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73
#572.
발전하다 (2)
공영길은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문이다.
문은 사람이 지나 다니라고 만들어놓은 것이다. 사람이 다니지 못하는 문은 문일 수 없다. 개구멍이라든가 하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게 맞다.
그럼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문인가?
조금 전까지라면 공영길은 당연히 문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생각이 조금 바뀌고 있었다.
저 문이라고 불린 구멍 뒤쪽에 도무지 저곳을 통과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 서 있었으니까.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나름 크게 제작된 문임에도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가슴과 배, 그리고 쭉 뻗은 다리가 전부였다.
‘내가 지금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공영길의 상식이 붕괴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저 몸을 통과시키는 저 구멍을 문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지, 그게 아니면 저 뒤에 서 있는 거대한 육체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든지 말이다.
결국 공영길은 저 구멍을 문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저 사람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니, 그 후환을 감당할 자신이 없던 것이다.
“흐음…….”
문 뒤에서 묵직하고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와…….’
공영길은 새삼 얼마 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짐승들은 서로 물어뜯고 싸우기 이전에 우선 소리로 싸운다고 한다. 서로 으르렁대며 자신이 더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은 인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싸우기 전에 벌어지는 욕설이라든가, 누구 목소리가 더 큰가의 대결, 그리고 트래쉬 토크가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처음 그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 공영길은 코웃음을 쳤다. 지능이 낮은 짐승이라면 몰라도 인간들이 어떻게 소리만으로 서로의 수준을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공영길이 침을 꿀꺽 삼켰다.
공영길은 이제야 그가 본 다큐멘터리에서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문 뒤쪽에 있는 저 거대한 남자의 낮은 한숨 소리가 들린 순간, 공영길의 전신 세포가 모조리 들고일어나 벌벌 떨고 있었다.
육체가 저항을 포기한다.
저자와는 결코 싸울 수 없다는 것을 그의 몸이 먼저 이해하고 반응하는 것이었다.
“끄으응.”
그렇게 목소리만으로 공영길을 박살 내버린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겨우겨우 머리는 들어왔지만, 양쪽 어깨가 문에 걸려 몸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무척이나 우스울 수도 있는 광경이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웃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세상 누구라도 저 광경을 눈으로 본다면 절대 웃을 수 없을 것이다.
“으으음.”
몇 번이고 몸을 뒤튼 사내가 겨우 문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이현수를 무척 불만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빠른 시일 내에 건물 전체 공사를 하겠습니다. 문을 전체적으로 다 확장하면 되겠죠.”
거대한 사내, 즉 바토르가 이현수의 말을 이해했는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쪽에 서 있던 장다징이 걸어 들어와 바토르 옆에 서자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얼이 빠져 있는 젊은 무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최근에 우리와 함께하게 된 바토르 님이시다. 들어본 이들도 있고, 못 들어본 이들도 있겠지만……. 음, 하기야 니들은 모르겠다.”
‘바토르?’
공영길은 얼이 빠진 눈으로 거대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강인함.
그의 눈앞에 강인함이 있었다.
강인함이란 단어를 인간의 형태로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 될 것이다. 그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이 사내가 얼마나 강한지, 얼마나 어마어마한 힘이 저 육체 안에 꾹꾹 눌러 담겨 있을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저 사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 모인 이들을 모조리 압착해서 분리수거하는 데까지 채 십 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압도적인 강함.
강진호 이래로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타인의 강함을 보고 경이를 느끼는 것은.
“오늘 너희를 모은 이유는 간단하다. 바토르 님께서 여러분을 지도해 보고 싶다는 의견을 주셨기 때문이다.”
“아…….”
공영길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저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다고?
‘뜬금없이 이게 뭐냐?’
그나마 강진호 때는 그런 일이 있을 거라는 암시라도 있고, 테스트에 대한 공지도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건 너무나도 갑작스럽다.
“개인적으로 너희에게는 무척이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너희를 모았다. 질문 있는 사람?”
공영길이 인상을 썼다.
질문이라니?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무슨 질문을 하라는 말인가. 질답만으로 한 시간은 채우겠구만.
공영길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었다. 어설프게 눈치를 보고 시간을 끌기에는 지금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그래, 말해봐.”
공영길이 바토르 쪽으로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이현수를 보며 말했다.
“저분…… 강하십니까?”
“너…… 씨발, 또라이냐?”
“예?”
“아니면 눈이 없냐? 물어볼 걸 물어봐, 이 미친놈아.”
“…….”
공영길이 조용히 입을 닫았다.
사실 그가 생각해도 이 질문이 좀 얼척 없기는 했다. 하지만…….
이현수가 혀를 차더니 말했다.
“그래. 내가 모아놓고도 너희들의 특성을 생각 못했네. 너, 하려던 질문이 그러니까…… 바토르 님에게 배우면 확실하게 강해질 수 있냐, 이거지?”
“예, 그거 맞습니다. 거기에…….”
“지금 강진호 씨에게 배우고 있는 애들도 이길 수 있냐, 이거?”
“예, 그겁니다!”
공영길은 겨우 가려운 곳을 긁었다는 듯이 시원하게 웃었다. 이현수는 그런 공영길을 보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굳이 이런 설명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이현수가 바토르를 힐끔 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분은 강진호 씨도 인정한 강자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적어도 총회 내에 ‘강자’라는 포지션으로 강진호에게 인정을 받은 이는 이제껏 없었으니까.
