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15
#614.
자극하다 (4)
정윤성이 기겁을 하며 검을 찔러 넣었다.
“히이이익!”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어쩌면 압도할 수 있을 거라고도 믿었다.
당연한 생각이다.
강진호가 뽑은 이들은 대부분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초반이다. 하지만 지금 고성현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사십 대를 넘었다.
십 년의 차이.
무인에게 있어 웬만해서는 좁힐 수 없는 차이였다.
일반인들이라면 사십을 넘은 이들은 이미 전성기를 넘긴 나이다. 스포츠 선수라면 은퇴를 해야 할 나이고, 격투기 선수라면 진즉에 젊은이들에게 왕좌를 내주었어야 할 나이다.
하지만 무인은 그렇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무인들은 노화가 늦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근력으로 싸우지만, 그들은 내공이라는 훌륭한 대체재가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든 격투기 선수가 속도와 힘을 잃어가는 반면, 나이가 든 무인들은 수련한 세월에 비례한 내공을 얻게 된다. 그 내공의 차이가 힘의 차이를 낳는다.
그렇기에 무인들의 세계에서 나이는 곧 힘의 상징이었다.
그리 믿었다.
조금 전까지는 말이다.
“카으으으아으!”
뭐라 지껄이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아마 저것에는 뜻도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기분에 이기지 못해서 짐승처럼 내지르는 소리일 뿐이었다.
마인.
그의 눈앞에 마인이 있다.
총회에 있는 무인들 중에 마인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는 이가 몇이나 될 것인가.
모른다.
알 리가 없었다. 그들은 마인을 거의 상대해 보지 않았으니까. 아직 총회가 미처 암흑가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시절, 쓰레기 같은 마공을 주워 익힌 놈들만을 상대해 보았을 뿐이다.
심지어 강진호에게 마공을 익히는 자들조차 마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정윤성이 무슨 수로 마인에 대해 알겠는가. 그저 이성을 상실한 무인쯤이라 여길 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들은 그런 게 아니다. 이들은…….
‘짐승이야.’
그래, 그 말이 딱 맞다.
검은 마기를 줄줄이 뿌리며 달려드는 이들을 그 말이 아니고서야 어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굳이 다른 말을 찾자면 악귀라고 해야겠지.
왜 그토록이나 선조들이 마인을 경계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마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노이로제에 걸린 것처럼 날뛴 이유도 말이다.
이런 놈들이 세상을 누빈다면 세상은 금방 멸망하고 말 것이다.
마인들이 단체로 달려드는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 본 좀비 떼를 연상케 했다. 이성을 상실하고, 오로지 적의만 가지고 달려들고 또 달려드는…….
문제는 이놈들은 좀비처럼 약하지 않다는 거다.
우드드득.
“끄아아아아악!”
정윤성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인이 휘두른 오른손이 그의 팔을 후려친다. 그러자 뼈가 으스러진다.
“큭큭큭!”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평소 그가 다른 곳에서 저런 웃음소리를 들었다면 비웃었을 것이다.
중2병이라도 걸린 게 아니냐고 욕을 했겠지.
하지만 지금 정윤성은 웃을 수도, 욕을 할 수도 없었다. 누가 두 눈을 핏빛으로 물들인 채 웃으며 달려드는 저 괴물 같은 놈을 보고 웃을 수 있겠는가.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조여든다.
“빌어먹으으으을!”
겁을 먹은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왜 겁을 먹는단 말인가. 저들 역시 사람인데. 그가 무공을 익힌 이유는 이럴 때 당당하게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정윤성이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밀린다.’
아니, 밀리는 정도가 아니다. 주변은 이미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산을 달려 올라온 마인들은 마치 무리 사냥을 하는 늑대 떼처럼 그들을 덮쳤다.
그러고는 이 꼴이다.
정윤성은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정윤성처럼 버텨내지 못했다.
“으아아아악!”
“아, 아아악! 아악!”
여기저기서 고통에 겨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안다.
낯이 익다.
지금 그가 상대하고 있는 이는 그도 본 적이 있는 이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지금 눈앞에 있는 이가 자신의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십 년이다, 십 년.
정윤성과 이자의 나이 차이는 적어도 십 년 이상은 난다.
무인에게 있어서 십 년은 어마어마하다. 육체는 성장을 멈추지만, 내공은 멈추지 않으니까. 그러니 십 년의 차이면 초등학생과 성인 남자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성인 남자가 초등학생에게 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극복할 수 없는 차이였다. 하지만 그 상식은 지금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쿠웅!
적의 공격을 막아선 검이 부르르 떨린다. 검을 잡은 손이 으스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이미 호구가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지만, 이 정도로 끝난 것에 감사해야 한다.
‘밀린다고.’
내공에서도 밀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쓰면 십 년의 내공 차이를 이리 쉽게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이 빌어먹을 마인 놈의 내력이 그를 압도적으로 초월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나은 수준. 하지만…….
‘빌어먹을, 수련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들이 마공을 배우기 시작한 시기를 따져 본다면 이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강점조차 사라졌다.
“크윽!”
급하게 찔러 넣은 검을 깔끔하게 피해낸 마인이 비릿한 미소를 입에 머금는다.
‘이성이 없다고 했잖아!’
