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23
#622.
구박받다 (2)
폭발한 최연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 위에 쓴 무거운 관이 오뚝이처럼 좌우로 휘청휘청거린다. 그 모습을 본 코디들이 사색이 되어 최연하에게 달려왔다.
“연하 씨! 진정하세요! 그렇게 과격하게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최연하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하핫, 화가 나신 모양이군요.”
“하핫? 하하아앗?”
쿠션을 잡은 최연하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멀리서 감독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 모습을 본 한은솔이 사색이 되어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누나! 누나아아아아아아!”
막 최연하가 폭발하기 직전에…… 아니, 이미 폭발은 했지만 물리적으로 뭔가 저지르기 전에 달려온 한은솔이 류웨이[劉偉]를 잡아 뒤로 끌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안 놔?”
류웨이가 차가운 눈으로 한은솔을 돌아보았다. 그 경멸 어린 눈에 한은솔이 얼굴을 굳혔다.
“어디다 손을 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구요.”
“내가 지금 너희 주인이랑 말하는 거 안 보여? 고용인이 끼어들 자리가 아닐 텐데?”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일그러진 최연하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그 입 처 닫는 게 좋을 텐데?”
“……연하 씨?”
“그쪽은 내 고용인 같은 게 아니라 내 동생이야. 한 번만 더 입 함부로 놀려봐. 드라마고 뭐고 내가 오늘 여기서 난장 제대로 피워줄 테니까.”
“하하하.”
류웨이가 양손을 살짝 들고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 동작까지 미묘한 비웃음이 어려 있는 것 같아서 열이 받는다.
“확실히 문화적 차이라는 것은 쉽게 극복하기 힘든 면 같습니다. 고용인을 동생처럼 여기다니, 그 착한 마음씨에 감탄하게 되네요.”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그쪽이 성격이 더러운 것 같은데?”
“제게 그런 말투를 쓰는 사람도 최연하 씨뿐입니다.”
“아니, 저게 미쳤나?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내게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 이야기가 나와?”
“누, 누나, 한국어로 말하고 있어요.”
“그래?”
최연하가 양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주물렀다.
‘진정하자. 진정하자, 최연하.’
1차 폭발은 했지만, 아직 2차 폭발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 정도면 아직 수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 배우가 휴식하는 중입니다. 개인적인 용무가 있다면 나중에 다시 와주십시오.”
류웨이는 한은솔과 말을 섞어야 한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지만, 최연하와 관계를 더 이상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오지, 나중에. 시간은 많으니까 말이야.”
류웨이가 살짝 눈인사를 하고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멀어지자, 최연하가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누, 누나, 진정해요.”
“저 느끼한 새끼! 기름종이로 둘둘 말아서 시추공이라도 처박아 버릴라!”
“기자들 있다구요! 기자들! 한국 애들은 없어도 영상 찍혀 돌면 어찌 될지 모른다구요.”
“저 기자 새끼들은 왜 저 새끼가 저리 치근덕대는데 사진 하나 안 찍냐고!”
“팔이 안으로 굽는 거죠.”
한은솔이 최연하를 진정시켜 자리에 앉혔다.
“여기 커피! 아이스로! 시럽 잔뜩 넣어서 빨리!”
“네!”
시럽이 들어간 커피라는 말에 최연하의 얼굴이 살짝 풀어졌다.
‘어휴.’
그 모습을 본 한은솔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촬영 중에는 체중 관리를 위해서 단것을 입에도 대지 않는 최연하다. 하지만 사실 최연하는 단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비촬영 기간 동안에는 케이크를 입에 달고 살 정도니까.
스트레스가 폭발한 최연하를 달래는 데는 달달한 음식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광속으로 추출한 커피가 날라져 오고, 최연하가 빨대를 물고 힘껏 커피를 빨아 당겼다. 컵의 커피가 아래로 쭉쭉 내려가는 것을 본 한은솔이 눈을 감고 말았다.
‘저 망할 설탕, 죽어라고 자제 시키고 있었는데!’
