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83
#582.
고민하다 (2)
“완전하게?”
강진호의 되물음에 이현수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강진호가 왔을 때를 대비하여 챙겨두었던 재떨이를 슬그머니 앞으로 밀 뿐이었다.
“한 대 피우시죠.”
강진호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담배를 꺼냈다.
이현수가 바로 말을 이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말을 듣고 싶다면 지금은 조금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찰칵.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자 강진호도 살짝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이런 것 때문에 이현수도 강진호에게 담배를 권한 것이겠지.
“후우우…….”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현수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현재 총회는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문제점을 찾아내기는 어렵습니다. 겉으로 본다면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죠.”
“음…….”
“하지만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 강진호 씨와 방진훈 씨로 권력이 이원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방 회주와는 트러블이 없어.”
“그렇죠. 트러블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서로가 양해를 한 결과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
“한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는 없는 법입니다. 결국 하나는 다른 산으로 가거나, 스스로가 호랑이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현수가 살짝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방진훈 회주는 강진호 씨의 의견에 반발하지 않고 잘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스스로가 자신의 포용력으로 강진호 씨를 감싸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겁니다.”
강진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적인 권력은 반드시 문제를 낳는다. 하지만 그게 절대적이지 않은 권력이 대안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권력이 강해서 생기는 문제는 권력이 약할 때는 더 심하게 생겨난다.
“지금 정리해야 할 것은 강진호 씨의 내부 모순입니다.”
“……모순?”
강진호가 뜻밖이라는 얼굴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모순이라니?
“강진호 씨는 모두가 다 잘 지내는 것을 원하시더군요.”
“음…….”
강진호가 막 뭐라 반박을 하려고 할 때, 이현수가 쐐기를 박았다.
“내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
강진호가 입을 닫았다.
이현수의 말은 강진호의 핵심을 찌르는 면이 있었다.
강진호가 가혹한 것은 적이거나 아군이되 내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는 이들에게였다. 저 사람이 나와 함께 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면, 그들에게는 한없이 무뎌지는 부분이 있었다.
강진호도 인지하고 있는 스스로의 단점이었다.
“하지만 강진호 씨는 빠르고 급격한 발전을 원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다는 거죠.”
강진호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양립이 불가하다고?”
“강진호 씨는 잘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지금 방진훈 회주가 아이들을 모아서 자신의 무학을 전수할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과거 천태훈을 비롯한 자신의 친위대에게만 전수하던 무학들을 아낌없이 풀어서 아이들을 강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죠.”
“좋은 일이군.”
“예, 물론 좋은 일이죠. 하지만 그걸로 만족할 수 있으십니까?”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진호 씨가 가르치면 더 낫겠죠. 방진훈 회주가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멍청한 소리.”
강진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나 홀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나는 이제 그걸 알아.”
“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강진호 씨.”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홀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강진호 씨가 조언자의 포지션에 있는 것과 강진호 씨가 지배자의 포지션에 있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인식부터 달라집니다.”
“…….”
“강진호 씨가 원하는, 모두가 함께 열심히 해서 이끌어 나가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강진호 씨는 총회를 장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적당히 책임과 권한에서 한발씩 물러난 상태로 흑막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그만 전면에 나서주십시오.”
강진호가 손을 들어 얼굴을 주물렀다.
그러자 이현수는 달콤한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총회를 손에 넣으십시오. 그러면 강진호 씨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될 겁니다. 돈, 권력, 정보, 모든 것을 말입니다.”
“내가 총회의 회주가 된다고 해도 지금의 시스템이 바뀔 리는 없지 않은가. 내가 회주가 되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방진훈 회주도 할 수 있을 거고, 그럼 방 회주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충분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현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만약 강진호 씨가 회주의 자리에 오른다면, 전면적인 시스템의 개혁에 돌입할 테니까요. 지금처럼 연합의 느낌이 아니라 총수에게 모든 힘이 집중되는 단체를 만들 겁니다.”
“바꾼다고?”
“예.”
이현수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굳이 피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강진호 씨가 회주가 된 상황과 방진훈 회주가 회주인 상황은 다르니까요. 기본적으로 같은 의견을 냈을 때도 반발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강진호가 다리를 꼬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가만히 빨아들인 담배 연기가 천천히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솔직하게 대답하지.”
강진호의 눈이 가라앉았다.
“나는 위에 서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강진호 씨.”
“끝까지 들어.”
