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16
#615.
자극하다 (5)
“나는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으니 상대할 만한 거요?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 목에 칼을 박아 넣고 싶은데?”
고성현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쓰러졌다.
죽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들 중 이미 사망자가 나왔다. 그가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제자들이 분분히 쓰러져 버린 것이다. 달아난 이들이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숨 몇 번 들이쉴 시간에 반수가 넘은 이들이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저 중 또 반수는 이미 숨이 끊겨 있겠지.
고성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답해! 나는 상대할 만한가!”
강진호는 무감정한 눈으로 고성현을 바라보았다.
“이 개 같은 자식아! 이들이 너에게 뭘 잘못했다고 이리 잔인하게 사람을 죽여 댈 수 있단 말이냐!”
“내가 죽였다고?”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아니겠지. 내가 아니라 네가 죽인 거지.”
고성현의 몸이 움찔했다.
“나는 이미 너희에게 말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꺼지라고. 남아 있던 건 너희의 선택 아닌가?”
“……무사가 등을 보이고 달아나란 말이냐?”
“굴욕적인가?”
강진호는 웃어버렸다.
굴욕이라고?
굴욕?
입에 굴욕을 담는 이는 아직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다. 강진호는 살아남기 위해 달아나고 또 달아났다. 등 뒤로 날아드는 칼을 피하기 위해서 탁류 속에 몸을 던지기도 했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 적도 있었다.
달아나는 게 굴욕이라고?
개 같은 소리.
진짜 굴욕은 죽는 것이다. 적의 손에 죽는 것이다. 살아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대답해 봐.”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저들을 칭찬할 텐가?”
“…….”
“달아나지 않고 훌륭히 맞서 싸웠다고 칭찬이라도 할 텐가?”
고성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칭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알아버렸으니까.
세상에 훌륭한 죽음은 없다. 감정적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 사람의 죽음에는 박수를 쳐줄 수 있지만, 자신의 지인이 훌륭히 죽었다고 박수를 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차라리 달아났다면.
그 빌어먹을 협의니 어쩌니 하는 것을 입에 담지 않고 그냥 달아났더라면.
‘내가 죽였다.’
그의 가르침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가 버릇처럼 협의를 입에 담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실이 고성현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었다.
“나는…….”
강진호가 가만히 고성현을 바라보았다.
“내가…….”
강진호가 가만히 다가가 고성현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렸다.
“끄윽.”
“선택은 언제나 본인의 몫이지. 그러니 네가 책임져야 할 필요는 없어. 그건 쓸데없는 죄책감이지.”
우드드득.
강진호의 손가락이 고성현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고민 같은 것은 할 필요 없어. 이제 그건 네 몫이 아니야. 네가 치러야 할 것은 하나뿐이지. 달아나지 않은 대가.”
퍼석.
잘 익은 수박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머리를 잃어버린 고성현의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강진호는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는 몸을 돌렸다.
‘더러운 기분이군.’
마치 예전에 그 정파 놈들을 보는 것 같았다.
정도니 협의니 하는 말로 생때 같은 목숨들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 자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들.
안다.
그들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건 그들의 삶의 방식일 뿐이다. 그들의 눈물은 가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역겨웠다.
차라리 위선이 낫다.
대의라는 이름 앞에 희생되는 목숨에는 슬픔마저 허락되지 않으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을 마주한 이들이 하나같이 감히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지독하게 달아올른 가슴이 싸늘하게 식는다.
“이동한다.”
“예!”
쓰러진 이들을 버려둔 채로 강진호들이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강진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숨을 죽이면서도 이명환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이게 마공.’
이명환의 가슴이 떨려오고 있었다.
두렵다.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마공을 전력으로 끌어 올리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흥분이 몸을 휩쓴다. 마치 흥분제를 맞은 것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이 뇌리를 마비시킨다.
그런 후에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걸 계속 사용해도 되는 걸까?’
위력은 가공하다.
그 위력은 이미 실감했다. 과거의 이명환이었다면 정윤성의 검을 세 번 이상 막아내는 것도 힘겨웠을 것이다. 하지만 마공을 끌어 올린 이명환은 정윤성을 일방적으로 가지고 놀았다. 마음만 먹었다면 훨씬 빨리 그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힘.
발전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무리(武理), 경험……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힘이었다.
정윤성의 검술은 이명환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같은 힘을 가지고 싸웠다면 이명환은 절대로 정윤성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공은 정윤성과 그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들었다.
마치 권투에서 아무리 기술적으로 완성된 선수라고 해도 체급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 플라이급 선수와 헤비급 선수가 붙는 순간, 기술은 무의미해진다. 가드 위로 때리는 주먹만으로도 사람이 실신할 테니까.
‘나는 강해졌다.’
이명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렇다. 그는 강해졌다.
자신을 따라온다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강진호의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명환이 슬쩍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았다.
상기된 얼굴.
자신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실감한 이들이 차마 그 기쁨을 드러내지 못한 채 억누르고 있는 얼굴이다.
