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58
#657.
취조하다 (2)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부장님?”
“그래?”
이현수가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고 있는 것을 본 연민혁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이 사람이 기분 좋아 보이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이 사람은 반쯤 화가 나 있었다. 아니, 화가 나 있다기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짜증을 패시브로 달고 있는 사람이지.’
나름 이해는 한다.
저 사람은 그러니까…… 그래, 그런 사람이다.
전역하지 못하는 말년 병장.
영남회 시절부터 이현수는 실질적인 조직의 운영을 맡아왔다. 그러면서도 머리 위에는 확고한 상관이 존재했다. 실무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만렙을 찍었는데,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다.
그럼 이제 슬슬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치고 올라와서 그의 임무를 나눠 가져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저 사람은 그게 안 된다.
후임이 들어오지 않아서 병장이 될 때까지 걸레질을 하던 말년 병장이 전역도 못하고 간부가 시키는 일을 하며 구박을 받는 꼴이다.
그러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사람이 항상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는 꼴이 보기 좋을 리는 없지만, 저 사람에 한해서만큼은 인정을 해주고 싶은 연민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 보인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동생 하나를 얻었거든.”
“네?”
“능력 좋은 동생이 생겼으니, 앞으로 좀 편해지지 않겠어?”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이현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런 기분이 든다. ‘누군가 또 하나 함정에 빠졌구나’ 하는.
‘여하튼, 사람 괴롭히는 것에 있어서는 천재적이라니까.’
이현수는 무인과 일반인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었다. 무학을 어느 정도 익히기는 했지만, 그 수준이 높지 않다. 어느 정도냐면 이 총회 내에서 이현수보다 약한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을 정도였다.
일반인의 기준으로 보자면 굉장하겠지만, 무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 사람의 당당한 무인이라 인정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일반인이라 치부하기도 애매한, 그런 수준이다.
무인들의 세계에서는 무력이 전부다. 하지만 이 사내만큼은 그런 수준 낮은 무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무시받지 않았다.
뒤에서는 싸움도 못하는 주제에 잔머리나 굴리는 놈이라 욕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 누구도 감히 그의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혹자는 말한다.
영남회에 있을 때는 김석일의, 그리고 지금은 강진호의 총애를 받기 때문에 이현수가 목에 힘을 주고 다닌다고.
하지만 연민혁의 생각은 달랐다.
설사 강진호와 김석일이 존재하지 않고, 그를 비호할 사람이 없다고 해도 이현수는 이현수였을 것이다.
‘나는 죽어도 저 사람이랑은 적이 되고 싶지 않아.’
저 양반이 강진호의 비호를 받는 게 아니라, 강진호쯤 되니까 저런 양반을 감당하는 거다. 선후가 잘못되었다.
하긴 애초에 강진호의 비호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그 강진호가 아무에게나 관심을 가질 리는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연민혁은 이현수를 존경했다.
이현수보다 대단한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강진호만 하더라도 이현수와 비교할 수도 없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연민혁에게 있어서 강진호는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환상종 같은 존재였다.
눈앞에 드래곤이 있다고 해서 그 드래곤을 가깝게 느낄 수는 없지 않은가.
막연히 상상할 때는 신검을 들어 드래곤의 목을 자르기도 하고, 그 드래곤을 종으로 부려 타고 다니기도 하지만, 막상 눈앞에 드래곤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오줌이나 지리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연민혁이 강진호에게 느끼는 감정이 딱 그랬다.
눈에 보이고 말을 걸 수 있다고 해서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되레 그런 양반이 바로 앞에 실존한다는 것에서 더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반면에 이현수는 현실적이었다.
그의 머리는 대단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다. 기기묘묘한 술책으로 사람을 놀래키는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처리한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결코 이 사람과는 적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해도 모를 거야. 이쪽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니까.”
그렇겠지.
그러니 당신과 형, 동생할 수 있는 거겠지. 안다면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보다…… 그 여자에 대한 보고는 어떻게 됐지?”
“그 여자라시면?”
“내가 보고받아야 될 여자가 또 있었나?”
“아, 이현주 말씀이시군요.”
“알아들었으면 빠른 대답을 들려줬으면 좋겠는데? 딱히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특이 사항 없습니다. 집에서 나오지 않더군요.”
“흠, 그래? 외출까지 막아둔 적은 없는데 말이야.”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으니까요. 집 주변을 감시원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누구라도 밖으로 나가길 꺼려하지 않겠습니까? 원하신다면 말씀을 전달하여 오늘부터라도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일러두겠습니다.”
“놔두지. 굳이 오해하는 것까지 막을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말입니다.”
“응?”
“그 여자는 왜 살려두시는 겁니까?”
“누구? 이현주?”
“예.”
“간단하지. 내 배다른 동생이거든.”
“…….”
“재미없나?”
“농담하신 겁니까? 웃어드리면 됩니까?”
“자넨 감봉이야.”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먹힐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름도 비슷하고.”
