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74
#573.
발전하다 (3)
“거참, 미묘하네.”
이명환은 영 찝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살짝 눈을 감아보니 그의 몸 안에 기운들이 들끓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예전이었다면 기운들이 그의 통제를 벗어나 들끓는다는 것에 기겁을 했을 것이다.
통제되지 않는 기운을 다른 말로는 주화입마라고 한다. 과거의 그였다면 지금쯤 몸이 뒤틀려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마공을 익힌 이후로는 이런 일이 수시로 발생했다.
처음 이런 현상을 발견했을 때는 기겁을 하여 강진호에게 뛰어갔다.
그러고 나서 보고를 하자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그게 왜?”
이명환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돌아왔다. 사실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으니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했고.
여하튼 덕분에 그의 기운은 지금도 부글부글대고 있는 중이었다.
‘어쩌면 신경이 예민해지는 게 이런 것 때문은 아닐까?’
솔직한 심정으로 배 속에 폭탄을 넣고 다니는 심정이었다. 그것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말이다. 그러니 어찌 평온한 마음으로 살 수 있겠는가.
어깨만 스쳐도 살인 나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이명환의 해석도 분명 일리는 있겠지만, 이 해석만으로는 애초부터 마공을 익힌 이들이 거칠어지는 게 해명이 안 된다. 안정된 기운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이들이 기운이 들끓는다 해서 불안을 느낄 리는 없을 테니까.
“……이유가 뭐가 중요하냐?”
어쨌든 그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예전이었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 일도 요즘은 주먹이 어깨까지 들썩이고는 했다.
무인이기는 하지만 이명환은 폭력으로 상황을 해결하려는 사고방식을 경멸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가 경멸하던 이들보다 이명환이 몇 배는 더 폭력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명환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 있던 이들이 슬금슬금 그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휴…….”
그 광경을 보며 이명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만도 하다.
그라 해도 오만상을 쓰면서 한 손에 칼을 들고 있는 이를 보면 강약을 따지기 이전에 일단 몸을 피할 테니까. 내가 이길 수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미친놈과 싸운다는 것은 어쨌든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설사 피해 없이 제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힘과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이들이 이명환을 보는 시선이 딱 그럴 것이다.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칼 대신 마기를 줄줄이 뿜어낸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무인들에게는 어설픈 칼보다는 마기가 몇 배는 더 위험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명환이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지금 이 상황이 엿같이 느껴지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 자체는 무척이나 불행한 일이지만, 그나마 그가 주변에 피해를 주고 경원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었으니까.
‘이러다가 정말 마기가 골수까지 치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강진호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마공을 직접 익히는 입장에서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막말로 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 강진호가 나 몰라라 한다면 누가 그에게 책임을 물리겠는가.
뒷세계를 조율하는 총회의 특성상 이명환도 마인이라는 놈들을 몇몇 만나보았다.
어디선가 조잡한 마공을 익힌 그들은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존재들이었다. 이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충동만으로 움직이는 존재들 같았다.
‘아니겠지.’
아니다, 아닐 것이다.
강진호는 분명 그가 준 마공은 지금까지 이명환들이 알고 있는 저급한 마공과는 다르다고 했다.
강진호를 신뢰하냐고?
‘아니.’
그가 신뢰하는 것은 강진호가 아니라 강진호의 강함이다. 그리고 강진호의 이성이었다.
이미 보지 않았던가. 이성을 잃고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그 마인들의 모습을 말이다. 만약 강진호가 그들을 전력화해서 이용할 생각이라면, 절대 그런 식으로는 만들지 않을 것이다. 통제되지 않는 전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머리로는, 이성적으로는 이미 결론을 내린 문제다. 문제는 인간이 생각보다 이성적이지 않은 동물이라는 것이고, 이명환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불안함이 몰려온다.
“돌겠네, 진짜.”
눈에 살짝 핏발이 돈 이명환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뭔가 기분을 풀 만한…….
“응?”
이명환의 눈이 살짝 커졌다.
중앙 건물 앞에 세워져 있는 알림판에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있었다.
‘뭐지?’
이상한 일이었다.
알림판이라고는 하지만, 이 디지털 시대에 저 알림판에 수많은 이들이 몰릴 이유가 없었다. 윗대가리들은 시대에 뒤처져서 아직 알림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내려온 명령이나 공지도 대부분은 처음 본 이들이 사진을 찍어 웹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공유하니까.
물론 지금 막 걸린 공지라면 아직 웹에는 올라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명환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저 알림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윗대가리들이 공지로 거는 거야 항상 빤한 내용들 아닌가.
이거 하지 마라. 이거 좀 해라.
제아무리 충성심이 넘치는 사람들도 일단 보는 순간 욕부터 하고 보는 그런 내용이 대부분일 텐데, 저리 격한 반응이라니?
호기심이 동한 이명환이 슬금슬금 알림판 쪽으로 다가갔다.
“잠시만……. 잠시만 지나가자. 좀 비켜보라고.”
“에이 씨, 뭐야?
“아, 밀지 마! 미쳤어?”
“어느 새끼가 미냐? 어느 새끼가?”
이명환은 흐뭇한 얼굴을 했다.
‘음, 정상적인 반응이로군.’
이런 반응을 받아본 지가 한참 됐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워낙에 몰려 있는데다가 등 뒤를 확인하기 애매한 상황이다 보니 마기의 영향을 덜 받는 모양이었다.
변태는 아니지만, 워낙에 이런 반응을 받아본 지가 오래되서 되레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미안, 미안하다. 확인 좀 하자. 미안하다.”
“아, 진짜. 씨팔!”
