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60
#659.
취조하다 (4)
탁.
낮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자극.
그건 자극이었다.
한동안 그 어떤 자극에도 노출되지 않은 궈리친의 마른 눈동자가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누구?’
누구든 상관없다.
제발, 제발…….
거기 있기라도 해줘.
말을 걸어주지 않아도 돼. 나를 풀어주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제발 거기 있어주기라도 해줘. 제발!
궈리친은 암흑 속에서 간절히 소리쳤다.
목으로는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지만, 궈리친은 태어난 이후로 가장 간절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의 몸이 조금이라도 움직여졌다면 지금 그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몰랐다.
세상에 이런 공포가 있다는 걸 말이다.
그 역시 험한 꼴을 많이 당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차라리 손가락이 하나씩 잘려 나가는 꼴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게 마음이 더 편할 것이다.
어둠.
불이 꺼진 욕실은 어둠, 그 자체였다.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고, 목소리도 낼 수 없다. 눈동자조차 마음대로 돌릴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어둠밖에 없는 욕실 욕조에 처박혀 있는 기분이 상상이나 가는가.
그가 무인이 아니었다면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미쳐 버렸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미쳐 버리고 싶다.
미쳐 버리면 이렇듯 생생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느끼지는 못할 테니까.
‘제발, 제발!’
차라리 죽여주기라도 해!
이대로 나를 이렇게 버려두고 나가지 마. 제발!
누구라도 좋다.
누구라도.
그저 누가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의 마비를 풀어준다든가, 그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아도…… 그저 홀로 이곳에 남겨지지만 않아도 말이다.
그의 필사적인 의지를 담은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여전히 암흑뿐.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조금 전, 문이 열린 소리가 착각이었던 것처럼, 마치 환청이었던 것처럼…….
‘환청?’
아니라고 할 수 있나?
그게 정말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었을까?
어쩌면 지금 그는 미쳐 버린 것이 아닐까?
그래서 환청을 듣고, 환상을 보는 게 아닐까?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자신이 살아 있는지 이미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만약 죽었다면 그는 가장 비참한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이상의 지옥은 떠올릴 수가 없으니까.
무간지옥에 떨어져 지옥의 마귀들에게 고문을 받는다 해도 소리는 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자유는 허락되지 않겠는가. 불지옥에 떨어져 전신이 불탄다고 해도 발악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살아 있는 채 죽어 있고, 죽어 있는 채 살아 있다.
이 기막힌 괴리가 그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그 순간.
“고민이 되는군.”
목소리.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환청?
아니다.
환청이라기에 이건 너무도 생생했다. 한동안 자극다운 자극을 느끼지 못해서 한껏 풀려 있던 세포들이 팽팽히 당겨지는 기분이었다.
소리를 지른다.
내가 여기 있다고.
제발 내게 좀 더 말을 걸어달라고.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조금도 새어 나가지 못했다. 제자리에서 뛰어오르고, 바닥을 구르고, 제 몸을 자해할 만큼의 격렬한 감정이 그저 미동 수준으로밖에 표현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궈리친은 압도적인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 있다, 누군가가.
그러더니 허공에 무언가가 생겨났다.
소리가 아니라 시각적으로 뭔가 변화하는 것을 보게 되자 기쁨 정도가 아니라 몸이 풀려 버릴 정도였다.
허공에 두 개의 점이 나타났다.
아니, 점이 아니다.
그건 눈이었다.
붉은 눈.
붉게 물들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멎게 할 만큼 섬뜩한 눈동자가 허공에 떠올랐다.
“네게 뭔가를 묻는 게 맞는지 말이야. 어쩌면 지금 내가 네게 즐거움을 주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긍정.
부정.
그 어느 것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표현할 수 있다 하더라도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자신에게 말을 거는 자가 그에게 긍정을 원한다면 긍정할 것이고, 부정을 원한다면 부정할 것이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다면.
신이 내리는 은총보다 강렬한 그 자극을 그에게 준다면 궈리친은 영혼이라도 뽑아서 바칠 것이다.
“내가 네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은 이대로 나가 버리는 거겠지.”
“…….”
“반복되는 거야, 지금과 같은 시간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채…… 억겁 같은 시간 동안 서서히 죽어가겠지.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 시간 동안 말이야. 목마름이나 허기 같은 고통이 차라리 반갑겠지. 그건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말이야.”
상상한다.
그러고는 몸서리친다.
이대로 방치된다고?
이대로?
공포.
격렬한 공포.
상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타버릴 것 같은 공포가 순식간에 그를 전부 지배해 버린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세상의 마지막 날에 강림한 신을 향해 비는 속죄의 목소리도 이보다 간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궈리친은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짜 냈다.
“끄…….”
“흠?”
억눌리고 억눌린 듯한, 아주 작은 신음.
그게 세상을 향해, 그리고 그를 향해 내뿜는 궈리친의 비명이었다.
강진호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직하게 웃었다.
“생각해 보지.”
강진호의 목소리는 고저가 없었다. 마치 기계처럼 딱딱하기만 했다.
“어떻게 해야 네가 좀 더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 말이야.”