“다들 비슷하죠. 이상하게 이 주변에는 이름이 비슷한 사람들이 몰려 있는 느낌입니다.”
“누군가의 능력 문제겠지. 그게 아니면 게으름의 문제든가.”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글쎄, 누굴까?”
이현수는 슬쩍 하늘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넘어가지. 그 여자를 살려두는 이유야 간단하지. 살려서 얻는 이득이 죽여서 얻는 이득보다 많으니까.”
“하지만…….”
“딱히 능력도 없는 여자야. 괜히 죽여서 남아 있는 이중걸파를 자극하느니, 살려두고 우리의 관대함을 보이는 쪽이 낫지.”
“그 여자를 죽인다고 이중걸파가 감히 찍소리나 할 수 있겠습니까?”
“못하겠지. 하지만 기분은 나쁠 거 아냐. 힘이 있다고 찍어 누르기만 해서는 적극적인 동조를 받을 수 없는 법이지. 그녀가 이중걸파의 힘을 끌어모아서 강진호 씨에게 대항할 수 있는 원더우먼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내버려 두게. 알겠어?”
“……예.”
영 불만 어린 연민혁의 반응을 보면서 이현수가 웃어버렸다.
‘설명한다고 알 리가 없지.’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모든 일에는 말이다.
* * *
누군가에게 감시를 받는다는 게 즐거운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게 사생활이란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런데 자신의 시간을 침해받는 정도가 아니라,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받고 보고된다면?
그 스트레스를 버틸 수 있겠는가.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참아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처한 현실을 타파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 현실을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타악.
식탁 위에 머그잔이 내려앉는 소리가 거실로 울려 퍼졌다.
너무 큰 집.
혼자 생활하기에는 너무도 큰 집이다. 낮게 흐르는 커피 향으로 거실을 가득 채워봐도 사람의 온기까지는 채워지지 않는다.
이현주는 조금은 멍한 시선으로 거실을 둘러보았다.
얼핏 보면 평화롭기만 한 거실이다. 하지만 거실 전면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그녀를 감시하는 시선이 적어도 셋은 있을 것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아마 그녀를 감시하는 건 강진호의 지시가 아닐 것이다. 그녀는 강진호가 굳이 신경을 써야 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굳이 강진호에게까지 올라갈 것 없이 아랫선에서 결정한 문제일 것이다.
이해는 한다.
그녀는 총회에서 가장 위험한 짓을 저지른 이의 유일한 혈육이니까. 그녀를 감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녀가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감시를 지시했을 것이다.
‘아니, 감시하지 않았겠지.’
이현주라면 뿌리를 뽑으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미약한 가능성이라도 가능성은 가능성이다. 굳이 남겨둬서 찝찝할 필요가 없다. 다른 집단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총회는 살인이 빈번한 곳이다. 이번 쿠데타로 죽은 사람만 백에 이를 텐데, 거기에 이현주 하나를 추가하는 게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죄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위협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그녀의 목이 붙어 있는 이유는 그녀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누군가 내렸기 때문이고, 하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기에는 불안하니 감시하라는 명을 내렸을 뿐이다.
어쩌면 그 명령을 내린 사람들도 그녀의 존재를 잊었을지 모른다. 꾸준히 특색 있는 보고가 들어간다면 그녀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하겠지만, 처음 감금된 이후로 그녀가 한 것이라고는 집 안에서 굴러다닌 것밖에 없으니…… 지금쯤이면 관심이 끊겼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를 할 생각은 없지만.
이현주는 딱히 지금의 상황에 불만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목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관대함이라고 해야 할지, 무신경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살아 있는 게 어디야.”
“이게 살아 있는 건가?”
이현주의 몸이 굳었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곳에는 다른 이가 들어올 수 없다. 그녀가 외부로부터 감시받는다는 건, 다시 말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도 감시를 받는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이들이 누군가 이 안으로 들어오게 내버려 둘 리가 없다. 더구나 현관이 아닌 다른 곳으로 들어오는 이라면 더욱 말이다.
그렇다는 건 지금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사람은 감시자들의 이목을 속이거나,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실력자라는 건데…….
‘누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 중 강진호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그녀를 만나려고 할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이현주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집에 침입한 불청객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결코 빠르지 않은 동작으로 몸을 돌린 이현주의 눈이 커졌다.
“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가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이성휘.
실종되었던 이성휘가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오랜만이군.”
“너 대체!”
이성휘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공주님이 갇혀 있다고 해서 구하러 왔지. 자, 가자. 내가 내보내 주지.”
이현주의 두 눈에 불신이 어렸다.
“나를 구하러 왔다고?”
“그래. 조금 늦었지만.”
“하…….”
이현주가 어이없다는 듯 이성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잘못 짚었어, 이성휘. 나는 여기 갇혀 있는 게 아냐.”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너…….”
“돌아가. 나는 갈 생각 없으니까.”
이성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