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4
#63.
과시하다 (1)
대학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수업을 찾아 듣는다는 것이 신선하고 조금은 신기했지만, 그것도 한 번, 두 번 반복되다 보니 고등학교와 그리 다를 것이 없었다.
수업 사이의 비는 공강 시간은 휴식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강진호에게는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오늘처럼 박유민이 있는 날에는 그래도 괜찮지만, 박유민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은 꽤나 지루했다.
딱히 혼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덕분에 혼자 있을 틈은 잘 없었지만, 그들과의 대화나 관계는 강진호에게는 의미 없는 시간 떼우기에 불과했다.
“오늘 영화 보러 안 갈래?”
“음?”
어느새 그에게 다가온 진미희가 말을 걸었다.
“영화?”
“그래. 영화 보러 가자, 마치고.”
강진호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별로.”
“왜~! 가자. 영화 재미있을 거야. 지금 엄청 인기 많던데?”
“영화관이란 곳을 가본 적이 없어.”
“진짜?”
“음.”
진미희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강진호를 위아래로 훑고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 태어나서 영화관을 한 번도 안 가봤다고?”
가보기는 했다.
오십 년 전에.
하지만 그 말을 누가 믿어주겠는가.
“응.”
“야, 너 진짜 천연기념물이다. 어떻게 영화관을 한 번을 안 가보냐? 내가 데리고 가줄게. 한 번 가자. 응?”
강진호는 고민에 빠졌다.
이것도 나름 경험이라면 경험일 수 있었다.
과거와 다르게 TV를 꽤나 즐기게 된 강진호 아니던가. 영화관은 색다른 묘미가 있을지도 몰랐다.
“다음에.”
하지만 대답은 같았다.
영화관은 재미있을지 모르겠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과 가는 것은 불편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시간을 내 어딘가로 간다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재미있을 텐데. 그럼 어쩔 수 없지. 다음엔 꼭 가야 돼?”
“알았다.”
진미희가 그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박유민은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영화관 안 가봤어?”
“응.”
“야, 신기하다. 너 영화관도 안 가봤냐?”
“흠, 넌 가봤어?”
박유민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아니.”
“…….”
“내가 사람들 많은 곳을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런데 그 가본 듯한 말투는 뭐냐?”
“미안.”
“영화나 보러 갈까?”
“너랑 나랑?”
“왜?”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박유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진호야.”
“응?”
“미안. 우린 친구지만…… 그래, 친구지만 그것만은 함께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그건 너무 우울해.”
“……이해할 수 없군.”
“넌 모를 거야, 그런 미묘한 감정.”
강진호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 그들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강진호!”
“응?”
한세연이 강진호의 얼굴 바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너, 차 있지!”
“차?”
“그래, 차! 차 있지?”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내일 나 태우러 와.”
“왜?”
“됐으니까 태우러 와! 아니면 나 진짜 미쳐 버릴지도 몰라.”
“흠…….”
강진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한세연을 바라보았다.
박유민이 의자를 뺐다.
“진정하고 좀 앉아.”
“하아…….”
한세연은 심호흡을 하더니 자리에 앉았다.
“자, 차분하게 말해보자고. 왜 그래?”
“너 김철중이라고 알아?”
“김철중? 그거 선배 이름이잖아?”
“그래, 김철중 선배!”
“그 선배가 왜?”
“그 미…… 아니, 그 선배가 자꾸 나 태워준다고 집에 데리러 온다잖아!”
박유민이 미소를 지었다.
“그 선배 인기 많잖아. 잘생기고, 돈도 많고, 매너도 좋다고 하던데?”
“인기가 많아?”
“응.”
“그 기름통에서 금방 뛰쳐나온 것 같은 남자가 인기가 많다고?”
박유민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감쌌다.
이 여자도 뭔가 기준이 잘못되어 있었다.
기준이 강진호면 세상 모든 남자들이 말 많고 느끼한 남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인기 많아.”
“그럼 지 좋아하는 애들한테 들이대면 되지, 왜 자꾸 나한테 껄떡대!”
“꺼, 껄떡…….”
“태워주면 좋은 거 아냐?”
강진호의 태연한 물음에 한세연이 열이 받았는지 강진호의 귀를 잡았다.
“야! 넌 내가 아무 남자 차에나 타면 좋겠냐?”
“……놓고, 우리 말로 하자.”
한세연은 한참을 씩씩대더니 말했다.
“필요 없다고 했더니 차 타고 등교하면 편하대. 내가 차가 있다고 하니까 자기 차가 아우디라면서 타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래. 세상에, 무슨 그런 놈이 다 있어!”
‘너 같은 여자가 없는 거지.’
경영학부 내에 김철중의 차를 한 번 못 타서 안달인 여자가 몇이나 되는 줄 알면 절대 저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알아도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나는 태워줄 사람 있다고 했어! 그러니까 너 내일 아침에 나 태우러 와!”
“내가?”
“응.”
“내가 왜?”
“……너 지금 그럼 나더러 그 사람 차를 타란 이야기야?”
“그건 네가 정할 일이지만, 내가 왜 너를 태우러…….”
한세연의 눈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야, 친구가 부탁하는데 그거 한 번 못해주냐! 니가 친구야?”
“음…….”
“그 선배 얼마나 느끼한 줄 알아? 한 번씩 날 보는데, 소름이 다 돋아!”
강진호는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나 내일 대회 때문에 학교 안 나와.”
“그래?”
강진호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시간 맞춰 와.”
“그런데…….”
“또 뭐!”
“자전거로 태우러 가면 안 되나?”
“괜찮아.”
“그래?”
“대신 넌 앞으로 일 년 동안 내가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를 몸으로 느껴야 할 거야.”
강진호는 즉시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차를 타고 가지.”
