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72
#571.
발전하다 (1)
“씨발, 진짜 의욕 안 나네.”
공영길은 애꿎은 돌부리를 걷어찼다.
다른 이들이 수련을 하고 있는 수련장에 이물질을 날리는 짓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지금 이곳에는 공영길의 그런 행동을 나무랄 이가 없었다.
애초에 수련을 하는 이가 없으니까.
예전에도 이런 기조가 없던 것은 아니다.
전쟁 이후 이중걸은 산산히 부서진 한국 무인계를 재생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 와중에 이중걸이 가장 신경 쓴 것은 일인전승(一人傳承)과 비인부전(非人不傳)으로 대표되는 한국 무인계의 경직성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당시 국가 주도로 세워진 학교의 방식을 차용하여 무인계의 수많은 계파들을 모아 서로 교류하도록 만들고, 공동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덕분에 지금과 같은 체계로 발전할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서로 같이 수련을 한다고는 해도 그들 역시 나름의 비전(秘傳)이 있기 마련이고, 정작 중요한 핵심은 다른 이들 앞에서 수련하기를 꺼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공동 수련장은 체력 단련이나 기본기를 수련하는 곳으로 여겨지기 마련이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공영길은 오뉴월 땡볕에 늘어진 개처럼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 의욕 없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딱히 그들을 탓할 건 없었다. 공영길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휴…….”
공영길이 한숨을 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이 오늘따라 더 짜증스러웠다.
고개를 돌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총회의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공영길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중앙 건물이었다.
저 지하 1층에 있는 대강당에 지금 다른 처지의 젊은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강진호에게 선택을 받은 이들. 그가 통과하지 못한 테스트를 통과한 이들이 말이다.
“씨발.”
공영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욕지기가 흘러나왔다.
‘뭐가 문제였을까?’
저들 중에서는 그의 친구인 이명환도 있었다.
그래, 인정한다.
이명환은 난놈이다.
그놈과 친구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이명환은 한국 무인계의 무척이나 중요한 인사가 될 거라 생각해 왔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 이명환이 공영길보다 나은 놈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처지는 또 달랐다.
과거, 그는 스스로가 이명환에 비해 뒤진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 차이가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차이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지금 그 둘의 처지를 극단적으로 바꿔놓았다.
공영길이 짜증 어린 눈으로 강당 쪽을 바라보았다.
아마 지금 이명환은 저기서 강진호가 전수한 마공을 익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공을 완성한 이명환은 더 이상 공영길이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강진호의 마공이 얼마나 강한지 그들은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무학이 강해도 결국은 익히는 사람의 몫이라고?
그렇겠지.
처음에는 공영길도 그리 생각했다. 비록 그는 테스트에서 낙마했지만, 그 차이가 급격하게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 조금 의욕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되레 강진호에게 그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며 불타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 공영길의 생각이 완전히 박살 난 것은 며칠 전이었다.
우연히 식당에서 마공을 익히는 무리와 마주친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그의 친구인 이명환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아무 일도 없었지.’
그래, 아무 일도 없었다.
차라리 그들과 시비라도 붙어서 철저하게 깨졌다면 지금 공영길이 이런 기분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겪은 일은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조금 더 극단적일지도 몰랐다.
식당에서 이명환 등과 마주친 공영길 일행은 그들에게 말도 붙이지 못했다.
겉으로는 달라진 게 없다.
그의 눈에 보인 이는 분명 그의 친구인 이명환이었다.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 있고, 평소보다 좀 날카로워 보이기는 하지만, 분명 그가 아는 이명환이었다.
하지만 공영길은 이명환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가 내뿜는 분위기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예전의 이명환은 나름 합리적인 사람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온화함을 베이스로 깔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본 이명환은 뭐라고 할까?
‘연쇄살인마 같았지.’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연쇄살인마들의 공통적인 분위기를 특정할 수 없으니 그의 말이 옳지는 않겠지만, 공영길은 분명 그런 느낌을 받았다. 괜히 입을 열어 말을 붙이는 순간, 이명환이 그를 도륙해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
불과 십여 명이 수백 명이 있는 식당에 들어와 구석에서 밥을 먹고 갔을 뿐인데, 남은 수백 명은 입도 떼지 못하고 식판에 얼굴을 처박고 밥을 먹어야 했다.
아무런 사건도 없었음에도 말이다.
그때, 공영길은 느꼈다. 아니, 모두가 느꼈다.
저들이 달라졌음을.
‘알고는 있었다고?’
그 강진호가 가르친다. 그것도 마공을.
변화가 없으면 더 이상한 것이다. 그렇기에 공영길도 언젠가 저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저들이 자신들에 비해 앞서갈 것임도 납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훗날의 일이었다.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런 차이가 나버린단 말인가. 주먹이라도 섞어보고 패배를 인정했다면 이리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영길은, 그리고 다른 젊은 무인들은 그들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십여 명이 기세만으로 다른 이들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더욱 굴욕적인 것은 그 십여 명은 그들을 딱히 위협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저 평소 흘러나오는 마기와 살기만으로도 다른 이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 압도적인 차이.
