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20
#619.
대면하다 (4)
총회는 정신없이 바빴다.
본디 일이라는 것은 벌이는 것보다 수습하는 것이 더 힘들기 마련이었다. 간밤에 벌어진 전투의 여파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부상자의 수가 어마어마했고, 사망자도 다수 나왔다.
뒤처리가 쉬울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뒤처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한 사람에게 맡겨졌다.
“앓느니 죽지! 내가 앓느니 죽어!”
이현수는 벌써부터 후회하고 있었다. 일을 왜 벌였단 말인가. 결국 뒷수습은 그가 다 해야 하는데.
“병상 모자라답니다.”
“아니, 이 새끼야! 수배하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병상이 모자라! 다른 병원 없어?”
“커넥션이 있는 병원은 모조리 다 동원한 겁니다. 일반 병원으로 보내면 신고부터 할 거라고요.”
“의사는? 대충 의사 불러서 진료 시키면 안 돼?”
“정신 차리세요, 부장님. 그나마 무인이라서 살아 있는 겁니다. 저 바퀴벌레처럼 끈질긴 생명력이 아니었다면 다 죽었을 겁니다.”
“아…….”
이현수가 얼굴을 주물렀다.
부상자, 빌어먹을 부상자.
이현수는 발목 지뢰가 왜 사용되는 건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어차피 지뢰를 매설할 거면 발목을 날릴 게 아니라 사람 하나 확실하게 보내버리면 그만이지 왜 그렇게 쪼잔하게 구나 싶었는데, 대량의 부상자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체감이 확 된다.
조직을 마비시키는 데는 부상자가 최고였다. 부상자 하나를 감당하기 위해서 소모되어야 하는 인력이 장난이 아니다.
“정 안 되면 영남부 쪽으로 보내. 그쪽에도 커넥션 있는 병원들 있으니까.”
“이송이 만만치 않습니다. 상황이 심각한 이들도 있어서.”
“의료 헬기 동원해 줄 테니까. 일단 앰뷸런스로 이동시킬 수 있는 경미한 애들은 당장 다 내려보내.”
“예.”
이현수가 깊이 한숨을 쉬었다.
“부상자야 그렇다 치고, 혹시 언론이나 일반인들에게 노출된 건 없지?”
“SNS 쪽하고 커뮤니티 계속 감시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딱히 발견된 게 없는 모양입니다.”
“그럼 다행이고.”
이현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라니까.’
예전에는 이런 것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쩌다 사진이 찍히는 경우에는 합성이나 심령사진이라고 우겨 대면 그만이었으니까. 그게 통하지 않을 경우에는 돈과 힘을 활용해서 사진을 찍은 당사자가 조작을 했다고 실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스마트폰부터 블랙박스, CCTV까지…… 세상에 카메라가 넘쳐 나는 세상이다. 숨어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졌다.
어쩌다가 카메라에 찍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과거 영남회에 있을 당시, 술 처먹은 놈이 번화가에서 경공을 쓰는 광경이 카메라에 찍힌 적이 있다. 그 일을 수습하느라 얼마나 진땀을 뺐는가.
아, 물론 그놈은 진땀이 아니라 피를 뺐다. 아주 콸콸.
여하튼 이번에는 다행히 카메라에 찍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갈수록 대규모가 돼서 이게 문제라니까.’
소수로 이동하고 교전을 하는 경우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하지만 대규모 교전이 수시로 벌어지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머리 깨지겠네, 진짜.”
이현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서라, 진짜.’
이렇게 골치 아플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상황이 잘못 풀렸으면 지금쯤 이리 우는소리도 늘어놓지 못하고 있을 거다. 최상의 최상으로 풀렸기에 이 정도에서 끝났다.
“이현주 신병 확보했어?”
“예. 저택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했어?”
“일단은 구속해 뒀습니다만.”
“구속?”
“예. 아무래도 이중걸의 손녀다 보니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서…….”
