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37
#636.
재회하다 (1)
강진호의 등 뒤로 바토르와 장다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뒤로 후련해 죽겠다는 얼굴의 승무원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고마웠습니다.”
강진호가 인사를 하자 바토르와 장다징도 고개를 숙였다.
그런 후, 몸을 돌리자마자 바토르가 툴툴거렸다.
“주인은 과도하게 예의를 차리는 편이다. 주인의 지위를 생각한다면 사람을 좀 더 쉽게 다룰 필요가 있다.”
“내 사람이 아니잖아.”
“모든 이가 주인의 사람이 될 것이다.”
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럴 생각까지는 없는데 말이다.
바토르는 영 해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때로는 아직 이 세상에서 버벅이고 있는 강진호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그 거대한 덩치가 무색할 만큼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아직 옛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들 그럴지도 모르지.’
어쩌면 현대의 무인들은 결국 이중적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사회에 적응해 살아야 하는 자신과 무인으로서의 자신을 모두 유지해야 하니까.
크든 작든 이중적인 부분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진호 씨?”
계단을 내려오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그들을 맞이했다.
“재경 중국 사천 지부의 조용환입니다. 일전에 부장님이 뵈었다고 들었습니다.”
조용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가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강진호도 고개를 숙여 맞절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예.”
조용환이 안내한 곳에는 검은색 밴이 대어져 있었다.
“덩치가 큰 분이 있다고 해서 준비를 했는데…….”
바토르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차량은 내가 타기에는 작지.”
바토르의 육체를 확인한 조용환이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람인가?’
한때 2미터가 넘는 격투기 선수들이 꽤나 유명해진 시절들이 있었다. 그때 그들을 몇 번 본 적이 있는 조용환이다. 하지만 바토르 옆에 선다면 그들도 아이 같아 보일 것이다.
‘키 자체는 그 농구 선수랑 비슷한 것 같은데…….’
어깨와 덩치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의자가 맞을까 모르겠네요.”
조용한의 감상은 무척이나 현실적이었다.
“괜찮다. 좁은 곳에 타는 것은 익숙하니까.”
그렇겠지.
사실 바토르에게는 모든 것이 좁고 작을 것이다. 그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곳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고 보니 바토르 님.”
“음?”
장다징이 쌓아두었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물었다.
“바토르 님의 집이 중국에도 있습니까?”
“있다.”
“거기 물건들은 다 바토르 님의 몸에 맞춰서 제작된 겁니까?”
“그래. 다 주문했지. 심지어 집도 설계해서 지었다.”
“……그렇군요.”
장다징의 얼굴이 살짝 상기됐다.
‘가보고 싶다.’
거인의 성 같을 것이다. 현대에 존재하는 동화 속 세상이 아니겠는가. 살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꼭 한 번 가보고는 싶었다.
“가깝습니까?”
“아쉽게도 이곳에서는 좀 멀지. 특히나 나는 이런 습하고 더운 지역은 좋아하지 않아. 위쪽에 있다.”
“아쉽네요.”
장다징이 입맛을 다셨다.
“다 주문 제작했다고?”
강진호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 내 몸에 맞췄지.”
“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토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대화가 이렇게 끝나지는 않는데?
“관심이 있는 물건이라도 있나?”
“아니…… 아니다.”
“이야기를 해라, 주인. 사람을 궁금하게 해놓고 발을 빼는 것은 좋지 않다.”
“음…….”
강진호가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뭔가 좀 민망하긴 한데, 네 몸에 맞춘 변기라면 웬만한 사람들은 수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
“…….”
장다징과 바토르가 할 말을 잃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바토르가 입을 몇 번 뻐끔거리고는 말했다.
“해보고 싶나?”
“……사양하지.”
세 사람이 다들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밴에 올랐다.
“음, 이 정도면 괜찮지.”
작은 버스라도 대절해 오는 게 옳지 않았을까 하는 조용환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바토르는 무사히 밴에 올랐다. 머리가 천장에 닿을 지경이지만, 일단 탈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세 사람이 모두 밴에 오르자 운전석에 탄 조용환이 천천히 차를 몰았다.
차가 움직이자 바토르가 입을 열었다.
“조용환이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중국인이신 모양이네요.”
“나는 몽골인이다.”
“아…….”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고 나가는 건가?”
“예. 뒤쪽으로 빠져나갈 겁니다.”
“그게 가능한가?”
조용환이 빙그레 웃었다.
“몽골 분이시라니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에서 돈으로 안 되는 건 없습니다. 안 되는 일은 불가능한 게 아니라, 돈이 모자라는 거지요. 세 사람 정도 밀입국시키는 일은 중국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기야 하겠지.
하지만 해안으로 숨어드는 것도 아니고, 이리 당당하게 공항을 통해 밀입국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밀입국이 아닙니다. 세 분의 신분은 따로 준비되었고, 조금 지나면 공항 검색대를 통과했다는 기록이 남을 겁니다. 한국에서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으셨나요?”
“받았습니다.”
강진호가 품 안에 있는 신분증을 꺼냈다.
“네. 사실 밀입국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불편한 일이 생기니까요. 그 신분증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바토르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라……. 그것참, 편리한 일이로군. 이런 일까지 가능할 줄이야.”