그제야 한세연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은 선택이야.”
“그런데…….”
박유민이 딴지를 걸었다.
“세연이, 너 진호 차 타본 적 있어?”
“아니.”
“나 예전에 주행 연습할 때 뒤에 잠시 타본 적 있거든?”
“그게 왜?”
박유민이 뭔가 말하려다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그건 말로 설명 못하겠다. 니가 직접 타봐야 해.”
“무슨 소리야, 대체?”
“아냐, 아니야.”
박유민은 가엽다는 눈으로 한세연을 바라보았다.
다음 날.
한세연은 초조한 눈으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왜 안 와!”
벌써 십 분째 기다리고 있는데도 차가 도착하지 않았다.
한세연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야! 왜 안 와!”
[가고 있다.]“빨리 와!”
[……그래.]한세연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빵빵.
바로 그때,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한세연이 고개를 들자 저 멀리서 아우디 A6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문이 열리고 깔끔하게 생긴 남자가 내렸다.
“기다렸어?”
“아뇨.”
“기다렸구나. 얼른 타. 춥다.”
“선배 기다린 거 아니에요.”
김철중은 웃음을 터뜨렸다.
“태우러 올 사람 있더다니, 진짜인가 보네? 그 친구가 늦는 모양인데, 내 차 타고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생각 없어요.”
“한 번 타봐. 내가 편히 모실 테니까.”
“생각 없다니까요.”
김철중이 미간을 찌푸렸다.
뻣뻣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무슨 대나무도 아니고…….
“친구 차가 좋은가 봐?”
“전 차 안 가려요.”
“좋은 차는 타보면 느낌이 다르다니까.”
“저는 차보다 기사를 가려요.”
“내가 영 못한 기사인가?”
“예.”
김철중은 슬슬 열이 받았다.
이 정도로 대시를 했으면 적당히 넘어올 만도 한데, 이건 무슨 열 번을 찍어도 안 넘어오는 수준이 아니라 기스도 가지 않는 수준이 아닌가.
‘얼마나 대단한 놈이 모시러 오는지 한 번 보자.’
만약 성에 차지 않는 수준이면 마음껏 비웃어줄 용의가 있었다.
여자는 잘 모른다 해도 남자라면 수준 차이를 알 것이고, 김철중은 한세연을 공략하는 대신 그 남자의 자존심을 꺾어버릴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확실할 것이다.
“진짜 괜찮겠어?”
“예.”
“누가 모시러 오는데?”
“친구요.”
“친구 누구?”
“강진호요.”
“강……진호?”
김철중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주신 강진호? 동명고 삼인방?”
“동명고 친구는 맞아요.”
“유명하던데? 술고래라고.”
“술 안 좋아해요.”
“고등학교 친구라서 같이 차 타고 다니는 거구나. 난 또 남자 친구라도 되는 줄 알고 걱정했잖아.”
“선배가 왜 그걸 걱정해요?”
“아냐, 아냐. 그래, 강진호라…….”
김철중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강진호.
학부에서 요즘 꽤나 유명해진 동명고 삼인방 중 하나. 그중에서도 주신이라는 별명과 잘생긴 얼굴로 유명한 녀석이었다.
외모에 자신이 있는 김철중이지만, 객관적으로 강진호보다 얼굴이 떨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외모가 다가 아니었다.
더 중요한 건 능력이다.
아직 새내기라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남자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곧 알게 될 터였다.
‘강진호라…….’
강진호가 잘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옷은 추레하게 늘 같은 것을 입거나 싸구려 브랜드를 입고 다녔다.
결코 돈이 많은 녀석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김철중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걔 차는 뭔데?”
“몰라요.”
“너 차종을 잘 모르는구나?”
‘짜증 나.’
한세연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차종을 알긴 하지만 강진호의 차를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오늘 처음 탄다고 대답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냥 가세요.”
“아니, 그 친구가 안 올 수도 있잖아.”
“온다고 했어요.”
“혹시 모르지. 그리고 너무 늦으면 내 차 타고 가야 지각 안 할걸?”
“택시 탈 거예요.”
“이젠 늦었을 텐데?”
“지각하죠,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한세연은 능글맞게 맞받아치는 김철중의 말투에 진력이 났다.
‘아, 왜 안 와!’
그때였다.
그녀의 집 앞 골목으로 새하얀 스포츠카가 빠르게 들어오더니, 그녀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이건 또 뭐야?’
빵빵.
경적이 울렸다.
한세연은 짜증이 나 말했다.
“차 빼달래요.”
“지나갈 수 있는데? 그런데…… 이거 아벤타도르? 이거 돈이 얼만데…… 세상에! 우리나라에 몇 대 없다던데, 이걸 눈으로 보네.”
“좋은 차예요?”
“……이게 좋은 차냐고? 아,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때, 차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왜 안 타?”
강진호였다.
한세연과 김철중은 동시에 멍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왜 저 차에서 강진호가 내린단 말인가.
“타.”
“응? 으응! 지금 탈게.”
한세연은 아벤타도르의 보조석을 향해 뛰어갔다.
“근데 이거, 문을 어떻게 여는 거야?”
강진호가 운전석에 앉더니 보조석 문을 열었다.
한세연은 신기해하며 차에 탔다.
한세연이 일부러 크게 말했다.
“진호야.”
“응?”
“저 앞에 차 비싼 거야?”
“몰라.”
“이 차보다 비싸?”
“몰라.”
“넌 별로 신경 안 쓰네?”
그 말이 김철중의 자존심을 우르르 무너뜨렸다.
“가자. 역시 좋은 차가 승차감이 좋다니까.”
한세연이 결정타를 날리자 차가 출발했다.
김철중은 넋이 나간 얼굴로 멀어져 가는 아벤타도르를 보고 또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