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89
#588.
습격하다 (3)
“저는…….”
쉽사리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아니라고 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고, 나는 아이들의 아픔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의 입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보육원이 아니었다. 총회였다.
‘아버지 말이 맞구나.’
그의 성향은 마공을 익힐 이들을 선별하던 과정을 돌이켜 보면 극명하다.
고통을 주고 압박을 한다. 그래서 목숨마저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이들만 끌고 간다.
그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방치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방치한 것이 아니라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 강진호와는 관계가 없으니까.
완벽한 적자생존, 그리고 강자존.
그게 강진호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사고방식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극명한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강진호다. 자신에게 쓸모가 있어 보이는 이들은 목숨을 걸 정도로 혹독하게 단련시켜 끌고 가고,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은 머리에서 지워 버린다.
그게 강진호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런 이가 복지 재단을 만든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 있을까.
강진호는 확고한 예감을 느꼈다.
이대로 만약 아무런 생각 없이 복지 재단을 운영한다면, 언젠가는 심각한 파탄이 나고 말 것이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
모른다.
해결책을 알았다면 진즉에 해결을 했을 것이다. 해결책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이러고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강진호는 한 가지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홀로 해결할 수 없다면, 내 안에 답이 없다면 물어보면 된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지하게 물어오는 강진호를 보며 강유환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그래야 내 자식이지.”
강유환은 강진호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강진호는 잘났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자식이다. 그의 자식이지만, 한 번씩은 오싹할 정도로 강진호는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코 오만하지 않다.
자신이 잘 모르거나 부족한 점이 있다면 서슴없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결코 자신이 타인보다 뛰어나다는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그러면 된다.
그럼 사람은 발전하는 것이다.
“아들, 이 모든 문제가 어디서 발생하는 건지 알고 있니?”
“……제 성격이요.”
“아냐.”
강유환은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성격적인 문제가 아냐. 그건 착각이야. 사실 이 모든 문제는 성격이 아니라, 네가 너무 잘났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야.”
“예?”
“군대에서 뭐가 힘들었니?”
강진호는 곰곰이 고민을 해보았다.
“딱히…….”
“그렇지?”
강유환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군 생활을 끔찍하게 여기기 마련이지. 부여되는 일이 자신의 체력을 넘어서는 일이라 힘들기도 하고, 내무 생활이 힘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그런데 너는 그런 게 조금도 힘들지 않았잖아.”
“그렇죠.”
“그런데 네가 군대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에 공감할 수 있을까?”
강진호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주영기 건이 있겠지만, 이건 핀트가 조금 달랐다. 아버지는 주영기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일반적인 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강진호가 공감할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강진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힘들 것 같네요.”
“그래.”
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군대뿐 아니다. 대학도, 회사도…… 힘들어하는 이들은 많아. 네가 그들이 왜 힘들어하는지, 왜 고통스러워하는지 공감할 수 없다면, 네 복지라는 건 그저 단순한 동정에 지나지 않아.”
목이 탄다는 듯 물을 한 컵 들이켠 아버지가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네가 지금 하는 일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보이니까 그냥 내가 가진 돈을 써서 그 상황을 바꿔보겠다는 수준이야. 깊은 고민이 없지.”
“……그럼 안 되는 겁니까?”
강유환이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연히 되지, 왜 안 돼?”
“예?”
강유환이 낄낄 웃었다.
“아버지는 위선도 악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누군가가 위선을 부려 남을 돕는다고 해도, 그 도움을 받은 이에게는 선과 다를 게 없거든. 어쨌든 남을 돕는다는 행위 자체는 훌륭한 일이야. 하지만 우리 진호가 겨우 그런 정도로 만족할 리는 없겠지?”
“예.”
강진호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나은 재단을 만들고 싶다면, 더 많은 것을 경험해 봐라. 그리고 왜 사람들이 힘들어하는지도 이해해 봐. 그리고 모르는 것이 있다면 공부해라. 대학은 그런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 안에 배울 것이 넘쳐 나지. 그저 학점이나 따려고 들면 배울 것이 없겠지만, 네가 그 안에서 지식을 추구한다면 수많은 것들이 너를 도울 거야.”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그는 복지에 대해 모른다. 지금 그가 복지를 하겠다고 설치는 것도 ‘좋은 마음과 자본이 있다면 누군가는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도와주겠지’라는 얄팍한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무학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올바른 길을 알고 제대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시간을 들인다고 해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저 마음과 노력만으로는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지식을 갈구해야 한다.
“이 애비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존중할 거야. 하지만 내 아들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뭔가를 하는 건 지켜볼 수가 없다. 하려면 제대로.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느새 욕실에서 나와 앉아 있던 강은영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한자리 주는 거야?”
“혼난다.”
“……아, 왜! 나 잘할 수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는 거나 똑바로 해.”
“됐거든요. 저는 저녁에 많은 일을 하거든요.”
