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32
#631.
도착하다 (1)
‘이건 또 뭐냐고?’
장다징은 자신이 타야 할 비행기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화물기?’
화물을 전용으로 나르는 비행기라…….
들어는 봤지만, 보통 사람이 그런 비행기를 타볼 일이 있을 리가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일반 항공기 같은데…….’
새삼 강진호라는 사람의 힘에 대해 절감하게 된다.
중국에서도 이런 일은 흔치 않았다. 중국의 정재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각 왕들도 이런 일을 태연하게 해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홍왕계 등이 중국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 비해 강진호가 한국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훨씬 거대했다.
양으로 따지자면 그 큰 중국에 영향을 주는 홍왕계에 미칠 수는 없겠지만, 질적인 면으로 따지자면 그 이상임이 확실하다.
‘대단하긴 해.’
홍왕과 강진호를 모두 알고 있는 장다징이다. 둘을 서로 비교했을 때, 강진호가 홍왕보다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보기에 총회는 아직 변방의 조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광활한 대륙의 1/3이나 지배하고 있는 홍왕에 미칠 수는 없다.
하지만 강진호는 불과 몇 달 만에 한국을 완전히 제 손에 틀어쥐었다. 홍왕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홍왕이 무력으로 한국을 지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가 흘렀을 것이고, 지배할 수 있는 것이 적어졌을 것이다.
반면 강진호는 무혈입성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온건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한국을 손에 쥐었다. 덕분에 지금 딱히 반발조차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얼마 전, 장로들을 모두 정리한 것만으로 완벽한 일통을 이뤄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무리 얼마 전까지 적이었다고 한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머엉.
장다징은 강진호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아니, 좀 위엄 있게 굴라고, 인마!’
짐 가방을 둘러멘 채 반쯤 넋이 나가 있는 강진호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다운되는 느낌이었다.
저게 어디 적진으로 들어가는 무인의 모습이란 말인가. 세계 일주를 마치고 마지막 중국 여행을 남겨둔 이의 지치고 초췌한 모습 같았다.
게다가 그래도 나름 해외여행인데 트레이닝복 바람이라니. 누가 보면 프로 배낭여행러인 줄 알 것이다.
어색하다.
장다징은 참을 수 없는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 그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던 바토르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싱글벙글하고 있고, 강진호에게는 말을 걸기가 불편했다.
생각해 보라.
장다징은 신입 사원이다. 그것도 굉장히 좋은 줄을 잡아서 들어온 신입 사원도 아니고, 그냥 사외 이사가 하나 들어오는데 거기에 통역이 필요해서 어정쩡한 계약직으로 입사한 신입 사원이다.
다른 쪽에서 경력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그건 커리어라고 치장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안타까운 일인지, 잘된 일인지는 몰라도 장다징은 무척이나 주제 파악이 빠른 남자였다.
그의 전투 능력은 총회의 지나가던 아저씨만도 못하다. 선배들에게 구박받고 화장실 변기를 솔로 닦고 있는 신입 무인도 마음만 먹으면 팔 하나를 묶고도 그를 팰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그나마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바토르의 총애가 그에게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사람에겐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거든.’
상대가 강진호라면 바토르의 총애 따위는 바람 앞의 등불일 뿐이다. 강진호가 재채기만 해도 확 꺼져 버리는 등불.
게다가 강진호는 지금까지 그가 본 인간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악마와 병신의 극단을 오가는 인간이라고 해야 하나?
장다징이 강진호와 각을 세우는 순간, 구석에 처박혀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겠답시고 과자를 퍼먹어도 이해를 할 수 있고, 성질을 참지 못해 비행기 유리창을 깨고 자신을 밖으로 집어 던져도 이해할 수 있다.
비행기가 추락한다는 바토르의 조언에 ‘그래서 뭐? 그럼 죽어?’라는 말로 태연하게 대꾸하겠지. 저 인간이라면 서해에 추락해도 헤엄쳐서 중국으로 들어가고도 남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비행기는 왜 타는 거야?’
짐도 없는 게.
저 정도의 능력이면 팬티 한 장 걸치고, 짐은 비닐로 둘둘 만 다음에 인천 앞바다에 다이빙만 해도 연태까지는 금방 갈 텐데 말이다.
‘여하튼 윗대가리라는 것들은.’
일을 크게 키우는 데는 뭐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 하나 중국으로 은밀하게 넣기 위해서 이 난리를 쳐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화물기에 화물을 빼고 사람을 넣어 가다니.
밀입국도 정도가 있지, 스케일이 이 정도가 되면 거의 007 작전 수준이다.
뭐, 물론 군사작전이 걸렸을 때에 비하면 파급력이 적겠지만.
한국이든 중국이든 상대방의 스파이가 잠입하다 걸리면 난리를 피우겠지만, 상대방 무인이 어설프게 타국에 스며들다가 걸리는 상황은 ‘어휴, 저 망할 놈의 새끼들이 또 사고 치네’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공식적으로 처리할 수도 없고, 무인은 바퀴벌레와 비슷한 면이 있어서 소탕하려 해도 소탕할 수가 없기에 암묵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스케일이 너무 큰데…….
장다징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강진호에게 다가갔다.
“저게 우리가 타는 항공기가 맞겠죠?”
