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80
#579.
조여오다 (4)
“그럼 일단 돈 문제는 해결이 됐고…….”
아뇨. 해결 안 됐는데요?
그걸로 해결이 되는 겁니까, 회장님?
조규민은 도무지 이 사람들의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저런 식으로 돈 문제가 해결이 되면, 세상에 돈으로 허덕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벌어오면 그만인데.
“자, 잠시만요, 회장님. 이렇게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벌어온다잖은가.”
“아니,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니까요.”
“자네, 진호 못 믿나?”
“헐…….”
아니, 여기서 이렇게 나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회장님. 이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회장님, 제가 강진호 씨를 신뢰한다고 해서 강진호 씨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예?”
“솔직히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
“……말하고 보니 그러네요.”
난이도로 따졌을 때는 확실히 강진호가 떼돈을 벌어오는 것보다는 하늘을 나는 게 더 현실성이 있을 것 같았다. 뭔가 기준이 일반인과는 다르니까.
“벌어온다고 하니까 벌어오겠지.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
에…….
조규민이 발랄하게 웃었다.
“그러시죠.”
평생을 기업을 운영해 온 사람이 일단 돈을 제껴놓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외치고, 평생 돈이라고는 피자집에서밖에 벌어본 적 없던 사람이 당당히 재단을 운영할 돈을 벌어오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여기는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였다.
‘뭐, 언제는 아니었나.’
따져 보면 강진호가 등장한 이후로 그의 인생은 언제나 판타스틱했다. 새삼 이제 와 상식을 논한다는 게 되레 난센스다.
“여하튼 그럼 일단 돈 문제는 제껴놓고 계속하시죠.”
“거, 빤한 이야기를 여러 번 하게 만든다니까.”
황정후의 툴툴거림에 조규민이 고개를 슬쩍 돌렸다. 괜히 이럴 때 입을 열었다가는 타박만 더 받는다.
“음, 그래. 일단 돈을 해결했다고 치자고. 그래서 네가 말하는 그 복지라는 게 방향이 뭐야?”
“방향이요?”
강진호는 그런 말은 생전 처음 듣는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어떤 식으로 복지 재단을 운영할 거냔 말이야. 교육이야, 의료야? 그게 아니면 주거? 그것도 아니면…….”
“다 하면 안 됩니까?”
“……이 똥 멍청이 같은 인간들이!”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을 짓자 황정후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소리치기 시작했다.
“입만 살았지, 입만 살았어! 고놈의 주둥아리는 아주 잘도 돌더구나. 뭐? 후회하지 않게 해줘?”
“덕분에 이리 정력적으로 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래서 제가 꼭 필요하다고…….”
“에라이, 이 사기꾼 같은 놈아!”
황정후가 마구 역정을 내자 강진호는 웃어버렸다. 확실히 일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주는 사람이 있으면 일이 잘 진행된다.
강진호는 혼자 수레를 미친 듯이 끌 수 있는 사람이지만, 수레 뒤의 짐이 줄줄 흘러내려도 신경 쓰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이런 강진호에게 가장 필요한 이가 조규민같이 뒷문을 단속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한 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하겠네.’
쉽게 말해 강진호는 방향타 없는 엔진이다. 방향이 정해지면 말도 못 올라갈 언덕길로 집채만 한 수레를 끌고 올라갈 힘이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항상 산골짜기를 헤매는 그런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 강진호의 앞에 지금 황정후가 지도를 펼쳐 든 것이다. 로드맵도 지도는 지도니까.
“결국 내가 보니까 너는 그 보육원 같은 것을 좀 더 확장하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
“음…….”
“본인 마음은 본인이 잘 모르는 법이지. 그동안 네가 병원이고 뭐고 쏘다니지 않은 곳이 없는데, 결국 마음을 준 곳이 그곳이라면 너는 어린애들에게 관심이 많은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는 어린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운명에 저항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강진호 역시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두 번째 삶에서도 비참하게 살아야 했을 테니까.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 황정후조차도 말했다.
노력하면 된다고,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강진호는 세상에는 그 노력할 수 있는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디테일한 일까지 이야기할 것은 없다.
“그럼 내 생각인데…….”
황정후가 턱을 긁으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보육원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은 비효율적이야. 인력 관리도 힘들고, 돈은 두 배로 들지. 게다가…… 이런 말은 조금 민감한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네가 몸이 열 개가 아닌 이상은 결국 그 보육원 원장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한 번씩 들러보는 식으로 운영을 해야겠는데, 그만큼 믿을 만한 사람을 열 명이 넘게 확보할 수 있겠어?”
“음…….”
생각지도 못한 문제였다.
확실히 황정후는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다.
사업가의 마인드가 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강진호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을 하면 더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같은 것을 고민하는 동안 황정후는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일을 크게 벌여보는 건 어떤가?”
“크게요?”
“그래, 크게.”
황정후가 씨익 웃었다.
“잡다하고 조그맣게 하지 말자고. 이왕 내 이름도 걸고, 네가 돈도 벌어온다고 하니까…… 보육원을 크게 지어버리면 되지.”
“……어느 정도로?”
“보육원 열 개를 합친 만큼. 일단 시작은 연령별로 한 오십 명 정도 모아보면 어떠냐?”
“헐, 회장님.”
조규민이 기겁을 하여 말했다.
“연령별로 오십이라면, 고등학생까지 받는다고 해도 천 명입니다.”
“어차피 한 보육원에 백 명은 있을 거 아냐?”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럼 뭐가 문제야? 백 명짜리 보육원 열 개를 만드는 것보다는 천 명짜리 보육원 하나가 더 간단하지.”