강진호는 피식 웃으면서 숟가락을 들었다. 일단 밥을 마저 먹어야겠지만, 아버지가 던져 준 화두는 꽤나 오랫동안 그를 고민하게 할 것 같았다.
부우우우우웅.
차가 도로 위를 쭉쭉 뻗어 나간다.
강진호는 액셀을 지그시 밟으면서 미간을 좁혔다.
‘공감이라…….’
이건 꽤나 어려운 화두였다.
언제나 느끼고 있는 어려움이 있다. 뒷세계를 살아가는 무인으로서의 강진호, 정확하게는 마인으로서의 강진호와 바깥세상의 강진호가 가지는 괴리.
그저 상황적인 측면에서 빗어지는 괴리가 아니다.
바깥세상에서는 부모 없는 아이들과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과 교육을 제공하여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을 고민하는 강진호가 총회에 들어가는 순간, 멀쩡한 무인들을 겁박하여 공포에 떨게 만든다.
다른 곳에서라면 우수하기 짝이 없는 인재들이건만, 그들을 병아리 가르듯 선별해 내고 개중 더 나은 이들만 끌고 나가고 있다.
그 어느 쪽이 강진호의 본심이란 말인가.
강유환의 말을 듣기 전에는 이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강유환의 말이 맞을 것이다.
‘싸구려 동정이라…….’
깊은 고민도 없이 그저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하겠다고 달려든 일이다.
그러니 그랬겠지.
조규민이나 황정후가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 줄 아느냐고 몇 번이나 말했을 때도 강진호는 그들의 말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저 ‘돈이 더 드는 일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얄팍하다.
너무도 얄팍하다.
강진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지나간 일에 연연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못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어떻게 해 나가냐는 것에 있었다.
‘재단을 운영하는 것이나 총회를 끌어나가는 것이나 다를 게 없어.’
강진호는 달라졌다.
그 스스로 달라졌다고 생각하고,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과거의 적천마존과 같은 방식으로 총회를 이끄는 것 역시 문제가 아닐까?
그가 예전과 같지 않은데, 어떻게 예전처럼 운영할 수 있단 말인가.
“흐음…….”
깊은 고민을 안고 강진호가 액셀을 더 세게 밟았다.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야! 차 왔다!”
“헐.”
차가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앉아서 휴식하고 있던 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운을 마구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명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이명환과 동기들의 얼굴에 극도의 긴장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차가 왔다는 건 단 하나를 의미한다.
강진호의 애마가 도착했다는 뜻.
이들이 신경 쓰는 차는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니까.
“이, 일단 회주실로 가시지 않을까?”
“안 돼. 그래도 준비해야 돼. 바로 왔다고 쉬는 꼴 들켰다가는 모가지 날아가.”
“그렇겠지.”
이명환은 기이함을 느끼고 있었다.
마공을 익히면서 그들은 대부분 예전보다 흉포해지고 날카로워 졌다.
좋게 포장하면 그런 것이고, 좀 더 간명하게 설명하자면 성격이 지랄 맞아졌다. 예전에는 동네 양아치였지만, 이제는 동네 미친놈의 수준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진호를 대하는 것만큼은 예전의 몇 배나 더 고분고분해졌다.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게거품을 물며 발광하던 사냥개가 주인을 보는 순간 배를 까뒤집고 낑낑대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 때문이겠지.’
느껴진다.
강진호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저 멀리에서 선명하고 강대한 마기가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끔찍하다.
이명환이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마공이라는 것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익히는 마공이 깊어질수록 서로의 마기를 좀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강진호의 마기도 예전보다 몇 십 배는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건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저 안개 뒤에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악마가 서 있는데, 내 경지가 높아질수록 악마와 자신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안개가 조금씩 걷혀가는 것이다.
그들은 마공을 익히면 익힐수록 악마의 생생한 모습을 대면하고 있었다.
“후우우욱.”
이명환이 빠르게 심호흡을 했다.
강진호가 문 앞까지 다가온 것이 느껴진다. 차라리 염라대왕을 만나는 게 덜 떨릴 것이다.
끼이이익.
문이 열린다.
그러더니 무표정한 얼굴의 강진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죽겠네, 진짜.’
강진호가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마기가 집 앞에 피워둔 모닥불이라면, 강진호의 마기는 폭발하는 화산과도 같았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진홍의 불꽃이 세상을 불태워 버릴 듯 넘실대는 느낌이다.
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려 달라고 빌고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
“흠.”
강진호가 모두를 가만히 둘러보았다.
숨 막힐 것 같은 긴장과 공포가 모두를 지배하고 있었다. 마공이 깊어지고 능력이 강해질수록 강진호의 지배력은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이명환이 고개를 들었다.
“응?”
강진호의 얼굴을 본 이명환이 고개를 갸웃했다.
눈앞의 강진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요즘 생활하고 하는 데 뭐 불편한 거나 그런 거 없나?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데.”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묻는 강진호를 보는 순간, 공포심이 수십 배로 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민 끝에 나온 선의가 강당을 공포로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