“풀어줘.”
“예?”
“풀어주라고, 인마.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야, 새끼야? 연좌제 적용하게?”
“아니, 그래도…….”
“거기서도 갇혀 있었다면서? 너는 협조한 사람 가둬놓는 것 봤냐?”
“……죄송합니다.”
“이중걸 상 치러야 할 거 아냐. 상주야 제자가 한다고 쳐도 참여는 해야지. 얼른 풀어줘. 아니, 이리로 데리고 와. 내가 대신 사과해야 돼.”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폐족도 왕족이야, 새끼야. 아무리 그래도 이중걸의 손녀라는 건 영감님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많단 말이야. 이제 다시는 경거망동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협조적이 된 건 아니란 말이야. 달래주는 과정이 필요해.”
“알겠습니다.”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하군, 복잡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과거 이중걸의 지파는 총회의 반이 넘었다. 영남회와 합병한 지금도 3할에 가까운 수다.
그 많은 이들을 모두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핵심이 되는 이들을 제거하고, 구속하고, 폐인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구심점이 사라졌으니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해도 서서히 이쪽으로 흡수되다가 지리멸렬해질 것이다.
‘무력시위도 충분했고.’
바토르와 나이트 위긴스가 생각 이상으로 잘해줬다. 그들이 싸우는 걸 목격한 이들은 혼이 나가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이로써 무력에 관한 한은 총회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 외에 목숨 내걸고 꼰대처럼 굴 영감들은 조남평 이사가 적당히 어르고 달래 해결할 것이다. 처음부터 그걸 위해 포섭한 것이니까.
“휴우, 이제야 끝났네.”
“회의 가셔야 합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강진호 씨 들어오셨어?”
“예. 들어오셨습니다.”
“간다. 이거 마저 정리 좀 해줘.”
“예.”
이현수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달려갔다.
“늦었어, 이 새끼야!”
회의실 안에 선불 맞은 멧돼지, 아니, 방진훈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너, 이 새끼…… 너, 그러는 거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다른 사람들은 지원도 다 해주고 중요한 데 보내면서 나한테는 잡일을 던져 놔? 너, 나한테 감정 있어서 그러는 거지?”
“절대 아닙니다, 회주님.”
방진훈이 칼날 같은 눈으로 이현수를 노려보았다. 이현수는 찔끔하여 고개를 돌렸다.
‘아니, 나더러 뭘 어쩌라구요.’
물론 방진훈은 중요한 전력이다. 하지만 나이트 위긴스와 바토르가 합류하면서 좀 애매해진 면이 있었다. 무력으로 따진다면 방진훈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들과 비등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방진훈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부분은 통솔력뿐이다.
그렇기에 이현수는 방진훈에게 계파를 이끌고 나가서 영남부의 병력을 묶어두는 일을 맡겼다. 최대한 충돌을 자제하고 묶어만 두라고 했는데, 성질을 못 이겨서 몇 놈 두드려 팬 모양이었다.
“회주님이 아니면 그 일을 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말입니다.”
“됐어, 인마. 나 삐쳤어.”
“헐…….”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이현수가 그런 방진호를 보며 반색했다.
‘기분이 나아진 모양이네.’
어제 이중걸을 제거하고 밖으로 나갈 때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아 보이더니, 그새 기운을 회복한 모양이었다. 강진호의 얼굴에 우울함이 어리는 건 어제 처음 보았다.
“간밤에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강진호의 말에 방진훈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강진호 씨.”
“예.”
“그냥 반말 하십쇼.”
“예?”
방진훈이 주변을 슬쩍 훑고는 말했다.
“여기서 강진호 씨가 존대를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나도 불편하니 그냥 반말하시라구요.”
“아니, 그건…….”
“나도 나보다 나이 훨씬 많은 영감님한테 존대받는 건 좀 불편합니다.”
“누가 영감님입니까?”
“오, 발끈하네?”