차가 차량 검문대에 멈춰 섰다.
창문을 내린 조용환이 몇 마디 말과 함께 봉투를 건네자 공안이 안쪽을 한 번 슬쩍 바라보고는 차를 통과시켰다.
“썩었군.”
바로트의 솔직한 감상에 조용환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중국인은 아니지만, 변호를 좀 해야 할 것 같군요. 사실 이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어떤 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그 나라에서는 좀 더 은밀하게 일이 치러지기 때문입니다.”
“흐음,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건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바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이번 일을 겪지 않았다면 중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막연한 상상으로 짐작하는 것과 직접 겪어보는 것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호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예.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지금 가시려는 호텔은 번화가에서 무척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굳이 그런 곳으로 가시려는 이유가 있습니까? 중국에서 일을 처리한다든가, 관광을 즐기시려면 다른 호텔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목적지대로 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조용환은 더 이상의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이미 한국 본사로부터 지금 가는 사람들이 원래대로라면 조용환이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언질을 받은 후였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되고, 알아서도 안 된다.
“그럼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중국은 워낙 넓어서 한 성이 한국만 하거든요. 두세 시간 정도 걸릴 테니, 좀 쉬어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예.”
강진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바토르가 이죽거렸다.
“주인.”
“……음?”
“한국에 언행일치라는 말이 있던 것 같은데?”
“무슨 소리지?”
“중국에 다른 일이 있어서 왔다더니, 도착하자마자 목적이 바뀌었군. 아주 재미있는 일이야.”
“가까우니 일단 그 일부터 해결하고 싶은 것뿐이다.”
“나는 주인을 신뢰하지. 무척이나 말이야.”
“끙…….”
강진호가 손을 들어 얼굴을 주물렀다.
‘제압을 한 번 더 해야 하나?’
섭혼이 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바토르가 그를 대하는 자세는 뭔가 이상했다. 자아가 너무 강해서인지 그를 완벽하게 주인이라 인식하고 있음에도 대하는 것이 조금 가벼웠다.
과거, 중원에서 섭혼을 당한 이들을 생각하면 거의 자유인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여러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의 수준이 떨어지기도 했고, 바토르가 무척이나 강하기도 했고.
사실 바토르 정도면 영혼을 짓누를 수 있는 마지노선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까. 바토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강진호가 그를 제압하여 부리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좋다. 나도 오랜만에 온 중국을 조금 즐기고 싶으니까.”
“몽골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성장한 이후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중국에서 보냈으니까. 나의 영혼은 몽골에 있지만, 나의 육체는 중국에 있었지.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음…….”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것치고는 주인의 얼굴도 향수에 젖어 있는 것 같은데? 과거에 중국에 있었던가?”
“이전 생에 말이지.”
“후후, 그랬겠지. 마인이었으니까. 어떤가, 수천 년 만에 다시 방문한 중국은?”
“일단 수천 년 전이 아니고, 일전에도 중국에는 한 번 들어왔었다. 그러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고 하고 싶지만…….”
강진호는 말을 끊고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뭔가 이상한 기분이로군.’
중국에서 살 당시에 그는 한국에 대한 깊은 향수병에 시달렸다. 과거를 모두 잊고 무학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면 더 높은 경지에 올랐을 것이라 확신할 만큼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다시 살게 된 지금은 중국에 대한 묘한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아마 바토르도 비슷한 심정이겠지.
“그렇다 해도 딱히 반갑다거나 즐겁다거나 한 건 아냐. 내가 살던 중원과 지금의 중국은 한국과 중국 이상의 차이가 있으니까.”
“오랜 옛날이니까.”
바토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주인의 기분은 주인이 만끽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는 것이겠지.”
“그래.”
강진호가 의자에 몸을 묻으며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별다른 느낌이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뭔가 하나가 풀려나는 느낌이군.’
저번에도 느꼈지만, 중국에 오면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지금의 삶을 필사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중국에서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까.
묘한 해방감에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정신병자들인가?’
조용환이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액셀을 꾹 밟았다.
뭐? 전생이 어쩌고, 수천 년이 뭐?
이것들 무슨 오컬트 동호회에서 나왔나?
사회에서 만났다면 100m 전방에서 슬슬 피해야 할 비주얼들일 때부터 불안하긴 했다. 그런데 대화를 들어보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절대 엮이지 말아야지.’
아무래도 제정신들은 아닌 것 같으니, 할 일만 처리하고 빨리 떨어져야겠다고 결심하는 조용환이었다.
조용환이 모는 밴이 국도를 빠르게 치고 나갔다. 최연하가 있는 곳을 향해 말이다.
“그런데 주인.”
“응?”
“그럼 오늘 방은 두 개만 잡으면 되는 건가?”
“두 개? 나는 너희와 방을 같이 쓰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후훗, 그게 무슨 말인가? 내 방과 장다징의 방, 두 개면 충분하지. 주인은 어차피 번식 행위…….”
강진호가 차 안에서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차 밖으로 조용환의 슬픈 목소리가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차 안에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 지금 운전 중이라구요! 강진호 씨! 강진호 씨!”
세상에는 엮이면 피곤한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