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81
#580.
조여오다 (5)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껏 뭐 들었어!”
황정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짜증을 냈다.
“제대로 된 임금을 지급해. 그래서 우수한 인재를 모으란 말이야. 인성? 인성 좋지. 그런데 인성이 언제 나오는 줄 알아?”
“……글쎄요?”
“마음이 편해야 나오는 게 인성이야. 생각해 봐. 네가 집에 돈이 없어 항상 그런 문제로 시달리고, 일은 너무 힘들어서 피곤하기 짝이 없는데,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면 좋은 말이 나올 것 같아?”
“절대 못 그러죠.”
“시스템의 문제를 사람의 인성의 문제로 몰아가지 마. 사람은 다 똑같아. 물론 개중에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야 있겠지. 그런 사람들을 뽑는 것은 너희가 해야 할 문제지.”
황정후가 강진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너, 네가 보육원에 뭔가 많이 해줬다고 생각하지?”
“아닙니다.”
“웃기지 마, 이놈아!”
황정후가 피식 웃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할 짓 없는 놈이 중간중간 들러서 썩어나는 돈 뿌려 대니 아이들은 좋아하겠지. 그런데 네놈이 그 아이들에게 뭐 그리 대단한 걸 한 것 같으냐? 헛소리! 그 애들을 키워낸 건 거기서 박봉을 받으면서 일하던 보육 교사들이야. 네가 정말 보육원에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면, 일단 그 사람들 월급부터 올려줬어야지. 그런 건 신경 썼냐?”
“……아니요.”
강진호의 목소리를 조금 쫄아들어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학생일 때부터 보육원에 들락거리던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문제점을 황정후는 서류 몇 개 뒤져 본 것만으로도 파악하고 있었다.
“생색내지 마, 생색! 원래 제대로 일도 안 하는 것들이 더 생색내는 거야.”
“예.”
“네가 보육원을 크게 한다고 치자. 그럼 네놈이 거기 24시간 붙어 있을 거야? 네가 애들 똥 귀저기 갈고 손 못 쓰는 애들 밥 먹이고 있을래?”
“……아닙니다.”
“애들을 키우는 건 네가 아냐. 보육 교사들이지. 네놈이 정말 보육원을 제대로 만들고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고 싶었다면, 되도 안 하는 헛소리들을 늘어놓기 전에 어떻게 하면 좋은 인재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를 생각했어야지.”
강진호는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자, 잘못했습니다.”
황정후는 그제야 목소리에 힘을 뺐다.
“쯧쯧, 요즘 어깨에 힘주고 다니더라니……. 오히려 예전만도 못해진 것 같네. 예전에는 그래도 똘똘한 맛이라도 있었는데.”
“저…….”
“뭐?”
“아까 그…… 형이라고 불러준다는 말씀.”
“일없어.”
“……그럴 줄 알았습니다.”
강진호는 차마 불도 붙이지 못하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속이 쓰리다.
황정후의 그의 조직을 다루는 능력이 차이가 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다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세세하게 챙기는 타입은 못 되지만, 전체적인 방향성을 짚어가는 것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이 나이를 먹고도 말이다.
“결국은 돈이야.”
황정후가 단호하게 말했다.
“애들을 좋은 시설에서 살게 해주고 싶으면 돈을 써. 그리고 좋은 보육 교사들을 충원해서 애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으면 역시나 돈을 써. 학교에 좋은 교사들을 불러들이고 싶으면 돈을 써야 하고, 애들한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으면 그것도 돈을 써야지.”
“예.”
“예로부터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고 했다. 지금 봐. 다들 얼마나 잘살아? 예전에 우리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다들 잘산단 말이지. 우리 때 휴대폰이 어디에 있었어? 저런 좋은 음식을 누가 꿈이라도 꿨어? 쌀밥은커녕 꽁보리밥도 못 먹어서 칡뿌리 찾아서 산을 헤맸어. 그런데 지금은 다들 저만큼이나 잘살고 있잖아.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
“……다들 배가 불렀다?”
황정후가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저런 것들을 데리고…….”
뭔가 대답을 크게 잘못한 것 같았다. 강진호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분이 대체 얼마 만이지?’
누군가에게 이리 야단을 듣는 것은 몇 십 년 만인 것 같았다. 아까부터 자꾸 손바닥에 땀이 차오른다. 신체를 완벽하다시피 통제할 수 있는 그이지만, 지금 배어 나오는 땀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라가 그만큼 잘살게 되었는데도 가난한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 거야. 네가 하려는 일이 그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한 해 예산을 수백조나 써 대는 나라도 가난한 이들을 모두 구제하지는 못해. 그런데 네가 소수나마 그들을 감당하겠다고 나서는 거야.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아야 해.”
“각오하고 있습니다.”
“쯧쯧.”
황정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혀를 차 댔다.
“한 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가 없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은 그만큼 무서운 일이야. 왜냐면 네가 더 이상 이걸 유지할 수 없게 되면 아이들은 다시 원래의 환경으로 돌아가게 되거든. 고기 맛을 본 적 없는 사람은 고기를 탐하지 않지만, 고기 맛을 아는 이들은 고기를 못 먹으면 환장하는 법이지.”
조규민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채식주의자도 있습니다만…….”
황정후는 대답없이 재떨이를 움켜잡았다.
“자, 잘못했습니다.”
“너, 오늘 저거 서류 다 정리해 놓고 가.”
“……예.”