설탕도 그렇고, 담배도 그렇고…… 모든 종류의 끊는 것들은 조금만 다시 시작해도 욕구가 마구 치밀기 마련이다. 앞으로 설탕 고갈증에 시달릴 최연하의 히스테리를 감당해야 할 생각을 하니,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한은솔이었다.
“후우우욱!”
빨대에서 입을 뗀 최연하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살 것 같다.”
“……전 죽을 것 같아요.”
“빌어먹을!”
최연하가 이를 빠득빠득 갈고는 말했다.
“촬영 끝나면 제작진에게 정신적 피해보상비라도 요구해야겠어. 어쩌다가 저런 병신이랑 엮이게 돼서는.”
“병신은 병신이죠. 잘생긴 병신.”
“잘생겨? 넌 지금 저게 잘생겼다고 생각하냐?”
“잘생겼잖아요.”
“개뿔이. 저런 얼굴로 잘생겼다 소리 하면 안 되는 거야.”
한은솔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답이 없다.’
강진호가 최연하의 안목을 너무 올려놓았다.
‘아니, 이건 안목이라기보다는…….’
취향의 문제겠지.
예전의 최연하였다면 저 류웨이가 아무리 느끼하고 재수 없다고는 해도 그가 잘생겼다는 사실 정도는 인정했을 것이다. 사실 류웨이는 객관적으로 봐도 잘생겼으니까.
한국에서 수많은 배우들을 보고 다니던 한은솔이 잘생겼다고 인정할 정도면 정말 잘생긴 것이다. 연기에 대한 재능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그저 얼굴 하나만으로 이만한 드라마의 주연 배우 자리를 따냈으면 설명이 끝난 것 아닌가.
하지만 강진호와 어울리면서 좀 담백한 얼굴 쪽으로 취향이 확 가버린 최연하에게는 그리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쪽으로는 강진호 씨가 사기 캐릭터니까.’
그 양반은 목 늘어난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녀도 속된 말로 간지가 흐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랑 비교하기에는 류웨이가 불쌍하다.
“그리고 잘생기면 뭐 해? 인성이 저따윈데.”
“그건 절대로 공감합니다.”
한은솔이 고개를 돌려서 류웨이가 걸어간 곳을 바라보았다.
‘미친놈.’
저놈 하나만으로 중국 배우들의 인성을 모두 폄하할 생각은 없었다. 이곳에서 본 다른 배우들은 다들 친절하고 호쾌한 성격이었으니까.
가끔은 그 호쾌함이 부담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들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저 인간은 예외다.
‘기분 나쁘다니까.’
저 인간은 뭔가 사고방식이 좀 잘못되어 있다. 하나로 딱 집어서 이야기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대충 ‘특권 의식’이라는 말로 퉁 칠 수 있는 그런 것.
자기 정도 잘나고 잘생긴 인간이 꼬시면 여자는 다 넘어와야 하고, 보통의 평범한 인간과 자신은 격이…… 아니, 격이라기보다는 정말 말 그대로 ‘계급’이 다르다는 인식이 박혀 있는 놈이었다.
한국의 연예인들 중에서도 연예인병에 걸려서 정신 못 차리는 등신들이 있지만, 저놈에 비하면 한국의 멍청이들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왜 저런 놈이 나한테 달라붙어서 사람을 이리 귀찮게 하냔 말이야! 이쯤 되면 혐오스럽다고!”
“그야…….”
누나가 예쁘니까 그렇죠.
‘이 말은 해주기 싫다니까.’
공주병이 있는 여자는 아니라 말하기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해주기 싫은 말이었다.
한은솔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할 텐데.’
저놈이 저리 설치는 것이 이미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첫 촬영이 시작하기도 전에 배우 미팅 자리에서부터 최연하에게 들이댔으니까. 문제는 그 ‘들이댐’이 가면 갈수록 노골적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나름 의식해서 촬영장이나 타인의 시선이 있는 곳에서는 그나마 체면을 차리려는 의지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다른 이들이 빤히 보는 곳에서까지 저런 식으로 굴고 있었다.