강진호의 목소리가 조금 차가워진 것을 파악한 이현수는 두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제안은 할 수 있지만, 강진호를 강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위에 서는 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나는 그저 싸우는 것에 미쳐 있는 인간일 뿐이야. 이끌어갈 줄 모르고, 주변을 돌아볼 줄 모르고,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듣지 않아. 내가 정상에 서서 이끌어가는 곳이 어떤 꼴이 나는지 나는 충분히 경험했어. 네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뭔지는 충분이 이해해. 하지만 나는 그걸 이뤄줄 수 없어.”
이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보좌하는 사람에 따라서…….”
“아니지.”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수를 보며 말했다.
“네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겠지.”
“…….”
이현수가 순간 말문을 잃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강진호가 미묘한 미소를 머금고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내가 회주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겠지. 그저 방진훈이 회주에 앉아 있으니 네가 움직이기 불편해서 아닌가?”
이현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딱히 탓하려고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냐. 네 의견도 충분히 이해해. 그리고 지금의 상황 때문에 네가 네 능력을 백 프로 발휘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
강진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움직여 주지.”
“……그 말씀은?”
“걸리적거리는 것이 있으면 치워주겠어. 일을 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네게 좀 더 권한을 주지. 그러니 너무 급하게는 가지 말자고.”
강진호의 눈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천천히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강진호를 보며 이현수는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껴야 했다.
‘대체 이 사람의 깊이는 어디까지인 거지?’
강진호를 우습게 본 적은 없다. 이현수는 스스로가 강진호의 종복에 불과하다는 자각이 있는 사람이다. 알량한 머리로 이 사람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 그는 김석일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 이가 어찌 강진호를 다룰 수 있겠는가.
그는 조직을 운영하고 군대를 운영하는 것에는 스스로가 최고라 자부하는 사람이지만, 카리스마를 갖춘 개인을 등 뒤에서 조종할 수는 없는 타입이었다.
히틀러가 없었다면 괴벨스는 몽상가에 불과했다. 강진호가 없다면 이현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또 다르다.
그저 강하고 두렵기 때문이 아니다. 몇 마디 되지 않는 대화를 나눴음에도 강진호는 이현수 스스로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던 그의 불만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견제.
총회 내에서 그의 한계는 극명했다. 그는 김석일의 머리였고, 영남회의 실질적인 운영자였다. 아무리 그가 이곳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경계심을 허물어뜨리기는 힘들었다.
덕분에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감시가 따라붙는다.
그 상황이 답답했던 것이다. 강진호가 전면에 나서서 총회의 회주 자리를 거머쥔다면, 이현수에 대한 견제가 사라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강진호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나쁘지는 않은 방향이야. 생각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 다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 급격한 것은 언제나 반발을 낳는 법이지. 지금의 상황이 답답하다고 해서 한 번에 정리하려다 보면 이쪽에서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너무 큰 법이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제가 성급했습니다.”
“여하튼 도움이 됐어.”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이현수가 손을 뻗어 강진호를 잡았다.
“잠시.”
이현수가 머리를 두어 번 긁고는 입을 열었다.
“원래 화제로 돌아가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원래의 화제?”
“강진호 씨가 하려는 일은 스케일이 꽤나 큽니다. 장담하건대, 일반적인 방법으로 그 자본을 마련하는 일은 힘들 겁니다. 물론 저는 강진호 씨가 그 돈을 모을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젠가는 그 돈을 모으시겠죠. 하지만 시기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이십 년 뒤에 그 돈이 모인다면 의미가 없죠.”
“맞는 말이야.”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그 돈을 꽤나 간단하게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음?”
강진호가 흥미롭다는 듯이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어찌 보면 일석삼조 정도 되는 계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칭찬해야 하는 타이밍인가?”
“그런 건 아니구요.”
이현수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성급했어.’
아직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현수의 조급함이 잘못하면 파탄을 낳을 뻔했다. 하지만 성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저분도 생각이 없으신 건 아니야.’
현실적인 문제, 그리고 과거에 이미 실패를 해보았다는 것 때문에 주저하고 있을 뿐이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강진호라는 사람과 겸손이라는 말이 어울리기나 하는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과다하다 못해 넘쳐 줄줄 흘러나오는 사람이 강진호였다.
표현의 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천천히 돌아가야지.
‘이게 내 역할이다.’
군사라는 건 언제나 그런 법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주군의 의사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주군이 싫어하고 반발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주군에게 좋은 일이라면 관철시켜야 하는 것이 군사의 일이다.
결코 밀어낼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게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결정한 이현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치울 것을 치우시죠.”
“……치울 것?”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할 일이 이미 끝났음에도 아직 자신들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양반들에게 제 주제를 알려줘야죠. 그러면 모든 것은 자연히 해결될 겁니다.”
이현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 강진호도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기다리고 있었지.”
강진호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제 다시 사냥을 시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