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85
#584.
고민하다 (4)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중걸은 목이 탄다는 듯 손을 뻗어 술을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말을 많이 해서일까?
그럴 리가.
이중걸도 알고 있었다. 지금 그의 목이 타는 것은 강진호라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놈은…… 유능합니다.”
이중걸은 결국 이 말을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적을 인정하는 것과 적을 칭찬하는 것은 다르다. 적어도 지금처럼 적을 상대하겠답시고 의지를 모을 때만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 전제로 깔아두고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 강진호에 대한 무시를 확실하게 뽑아두고 진행해야 한다.
“많은 분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강진호는 결코 힘만 센 멍청이가 아닙니다.”
조 이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아니요. 모르고 있습니다.”
이중걸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강진호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치밀한 사람입니다.”
이사들의 얼굴 표정이 미묘해졌다.
“하나…….”
“제 말을 믿으십시오.”
이중걸은 알고 있었다.
지금껏 강진호의 손에 무너진 이들은 대부분 강진호를 경시했다. 그건 이중걸조차 마찬가지였다. 강진호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가 이거다.
단 한 번의 틈을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총회를 찬탈해 낸 강진호는 방진훈을 꼭두각시로 내세우고 완벽하게 총회를 장악했다.
“강진호가 총회를 장악한 이후로부터 영남회를 무너뜨리고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하십니까?”
“…….”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영남회와 총회의 혼란을 다잡는 데 정신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 그런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신 분 계십니까?”
대답은 없었다.
이중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죠. 급진적이다, 너무 빠르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일을 벌인다. 하지만 결과는 이겁니다. 언젠가는 파탄이 날 것이고, 파탄이 나면 그 틈을 파고들어 제 권리를 찾겠다 생각하신 분들도 많았겠죠. 하나 제가 지금 확실하게 말씀드리 건데!”
이중걸이 잠시 뜸을 들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으음.”
침음성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강진호는 멍청하지 않습니다. 되레 무척이나 똑똑한 놈입니다. 거기에 그놈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게 계산된 것이든, 본능적인 것이든 말입니다. 적소에 인재를 배치하여 조직을 굴릴 줄 아는 놈입니다. 우리는 불협화음이 나기를 기다렸지만, 총회는 지금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강진호를 상대하는 이들은 그저 강진호의 무력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더 강한 힘으로 짓누른다면 힘만 믿는 그놈은 버티지 못할 거라 여긴 겁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중걸이 입술을 핥았다.
그 결과는 굳이 그의 입으로 언급할 것도 없었다.
“모두가 그의 힘을 넘어서지 못했소이다. 하지만 내가 장담하건대, 그놈의 힘을 넘어선다고 해도 그놈을 쓰러뜨릴 수는 없소. 왜냐면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힘을 모두 동원한 적이 없거든. 그가 지금까지 자신에게 달려든 이들을 단신으로 상대한 것을 그래도 괜찮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외다. 만약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적이 나타난다면? 그놈은 서슴없이 끌어 쓸 수 있는 힘을 모두 끌어 쓸 거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손발을 끊어야지.”
이중걸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단 한 번의 기회에 손발을 모두 끊어버리고 투입할 수 있는 힘을 모조리 투입해서 목을 쳐버려야 합니다.”
“회주님.”
조 이사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은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실행하느냐입니다. 회주님은 이제 우리 모두와 함께 간다고 하셨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주십시오.”
이중걸이 모두를 쓰윽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을 피하는 이들은 없다. 오히려 기이한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사냥개들이 달아올랐군.’
그래, 이해한다.
이중걸도 비슷한 심정이었으니까.
그들은 너무도 오래 전쟁과 멀어져 있었다. 한때는 적이 두려워 잠도 이루지 못하는 가혹한 삶을 살던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평화란 것은 심장을 조금도 뛰게 하지 못하는 지루함의 반복이나 마찬가지였다.
두려울 것이다.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심장이 뛸 것이다. 아드레날린에 중독되어 버린 이들이 머릿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뇌 내 마약에 젖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 이중걸도 마찬가지겠지.
“놈의 손발을 끊는 것은 이쪽에서 합니다.”
이사들의 눈이 빛났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여러분은 총회 내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총회 내의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들은 대부분 여러분의 사제거나 제자들이죠.”
“그렇습니다.”
“그들을 움직여 잠시 동안 총회를 마비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방진훈 일파가 그걸 두고 보겠습니까?”
이중걸이 미소를 지었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는 회초리가 답이지요. 그 아이들에게는 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회초리를 내리는 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살짝 상기된 얼굴이 보인다.
‘그렇겠지.’
강진호는 천외천의 존재다. 이들 역시 강진호를 필연적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자신이 직접 강진호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방진훈은 달랐다.
