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5
#64.
과시하다 (2)
“이거, 니 차야?”
“응.”
“너 언제 이런 차 샀어?”
한세연의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진호가 누군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폭풍이 몰아닥치는 날에도 꿋꿋하게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하여 자전거 협회에서 상을 줘야 한다는 말이 있던 사람이 아닌가.
그런 사람이 갑자기 차가 생겼다고 한 것도 놀라운데, 이런 비싼 차라니.
‘아니, 그것도 아니지.’
생각해 보면 그 자전거도 눈 돌아갈 만큼 비싼 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었다.
타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타입?
그녀가 아는 강진호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산 거 아냐.”
역시나.
“그럼?”
“선물 받았어.”
“회장님이?”
“그래.”
“그럼 그렇지. 네가 이런 차를 살 애가 아니지.”
한세연은 신기하다는 듯 연신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
“근데 좋은 차라는 데 왜 이렇게 좁아?”
“글쎄? 내가 산 게 아니라서.”
“좌석도 뭔가 푹신하지 않은 것 같고, 영 별로다.”
“그렇지? 그냥 차고에 박아놓고 있어.”
다른 사람이 들으면 피를 토할 말을 잘도 주고받는 둘이었다.
부우우웅!
강진호가 액셀을 밟았다.
큰 도로로 나오자 강진호의 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눈앞으로 차가 접근하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빠르게 차선을 바꾸고는 다시금 질주한다.
“야!”
“왜?”
“너 운전 정말 잘한다.”
“그래?”
“스릴 있다, 얘.”
“흠.”
강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운전대를 잡은 이후로 처음 받는 칭찬이었다.
강진호는 신나서 차를 몰았다.
그동안 보조석에 앉기만 하면 사색이 되거나 시퍼렇게 질리는 사람들만 보다가 처음으로 그의 운전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자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사실 강진호의 운전은 조금도 위험하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이들과 반응속도 자체가 다른 강진호가 다른 차들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할 리도 없고, 차량을 통제 못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정말 위험하다면 옆 사람과 함께 차를 안전하게 빠져나갈 능력도 있었다. 그런데도 자꾸 ‘위험하다’를 외치는 사람들 때문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던 참이었다.
“잘 몰고 나왔군.”
강진호는 간만에 뿌듯함을 느꼈다. 사람을 귀찮게 하는 한세연 때문에 몰고 나온 차였지만, 이런 반응을 받으니 간만에 운전하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 차는 지금까지 몰던 차와 달랐다.
액셀을 밟으면 즉각 반응하고, 핸들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살아 있는 듯 꿈틀거렸다. 마치 기계가 아니라 생물을 타고 있는 듯 기이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운전도 재미있는데?’
강진호는 드라이브의 매력에 빠지고 있었다.
“꺄악! 오빠 달려!”
그리고 한세연도 정신 줄을 놓고 있었다.
학교에 도착한 강진호는 학교에서 멀찍한 구석에 차를 세웠다.
“왜 안 몰고 들어가고?”
“귀찮아져.”
“……하긴. 모르는 게 낫겠다.”
강진호는 돈이 많다는 것을 과시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강진호가 부자라는 것을 한세연이 알게 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
아니, 황정후 회장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강진호가 부자라는 사실은 영원히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이런 차를 끌고 들어가 자기가 부자라는 사실을 만방에 알릴 리가 없었다.
한세연의 입장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강진호가 부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여자들에게는 더더욱.
하지만 차에서 내린 한세연은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해야 했다.
“세연아?”
“응? 어, 미정아.”
같은 과 친구인 박미정이 하필이면 지금 이곳을 지나고 있었다.
‘확인하고 내렸어야 하는데.’
“이, 이 차 뭐야? 스포츠카네?”
“응, 그게…….”
“네 차야?”
“아니, 내 차 아냐. 내가 그런 돈이 어딨어?”
“그래? 그럼…….”
박미정의 고개가 돌아간 곳에 무표정한 얼굴의 강진호가 있었다.
“강진호?”
“안녕.”
“이거, 네 차야?”
강진호는 거짓말을 할 줄 몰랐다.
“어.”
“아, 네 차구나.”
한세연은 순간적으로 박미정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저…….”
“그래, 알았어. 나 먼저 가볼게.”
“아니, 미정아.”
“조심해서 와~!”
한세연은 멀어져 가는 박미정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부질없이 허공을 움켜잡고는 조심스레 내려갔다.
미정이의 반응을 볼 때, 아침에 강진호가 스포츠카를 타고 등교했다는 사실이 퍼지는 데는 불과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 빤했다.
저 종종걸음을 보라.
지금 당장이라도 가서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는 절박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난리났네.”
“으음.”
강진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강진호가 쌔끈한 스포츠카의 주인이란 사실이 알려졌고, 차종 확인을 위해 박미정이 증언한 곳으로 향한 남자들은 경악한 얼굴로 돌아왔다.
차종이 확인되자 소문은 더욱 들끓어 올랐고, 결국에는 사실이 아닌 일까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재벌 삼세라던데?”
“할아버지가 회장이래.”
“그런데 옷은 왜 그렇게 입고 다녔대?”
“원래 있는 애들이 그런 거에 신경 안 쓰는 거 모르니?”
“그럼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사태를 진화해 보려던 한세연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질려서 도망치듯 라운지를 빠져나왔다.
한세연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돈이 많다는 게 알려진 것이 그리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강진호는 그녀가 보기에도 꽤나, 아니, 솔직히 무척 잘생긴 얼굴인데다 돈도 많다는 점.
