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03
#602.
선보이다 (2)
‘뭐 하는 거지?’
최 상무는 의아한 눈으로 나이트 위긴스가 하는 짓을 바라보았다. 단순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최 상무는 알고 있었다.
분명 뭔가를 하고 있는데, 그게 뭔지를 알 수가 없다.
‘서양의 무학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했어.’
소문이야 들었다.
서양의 무인들은 동양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체계를 사용한다는 것을.
무엇인지도 안다.
‘마법이라는 건가?’
세상의 모든 것에는 비밀이 없다. 지금이야 나름 비밀을 숨길 수 있는 시대지만, 과거에는 말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정보에 대한 검증과 논리적인 사고가 기본으로 퍼져 있는 지금도 유언비어 하나를 막아내는 데 어마어마한 노력이 들기 마련인데, 과거에는 오죽했겠는가.
그렇기에 무인은 자신들에 대한 소문을 환상으로 포장했다.
동양은 무와 협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서양은 마법과 검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문제는 그 대략적인 형태는 짐작하지만, 그게 대체 어떤 위력과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민할 필요는 없는 문제였다.
나이트 위긴스가 지금부터 알려줄 테니 말이다.
우르르르릉!
흔들린다.
세상이 흔들리고 있었다.
“으!”
최 상무는 즉시 자세를 낮췄다.
‘지진?’
착각이 아니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몸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주변의 땅이 지진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큭!”
최 상무는 이를 갈았다.
설마 이게 계속 유지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무학에서 처음으로 배우는 것이 바로 보법이다.
바닥을 내딛는 법.
동양의 무학은 육체를 바닥에 고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단단히 발을 내딛고 그 안정감을 바탕으로 공격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흔들리는 땅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당연히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하찮은 짓을!”
최 상무의 격한 반응을 보며 나이트 위긴스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영광인 줄 여기는 게 좋을 거요.”
나이트 위긴스가 검을 아래로 떨치며 말했다.
“유럽에서도 나 같은 듀얼 클래스는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오늘 눈 호강을 할 테니, 관람료는 나중에 두둑이 챙겨주시오.”
“이놈이!”
나이트 위긴스는 미소를 머금었다.
‘가볍구나.’
전장에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른다.
상대가 약하기 때문에 마음이 가벼운 것이 아니다.
어깨에 짊어진 짐을 모두 내려놓고 싸우기 때문에 가벼운 것이다.
나이트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있을 때는 그 이름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무거웠다.
‘그 짐이야 이제 로드가 지겠지.’
나이트 위긴스는 스스로가 조금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강진호를 따르는 게 대단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나이트 위긴스는 잃은 것이 없었다.
그저 그가 짊어져야만 하던 부담을 강진호에게 떠넘겼을 뿐이다. 그리고 강진호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짐을 떠안았다.
‘대단한 사람이지.’
그는 강한 사람이다.
무력이 강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강하다. 타인의 짐을 도맡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말없이 등으로 이끌어 나가는 리더가 이런 존잰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럼 보답을 해야지.”
나이트 위긴스는 염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강진호에게 짐을 떠넘긴 것은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다는 뜻이지, 그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고 편해지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 첫 번째 보답이 될 것이다. 강진호가 그에게 해준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미약한 일이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아니겠는가.
나이트 위긴스의 눈에 그에게 달려드는 무인들이 보였다. 땅이 흔들린다는 것은 저들에게 꽤나 부담이 되는 모양이다. 하나같이 몸을 허공으로 띄워 올리고 날아드는 꼴을 보니 말이다.
“어설프군.”
상대를 모른다는 것은 이렇게나 위험한 것이다. 위긴스가 동양의 무인이었다면 어쩌면 저게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긴스를 상대로 몸을 움직이기 힘든 허공으로 뛰어오른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위긴스가 지팡이를 들어 올려 마나를 주입했다.
우우우우웅!
수천 마리의 벌 떼가 웅웅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위긴스의 지팡이 끝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지팡이 끝에서 수십 가닥의 빛줄기가 허공으로 날아드는 무인들을 맞아갔다.
“헉!”
“뭐, 뭐냐!”
생전 처음 보는 공격에 무인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피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피할 방도가 없다. 허공에서 대체 어떻게 피하란 말인가. 상대에게 투척할 만한 무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움직인 것이건만, 완벽하게 허를 찔린 것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버티는 것밖에 없다.
양팔을 교차하여 얼굴을 가리고 몸을 웅크린 무인들의 육체에 빛의 미사일이 틀어박혔다.
“큭!”
“으윽!”
우득거리는 뼛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진다.
기운을 최대한 끌어 올려 저항했음에도 맨몸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커다란 충격이 그들을 덮쳤다. 마치 경기가 있는 대로 실린 철권을 무방비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포수의 총을 맞은 새가 바닥으로 떨어지듯 몸을 띄운 무인들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크윽!”
바닥에 내려앉은 이들이 고개를 들어 나이트 위긴스를 노려보았다.
‘헛!’
하지만 조금 전까지도 앞쪽에 있던 나이트 위긴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어딜 보는 건가?”
