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39
#638.
재회하다 (3)
“세상에는 참 병신이 많단 말이야.”
궈리친이 휘파람을 불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세상에 자신들만 깨끗한 것처럼.”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머금어진다.
그는 저런 타입들을 꽤나 좋아했다. 저런 타입들을 인간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들과 만나서 벌어지는 상황을 즐기는 편이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악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이 ‘거대한 힘 앞에 양심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는 선인’ 행세를 하며 표정을 일그러뜨릴 때, 그는 즐거움을 느낀다.
선인이라…….
개 같은 소리.
아마 저자도 꽤나 착한 사람일지 모른다. 가족에게 충실하고, 주변인에게 다정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하지만 그 ‘착함’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오지 않을 때만 발휘되는 취사의 영역일 뿐이다.
“사람이 다 그렇지, 뭐.”
이쪽 세계에 접어들어 이런저런 꼴을 보면서 궈리친은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렸다.
성선설?
맹자도 그와 함께 일주일만 다니면 자신의 지론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릴 것이다.
인간은 악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벌레를 잡아 날개를 찢어버리고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인간은 애초에 다른 존재에 대한 존중이 없다.
그럼에도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
그것도 인간이 악하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체계.
사회라는 조직.
그리고 법이라는 규칙.
그 모든 것은 인간을 통제하고 강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힘없는 악인은 힘 있는 악인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힘이 있는 악인이 그를 타깃으로 삼았을 때, 얼마나 큰 피해를 받을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선한 자라 포장하고 힘이 있는 악인들을 억누를 방법을 찾는다. 그렇게 인간은 발전해 왔다.
하지만 여기는 아니다.
밤의 길목.
인간의 법과 규범에서 벗어난 세계에서는 인간의 악함을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씩 궈리친은 그런 생각을 한다.
영화감독들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그가 보는 악(惡)을 영화감독들이 며칠만 경험한다면, 지금처럼 시시한 악인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싹 사라질 텐데.
하긴.
그렇다고 해도 영화가 바뀌는 일은 없겠지.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악을 보면 메스꺼움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금발 여자가 나오는 서양 슬래터 무비의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것은 영화를 보는 이들이 ‘내가 저 상황이라면 나는 저러지 않을 텐데, 그러니 나는 저 상황에 처해도 벗어날 수 있어’라는 위안을 주기 위해서다.
정말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당하는 영화를 보면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불편함 정도면 다행이지.”
실제로 당하는 이들은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오늘 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그 여자처럼 말이다.
그러니 선인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지배인은 저 여자에게 다가갈 불행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궈리친이 뭐라고 하든 소리를 지르고 공안을 불렀다면 궈리친은 순순히 그 자리에서 물러났을 것이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지배인 역시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굳이 그를 만나 카드를 내밀었다는 것은 그가 이 일을 조용히 처리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왜?
그 뒤에 자신에게 쏟아질 피해가 두려우니까.
자, 그럼 생각해 보자.
자신에게 올 피해가 두려워 타인의 불행을 외면한 자는 선인인가, 악인인가.
궈리친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정답은 소시민이다.
인간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도 좋지 않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피해를 감수할 수 있는 이는 흔치 않으니까. 결국 인간은 그런 존재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드러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말이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면 안 된다. 그런 물렁한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너무 더럽고 비열했다. 이 세계에서 성공하려면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궈리친은 이 세계에서 성공할 자질이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타인이 불행을 겪는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다. 설사 그 불행이 죽음보다 더 비참한 꼴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조직의 힘을 끌어다 쓰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지배인에게 보여준 카드는 공안들이 비밀 임무를 수행할 때 사용하는 카드다. 숙박이라든가 유흥에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은 다들 그 카드가 눈앞에 보였을 때,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를 숙지하고 있다.
물론 궈리친은 공안이 아니다. 하지만 딱히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 공안용 카드가 만들어진 진짜 이유가 뒷세계의 조직들이 일을 편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니까.
공안 역시 그들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일을 시작하면 생각이 많아지는 게 문제라니까.”
궈리친은 혀를 차며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호텔의 복도라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긴 하지만, 살짝 후덥지근한 느낌이 든다. 궈리친은 고개를 내저으며 좌우를 살폈다. 객실이 그러니까.
“딱히 찾을 필요도 없군.”
한쪽 객실 앞에 검은 정장을 입은 이가 경호를 서고 있었다. 인이어를 차고 정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꽤나 위압적이다.
하지만 지금 궈리친에게는 일을 쉽게 만들어주는 표식에 불과했다.
궈리친이 건들거리는 발걸음으로 경호원을 향해 걸어갔다.
“뭐야?”
최성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호텔이다.
그리고 이 층에는 최연하만이 묵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호텔에서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객실. 소위 스위트룸이라 불리는 곳이지만, 중국에는 부자가 많고 스위트룸은 이미 꽉 차 있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이 이곳을 돌아다닌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복도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객실 안으로 침입하는 이를 막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최성종이 다가오는 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의 복장과 분위기 때문이었다.
