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1
#60.
입학하다 (4)
“주량이 세야 대학 생활을 잘한다고 말씀하시는 선배님이 술이 약하시진 않겠죠.”
도발이었다.
그것도 대놓고 하는 도발.
강진호의 목소리를 들은 이들의 시선이 공길영에게로 모인다. 다른 테이블 사람들도 다들 대화를 멈추고 이 상황을 흥미롭게 주시하고 있었다.
“너 장난하냐? 내가 우리학부 말술이야.”
“그럼 이런 잔은 필요 없겠죠.”
강진호는 술잔을 치우고 옆에 있는 물컵을 잡아 공길영에게 내밀었다.
“그렇죠?”
공길영은 물컵을 빤히 보다가 피식 웃고는 강진호를 살짝 노려보았다.
“나는 이걸로 마셔라?”
“아뇨. 저도 그걸로 마십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애들 것까지 제가 마십니다. 선배 한 잔에 저 세 잔. 그래서 선배가 이기면 마음대로 하시고, 선배가 지면 다른 애들한테 술 권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공길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워낙 세게 나오다 보니 살짝 불안함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지만, 본인의 입으로 말술이라고 자부해 놓고 이 조건에 빼는 것도 모양새가 빠졌다.
게다가 워낙 보는 눈이 많았다.
“너 이름이 뭐냐?”
“강진호입니다.”
“너, 내가 기억한다.”
“기억할 것 없습니다. 일단 한잔하시죠.”
강진호의 말에 공길영은 빤히 강진호를 보다가 컵에 가득 따라진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거짓말 같아?”
“글쎄요.”
강진호는 느긋하게 앞에 놓인 물컵에 술을 따라 마셨다.
한 잔, 두 잔, 세 잔.
연거푸 세 잔을 들이켜고 나서 다시 공길영에게 술을 따랐다.
“야, 진호야. 무리하는 거 아냐?”
박유민이 걱정스레 물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왜 걱정하냐는 듯이 되물을 뿐이었다.
“왜?”
“술을 그렇게…….”
강진호는 피식 웃었다.
걱정도 팔자다.
과거 강진호가 즐겨 마시던 술은 백주였다.
중원의 수많은 술 중에서도 독하기로 소문난 백주.
그리고 강진호는 그중에서도 가장 독한 사천의 백주만을 즐겨 마셨다.
그 백주에 비하면 지금 그가 마시는 소주는 술도 아니었다.
그리고 강진호가 굳이 취하려 애써도 그의 몸은 자체적으로 몸 안에 들어온 독기를 제거한다. 이 정도 술로는 아무리 마셔도 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박유민에게 가볍게 웃어주는 것으로 그의 걱정을 불식시킨 강진호가 공길영을 재촉했다.
“한 잔 더하셔야죠.”
“야,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예.”
“이걸 니가 이기면 내가 애들한테 술 안 권한다 치고, 네가 지면 그냥 하던 대로 하라는 건 너는 아무 피해 안 보겠다는 것 아냐?”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내기는 공정하지 않았다. 공정하지 않은 내기는 그도 사양이었다.
“뭘 해드릴까요?”
“네가 뭘 해줄 수 있는데?”
“말씀해 보시죠.”
공길영의 말투가 조금 딱딱하다. 일이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섰다고 생각한 이들이 조용히 둘을 주시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로도 그 분위기는 가려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게 까부네? 너, 니가 지면 여기 술자리 니가 계산해라. 애들 것 전부.”
“말도 안 돼요!”
한세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밸런스가 안 맞죠.”
“뭐가?”
강진호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기를 바꾸죠.”
“뭘로?”
“여기서 지는 사람이 여기 술자리 계산하는 겁니다. 선배가 지면 선배가 계산하세요.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한테 술 권하지 마시구요.”
“내가 하나 더 얹은 것 같은데?”
“전 세 잔이니까요. 이런 핸디라면 그 정도 조건은 추가해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 질 것 같으면 그만하시죠.”
그 말이 공길영을 자극했다.
