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59
#58.
입학하다 (2)
강진호는 금동이를 타고 성심 보육원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을 보니 톡이 들어와 있었다.
야, 오늘 오리엔테이션인 거 알지?
야, 씹냐?
안 봐?
강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여자의 뻔뻔함은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걸까?
강진호는 한세연이 보낸 톡을 쿨하게 무시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리.
통화음을 울리고 이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진호야.]“나와. 도착했다.”
[지금 바로 나갈게.]문이 열리고 박유민이 절뚝거리며 걸어 나왔다.
“빨리 왔네?”
“그래.”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전거를 돌렸다.
“가자.”
“응.”
박유민이 강진호의 자전거 뒷좌석에 올랐다.
뒷좌석에 타는 박유민의 표정은 미묘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최고급 자전거의 뒷좌석에 흉물스럽게 설치된 짐받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찝찝한데, 이 짐받이에 실릴 짐이 본인이라는 사실이 뭔가 박유민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자주 있는 일이건만, 박유민은 매번 강진호의 자전거에 탈 때마다 긴장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살살 몰아.”
“그러고 있어, 항상.”
“웃기지 마!”
강진호는 박유민의 절규를 무시하고 페달을 밟았다.
이내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가 쭉쭉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박유민.”
“왜?”
“너, 차 필요하지 않냐?”
“응?”
강진호는 슬쩍 박유민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박유민은 같은 거리를 걸어도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많은 체력을 소모하고, 몇 배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항상 남들보다 서둘러야 했고, 길을 걸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강진호는 그 기분을 알고 있다.
모멸감.
자괴감.
하지만 차가 있다면 적어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면허는 땄지?”
“응.”
“그럼 차 한 대쯤 있으면 합숙소나 경기장 가기도 편하고, 통학도 편할 것 아냐.”
“아냐. 난 됐어.”
“왜?”
“아직은 괜찮아. 숙소 가는 건 데리러 오시니까 별 불편한 게 없고, 아직은 차 몰고 다니는 건 아닌 것 같아.”
“원장님 차 있지?”
“응, 있으시지. 좀 오래됐지만.”
“네가 운전을 하면 원장님도 좀 편해지실 텐데?”
“그렇긴 한데…….”
박유민이 말을 얼버무렸다.
“남는 차 있는데, 한 대 줄까?”
“아니. 괜찮아.”
“…….”
“차가 필요하면 내가 내 돈으로 살게. 그건 친구 사이에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아냐.”
조심스럽지만 확고한 목소리였다.
강진호가 기분 상해할 것을 조심했지만, 자신의 의지는 확고하게 담았다.
강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도 프로지.”
“나, 돈 벌어. 필요하면 이제 차 정도는 한 대 살 수 있어. 할부가 얼마나 나오느냐의 문제지. 정규 수입이 애매하게 잡혀서.”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같은 기세라면 박유민이 억대 연봉을 벌어들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넘치는데, 한판 붙을까?”
“에이, 내가 널 어떻게 이겨?”
“하하하하!”
강진호는 웃어버렸다.
박유민이 마음먹고 한다면 강진호가 이기기 힘들다. 아무리 재야 고수로 이름이 알려진 강진호지만, 그 분야의 재능을 타고난 박유민에게는 이길 수가 없었다.
무공으로 강화된 두뇌와 빠른 손놀림, 그리고 시간을 쪼개서 사용할 수 있는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박유민은 이길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비슷한 수준으로 치고받을 수 있을 뿐이다.
강진호는 그것을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강진호라 해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른 것이다. 강진호보다 똑똑한 사람은 세상에 발에 채일 만큼 많고, 강진호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길 가다 보면 하나씩 있었다.
그 모든 분야에서 다른 이들을 모두 이기길 바라는 것은 과욕이고, 만용이었다.
박유민은 게임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재미로 한두 판 붙는다면 강진호가 이길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마음먹고 준비한다면 강진호가 이길 확률은 한없이 낮아질 것이다.
말은 잘 안 하지만, 박유민 역시 자기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항상 무시 받아온 그가 처음으로 다른 이들을 이기고, 선망의 대상이 되게 해준 게임이지 않은가.
그런데 차를 준다는 말은 확고하게 거절하고 자신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은 겸손하게 발을 빼버린다.
강진호는 박유민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설프게 만들어낸 예의나 가식적인 겸손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배려가 좋았다.
강진호에게는 없는 것들이었다.
“이번에 대회 있지?”
“응. 봄 대회 시작했어.”
“준비는?”
“그냥 뭐, 하고 있지.”
“우승해라.”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냐.”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우승해라.”
강진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듯이.
박유민도 강진호가 진지하다는 것을 알고는 얼굴을 굳혔다.
“대한민국 최고, 세계 최고가 돼봐. 정상에 서봐라. 그건 지금까지 네가 느낀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일 테니까.”
“그래, 노력해 볼게.”
“그럼 내가 널 꺾어주지. 그럼 내가 세계 최고다.”