이들이 정말 증오하는 이는 강진호가 아니라 방진훈이다. 강진호는 그저 군림할 뿐이지만, 방진훈은 실질적으로 그들이 가졌던 명예와 권환을 모두 가져가 버린 존재니까.
한때는 그들과 같거나, 더 밑에 있던 이가 총회를 장악하고 그들을 밀어내 버린 것이다. 누가 원한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방진훈을 제 손으로 징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이 이사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그럼 강진호는?”
이중걸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강진호를 잡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구요. 솔직히 말씀드리죠. 우리 힘만으로 강진호를 상대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회, 회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잘나가다가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인가.
살짝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이중걸이 손을 들어 이사들을 제지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그를 상대한다면 못할 것도 없겠죠. 하지만 그 희생이 너무 큽니다. 여기에 있는 이들의 태반이 죽어 나간 다음에 정권을 되찾는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으음, 그렇지요.”
순식간에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중걸은 그 광경을 보며 쓴웃음을 삼켰다.
‘태반?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하겠지.’
의욕이 있다는 것과 능력이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이곳에 있는 이들만으로 강진호를 상대하려 한다면, 목숨에 백 개쯤 있어도 순식간에 갈려 나갈 것이다.
이중걸은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이들은 전혀 전력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 강진호를 상대하는 순간만큼은 말이다.
“그러니 힘이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동원할 수 있는 외부의 힘이 없잖습니까?”
이미 총회는 한국을 일통했다. 그건 한국 내에는 더 이상의 외부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물론 총회라는 조직 자체를 혐오하여 자신들만의 전승을 유지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이들이 굳이 이중걸 등을 도와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소개시켜 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반가운 얼굴일지도 모르지요.”
“예?”
이중걸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헉?”
“아, 아니, 저 사람이?”
“세상에!”
이곳에 있는 이들은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이들이었다. 웬만한 일에는 결코 놀라움을 보이지 않는 이들이다. 하지만 문 뒤에 있는 이를 본 이사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휠체어.
커다란 전동 휠체어에 작은 아이가 타고 있었다.
아니다. 아이가 아니었다.
팔다리가 없어서 몸이 작아 보일 뿐이지, 휠체어에 타고 있는 이는 그들과 같은 노인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그 노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어떻게 김석일이 여기에…….”
김석일.
과거 영남회의 회장이었던 김석일이 이곳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위이이잉.
김석일은 무표정한 얼굴로 전동 휠체어를 움직여 안으로 들어왔다. 전동 휠체어의 바퀴 소리가 무척 크게 들릴 만큼 회의실 내부가 조용해졌다.
“회, 회장님!”
영남회의 이사들은 두려움과 감격이 뒤섞인 얼굴로 김석일을 바라보았다.
“살아 계셨습니까?”
“다들 돌아가신 줄 알고…….”
김석일이 고개를 슬쩍 들어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죽어야 할 놈이 살아 돌아왔더니, 다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로군.”
“…….”
다들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영남회가 습격당한 그날 이후로 김석일은 그 자취를 감췄다. 그렇기에 다들 김석일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김석일이 버젓이 살아 나타난 것이다.
물론 팔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버젓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겠지만 말이다.
“회장님, 그 몸은…….”
김석일이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놈에게 잡혔는데, 이 꼴이나마 살아남은 게 다행이지. 그놈에게 말이야.”
그놈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김석일의 얼굴이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분노 때문에?
아니, 아니다.
저건 공포다.
그리고 그 모습이 이사들의 마음을 스산하게 만들었다. 아마 지금 김석일은 강진호를 언급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공포와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번 일이 실패한다면 그들 역시 김석일과 같은 꼴이 될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당장에라도 도망가고 싶은 공포가 그들을 지배했다.
“그리 걱정할 것 없소이다.”
김석일이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이 꼴로 이 자리에 돌아온 이유가 뭐겠소이까. 그놈을 상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돌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확신…….”
“그렇소.”
김석일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죽고 싶었지. 정말 죽고 싶었지. 당신들은 상상도 못할 거요. 무인이 무공을 잃고 이런 꼴이 된다는 것은 죽는 것만 못하니까. 하루에도 수십 번 혀를 물고 싶었소이다.”
고개를 돌리는 이들.
차마 김석일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이들.
그만큼이나 김석일의 말은 끔찍했다.
그들은 저 꼴이 되어 살 수 있을까?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죽지 못한 것은 오로지 하나 때문이오. 그놈을 죽여야 하니까, 복수해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숨죽이고 기다렸소. 오직 이 한순간을 위해서.”
김석일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준비가 끝났소이다. 나는 강진호를 죽일 거요. 그 강진호를 죽이고, 그놈의 목에 이를 박아 넣고 피를 마실 것이오. 이제…… 이제 내가 그 방법을 말해주겠소.”
섬뜩한 김석일의 목소리에 다들 한 가지를 직감했다.
이제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왔다.
이제 누구도 달아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