두 눈으로 목격한 그 압도적인 차이가 공영길의 의지를 모조리 꺾어버렸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썩은 동태 같은 눈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 동료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저들을 한심스레 여길 건 없다. 저들 역시 같은 눈으로 공영길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며칠 동안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화두였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간단한 대답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가 강진호의 눈에 들지 못한 것.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겨우 그것 하나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가?’
그건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그 역시 무학에 평생을 바쳐 왔다. 남들은 쉽게쉽게 살아갈 때 그는 단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고 강해지기 위해 인생을 바쳤다. 그런데 그 대가가 이거란 말인가.
결국 세상이란 대부분 재능으로 결정되는 것이고, 한 번의 선택이 그 재능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그것만이 이유라고 말하기에는 남아버린 그의 인생이 너무도 가엽지 않은가.
“빌어먹을.”
나오는 것은 욕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거리냐고!’
강진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렇지 않았다. 그때 그들은 비록 약했을지는 몰라도 서로 함께 나아간다는 동료 의식이 있었고, 경쟁을 통해 서로 발전하겠다는 경쟁의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뭐가 남았나.
공영길을 뒤를 돌아보았다. 다들 뭔가를 포기한 듯한 눈으로 시간만 때우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어설프게 수련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들의 몸짓에도 딱히 힘이 실려 있지는 않았다.
이대로는 여기 있는 모두가 결국 낙오자가 되어버릴 것이다.
공영길이 얼굴을 굳혔다.
이건 아니다. 이대로는 아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주목.”
그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공영길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공개되어 있는 수련장이지만 낯선 인기척이 나타날 때까지 알아채지 못하다니……. 스스로가 지금 얼마나 얼이 빠져 있고, 정신이 나가 있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현수?’
그들을 부른 것은 어느새 나타난 이현수였다.
이현수는 입에 담배 한 대를 물고는 살짝 나른한 얼굴로 손에 든 A4 용지를 흔들었다.
“여기 명단이 있다. 자기 이름 확인하고 지정된 장소로 모여라. 시간은 한 시간 뒤까지다.”
“……그게 뭡니까?”
“알면 뭐 달라지나?”
이현수는 시간 낭비하기 귀찮다는 듯이 A4 용지를 자신의 옆에 있는 나무에 붙이고는 몸을 돌려 산을 내려갔다. 수련장이 여기만 있는 것은 아니니 여기저기를 다 돌아야 할 것이다.
‘또 뭘 하려는 거지?’
또 쓸데없는 짓을 시작한다 싶으면서도 공영길은 자신도 모르게 이현수가 붙여놓은 A4 용지를 읽으러 다가갔다. 늘어져 있던 이들도 하나둘 일어나 그 용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어?”
공영길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의 눈에 선명하게 쓰여져 있는 그의 이름이 들어왔다.
“……뭘 시키려는 거야?”
공영길은 불안함 반, 불만 반이 섞인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이들 역시 공영길과 비슷한 눈을 하고 있었다.
‘뭐 이런 것들만 모아놨어?’
공영길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자꾸 어깨가 닿아서 불편하다.
의자를 놓은 간격이 그리 좁아 보이지는 않은데, 여기 모인 놈들의 어깨가 비상식적으로 넓었다. 원래도 덩치가 좋은 놈들이 무학을 익히면 조금 더 덩치가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무인들 중에서는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비정상적으로 몸이 큰 이들이 꽤나 있었다.
‘그런 놈들만 모아놓은 것 같은데?’
이런 이들만 따로 모아서 할 일이라는 게 뭐가 있겠는가.
미식축구 팀이라도 만들 셈인가?
그거 나쁘지 않겠네.
적당히 미식축구팀 하나 만들어서 NFL에 진출시키면 떼돈 벌 것이다. 그걸 미국 무인계가 용인한다면 말이다.
사람 불러놓고 딱히 시키는 일이 없으니 별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막 공영길의 입에서 짜증이 튀어나오려는 찰나, 문이 열리고 이현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빠른 걸음, 그리고 귀찮음이 가득한 얼굴.
이제는 저 두 가지가 이현수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느껴졌다.
“다 왔어?”
“…….”
“왜 대답이 없어? 다 왔냐고.”
“예.”
살짝 주눅이 든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현수는 무척이나 껄끄러운 존재였다. 과거 영남회 출신인 이들은 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기 때문에 함부로 굴 수 없고, 총회 출신이던 이들은 그가 얼마나 엿 같은 인간인지 수도 없이 들었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최근 이현수가 강진호의 오른팔 자리를 확실하게 꿰찼다는 소문도 돌고 있어 더욱 그렇다.
손으로 일일이 안에 모인 이들의 수를 헤아린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밖으로 소리쳤다.
“들어오시면 됩니다! 준비됐습니다!”
‘준비?’
살짝 의문 어린 눈으로 공영길이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이내 그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