“야! 너, 날로 먹겠다는 거냐?”
강진호는 미소를 지으며 페달을 밟았다.
박유민도 빙긋 웃고는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어쩌다 이리 친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무뚝뚝한 친구가 그는 항상 고마웠다.
하나만 빼면.
“아, 천천히 좀 가자고!”
“천천히 가고 있는데?”
“으아아아! 앞에 사람! 사라아아아암!”
“진정해.”
내가 미쳤지.
어쩌려고 이 자전거를 또 탔는가.
박유민은 눈물을 뿌리며 손잡이가 부러지도록 힘을 주었다.
‘내가 차 사고 만다!’
급뽐뿌를 받은 박유민이었다.
* * *
“준비에는 차질이 없나?”
“준비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대학에 입학하는 것뿐입니다.”
황정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저?”
“……제가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만전을 기하게.”
“예, 회장님.”
조규민은 황정후를 바라보았다.
평소 황정후 회장은 과하다 싶을 만큼 화통했다. 커다란 금액이 걸린 계약을 과감하게 파기하기도 하고, 누구라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큰 줄기를 정하면 자잘한 일처리 따위는 간섭 없이 맡겨 버리는 대범함이 있고, 실패를 경험한 부하에게 책임을 넘기지 않고 다시 신뢰를 주는 자애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강진호와 관련된 일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걱정 많은 노인처럼 매사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돌다리를 두들기는 수준이 아니라 다리를 건너기 위해 보수공사를 해버리는 수준이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준비를 해야 한단 말인가.
조규민이 전공 서적까지 사다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회장님.”
“음?”
“제 생각이 짧아서 그런지 몰라도 대학 입학이란 그리 큰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리 신경을 곤두세우시는 건지…….”
“큰일이 아냐?”
황정후의 얼굴에 살짝 노화가 떠올랐다.
조규민은 그 기색을 알아채고는 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 황정후는 못마땅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조규민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대학이란 사회에 진입하는 문과도 같네. 대학생과 고등학생의 차이는 단순히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차이처럼 나이와 학력의 차이가 아닐세.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나이지.”
“그렇습니다.”
“내가 준비하라는 것은 그가 대학 생활을 잘하게 보살피라는 것이 아닐세. 그가 귀찮은 일을 겪지 않도록 잘 지켜보라는 말이지.”
“……이해했습니다.”
조규민은 멍청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이야기로도 황정후가 무엇을 우려하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이 자리에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강진호의 성격과 행동 패턴이라면 어디선가 트러블이 생길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만약 그 일이 커지게 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무서운 아이니만큼 알아서 처신하겠지만, 때로는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커질 여지가 있네. 자네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하고, 혹여나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빠르게 내게 보고하는 것으로 임무의 팔 할은 달성하는 것이야.”
“예, 회장님.”
“그럼 나가보게.”
“예, 회장님. 그럼 이만.”
문을 닫고 나온 조규민은 기이한 표정으로 회장실을 바라보았다.
황정후 회장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뭔가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혹시나 황정후 회장은 다른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닐까?
조규민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흐음…….”
황정후는 창가로 다가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대학이라…….’
황정후는 불안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걱정 많은 노인네의 오지랖 정도로 보이겠지만, 강진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황정후로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황정후의 눈에 강진호는 폭탄이다.
격발장치가 제거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장약만으로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폭탄.
강진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안함을 느낄 것이다.
‘그리 잘 알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야.’
따지고 보면 그 역시 강진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는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는 강진호가 가진 이면성을 설명할 수 없었다. 때로 동년배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그 기묘한 이질성 역시 설명할 수 없었다.
분명 그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황정후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 이질성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 폭력성과 그 악마성.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그 야만성을 황정후는 똑똑히 느꼈다. 전쟁을 겪고, 군사정부를 겪고, 해외의 수많은 건설현장을 누비면서 야만을 겪고 또 겪어 이제는 면역이 되었다고 생각한 황정후마저 떨게 만든, 그 광포한 야만성이 드러나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지.’
그 일만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강진호의 안전이 곧 황정후의 안전인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을 제외한다 해도 황정후는 강진호가 야만을 드러내고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느새 정이라도 들었는지, 그의 삶을 걱정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답지 않게 말이야.”
황정후는 미묘하게 웃었다.
직접 낳은 자식들에게도 느끼지 못한 정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에게서 느끼게 될 줄이야.
황정후는 가볍게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고 길게 빨았다.
뭔가 간질간질한 기분이다.
황정후와 강진호가 잘 맞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죽음 직전까지 가면서 황정후에게 변화가 생긴 것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변화가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잊지는 말아야지.”
황정후가 강진호를 돌보는 게 아니라 강진호가 황정후를 돌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요즘 워낙 평범한 모습만 보여주다 보니 한 번씩 그런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이 기분에 젖어 균형을 잃는 순간, 황정후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 긴장감이 황정후를 즐겁게 했다.
‘좀 더 재미있어 지겠군.’
황정후는 미소 지은 얼굴로 담배를 비벼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