“아, 아뇨, 그게 아닙니다.”
조규민이 황정후를 만류했다.
“지금까지 그런 식의 보육원이 생기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사람이 그만큼 모이게 되면 기본적으로 여러 시설이 필요합니다. 막말로 학교 가야 하는 애들만 육백 명이 넘게 됩니다. 걔들을 어디서 다 수용합니까?”
“왜 못해?”
“현실적으로 보자구요. 일단 주변에 커다란 보육원이 들어선다는 것만으로도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셀 겁니다. 집값 떨어진다 소리 나온다구요. 게다가 그 보육원생들이 학교에 대량으로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을 겁니다. 그걸 다 무마하려다 보면 시작도 못할 수 있습니다.”
“쯧쯧, 이리 멍청한 놈을 보았나.”
“예?”
“야, 이놈아. 다른 학교를 보낼 필요가 뭐가 있어. 네가 말한 대로 학생만 육백 명이고 돈이 있는데! 지어버리면 되잖아!”
“……지, 지어요?”
“그래. 애들이 학교 다니면서 생기는 제일 큰 문제가 뭐야?”
대답은 강진호에게서 나왔다.
“시선이죠.”
“그래, 그거야. 나와 다른 놈이라는 시선, 저놈은 부모가 없다는 시선. 그런 시선을 받다 보니 애들이 학교생활을 싫어하고 삐뚤어지는 거 아냐.”
“예.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차라리 거꾸로 가버리는 거지. 학교를 지어버리는 거야, 재단명으로. 그리고 거기에는 보육원에 있는 애들만 등교를 시키는 거야. 어차피 다 같은 애들이니 차별받을 것도 없지.”
조규민이 멍한 얼굴로 황정후를 바라보았다.
‘아니, 뭔 스케일이…….’
강진호에게 일 크게 벌인다면서 뭐라고 하더니, 자기 스케일은 우주를 뚫고 있었다.
보육원을 짓는 이야기가 어떻게 학교를 짓는 이야기까지 넘어갈 수가 있는가.
“같은 재단에서 학교와 보육원을 동시에 운영하면, 보육 교사와 학교 교사 간의 소통도 더 잘될 거고, 그럼 애들 생활에도 도움이 될 거 아냐.”
황정후가 강진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말한 게 그런 거 아냐? 애들을 올바르게 키워내는 것.”
“……올바르게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불편 없이 자라게 해주고는 싶습니다.”
“그게 그거야. 최적의 방식은 이거란 말이지. 오히려 애들이 대량으로 있으면 이점이 많아.”
“이점요?”
“지금 보육 교사들이 힘든 이유가 그거 아냐? 한창 사춘기인 애들과 어린아이들이 뒤섞여 있고, 죽어라고 뛰어다니는 놈들과 공부해야 하는 수험생들이 섞여 있잖아.”
“그렇죠.”
“그런데 수가 많아지면 학년별로 분류해서 보육 교사를 배치할 수 있다는 말이지. 방식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큰 틀은 달라지지 않는 거야. 그럼 아이들도 조금 더 편해지고, 일하는 사람도 편해지기 마련이지. 지금처럼 보육 교사들이 애들 밥도 신경 쓰고 하는 필요도 없어지는 거지. 조리실이 따로 운영될 테니까.”
“어, 음…….”
조규민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거…… 뭔가 대단한 이야기 같기는 한데, 머리에 잘 들어오지는 않네요. 듣도 보도 못한 개념이라서 그런가.”
조규민은 웃어버렸다.
‘진짜 사람이 다르구나.’
보육원생들을 보호하고 돌봐주어야 할 아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조규민이나 강진호로서는 도무지 떠올릴 수 없는 발상이었다. 아이들의 분류를 나누고 거기에 따라 따로 교사를 배치한다니.
“아, 이거…….”
“뭔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규민이 황당함을 서둘러 감추었다.
‘이거, 공장 운영 방식이잖아.’
다품종 소량 생산을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전환하는 것 같았다.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사람을 밀어 넣어서 차별 없고 안정적인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건데…….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요?”
“사람 냄새야 덜 나겠지.”
황정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야. 교사의 문제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게 사람이야. 너희가 착각하고 있는 건, 보육원은 아이들이 우선이라 생각하는 거야. 보육원에서 제일 우선되어야 할 것은 보육 교사야.”
“예?”
“네가 보육 교사에 대해 생각해 봐. 어떤 사람들이야?”
“좋으신 분들이죠. 마음 선하고 봉사 정신 투철하신.”
“그게 문제야.”
“……이게 문제라구요?”
황정후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멍청한 놈들은 꼭 핵심을 벗어나기 마련이지. 그 사람들이 왜 좋은 사람이어야 해?”
“그야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니까.”
“야, 이놈아. 그 사람들한테 연봉을 1억 준다 치면 네가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마음이 착해서 일한다고 생각하겠냐?”
“…….”
조규민이 입을 다물었다.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때는 높은 연봉에 따른 합리적인 선택이라 생각하겠지.
“보육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말에는 그 사람들은 박봉과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아이들이 좋아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는 거야. 그게 현실이기도 하고. 그걸 당연하게 여겨 버리면 망하는 거야.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면, 우수하고 뛰어난 보육 교사들이 있어야지. 그런 사람들을 박봉에 쓸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도둑놈 심보야!”
조규민이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눈으로 황정후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조규민은 강진호가 왜 그토록 황정후에게 일을 해달라고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고 자체가 다르네.’
이제는 확실해졌다.
그들에게는 황정후의 힘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