강진호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영감님이라니!
“거, 몸만 젊으면 뭐 합니까, 정신연령이 영감님인데. 그냥 인정하고 반말하십쇼.”
“아뇨. 그래도…….”
“그럼 영감님이라고 불러도 됩니까?”
“반말합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를 않는다.
“음, 그러니까…….”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간밤에 다들 고생 많았다.”
“별말씀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로드.”
“피차 시간 낭비하지 말고 중요 안건부터 정리하지. 이현수.”
“예.”
이현수가 빠르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영남부에서 끌고 온 장로들과 어제 이중걸의 집에서 잡은 장로들은 모두 구금해 두었습니다.”
“부상자들은?”
“병원이 모자라 영남부 쪽 병원까지 수배 중입니다.”
“음…….”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들은 문제없습니까?”
“경미한 부상 정도. 괜찮다.”
강진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그게 경미한 부상이라고?’
저 사람, 경미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닌가?
보통 사람이라면 중환자실 행일 텐데?
아무리 무인이라고 하지만 그걸 경미한 부상이라고 해도 되나?
‘말세다, 말세.’
저런 사람이 있어서 말세인 게 아니라 저런 사람이 복지재단 운운하고 있으니 말세인 거다.
‘애들한테 시위라도 시켜야 하나.’
아무래도 강진호의 뇌리에 무인들은 복지의 대상이 아닌 게 분명했다. 이건 명백한 무인 역차별이다.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힘이 없으니 입을 다물 수밖에.
“일단 이중걸의 장례 문제를 처리해야 합니다.”
“장례?”
“예. 이중걸은 아들이 없습니다. 혈연이라고 할 사람은 손녀뿐입니다.”
“손녀라…….”
강진호의 뇌리에 이현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손녀에게 상주 역할을 맡기기는 좀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장례의 주관은 총회로 하되, 이중걸의 제자 중 하나를 상주로 세울 생각입니다.”
“좀 민망하지 않아? 이쪽에서 죽였는데, 이쪽에서 상을 치르다니.”
“그래서 더 해야 합니다. 이중걸을 따르는 이들은 옛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은 장례와 사후의 대우에 집착하는 면이 있습니다. 설사 이쪽에서 벌인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중걸을 확실히 전대 회주로 대우하고 상을 거하게 치른다면 불만이 많이 누그러질 겁니다.”
“흐음.”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지. 그런데 제자는 수배됐어?”
“적당한 인원을 고르고 있습니다.”
“됐어. 내가 하지.”
“예?”
“국장이란 게 그런 거잖아. 나라에서 상을 치르면 상주는 나라에서 임명하는 법이지. 회에서 장을 치르는 이상 상주는 내가 되는 게 맞아.”
“그래주신다면…….”
이현수는 더없이 기껍다는 얼굴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웃지 마, 새끼야. 정들어. 나는 너랑 정들 생각 없어.”
“……단호하시네요.”
“쯧.”
방진훈이 이 건은 일단락되었다는 듯 화제를 바꿨다.
“그보다 강진호 씨.”
“예.”
“예가 아닙니다. 반말하시라구요.”
“하아…….”
강진호가 이마를 짚었다. 저 양반, 오늘따라 왜 저러는가.
“이제 정리합시다.”
“뭘 말입니까.”
“장례 끝나면 이양할 테니까, 회주 하십쇼.”
“……예?”
“이현수한테 들었습니다. 이중걸이가 강진호 씨더러 회주 하라고 했다면서요?”
“…….”
“나도 이거 안 하고 싶어요. 지금 내가 이거 붙들고 있어봐야 허수아비밖에 더 됩니까? 나중에 얼굴 붉히지 말고, 지금 정리합시다. 상 끝나는 대로 회주 자리 내놓을 테니까, 깔끔하게 정리합시다. 오케이?”
“…….”
오케이는 무슨 얼어 죽을 오케이.
이놈이고 저놈이고,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는 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