 저걸 보는 일.”
“왜? 재미있잖아.”
“뭐가?”
“새해잖아. 사람이면 새해는 좀 특별하고 즐겁기를 바라지 않나? 그러니 여기에 오는 거야. 그리고 소망하는 거지. 다가오는 새해에는 즐겁고 좋은 일만 있기를, 그리고 고민, 걱정 같은 것은 싹 날아가기를.”
“음…….”
그러고 보면 강진호가 과거 항상 바라오던 일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군.’
강진호는 어느 순간부터 신에게 비는 일 따위는 그만두었다.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도 누군가를 찾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이 미신이고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고 하더라도.
‘위안을 얻고 싶은 건가?’
어쩌면 현대는 과거보다 더 외로운 시대일지도 몰랐다.
“시작한다! 소원 빌어야 해!”
“십! 구! 팔! 칠…….”
“소원 빌어!”
“소원?”
“그래! 새해에 맞춰 비는 거야!”
소원이라…….
그런 것이 있었나?
소원일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바라오던 일은 있다.
“삼! 이! 일!”
데에에에엥~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진호는 그가 항상 바라오던 일을 빌었다.
‘평범하게 살 수 있기를.’
지금처럼.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짜증나는 일이 반복되더라도… 웃고, 울고, 즐기고, 슬퍼할 수 있는, 사람다운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나쁘지 않군.’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을 평하는 것과 경험해 본 일을 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강진호는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소원 빌었어?”
“그래.”
“뭐 빌었어?”
“그냥, 지금처럼 계속.”
“에계? 소원이 그게 뭐야? 그런 게 무슨 소원이야?”
“너는?”
“소원은 원래 말하는 거 아냐.”
“그럼 나한테는 왜 물은 거야?”
“그냥 물었는데 네가 말해준 거지.”
강진호는 기가 찼다.
어쩐지 매번 당하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그냥 말해줘.”
“안 돼. 너한테는 절대로 말 안 해.”
“아니, 왜!”
“그만 가자!”
강진호는 떨떠름한 얼굴로 돌아섰다. 박유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고, 한세연이 종종걸음으로 그에게서 달아나고 있었다.
친구.
그리고 평화로움.
얻고 싶어 하던 것이다. 그토록 바라오던 것이다.
지금 강진호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적응해야 할 일이 아직 많고, 더 얻어야 할 것들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강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 해가 흐른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가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