장로들이 말하기로, 마인이란 존재들은 이성이 없어서 오로지 달려들기만 한다고 했다. 정면에서 그 힘을 맞으려 한다면 힘겹겠지만, 적당히 흘려내고 옆을 찌르면 무척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이놈은 광포하지만 결코 이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 증거로 지금 이놈은 그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내고 있었다. 날아드는 것을 피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정윤성이 공격할 기미를 보이면 미리 반응한다.
‘제길, 뭘 어쩌란 말이냐고!’
약점이 없다.
적어도 그의 수준에서는 이 마인의 약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때, 미친놈이 입을 열었다.
“더…….”
정윤성이 놀라 마인을 바라보았다.
“좀 더! 이 정도가 아냐! 좀 더!”
‘뭐라 지껄이는 거야, 이 미친놈이!’
“더 격하게 덤벼보라고!”
순간, 정윤성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죽여 버리겠어!”
“큭큭. 그래, 그거야!”
내기를 잔뜩 실은 정윤성의 검이 마인의 머리를 갈라갔다.
까아아앙! 까아앙!
하지만 마인의 손은 강철이라도 된 듯이 정윤성의 검을 너무도 쉽게 받아냈다. 검과 손이 부딪쳤는데, 검을 잡은 정윤성의 손이 더 크게 찢어지고 있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다.
마인.
이게 마인이다.
두 눈을 붉게 물들이고, 검은 마기를 뿜어내는 자.
‘강진호.’
과거에 보았던 강진호의 모습이 이랬다.
물론 그 수준에는 비교하는 것조차 민망하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다르지 않았다.
이들이 더 강해진다면 그 강진호처럼 되는 건가?
그렇다면 이들의 강함도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이 마지막에 닿아야 할 곳이 강진호의 수준이라면, 지금 이들의 힘도 미약하기 짝이 없다고 평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이나 갈 길이 멀었다.
‘목표가 다르다는 게 이런 거구나.’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감히 마인을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크륵!”
마인이 갑자기 달려들어 손을 휘두른다. 손끝에 마기가 맺히며, 마치 괴물의 그것처럼 거대한 손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정윤성이 다급하게 검을 들어 올려 마인의 우수를 막았다.
챙!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아주 맑은 금속음이 울렸다. 마인의 손이 정윤성의 검을 반으로 갈라 버린 것이다.
“헛!”
정윤성이 기겁을 하여 남은 반검이라도 휘두르려 했지만, 그의 움직임은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퍼어어억!
그의 얼굴에 마인의 주먹이 틀어박힌다.
일격.
그 일격이면 충분했다. 정윤성의 몸이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이미 의식은 날아간 지 오래였다. 하지만 마인은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이 정윤성의 위로 올라탔다.
쿵! 쿵! 쿵!
내려친다.
쓰러져 있는 상대를 내려치고 또 내려친다. 입에서는 피거품이 흘러내리고, 눈은 광기로 넘실거렸다.
“죽어! 죽어! 죽어!”
내려치고 또 내려친다.
얼굴을 아주 으스러 뜨려 버리겠다는 듯이 말이다.
“크륵, 크르르륵.”
이성이 날아간다.
겨우겨우 붙들고 있던 이성이 광기에 휩싸이고 있었다. 오로지 눈앞의 모든 것을 죽여 버리겠다는 본능만이 그를 사로잡는다.
그 순간…….
콰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마인의 몸이 대포알처럼 튕겨 나갔다.
“끄으으으윽!”
마인이 옆구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너무도 큰 고통. 상상도 할 수 없는 커다란 고통이었다.
“어느 개자식이!”
지독한 분노에 몸을 맡기고 벌떡 일어난 마인의 몸이 움찔했다.
날아간 이성이 순식간에 되돌아온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이는 감히 그가 분노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마의 주인이고, 그의 주인이니까.
“이명환.”
강진호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명환이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 자리에 엎드려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짐승이 자신보다 강한 짐승에게 꼬리를 말 듯,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마기가 그를 복종하게 만들었다.
“칼을 다루지 못하는 이가 칼을 휘두르면 어찌해야겠나?”
“……빼앗아야 합니다.”
“잡아먹히지 마라.”
“예!”
강진호가 몸을 돌렸다.
그러자 이명환이 고개를 들었다. 그 짧은 순간 만에 그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거지?’
고개를 돌리자 엉망이 된 얼굴로 쓰러져 있는 정윤성이 보였다. 다행히 아직 숨은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성을 잃었기에 그가 살아 있는 것이다. 제대로 마기를 담아 내려쳤다면 아마 일격에 즉사했을 것이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다.
이명환은 살인을 꺼리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살인마가 될 생각은 결코 없었다.
콰앙!
콰아앙!
여기저기서 폭음이 터진다.
하지만 저건 전투의 소리가 아니었다. 강진호가 이성을 잃은 마인들을 걷어차고 다니는 소리다. 강진호에게 차여 나가떨어진 이들이 이성을 되찾고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다, 달아나!”
“히이이익!”
마인들이 강진호가 뿜어낸 마기에 경직된 틈을 타 필사적인 도주가 시작되었다.
“크윽!”
“쫓지 마라.”
본능적으로 달아나는 이들을 쫓으려던 마인들의 발길을 강진호의 목소리가 움켜잡았다.
“전의가 없는 이들과는 싸우지 않는다.”
“…….”
납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항할 수도 없다. 마인들이 두 가지 감정을 다스리는 순간, 살짝 상기되어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나는 어떻소?”
고성현.
그가 검을 뽑아 들고 강진호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