“……글쎄?”
강진호의 ‘대체 내게 뭘 묻는 건가’라는 표정에 장다징은 크게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이건 장다징의 잘못이었다. 이 사람에게 그런 걸 묻다니.
결국 장다징은 누군가 그의 의문을 풀어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 고개를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이드라니.’
세상에.
강진호도 강진호이지만, 이현수 역시 답이 없다. 대체 장다징이 언제 이런 일을 겪어보았다고 장다징에게 이런 일을 맡긴단 말인가.
그가 홍왕계의 첩자이기는 하지만 한국에 들어올 때는 당당하게 항공기로 왔다. 취업 비자 받는 게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니까.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어선 냉동 창고에 틀어박혀 밀입국을 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어선 밀입국 경험도 없는 그에게 항공기 밀입국을 맡기다니. 대체 무슨 배짱인가.
그런 장다징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강진호 씨이십니까?”
“이쪽이.”
장다징이 반색을 하며 강진호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가리켰다.
자세는 공손했지만, 속내는 ‘이 인간이 강진호이니 빨리 이 상황을 해결해 주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연락받았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드디어 나타난 구세주에 장다징이 환호했다. 하지만 그 환호는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
장다징은 화물기 안을 보면서 기이한 위화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거, 진짜.’
화물기라는 것은 화물을 옮기기 위해서 존재한다. 비행기가 허용하는 중량 내에서 최대한 많은 화물을 실어야 한다. 화물에 따라 무게는 적게 나가고 부피는 큰 화물도 있기에 내부에 거치적거리는 장식 따위는 모조리 떼어내고 실용성을 최대한 살린 기체가 바로 화물기였다.
겉에서 보면 똑같은 항공기이지만, 안쪽을 보면 투박하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뭐 이리 오버를 했어?’
물론 뭐 일등석처럼 꾸며놓았다는 것은 아니다. 일등석이라고 하기에는 인테리어를 거의 바꾸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화물기 안에 일등석 좌석이 있고, 승무원이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흠, 의자가…….”
바토르가 의자를 보고는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렇겠지.’
저 사람은 일등석 의자가 아니면 엉덩이가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상체가 과도하게 발달한 체형이라 하체는 덩치에 비해 왜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반인보다는 훨씬 컸다.
바토르에게는 일반적인 이코노미석 의자는 낚시 의자보다 작게 느껴질 것이다.
“조금 작긴 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겠군.”
바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등석 체어까지 옮겨 실은 배려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내 자리도 일등석이네.’
사실 명성과 능력으로 구분한다면 두 사람은 일등석 의자에 앉고, 그는 저 뒤의 화물칸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같은 일행이라고 같은 취급을 해주는 걸 고맙다고 생각해야 할지, 그게 아니면…….
장다징이 놓여 있는 의자를 보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의자를 설치해 준 것은 참 좋지만, 하필이면 그 의자가 나란히 옆으로 놓여 있었다. 강진호와 바토르가 이미 창가 자리를 하나씩 차지한 이상 그는 가운데에 앉아야 한다.
좌 바토르와 우 강진호라니.
이 정도면 좌청룡 우백호에 뒤지지 않는 끝내주는 라인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이 두 사람을 좌우에 끼고 어디서 거드름을 피울 일이 있다면 더없이 든든하겠지만, 이 비행기에서 그가 거드름을 피울 일이 뭐가 있겠는가. 부담만 되지.
“짐은 이쪽으로 주십시오.”
“아…… 네.”
짐을 받아 드는 승무원을 보고 있자니 식은땀부터 흘렀다.
‘이래도 되는 건가?’
아니, 이거 밀입국이잖아. 화물기에 숨어서 중국에 입국하는 거라고. 그런데 왜 그런 비행기에 승무원이 있는가.
“상식적으로 말이지.”
“네?”
“아, 아닙니다.”
당황하는 장다징과는 다르게 승무원은 무척이나 태연해 보였다. 마치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겪어보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럴 리가 없잖아!’
세상에 불법을 저지르는 이들이야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이런 일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흔할 리가 없었다.
승무원의 프로다운 자세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곧 이륙하겠습니다. 안전벨트를 매주시기 바랍니다. 간단한 안전 안내를…….”
“생략해 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네. 그러시면…….”
승무원이 환한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륙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아니, 안 그러셔도 될 것 같은데.
“어떤가, 장다징. 오랜만에 중국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됩니까?”
“아니. 괜찮아. 간지러울 것 같군. 어쨌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인데, 지금을 즐기라고?
어쩌면 이 사람도 공감 능력이 영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장다징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안전벨트를 맸다.
무인인 그가 비행기가 흔들리는 정도로 다칠 일은 없겠지만, 일단은 승무원을 존중해야겠지.
기내에 방송이 나오고 비행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장다징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제발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믿는 신은 딱히 없지만, 지금은 종교의 힘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에게 간절히 빌고 또 비는 장다징이지만, 안타깝게도 평소에 치성을 드린 적 없는 그를 가호할 만큼 관대한 신은 없었다.
“간만에 중국에 가니 몸이 달아오르는군. 후후, 재밌겠어.”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말이 들려온다.
장다징은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자자.
차라리 자자. 그럼 자는 동안은 편안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