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04
#603.
선보이다 (3)
쿠웅! 쿠우우웅!
먼지구름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광경 자체는 장관이지만, 그 광경을 만들어낸 것이 바닥으로 틀어박힌 인간의 육체라고 생각하면 그리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지는 못할 것이다.
나이트 위긴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흐음, 좀 과한 것 같은데…….”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러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맹렬한 돌풍이 먼지구름을 날려 버리자, 바닥에 박혀 있는 이들이 보였다.
그리 깊이 박힌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가 바닥으로 떨어져 그 자국이 남을 정도라면 얼마나 강하게 부딪혔겠는가.
나이트 위긴스가 머리를 긁었다.
사실 이렇게 심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 역시 저 천근추라는 무학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이해가 없어 벌어진 일이다. 그저 무게를 늘리는 거라면 중력과는 상관이 없으니 별다를 게 없을 거라 여겼는데…….
“아래쪽으로 향하는 힘을 만들어내는 건 줄 내가 알았나.”
바닥에 박힌 이들이 몸을 뒤튼다. 몇몇은 시뻘건 선지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큰 부상(?)을 입은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당장 죽을 사람은 없어 보이니 괜찮지 않을까?
“오늘의 교훈을 몸에 새기도록 하게.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지도 않고 일단 달려드는 것은 무모한 짓이지. 목숨을 여벌로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면 낯선 이는 일단 경계해야지.”
경계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단 몇 분이라도 더 멀쩡했겠지.
“근본적인 문제야 따로 있겠지. 바인딩.”
나이트 위긴스가 수인을 맺자 바닥에서 나무뿌리 같은 것들이 우르르 튀어나오더니, 쓰러져 있던 무인들을 친친 옭아맸다.
나이트 위긴스는 묶인 이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최 상무를 향해 걸어갔다.
“오래 기다리셨소?”
최 상무가 뭔가 말을 하려는 듯이 입을 달싹였다. 꽤 길다고 느껴질 시간 동안 머뭇거리던 최 상무가 허탈함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이트라고 하지 않았나?”
“음, 그렇소만?”
“그럼 검을 써야지.”
최 상무의 말에 나이트 위긴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이거, 설명하자면 좀 길다오. 예전에는 확실히 나이트의 칭호는 기사만의 전유물이던 시절도 있었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실용성을 추구하지 않소? 보시다시피 이게 활용도가 꽤나 높다오. 더구나 현대가 되면서 마법의 중요성은 더 올라갔지.”
최 상무가 뭔가 말하려 하자, 나이트 위긴스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아, 그렇다고 실망할 건 없소.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듀얼 클래스거든. 이제는 검을 보여 드리지.”
지팡이를 잡은 나이트 위긴스의 손이 허공으로 쑥 들어가더니, 지팡이는 사라지고 맨손만 빠져나왔다.
“……상대에 따라서 다른 기술을 쓰는 건가?”
“그렇지는 않소.”
나이트 위긴스는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다.
“하나하나 기술을 따로 써야 한다면 듀얼 클래스로 인정받을 수 없지. 나는 그대들의 말로 하자면 마검사라오. 마법과 검을 동시에 쓰지. 멋지지 않소?”
“멋져?”
“로망이지 않소.”
나이트 위긴스가 킬킬대며 말했다.
“멋을 모르는 동료들이 딴지를 걸어 대기는 하지만, 사실 마검사라는 건 선택받은 몇몇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란 말이오. 용사의 징표 같은 거지.”
“미친놈.”
최 상무의 깔끔한 감상에 나이트 위긴스의 어깨가 처졌다.
“그걸 인정하는 게 뭐 그리 어렵소?”
“닥쳐라, 이 빌어먹을 놈아! 네놈이 강하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물론 알고 있소. 여기서 끝난다면 나 역시 실망스러울 테지.”
최 상무의 가슴이 조여오고 있었다.
나이트 위긴스는 여유가 넘쳤다. 그 사실이 그를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강진호도 아니고, 저딴 놈에게…….’
그 강진호가 직접 데리고 온 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보통 놈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최 상무님, 진정하십시오.”
“아…….”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최 상무가 마음을 다잡았다.
“사술 쓰는 놈을 처음 만나보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결국 사술은 사술. 정공을 따라오지는 못하는 법이지요.”
“맞습니다.”
최 상무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라도 이 불안함을 날려 버리려 했지만, 가슴을 채우고 있는 불안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저걸 사술이라고 할 수 있나?’
사술이 뭐 별건가.
이해할 수 없으면 사술이지. 이놈들의 레퍼토리는 바뀌지를 않는다.
그래도 최 상무는 나름 안도했다.
적의 능력을 사술이라 비하한다는 것은 아직 싸울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전의를 거의 상실할 뻔한 최 상무와는 다르게 말이다.
우스운 일이었다.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를 이해해 버린 최 상무는 전의를 잃어가고 있지만, 상대의 능력을 사술이라고 격하하는 이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나이트 위긴스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무지가 용기를 낳는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대로 그 용기가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이 순간만은 저들의 무지를 감사해야 할 것이다.
‘대체 강진호는 어떻게 저런 놈들만 골라 데리고 오는 거지?’
그 바토르란 자도 그랬다.
손을 섞어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그 육체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외공의 정점에 달한 듯 그 거대한 육체.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최 상무는 압도당해 버렸다.
그런데 이 서양 놈도 보통이 아니잖은가.
“그런 눈으로 볼 것 없소. 나도 사람이니까.”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이놈!”