‘한국인인가?’
외모만으로 한국인과 중국인을 구분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저 사람이 한국인인가를 고민한 것은 너무도 전형적인 복장과 스타일 때문이었다.
새하얀 바지와 반짝거리는 구두, 흰 티셔츠 밖으로 걸쳐진 꽃무늬 하와이안 셔츠. 살짝 긴 머리는 파마를 해서 뒤로 넘기고, 선글라스까지 멋들어지게 썼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한국 동네 양아치 같은데…….’
건달이라 불리기 딱 좋은 복장이다. 영화감독이 배우에게 좀 먹어주는 조폭이 아니라 동네 양아치 같은 건달 복장으로 오라고 하면, 백이면 백 저런 복장을 할 것이다.
복장만으로도 선입견을 주는데, 건들거리는 걸음걸이까지 더해지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시비를 걸려는 건 아니겠지?’
저런 복장을 한 이들은 대개 자신의 강함을 주변으로 표출하고 싶어 한다.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는 놈들이라면 그들에게 시비를 걸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저런 타입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얻어맞는 한이 있더라도 시비를 걸고 맞상대를 하는 것이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발 시비 걸지 마라.’
조용히 넘기고 싶다.
최성종이 평소 저런 양아치들의 시비를 참아 넘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지금 그는 일을 하는 중이고, 그들의 의뢰인은 성격이 무척이나 까칠했다.
문 앞에서 큰 소리를 내 그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 싶지는 않다.
최성종이 살짝 숨을 죽였다. 시선을 맞추지 않으면 좋게 넘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좋은 예감은 어긋나는 일이 많지만, 나쁜 예감은 어긋나는 법이 없다.
터덜터덜 걸어오던 양아치가 그들의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선글라스를 살짝 밀어 올렸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보는 건데…….”
최성종이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꺼내 번역기를 켰다. 그런 다음에 ‘저는 중국인이 아닙니다’를 쳐서 번역된 글자를 사내 앞에 내밀었다.
제대로 번역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그저 기술의 발전을 믿을 뿐이다. 글로벌 기업이니 번역도 글로벌하게 하지 않겠는가.
휴대폰에 뜬 글자를 본 양아치가 씨익 웃더니,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뭔가를 쓰더니 최성종에게 내밀었다. 그 휴대폰에는 이런 한국어가 떠 있었다.
망할 자식.
“…….”
최성종의 머리가 일순 멍해졌다.
‘이거, 욕인가?’
아니, 욕은 아닌 것 같은데?
보통 이런 말로 욕을 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 순간, 최성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건 번역기다.
아무리 심한 욕을 입력해도 번역 자체는 매우 온화하게 출력이 된다. 한국어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쓴다고 해도 건너편에서 받아보는 번역은 애들 장난 수준의 험담이 된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이놈은 휴대폰에 어마어마한 욕을 쓴 게 분명하다.
일단 다른 건 다 접어두고라도 저 긴 한자를 번역했는데 ‘망할 자식’만 달랑 출력되는 게 말이 되는가.
“이 새끼가 술 처먹었나? 왜 시비…….”
그 순간 양아치, 그러니까 궈리친이 손을 뻗어 최성종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궈리친이 최성종의 입을 잡아 자신 쪽으로 당겼다.
“조용, 조용. 안에 계신 분이 놀랄 수도 있잖아. 너희 임무가 저 여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아니었어? 그러니까 조용하자고.”
물론 최성종이 그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중국어가 가능한 경호원을 찾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고, 결국 이곳에 경호를 하기 위해 온 이들은 모두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최성종은 한 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저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면 모를 수가 없다. 이놈이 미친놈이라는 것.
그리고 한 가지 더.
그의 턱을 조여오는 힘은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약을 한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놈은 정말 위험한 놈이다.
턱이 부러질 듯한 고통을 참아내며 최성종이 품 안으로 손을 넣었다. 안에 차고 있는 가스총을 꺼내기 위해서였다.
“난 고분고분한 이를 좋아하지.”
궈리친의 손이 품 안으로 들어가는 최성종의 팔을 움켜잡았다.
우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
“끄으으읍.”
그 끔찍한 고통에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그 비명은 최성종의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람도 좋아해. 왜인 줄 알아? 고분고분한 이는 일을 편하게 만들어주지만, 고분고분하지 않은 이는 일을 재미있게 만들어주거든. 자,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뭘 재밌어 하는지 알아보자고. 어때?”
궈리친이 낄낄대며 최성종을 천천히 아래로 내리눌렀다.
그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원망하려면 그 샌님을 원망하라고.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니까.”
최성종을 말 그대로 뭉게 버린 궈리친이 품 안에 손을 넣어 카드키를 꺼냈다.
“자.”
문을 열기 전, 궈리친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미인을 만나려면 단장을 해야겠지?”
머리를 마저 다듬은 궈리친이 카드키를 문에 가져다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