궈리친은 울고 있었다.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신음조차 내지 못했지만, 그는 분명 울고 있었다.
왜.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가.
죽음?
그런 건 언제든 각오하고 있었다. 타인의 죽음을 다루는 자는 언제든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가 지금까지 저지른 죄의 대가로 죽음이 떨어진다면, 궈리친은 웃으면서 그 형벌을 받을 자신이 있었다.
비굴하지 않게.
되레 조롱하며 말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괴물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악마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비참하게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이런 식의 고통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저 악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그 애송이 놈의 뒤를 봐주는 일을 거절했다면!
그랬다면 지금 이 꼴이 되어 있지는 않을 텐데.
“나는 너를 풀어줄 생각이었다.”
머릿속에 천둥이 친다.
강진호의 말 하나하나가 궈리친을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네게 들어야 할 말이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지금 네 꼴을 보니 고민이 되는군. 네게 그런 자유를 주는 것은 너무도 큰 상인 것 같아서 말이야.”
사람이 다른 이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심장이 멎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궈리친이었다. 강진호의 말이 한 음절, 한 음절 뱉어질 때마다 그의 육체 내부가 악다구니를 쓴다.
“자, 어떻게 할까?”
느긋한 목소리.
결코 급하지 않은 목소리.
궈리친이 겪고 있는 최악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그 고통을 즐기는 듯한 목소리.
악마가 아니고서는 낼 수 없는 목소리였다.
궈리친은 안다.
이놈은 악마다.
지금까지 그가 보아온, 더럽고 잔인하던 그놈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였다.
잔인함과 사악함을 자신에게 둘러 상대를 위협하려는 이들과는 달랐다. 이놈은 뼛속까지 악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다.
낮은 웃음.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언뜻언뜻 배어 나오는 낮은 웃음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인간의 고통을 지켜보며 이렇게 웃는다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더욱 지랄 맞은 것은…….
지금 궈리친의 귀에는 그 악마의 목소리가 천상의 하모니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악마든 누구든 말을 걸어주니까. 적어도 무언가를 들을 수 있으니까.
기막힌 일이지만, 사실이다.
그때, 그의 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
궈리친의 몸이 들썩였다.
움직인다.
움직이고 있었다.
하루가 넘도록 마치 돌처럼 굳어 있던 그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궈리친은 홀린 듯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어떤 기쁨이나 공포의 표현 하나 없이 그의 몸이 바로 선다.
전신이 비명을 질렀다.
그 짧은 시간 만에 그의 근육이 올올이 풀려 버린 느낌이다. 풀려 버린 근육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비명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지만, 궈리친은 그 고통마저 기쁘게 받아들였다.
일어선다.
하지만 궈리친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저 지금 몸을 바로 세우는 것만이 그의 지상명령이라는 듯이 최선을 다해 몸을 일으킬 뿐이었다.
알고 있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이는 그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숨 쉬는 것을 멈추라 하면 멈춰야 한다.
살아 있는 것을 멈추라 하면 죽어야 한다.
한 줌의 영혼조차 그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강진호는 궈리친의 모든 것을,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궈리친이 덜덜 떨면서도 필사적으로 쓰러지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본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자, 내게 할 말이 있을 거야.”
강진호의 목소리가 넘실거리는 검은 불꽃처럼 궈리친의 귀를 파고든다. 궈리친이 몸을 움찔했다.
그의 입이 헤, 벌어진다.
간헐적인 경련.
그리고 필사적인 몸짓.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마치 이 순간 앞으로 사용할 뇌를 다 사용해 버리겠다는 듯이 궈리친은 오로지 생각을 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 후에 고개를 들었다.
그가 해야 할 답변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무……엇이든…….”
탁한 목소리.
갈라지고 또 갈라져 쇠를 긁는 듯 쉬어버린 목소리가 궈리친의 입에서 새어 나온다.
“원하는……. 원하……시는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뭐든, 뭐든…… 제가 알고 있는 것이든, 제가 모르는 것이든. 그게 무엇이라 해도…….”
궈리친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힘겹다는 듯 필사적으로 말했다.
누군가 그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면 더 이상은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압도적인 공포와 압도적인 무력감.
밀려오는 해일 앞에 선, 달아날 곳 없는 어린아이처럼 궈리친은 신음했다.
“말씀드리겠씁니다. 말씀…… 말씀드리겠습니다. 뭐든, 그게 무엇이든……. 그러니…… 그러니 제발……. 제발…….”
궈리친의 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오지 못한 감정들이 그의 몸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러니…… 그러니 제발…….”
한동안 제발이라는 말을 수십 번 중얼거리던 궈리친이 붉게 물든 강진호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 제발 죽여주세요. 제발, 저를……. 저를 죽여주세요. 다시 저를 그 지옥에 던지지 마시고, 제발 저를 죽여주세요. 뭐든 말하겠습니다.”
궈리친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온다.
한 번 터져 나온 감정은 통제를 벗어나 봇물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흐으윽…… 흐윽, 흐…….”
어린아이처럼 우는 궈리친을 보며 강진호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