경영학부의 주당으로 소문난 그였다. 그가 한 잔 마실 동안 강진호는 세 잔을 마시는 건데, 그걸 피할 수는 없었다. 자존심의 문제였고, 당연히 이길 싸움을 피해줄 이유도 없었다.
“그래, 하자. 너 두말하지 마라.”
“선배야말로.”
그때, 다른 선배들이 다가왔다.
상황이 좀 심각해지고 있었다. 열이 받은 공길영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이렇게 분위기가 험해지면 내기에 이긴다고 해도 좋을 게 없었다.
“뭐해, 인마? 그만하고 나와!”
“아, 놔봐.”
“야, 길영아. 너 취했냐?”
공길영이 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
“너, 내가 취한 것 봤어?”
공길영을 말리던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웬만하면 말리고 싶은데, 말려서 들을 기세가 아니었다.
“봐봐, 재밌잖아. 이런 게 있어야 오리엔테이션이지. 그래, 하자고, 후배님.”
공길영은 그 말을 끝내자마자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쭉 들이켰다.
공길영이 술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강진호가 술을 따라 세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선배 차례입니다.”
“알아.”
그러자 공길영이 다시 술을 따라 마셨다.
그렇게 술이 돌고 돌았다.
흥미진진한 시선들이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술병이 가득 쌓일 쯤에 승부가 갈리기 시작했다.
“선배 차롑니다.”
“내…… 차례……라고……?”
“예.”
“아니…… 너…… 마셨……냐……?”
“예.”
공길영은 초점이 풀린 눈으로 강진호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마……셨다고?”
“예.”
“난 못 본 것…… 같은데.”
“그래요?”
강진호는 두말없이 술을 따라서 다시금 세 잔을 마셨다.
“저, 저…….”
지켜보던 사람들이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지금 강진호가 마신 술병이 테이블에 가득 차다 못해 바닥에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세 잔의 소주를 물컵으로 들이켠 것이다.
“선배 차롑니다.”
“흐…… 내가…… 이…….”
갑자기 공길영이 입을 틀어막았다.
“우웩, 우웨에에엑!”
“야, 저 새끼 데리고 나가!”
지켜보던 다른 선배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공길영을 부축해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행히 바닥에 먹은 것을 돌려놓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승부는 누가 봐도 결정된 것이었다.
강진호는 공길영의 앞에 놓인 술잔을 잡아 쭉 들이켜고는 가볍게 내려놓았다.
“술값은 굳었군.”
강진호의 말에 지켜보던 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게 몇 병이야?”
“스무 병은 넘었는데?”
“그럼 쟤 혼자 지금 열다섯 병을 마신 거야?”
“그러네.”
“근데 왜 저렇게 멀쩡해? 사람이 개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양인데.”
“……그러게. 처음이랑 얼굴색도 안 변했는데.”
강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호야, 어디 가?”
박유민이 걱정스레 물었다.
“화장실.”
“속이 안 좋아?”
박유민의 걱정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사람이 저만큼 술을 먹고 멀쩡할 수는 없으니까.
가끔 술을 짝으로 놓고 마셨다는 무용담이 들려오기야 하지만, 그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셨을 때나 가능한 일이고, 앉은 자리에서 안주도 없이 바로바로 술을 들이켠 사람이 멀쩡할 수 있겠는가.
“아니.”
“그런데 화장실은 왜?”
“내가 마신 게 물이라고 생각해 봐.”
“응?”
“배가 차서 죽겠다.”
“아…….”
강진호는 몸을 돌려 화장실로 걸어갔다. 마음먹으면 수분을 모공으로 배출해 버릴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이 안에 알콜이 가득한 증기가 떠돌아 버릴 것이고, 여러 사람 잡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강진호는 화장실로 들어가 소변기 앞에 섰다.
가볍게 소변을 보고 있는데 대변기 문이 열리며 선배들이 두엇 나왔다.
“야, 길영아, 괜찮냐?”
“으…….”
공길영은 거의 인사불성이 된 채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강진호는 신경 쓰지 않고 볼일을 마저 보았다.
“야!”
그때, 누군가 강진호를 불렀다.
“예?”
날카로운 인상의 선배가 그에게 다가왔다.