분위기를 풀어보겠답시며 농담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건진 조규민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런 논의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한 것은 정말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이지. 너는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어. 하고 싶으니까, 그냥 해보고 싶으니까로 시작하기에 이건 너무 무거운 일이다.”
“괜찮습니다.”
강진호가 담담히 대답하자 황정후가 눈을 치켜떴다.
“너 때문에 되레 불행해질 아이들이 생길 수 있다. 그 점은 생각하고 말하는 거겠지?”
“예.”
강진호의 대답은 여전히 담담했다.
세세한 부분을 지적받을 때는 안절부절못했지만, 큰 틀이 나오는 순간 다시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뭘 믿고 그리 자신하는 거야?”
“고기를 자주 먹을 수 없으니, 애초에 먹지 않는 게 행복한 삶입니까?”
“으음…….”
강진호는 선명한 눈으로 말했다.
“아프리카에서 맑은 물을 구할 수 없다 해서 목이 타는 아이들에게 생수병을 건네주지 않는 게 옳습니까? 그게 그들을 위하는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언젠가 제가 한 일 때문에 아이들이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올지 모르죠. 하지만 설사 나중에 더 힘들더라도 지금 그 아이들의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건 틀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진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강진호의 눈을 보며 황정후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입은 참 잘 돌아간단 말이지. 예전에는 벙어리 같았던 게.”
“솔직하게 칭찬하는 법을 모르시는군요.”
“어느 미친놈이 연장자를 칭찬해?”
“…….”
황정후가 정리를 시작했다.
“그럼 대략적으로…….”
“아니. 잠시만요, 회장님.”
하지만 조규민은 아직 미진한 모양이었다.
“말씀하신 부분은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좀 있습니다. 일단 등교권의 문제가 걸리지 않습니까? 학교를 지으면서 그걸 특정인들만 다닐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설사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도 지원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게 하면 되지.”
“법적으로 문제입니다. 이게 하고 싶다고…….”
“법을 바꾸면 되잖아, 이놈아!”
“……예?”
“법이 별거야? 사람 사는데 좋게 살아보자고 만든 게 법 아냐? 좋은 일 하는데 법이 문제라면 그 법을 바꿔야지.”
“아, 예…….”
조규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딴지를 걸 힘도 없었다. 저 사람은 애초에 그와는 스케일이 다르다.
“말 잘했다. 너, 이거 관련해서 저촉되는 법이 몇 개 있는지 다 조사해 와. 법무팀에 언질 넣어줄 테니, 확실하게 알아봐.”
“예.”
일이 슬슬 증가하고 있었다.
‘오늘 집에 갈 수는 있나?’
어쩌면 이 회의가 끝날 쯤에는 오늘 야근이 아니라 이번 주의 야근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예감에 조규민이 몸을 떨었다.
“어떻게 생각해?”
황정후의 물음에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방법 같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이게 조직이라는 게 커지면 손 가는 데가 많지만, 일정 규모를 넘어가면 자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지. 그럼 그때부터는 방향만 잡아주면 되는 거야. 네가 관리하기도 이쪽이 더 편하겠지.”
“관리는 회장님이…….”
“돈도 안 주고 부려 먹는 것도 적당히 해.”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이놈아!”
황정후가 코웃음을 쳤다.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문 황정후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진지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진호야.”
“예.”
“천명이다.”
“예?”
황정후가 깊게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말했다.
“이 귀찮고 짜증 나고, 더럽게 손이 많이 가는, 그리고 코끼리처럼 돈을 퍼먹는 일을 통해서 네가 도울 수 있는 아이들이 딱 천 명밖에는 안 된다.”
“…….”
“대한민국에 네 기준으로 도와야 할 아이들이 얼마나 많겠어? 첫 번째 보육원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거기서 멈출 수 있겠느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너는 그런 놈이니까. 결국은 성장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을 본격적으로 해서 일을 키우기 시작하면, 네 재산이 아니라 내 재산을 모조리 퍼부어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다. 현실을 봐야 해.”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내 말은…….”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응?”
강진호가 황정후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모조리 끌어모으라는 말씀이시군요. 나라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최대한 받아내고, 주변에서 모을 수 있는 돈도 모조리 끌어모으고, 거기에 벌기도 죽어라고 벌어야 한다, 이 말씀 아니십니까?”
“……아니, 나는 적당한 선만 하라고. 그러면 남들도 비슷하게 따라올 테니까 꼭 네가 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더 크게 하면 더 크게 따라오겠죠.”
황정후의 얼굴이 살짝 질리기 시작했다.
‘이거, 실수한 것 같은데?’
과거 처음 보았을 때의 강진호는 칼날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강진호는 예전과는 다르게 꽤나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황정후가 보기에 그건 부드러워진 것이 아니라 목표를 잃은 것에 가까웠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들이 딱 저런 얼굴을 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강진호의 얼굴에 선이 살아나고 있었다.
“천천히 합세, 천천히…….”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일을 진행할 시에 문제가 되는 부분을 모두 조사해 주십시오.”
“아, 예.”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호가 미련 없이 걸어 나가 문을 열었다.
“어, 어디 가나?”
고개를 슬쩍 돌린 강진호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만들어졌다.
“돈 벌러 갑니다.”
탁.
문이 닫히고 황정후와 조규민이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혹시 내가 실수한 건가?”
그런 것 같은데요.
……왜 그러셨어요.
이상하게도 소름이 돋는 황정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