“그리고 사람에게는 특성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내 생각에 적어도 여기 모인 이들은 강진호 씨에게 배우는 것보다는 바토르 님에게 배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솔직히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공영길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이상하게도 어깨 떡대들만 모아놨다고 생각했더니, 이런 의도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렇게 모으신 겁니까?”
“그래.”
이현수가 살짝 부연을 했다.
“사실 있는 그대로 말을 해보자고. 너희는 노력에 비해서 성과가 잘 안 나오잖아?”
“…….”
“몸이 크다는 것은 파워가 좋다는 말이지만, 기본적인 민첩성이 떨어진다는 뜻도 된다. 그런데 문제는 너희가 배우는 무학은 대부분이 그 민첩성이 기본이 된다는 거지.”
“음…….”
공영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한국 무학이 좀 그런 면이 있었다.
대부분이 부드러움이라든가, 속도, 그리고 흐름을 중시하는 무학들이다. 그런 무학들을 익히는 데 적합한 육체는 살짝 작고 민첩한 타입이다.
공영길 같은 타입들은 초반에는 육체의 힘을 이용해서 앞서 나갈 수 있지만, 무학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민첩성이라는 허들을 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너희 잘못이 아니다. 너희가 익힌 무학이 너희와 맞지 않는 데 있는 문제지. 나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서 나름 해결을 해보려 한 적이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한국에는 너희 같은 이들을 위한 힘 위주의 무학이 없다.”
“……헐, 진짜 아예 없습니까?”
“원래부터 없었는지, 아니면 실전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너희가 익힐 수 있는 무학 중에는 없는 게 확실하다. 있는 대로 다 뒤져 봤으니까. 그런데 다행히도 바토르 님께서 총회와 함께해 주기로 하셨다. 그러니 너희에게는 마침내 기회가 찾아온 것이지.”
모두가 새삼스러운 얼굴로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많은 이들의 시선이 모이고 있음에도 바토르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설명은 이 정도면 됐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 바토르 님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이현수가 뒤쪽으로 살짝 물러나자, 장다징이 이현수의 자리를 대체했다.
살짝 의문 어린 시선이 자기 쪽으로 모이자 장다징이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헛기침을 했다.
“……통역입니다.”
“아…….”
그때, 바토르가 입을 열었다.
“신체 조건들이…….”
장다징이 서둘러 통역을 시작했다.
“좀 부족하군. 너무 얇아.”
통역을 들은 공영길이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뒤로 돌려 이곳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았다. 한 놈만 대충 번화가에다 던져 놓아도 모세의 기적이 벌어질 것 같은 어깨 깡패들이 모두 모여 있는데, 이들이 얇다고?
물론 바토르의 몸과 비교하면 두 살짜리 아이 같겠지만,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도 대한민국 평균과 따지면 이레귤러라고 불려야 할 이들이었다.
“뭐, 좋다. 부족한 신체는 노력으로 극복하면 되겠지. 나를 따라와라. 내가 너희를 강하게 만들어주겠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완벽한 육체를 만들어주지.”
공영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토르의 시선이 공영길을 쫓았다.
“질문 있습니다.”
바토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공영길이 소리쳤다.
“당신께 배우면 강진호 씨에게 배우고 있는 놈들을 이길 수 있는 겁니까!”
공영길에게 중요한 사실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어떤 수련을 하는지, 그게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어떠한 무공을 익히는지 따위는 그의 알 바가 아니었다.
세상에는 당해봐야 아는 일도 있다.
동기들이 앞서 나가는데 나만 뒤로 뒤처져서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심정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굴욕감이었다.
이런 굴욕감을 타파할 수만 있다면 공영길은 지옥의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수 있다. 지금 같은 마음가짐이었다면 강진호의 테스트에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장다징에게서 말을 전해 들은 바토르가 가볍게 웃었다.
“가능하다.”
장다징의 입이 열리는 순간, 모두의 눈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하나!”
“…….”
“내가 잡은 기준은 조금 더 낮았다. 너희가 따라올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지. 그런데 너희가 그걸 원한다면 나 역시 조금은 과격해질 수밖에 없겠지. 몸이 박살 나고, 뼈가 산산조각이 나도 괜찮다면…… 그렇게 만들어주겠다. 그걸 원하나?”
대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합니다!”
“저는 원합니다!”
“저두요!”
바토르가 씨익 웃으며 턱을 긁었다.
‘이곳에도 꽤나 근성 있는 놈들이 많군.’
보통의 젊은이들은 수련에 이만큼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강진호가 뭔가를 바꿔놨겠지.
“너희가 그렇게 나오니 나도 승부욕이 생기는군. 좋아, 진심으로 해보지. 대신 각오해라. 너희는 지옥을 볼 것이다. 상상하는 그 이상의 지옥을 말이다. 따라올 수 있다면 따라와 봐라. 그럼 내가 너희에게 강함을 주겠다.”
순식간에 기이한 열기로 가득 차버린 강당을 보며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게 경쟁의 힘인가.’
아마 강진호와 그 제자들이 없었다면 이 상황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저들의 눈에 가득 찬 열기의 근원은 강해지겠다는 열의라기보다는 경쟁심이었으니까.
나쁘지 않다.
무학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서로를 의식하고, 서로 더 강해지겠다고 아등바등거리다 보면 전체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다.
총회를 뒤덮기 시작한 경쟁의 열기를 보며 이현수가 고소를 지었다.
‘어서 강해지라고, 내가 써먹기 좋게 말이야.’
각자의 생각을 품고 총회는 최속으로 치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