“내 능력에 놀란 것 아니었소?”
“…….”
저 능글맞은 얼굴에 지금이라도 주먹을 처 날려 버리고 싶지만, 경거망동할 수가 없었다.
“그리 머리를 짜낼 것 없소. 어차피 그대들의 미래는 정해졌으니까.”
“정해졌다고?”
“나를 상대하면서도 곤란을 겪는 이들이 로드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내가 열 명이 있어도 로드 하나를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
최 상무의 눈이 떨렸다.
“강진호가 그렇게나 강하다는 말인가?”
“여긴 눈뜬장님들만 사는 곳인가?”
이건 그저 위협이 아니었다.
정말 나이트 위긴스가 열 명이 있다 해도 강진호를 상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의 능력으로 강진호를 현혹시키고 공격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접전이 되었을 때, 나이트 위긴스는 강진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헛힘만 빼고 타격은 전혀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은 체력전으로 흘러갈 텐데, 저 바토르와 상대하면서도 지치지 않을 만큼 활화산 같은 체력을 보여준 강진호를 늙은 나이트 위긴스가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보시오, 연륜이란 말이 있지 않소. 나이가 들면 사람은 조심스러워지고 상대를 파악하는 눈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지. 그런데 당신들의 눈이란 건 전혀 쓸모가 없군. 대체 무슨 배짱으로 로드에게 대항했단 말이오?”
“닥쳐라, 이놈!”
최 상무가 분노한 듯 소리를 쳤다.
“영남회는 우리가 만든 곳이다. 우리와 김석일이 세운 곳이야. 그런 곳을 어디서 굴러 들어온 놈이 날로 처먹겠다는데, 박수라도 치고 있으라는 말이냐! 이건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은 대부분 이기고 지고의 문제입니다만.”
“웃기고 있군. 그럼 너는 네 나라가 열강의 손에 유린당한다면, 이길 수 없다고 포기하겠단 말이냐?”
“음…….”
나이트 위긴스가 머리를 긁었다.
“확실히 그리 생각하니 그쪽이 왜 그리 날뛰는지는 알 것 같소이다.”
물론 이해가 전부 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영남회라는 단체에 대한 소속감이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동일시될 수 있다는 것 자체부터가 나이트 위긴스에게는 규격 외의 일이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저런 말이 나와 버린 이상 타협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리 생각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확실히 그런 생각이라면 타협이란 없겠지. 하지만 한 가지 충고하고 싶은 건, 그런 생각이었다면 방법을 달리했어야 하오. 독립운동을 한답시고 어중이떠중이를 다 모아서 군대에 돌진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를 고려해야겠지.”
“양놈들은 말이 많군.”
“음, 그건 인정해야겠구려.”
그그그극.
나이트 위긴스가 늘어뜨린 검으로 천천히 바닥을 긁었다. 그극대는 소리가 영남회의 장로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제 와 말이 무슨 소용이겠소, 결국 우리는 적인데. 한국으로 와서 처음으로 겪는 전투가 내전이라는 것이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검을 쓸 수만 있다면 그런 건 상관없겠지. 오시오. 당신들은 해야 할 일이 있고, 나는 나의 강함을 증명해야 하니, 서로의 이해가 맞았다고 봐야겠지.”
최 상무가 살짝 들뜬 얼굴로 나이트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그저 싸우면 된다. 서로의 입장을 들먹인다고 해서 누가 병기를 놓고 물러나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왜 최 상무는 이렇게 대화를 하지 못해서 안달이란 말인가.
최 상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승산이 없음을.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는 눈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그가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기나긴 분쟁과 어둠으로 가득하던 시절을 버텨온 최 상무다. 상대의 강함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는 지금쯤 싸늘한 야산에서 백골이 되어 묻혀 있을 것이다.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
하지만 질 수밖에 없는 싸움.
그 딜레마가 최 상무를 괴롭혔다.
‘그래도 이겨야지.’
최 상무의 눈이 차가워졌다. 전투에서는 질 수 있지만, 승부에서는 질 수 없다. 여기서 그들이 무너진다면,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들이 사라질 것이다.
“준비하라고 해.”
“예.”
낮게 지시를 내린 최 상무가 입을 열었다.
“묶어라, 묶어둬라. 그걸로 충분하다. 목숨을 걸라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부상당할 각오 정도는 해라.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
“끌끌끌, 상무님도 많이 늙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죽는 한이 있어도 물러서지 말라고 했을 텐데.”
“들어 처먹지도 않는 것들이.”
최 상무가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놈들이 나이를 처먹더니 능글맞아지기만 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 능글맞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가자. 우리 땅에서 서양 놈에게 유린당하는 건 창피한 일이지.”
장로들이 서서히 나이트 위긴스를 향해 다가갔다. 나이트 위긴스는 자신을 포위해 오는 노장들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노인 학대는 딱히 취향이 아니지만.”
“너도 그렇게 어린 것 같지는 않은데? 이쪽에서 태어났으면 잔심부름은 해도 될 나이구나.”
“사양하겠소. 잔심부름 대신에 이걸 드리지.”
나이트 위긴스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검에 오러가 맺히며 눈부신 백광을 뿜어냈다.
“마법은 충분히 보여 드린 것 같으니, 이제는 검을 보여 드려야 하지 않겠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검을 갈고닦아 왔으니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더는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장로들이 나이트 위긴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좋은 자세요.”
검을 앞으로 슬쩍 내민 나이트 위긴스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장로들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