“너 조심해라.”
“무슨 말씀이시죠?”
“너 선배가 우습게 보이는 모양인데…… 그러다 진짜 뒈진다, 새끼야.”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죠.”
쓸데없는 트러블은 피하고 보는 게 맞았다.
“너 씨바, 대답 좀 건성이다?”
“조심하겠습니다.”
“이 새끼가 진짜!”
“야! 왜 그래!”
안경을 쓴 선배가 그를 말렸다.
“아, 진짜 애새끼가 처 돌아가지고.”
“하지 마! 오티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선배가 되어 가지고.”
“너 씨바! 진짜 조심해! 내 눈에 한 번만 더 띄면 너하고 니 친구 진짜 싸그리 작살난다.”
강진호의 손이 천천히 앞으로 뻗어졌다.
“어?”
강진호의 손이 멱살을 잡더니, 그를 와락 끌어당겼다.
“헉!”
헛바람을 삼킨 선배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잘 들어.”
하지만 그 주먹은 귓가에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에 저절로 풀려진 채 힘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전신에 힘이 빠지는 느낌.
그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이한 전율이었다.
“나에 대해 말하는 건 괜찮아. 기분이 나빴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 하지만…….”
강진호가 가만히 속삭였다.
“내 친구는 안 돼. 무슨 말인지 알겠어?”
“…….”
“대답해.”
“아, 알겠다.”
강진호는 손을 놓았다. 그러자 자유의 몸이 된 선배는 뒤로 허겁지겁 물러났다.
“그럼.”
강진호가 몸을 돌렸다.
“저…… 강진호라고 했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할 말이 남았습니까?”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조금 전 시비를 뜯어 말리던, 안경을 쓴 선배가 그에게 다가왔다.
“저 미안한데, 이 내기 없던 일로 해주면 안 될까? 사람이 오십 명이 넘어. 먹은 술만 해도 백만 원 가까이 될 텐데, 그걸 쟤가 내라는 것은…….”
“내기는 내기입니다.”
“알아. 그러니까 부탁하잖아. 오늘 처음 본 선배가 뭘 해줬다고 부탁하겠냐마는 이해 좀 해주라.”
강진호는 슬쩍 바닥에 누워 있는 공길영을 바라보았다.
“친구입니까?”
“친구지.”
“그럼 없던 일로 하죠.”
“고맙다.”
“대신에…….”
“응?”
“술 권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켜 달라고 말해주세요.”
“……꼭 전할게.”
“예.”
강진호는 몸을 돌려 걸어 나왔다.
자리로 돌아가자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셋뿐이었던 그들의 테이블에 여럿이 몰려와 있었다.
‘뭐지?’
시비가 걸렸나 싶어 보았더니,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분위기가 좀 화기애애해 보였다.
“아, 나 아까 그 선배가 자꾸 술 먹여서 진짜 짜증났는데, 정말 통쾌하다, 얘.”
“너도 그랬어?”
“말도 마!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진짜.”
한세연은 어느새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나 아무리 해도 레이팅이 1,200에서 안 올라가는데, 나 좀 가르쳐 주면 안 되냐?”
“응?”
“야, 레이팅 1,200이면 포기해야지, 뭘 배워! 야, 유민아. 내가 내 친구한테 만날 발리는데. 이게 내가 보기에는 정말 한 끗 차이거든? 그러니까 조금만 가르쳐 주라. 내가 밥 살게. 두 번 살게.”
“아니, 가르쳐 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약속한 거다?”
강진호는 그 광경을 보며 자리로 돌아갔다.
“어? 술고래 왔다!”
“술고래는 인마! 저건 고래 수준이 아냐. 주신(酒神)이야, 주신!”
“와! 비틀거리지도 않아.”
“토하고 온 것 아냐?”
“눈에 핏발이 안 선 걸 보니 그것도 아니네.”
“야, 진짜 대단하다.”
강진호는 한숨을 쉬었다.
술 잘 마시는 게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그의 술 내기가 여흥을 돋우는 기폭제가 되었는지, 술자리는 한층 더 떠들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