당연하다는 듯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안일하군.”
퍼억!
그런 후, 목 뒤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충격에 정신이 날아가 버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최 상무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 좋다.
지진을 일으키고, 허공에 뜬 이들에게 기이한 기운을 날리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떤 원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건 실체가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 그가 본 광경만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사라졌다.
저 멀리에 있던 나이트 위긴스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바닥으로 추락한 무인들의 바로 옆에 나타난 것이다.
빠르게 이동한 것이 아니다.
저건 말 그대로 사라졌다 나타난 것이다.
사람이 어찌 공간을 격해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최 상무가 알고 있던 무학에 대한 상식이 붕괴하는 순간이었다.
경악으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쯧쯧.”
나이트 위긴스는 영 마뜩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모르는 적을 상대한다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기술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 그만큼 조심에 조심을 기해야 하거늘, 일단 달려들기부터 하다니.”
적이 약한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온전한 적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 순간이 지나면 그와 어깨를 맞대고 함께 싸워야 할 동료인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이 이리 생각이 없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교육이 필요하겠군.’
예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지만, 총회는 너무 중구난방인 단체였다.
편제가 있기는 하지만 스승이 따로 있다 보니, 그 편제보다 스승의 말을 더 따른다. 게다가 일인전승으로 가르침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 집단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기본적인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무인 하나하나는 나름 특색이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활용되지 않는 장점은 장점이 아니었다.
그의 무학을 배우지 않더라도 최소한 집단전에 대한 개념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은가?”
“으…….”
“그렇게 겁먹을 것 없네. 검면으로 쳤으니까 말일세. 검날로 쳤다면 저리 쓰러졌겠는가, 목이 날아갔지.”
나이트 위긴스는 외계인이라도 보는 듯한 시선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인간이란 원래 자신의 이해 범위를 벗어난 일을 목격하게 되면 공포를 느끼는 법이다.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이 달가울 리는 없지만, 얕잡혀 보이는 것보다야 백배 낫지 않은가.
“어떻게 할까?”
나이트 위긴스가 살짝 고민이 된다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의를 상실한 얼굴?
아니, 당황한 얼굴이다.
지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해하지 못해서 모든 것을 경계하는 얼굴.
하지만 그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바로 앞에 적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신음하던 이들이 벌떡벌떡 몸을 일으켜 나이트 위긴스에게 달려들었다.
그 저돌성은 높이 사줄 만하지만, 상대와의 실력 차를 감안하지 못하고 일단 공격하는 건 짐승도 하지 않는 짓이다.
‘멍청해.’
나이트 위긴스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의 손은 더없이 영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콰득! 콰득! 콰득!
세 번의 소음과 세 번의 신음.
나이트 위긴스의 지팡이에 정확하게 목을 찔린 이들이 목을 부여잡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아마 한동안은 숨도 쉬지 못할 것이다.
“멀쩡한 칼 놔두고 지팡이로 후려치려니 영화에 나오던 전투 법사라도 된 기분이지만, 오해하지 말게. 이쪽은 엄연히 검 쪽이 특기니까.”
제압에는 이게 더 편할 뿐이다.
바닥에 있는 이들이 우르르 몸을 일으켰다. 그 광경을 보며 나이트 위긴스가 바닥을 지팡이로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이변이 일어난다.
“어어…….”
“으헉! 이게 뭐야!”
“떠, 떠오른다!”
나이트 위긴스의 주변을 둘러싼 무인들이 허공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마치 무중력 공간에 있는 것처럼 허우적거리며 말이다.
천천히, 천천히.
결코 빠르지 않게.
하지만 끊임없이 떠오른다. 10미터 이상 허공으로 떠오른 이들이 허우적거렸다.
‘대체 뭐냔 말이다.’
최 상무가 넋이 나간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사람이 허공으로 저리 떠오를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당황하지 마라!”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최 상무의 등 뒤에서 커다란 음성이 터져 나왔다. 장로 중 누군가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천근추를 시전해라! 어차피 기운에 불과하다. 저항할 수 있다!”
그 말을 이해했는지, 무인들이 단전 앞에 손을 모으고 천근추를 시전했다. 기운으로 무게를 늘린 이들이 천천히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호오?”
나이트 위긴스는 저항하는 이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저들에게 있어서 그의 리버스 그래피티가 신기한 기술이라면, 나이트 위긴스에게는 저들의 천근추가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비슷한 원리를 가진 것 같은데 운용에 따라서 차이가 극심하게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고 할까?
개안하는 느낌이었다.
“신기하고 대단하군. 하지만…….”
나이트 위긴스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건 해답이 아닐 텐데 말이야.”
살짝 들어 올려져 있던 나이트 위긴스의 손이 허공을 짓누르며 아래로 향한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떠 있던 이들이 가공할 속도로 아래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뭐야!”
“이런 빌어먹을!”
방향이 바뀌어 버린 중력과 육체를 아래로 내리 누르는 천근추, 그 두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무인들의 육체가 유성처럼 바닥으로 처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