아직은 큰 문제는 없는 수준이지만…….
‘이상하게 불안하단 말이지.’
아무래도 이러다가 큰 사고가 터질 것 같다.
‘한국에 연락을 좀 해야겠어.’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리 최연하가 한국에서는 대배우라지만, 이곳에서는 입지나 영향력이 낮다. 중화권 스타와 힘 싸움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번 드라마가 개봉하고 나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겠지만, 지금 최연하의 입지는 얼굴이 반반한 외국 여배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최연하가 입을 여는 것보다는 한국의 소속사가 목소리를 내주는 쪽이 좋았다. 그게 그나마 말이 먹힐 수 있는 방법이다. 그조차 미미하기 짝이 없겠지만.
“후우…….”
한은솔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한국의 대배우인 최연하도 중국에서는 신인 배우일 뿐이다. 거기까지는 감안했지만, 그 안에서도 중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묘한 차별이 있었다.
한 번씩은 한은솔도 울컥할 정도다.
주연 배우랍시고 데리고 와놓고 중국인 조연보다 못한 취급을 할 때도 있었으니까. 한국이었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최연하가 잘 참아주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누나, 미안해요. 소속사가 힘이 없어서.”
“뭐가?”
“이런 취급이나 받게 하고.”
“뭔 소리야, 인마?”
최연하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게 소속사 문제야? 내가 인지도가 없어서 그렇지!”
“…….”
“나는 여기서 신인 배우야. 그리고 신인이 받는 취급은 다들 빤한 거지. 너는 언제 신인 배우 대접해 준 적 있었어?”
“그건 그렇지만, 누나는 한국에서는 여왕이었잖아요.”
“누가 들으면 내가 갑질하고 다닌 줄 알겠네.”
“갑질은 안 했죠…….”
인성질을 해서 그렇지.
어찌 보면 그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갑질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상대를 괴롭히는 거지만, 인성질은 그냥 성질이 더러운 거니까.
아니, 그게 더 나쁜 건가?
“이번 드라마 다 찍을 때까지만 참으면 돼. 그러면 저딴 놈이 감히 저렇게 굴지 못할 정도로 내 입지가 올라갈 거니까. 그때까지만 참으면 돼! 아, 짜증 나! 중국 드라마는 왜 다 찍어놓고 방영하는 거야?”
“처음 촬영 시작할 때는 그래서 좋다면서요?”
“누가 이럴 줄 알았냐?”
버럭 소리를 지르는 최연하를 보며 한은솔이 한숨을 쉬었다.
중국 드라마는 사전 제작제다.
한국의 드라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중국의 드라마는 방영하기 전에 촬영을 끝내고 편집본까지 모두 중국의 공안에게 검열을 받아야 방영이 가능하다.
검열이 끝나고 지적받은 부분이 있으면 재촬영이나 편집을 통해서 문제가 된 부분을 모두 수정, 제거하고 나서야 방영 허가가 떨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아진다며 괜찮다고 말한 최연하이지만, 드라마를 촬영하는 내내 류웨이가 끈덕지게 달라붙자 말이 달라졌다.
한국이었으면 이미 몇 십 회차가 방영이 되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쯤 그녀의 인지도가 급상승했을 것이다. 그럼 저 류웨이 놈이 달라붙지 못했을 것이라고 짜증을 내고 있었다.
한은솔은 귀로 쏟아지는 최연하의 짜증을 한 귀로 흘리면서 고개를 돌려 류웨이가 있을 법한 곳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불안하단 말이야.’
그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류웨이가 최연하에게 들이댈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드라마 촬영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겠지만…….’
혹시라도 저놈이 미련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럴 확률이 낮다고 해도 만에 하나의 경우에 대비하는 게 우수한 매니저 아닌가.
‘한국에 전화해서 경호원을 늘려 달라고 해야겠어.’
오늘 숙소로 돌아가면 꼭 전화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한은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