등을 밀고 들어오는 손길에 짜증이 나 고개를 돌린 이들이 이명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슬그머니 길을 터주었다. 못 봤으면 모르되, 얼굴까지 보고 나서 욕을 할 용기는 없으니까.
그 반응에 다시금 시무룩해하며 이명환이 앞쪽으로 전진했다.
“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이…… 응?”
이명환의 눈이 알림판에 커다랗게 붙여져 있는 공고로 향했다. 알록달록한 색지로 장식되어 있는 공고의 내용을 확인한 이명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이게 뭐야?”
미스터 위긴스 커리큘럼 공고.
총회 공인 서양 무학 전문가, 미스터 위긴스입니다.
새로운 가을을 맞이하여 미스터 위긴스는 총회의 젊은 무인들을 대상으로 서양 무학 수련 교실을 개최합니다. 서양 무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의 많은 지원 바랍니다.
본 교실은 일회성 교실이 아니며, 지속적인 시스템으로 여러분의 발전을 지원하며, 앞으로도 총회 측과 협의하에 커리큘럼 적용 대상을 점차 늘려 나갈 예정입니다. 짧은 호기심으로 지원하는 것은 지양해 주시고, 현재 자신을 냉정히 평가한 뒤 지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지원 일정 ― 금일부터 차주 금요일까지.
지원 자격 ― 만 30세 이하 총회 소속 누구나.
지원 방법 ― 본관에 비치된 지원 서류를 작성하여 경리부로 제출.
지원자를 대상으로 1차 서류 심사, 2차 면접 후 합격 통보.
회화 능력 필수. 영어 가능자 우대.
자세한 사항은 회주실 아래층 사외이사 임시 사무실로 문의 바랍니다.
“……이, 이게 무슨?”
이명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대체 뭐냐, 이 미친 지원 공고는?
심지어 지원 공고 위쪽 반은 헐리우드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미스터 위긴스의 카리스마 있는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 적당한 길이의 하얀 수염을 보고 있자니, 일단 지원 서류를 챙기러 달려가야 할 것 같은 신뢰감이 마구 솟아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뭔가 저 빨간 글씨로 써진 영어 가능자 우대는?
‘총회에 영어 되는 놈이 몇이나 되지?’
이명환은 황당함에 웃고 말았다. 물론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는 것은 좋지만, 이런 식의 공고에 지원할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일단 기본적으로 신뢰감이 없다.
그들은 미스터 위긴스라는 이름을 오늘 처음 들어보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스승의 밑에서 배우려는 이가 몇이나 되겠냐, 이 말이다.
이런 멍청한 공고를…….
“비켜봐. 야, 나오라고!”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응?”
이현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 부장…….”
“비키라고, 이 새끼들아!”
이현수가 짜증난다는 듯이 손을 휘젓자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것처럼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마공 익혀봐야 소용없네.’
이명환도 요즘은 나름 사람들이 꺼려한다고 생각했는데, 이현수가 하고 있는 걸 보니,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현수가 칼 든 미친놈이라면, 이명환은 이빨 좀 날카로운 똥개 수준이었다.
“쯧.”
이현수는 얼굴만으로 ‘아, 씨발.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냐. 바빠 죽겠는데 짜증 나 뒈지겠네’를 또박또박 말하는 수준에 올라 있었다.
그의 기분이 최악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들은 어떻게든 이현수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갈라진 사람들 사이로 뚜벅뚜벅 걸어 알림판까지 다가온 이현수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포스터를 들어 미스터 위긴스 커리큘럼 공고 옆에 각을 잡아 붙였다.
“잘 보고 지원해.”
“예?”
사람들의 눈이 새로 붙인 포스터로 향했다.
“헐…….”
이명환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어, 이게 세트였구나…….
그래서 미스터 위긴스가 누군지 설명하지 않은 거구나.
이명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포스터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쪽을 바라보며 웃으며 악수하는 두 사람의 모습. 한 사람은 모집 공고에 나와 있는 미스터 위긴스였고, 다른 한 사람은…….
“강진호?”
이명환이 멍하게 뇌까렸다.
사진 안의 강진호는 무척이나 어색한 얼굴로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고 있었다. 길 가던 아무나 붙잡아서 사진을 찍어도 저리 어색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포스터 아래쪽이 쓰여져 있는 문구였다.
미스터 위긴스 커리큘럼.
강진호가 보장해 드립니다.
“……뭔 광고가 이렇게 저렴해?”
발로 만들었나?
발로 만들었어?
광고가 너무 조악하다 보니 신뢰도가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비 느낌까지 나고 있었다. 이런 광고를 보고 지원을 할 이가…….
“야, 이거 지원 서류 어디에 있다고 했냐?”
“영어 우대라잖아!”
“배우면 되지! 다음 주까지 시간 있잖아! 학원 등록해! 학원!”
“……이거, 믿어도 될까?”
“야! 씨발, 대빵이 저런 얼굴로 사진까지 찍었잖아. 진짜 하기 싫은데 저 위긴슨가 뭔가 하는 양반이 사진 찍어달라고 해서 찍은 거 아냐. 대빵한테 그럴 수 있는 사람인데, 검증이 뭐가 필요해! 저 사진이 검증이지!”
“어? 듣고 보니 그러네. 그래서 지원 서류가 어디 있다고?”
“저기다! 본관이라 그랬어! 일단 챙겨! 지원 안 해도 서류는 챙기라고!”
득달같이 본관으로 달려드는 동기들을 보며 이명환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문 이명환이 불을 붙이며 눈을 감았다.
“인생 진짜…….”
굳이 학원에 갈 필요가 없는 토익 900점의 이명환은 끓어오르는 울분을 담배로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