‘끝났군.’
이명환은 실감했다.
지금까지 그들은 감히 강진호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마공을 익히면 익힐수록 느껴지는 그 압도적인 격차. 그 공포에 질려 감히 말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수준을 넘어설 것이다.
강진호가 그들을 얼마나 강하게 만들었는지를 알게 된 이상, 이제 누구도 감히 강진호에게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가 명령하면 불구덩이에라도 서슴없이 뛰어들겠지.
그리고 그건 이명환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필요해.’
목 안에 불구덩이가 타오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 기분을 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상대가 필요했다. 조절할 필요 없이 마음껏 주먹을 날릴 수 있는 강한 상대가 말이다.
쾌감.
그래, 이건 쾌감이었다.
무인에게 있어 스스로가 강하다는 자각을 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이건 돈도 마약도 여자로도 얻을 수 없는 극한의 자존감이다.
그때,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강해진 것 같나?”
“…….”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강진호의 물음이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해진 것 같냐고 물었다.”
“……예.”
두 번째 질문마저 답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명환이 망설임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다행이군.”
강진호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겠지.”
“……부족합니다.”
강해지고 싶다.
더.
더욱더 강해지고 싶다.
강하다는 게 무엇인지 실감한 이상,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이명환은 망설임 없이 강진호에게 달려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것이다.
다른 이들도 다 마찬가지겠지.
“그럼 싸워라. 인간은 실전에서 강해진다. 마공은 더욱 그렇지.”
고양감.
주체할 수 없는 고양감이 가슴을 태우고 있었다.
“다만.”
그때, 강진호가 찬물을 끼얹었다.
“나는 같이 싸울 수 있는 자가 필요한 거지, 이성을 잃은 짐승은 필요 없다. 적과 싸우는 동시에 자신과도 싸워라. 스스로를 잃은 놈은 내가 내 손으로 죽인다.”
“…….”
“아무리 안정성에서 비할 수준이 아니라지만, 마공은 마공. 스스로를 놓은 이는 결국 살귀가 되어버리기 마련이지. 마공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죽으려면 인간으로 죽어라. 짐승으로 죽는 걸 원하지는 않겠지.”
“그렇습니다.”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생각 이상이군.’
마공은 결국 인간의 인성을 마비시키는 무학이다. 강진호도 극마에 이르기 전까지는 걸어 다니는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강진호가 마교를 결코 좋게 기억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마공을 익힌 이는 아무리 온화하다고 한들 일반 무인들보다는 과격하다. 마인이 배척당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과거, 마염을 만들 때도 그들의 흉포성 때문에 굉장히 고생을 했다.
결국 무공을 폐쇄시켜야만 했던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의 마염과는 다르다.
‘확실히 인간은 교육에 의해 많은 것이 좌우되는군.’
그가 중원에 있던 시절과 지금이 뭐가 그리 다르겠는가. 세상은 바뀌었지만, 인간은 바뀌지 않았다. 그때와 지금의 인간이 DNA 레벨에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다르다.
같은 마공을 익히고 같은 수련을 하고 있음에도 이들은 과거의 마염들에 비해 확실히 이성적이었다. 물론 그만큼 성장이 더딘 면이 있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이성적인 쪽이 백배는 나았다.
격발하는 순간에 터질지도 모르는 소총과 안전한 권총이 있다면 선택은 빤한 것이다.
그리고 전력으로만 비교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결국 상승 무학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이들만 익힐 수 있었다. 마공으로 인한 효용은 길지 않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결국에는 수련과 깨달음이 중요하다.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이들은 벽을 깨뜨리지 못한다. 조금 시간이 걸릴지라도 이들은 언젠가 과거의 마염을 능가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건 문제로군.’
예전 중원의 마교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강진호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전력으로 써먹을 생각이라면 좀 더 빠르게 마공을 익히게 만들어줘야 한다.
한 가지 숙제를 직시한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이성을 잃지 말고 싸워라. 그저 몸으로 이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공격 하나하나, 수비 하나하나…… 너희의 몸 안에서 마기가 흐르는 것을 기억해라. 그 경험이 너희를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자, 그럼…….”
강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저 앞쪽에 이중걸의 저택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짙은 투기와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살기를 느낀 마인들의 숨이 거칠어진다.
뭐, 예전의 마염들에 비해 이성적이고 덜 흉포하다는 거지, 이들이 흉포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연쇄살인범에 비해 덜 악질적이라고 살인범이 나쁘지 않은 건 아니니까.
“저기에 먹이들이 가득한 것 같군.”
강진호의 말에 마기들이 줄줄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먹이를 본 짐승들이 침을 흘리는 것처럼 말이다.
“가라. 가서 보여줘라. 너희가 누구인지.”
강진호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인들이 마기를 줄줄이 뿜으며 섬전처럼 내달렸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치 검은 유성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강진호는 흥미롭다는 듯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어둠이 짙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