그렇다고 바람둥이도 아니며, 사생활이 지저분하지도 않다.
쉽게 말하자면, 남자 친구를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은 여자애들의 표적이 될 확률이 아주 아주 높았다.
그리고 그녀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한세연은 파김치가 되어 있는 강진호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불과 세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아침의 활력 있던 강진호 대신 인생 다 산 듯 풀죽은 강진호가 이곳에 있었다.
건물을 빠져나와 사람이 없는 구석 벤치에 늘어진 강진호에게 한세연이 슬그머니 다가갔다.
“괜찮아?”
“말을 할 수가 없어.”
“응?”
“입을 열 틈을 안 줘.”
“…….”
만약 다른 남자가 그런 상황에 둘러싸였다면 그건 행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진호의 성격을 잘 아는 한세연은 지금 그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미안. 괜히 나 때문에.”
“언젠가는 밝혀질 일이었지.”
강진호는 편히 생각했다.
예전 조규민이 말했듯이 평범하게 살기 위해 자신이 처한 위치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지금 그의 위치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한세연은 별생각 없이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저주가 되어 돌아왔다.
“강진호?”
“……예.”
“나 알아? 나 네 선밴데. 이정미라고.”
“모르겠습니다.”
“괜찮아.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지. 혹시 학교생활하는 데 궁금하거나 한 건 없니?”
“없습니다.”
“너 굉장히 과묵하구나? 나 그런 스타일 좋아해. 따라와. 내가 귀여운 후배한테 밥 한 번 살게.”
“괜찮습니다.”
“너, 내가 아무한테나 밥 사는 거 아니다?”
“예. 아는데…… 괜찮습니다.”
“진호야!”
“……응?”
진미희가 그에게 다가왔다.
“저번에 영화 보러 간다고 약속했잖아.”
“그랬지.”
“오늘 시간 어때?”
“응?”
“너 차도 가지고 왔다면서? 오늘 가면 되지 않을까?”
“다음에…….”
“왜? 오늘 가자~!”
“미안. 다음에.”
이번엔 남자였다.
“강진호.”
“응?”
“야, 나 그 차 한 번만 타보면 안 될까?”
“……키 줄까?”
“아…… 막상 타려니 긴장되는데. 그거 긁히면 천만 원이라며?”
“잘 몰라.”
“아, 부담된다. 그냥 니가 운전하고 내가 옆에 타면 안 돼?”
“…….”
강진호는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그의 지옥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웅성웅성.
겨우겨우 학교를 빠져나와 주차해 놓은 곳을 향해 가자 이번에는 차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뭐지?”
“구경하는 것 같은데?”
학교 앞이고 젊은 사람들이 많다 보니 강진호의 차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비싼데다 자주 볼 수 있는 차도 아니다 보니 사진을 찍어 대는 사람마저 있었다.
“음…….”
강진호가 침음성을 흘렸다.
“왜 그래?”
“저 사이로 들어가서 차를 몰고 나와야 하는 건가?”
그 말을 들은 한세연도 조금 질린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야겠지?”
강진호는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그냥 두고 갈까?”
“저거 여기 하루 동안 뒀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괜찮은데.”
“너, 돈을 우습게 보면 안 돼.”
“그렇겠지.”
강진호는 천천히 차를 향해 걸어갔다.
“아, 밀지 마요!”
“왜 밀고 그래요!”
강진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제 찬데요. 좀 지나갈게요.”
“오!”
“와!”
그러지 맙시다.
고작 차 주인일 뿐인데 무슨 연예인이라도 본 것처럼 그리 반응하면 사람이 얼마나 민망해지겠는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강진호는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동물원 원숭이가 된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지나갈게요. 잠시만.”
사람들이 슬그머니 길을 터주자 강진호는 그 사이로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차 문을 열었다.
“오오오오오!”
순간, 강진호는 차의 문짝을 뜯어내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이놈의 문짝은 왜 평범하게 옆으로 안 열리고 위로 열려서는 시선을 더 끈다는 말인가!
이걸 만든 인간들은 사람을 쪽팔려 죽게 만들 셈인가!
이쯤 되면 살인 병기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평생 신경을 써본 적이 없는 강진호마저 이리 고통스러운데, 일반인이 이 차를 타면 얼마나 굴욕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잔인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자 고개를 푹 숙인 한세연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옆 좌석으로 다가왔다.
“이, 이거 좀 빨리 열어봐.”
“기다려.”
강진호가 문을 열자 한세연이 다급하게 차 위로 올랐다. 그러고는 얼굴을 푹 숙이고 강진호를 재촉해 댔다.
“빨리 출발해.”
“알았다.”
우르르르릉!
천둥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자 사람들이 ‘오오’ 하며 소리를 질렀다.
“차, 창피해 죽을 것 같아.”
“동감이다.”
밖에서는 차 안이 잘 안보여서 다행이었다.
만약 얼굴마저 잘 보였다면…….
강진호가 차를 몰아 나가자 사람들이 우르르 물러섰다.
“이게 무슨 꼴이야.”
“…….”
한세연의 투정 섞인 말에 강진호는 할 말이 없었다.
이게 대체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다신 차 태워 달라고 하지 마.”
“내가 미쳤어? 절대 안 할 거야! 이걸 차라고 끌고 나온 네 잘못이지!”
“끙…….”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서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는 게 우선이었다.
그날 이후, 강진호는 동명고 삼인방 주신에서 단숨에 경영학부 킹카남으로 빠르게 입지를 쌓아 나갔다.
강진호가 원한 것과는 정반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