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68
#667.
조정하다 (2)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작패가 테이블에 설치되어 있는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빌어먹을, 더럽게 패가 안 붙는군.’
왕첸은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테이블 아래로 들어간 마작패가 섞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왕첸이 고개를 들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어이, 기계에 무슨 장난이라도 친 건 아니겠지?”
“그게 가능하면 왜 여기서 마작패나 만지고 있겠습니까. 가서 공장 차리지.”
“제길.”
왕첸이 의자로 등을 기대고 고개를 젖혔다.
‘되는 일이 없군.’
최근 영 운이 없다 싶더니, 마작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벌써 몇 판째 지는 건지 모르겠다.
자신의 앞에 새로 놓인 패를 보며 왕첸이 눈을 찌푸렸다.
받은 패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영 감이 좋지 않았다. 이번 판도 나가리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골방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형님.”
왕첸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심각한 일 아니면 나중에 이야기해.”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닌데, 나중에 말씀드리기에는 조금 껄끄러운 일입니다.”
“아, 새끼 진짜.”
왕첸이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
“뭐?”
“잠시 나가시죠.”
“이 새끼야, 패 돌아간 거 안 보여?”
“……형님.”
왕첸이 짜증을 잔뜩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하군. 금방 돌아올 테니, 한 타임만 쉬지.”
“예. 다녀오십시오.”
왕첸이 거친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곳까지 나온 왕첸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별일이 아닐 경우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이 묻어 있었다.
“궈리친과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그런 사소한 일로 사람을…… 잠깐. 뭐라고?”
“궈리친과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
왕첸이 손을 들어 턱을 문질렀다.
‘궈리친이라…….’
그렇다면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궈리친은 그 류웨이에게 붙여놓은 놈이니까. 류웨이가 벌어들여 조직에 상납하고 있는 돈을 생각한다면, 이건 꽤나 심각한 일이었다.
만약 류웨이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래서 앞으로는 돈을 벌어들이지 못한다면?
늙다리들이 왕첸을 찢어 죽이려 할 것이다.
“류웨이와는 연락을 해봤나?”
“받지 않습니다.”
“전화는 살아 있다는 거로군. 그래서, 시간은 얼마나 지났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제 와야 할 정기 보고가 오지 않아서 확인한 겁니다.”
“음, 그렇군. 우쉰.”
“예.”
뻐어어억!
왕첸의 주먹이 우쉰의 턱을 후려쳤다. 입술이 터지며 핏물이 벽으로 쫘악 뿌려졌다.
“빨리도 알아챘군.”
“……죄송합니다, 형님.”
우쉰은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궈리친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잘 드는 칼이라 아깝기는 하지만, 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지만 류웨이는 달라. 그런 놈은 쉽게 못 구한다고. 알아?”
“예.”
“늙다리들의 눈에는 우리 따위보다 그놈이 훨씬 중요하게 보일 거야. 그럼 그놈을 잃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어? 네 몸속에 든 장기를 모조리 팔아도 메꿀 수가 없어. 알아?”
“예.”
“확인해. 모든 수를 써서라도 확인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궈리친쯤 되는 놈이 쉽게 당했을 리가 없어. 다른 쪽이 움직인 걸 수도 있으니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왕첸이 살짝 고민하는 듯한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아니, 조사했다가는 늦는다. 일단 가용한 놈들 전부…… 류웨이가 어디에 있었지?”
“사천입니다.”
“그래, 사천으로 보내. 그 와중에 조사해도 늦지 않아. 헛걸음이 되더라도 일단 움직여.”
“알겠습니다, 형님.”
“이걸 너 말고 또 누가 알고 있지?”
“지금 아는 건 저밖에 없습니다.”
“좋아. 움직여! 내가 너를 죽여 버리기 전에!”
“예!”
후다닥 뛰어가는 우쉰을 지켜보던 왕첸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빌어먹을.’
노친네들에게 이 사실을 숨긴다는 건 무리다. 혹여 성공적으로 숨길 수 있다 해도 나중에 노친네들이 이 소식을 듣게 되면 그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는 자진 상납을 해야 한다. 노친네들은 꼬장꼬장하고 갑갑하지만, 감히 무시할 수는 없는 존재들이었다.
‘이러니 무인계가 고인 물이 되어가는 거지.’
적당한 시기가 오면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외부 세계와는 다르게 무인계는 한 번 집권한 이들이 쉽사리 그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나이가 듦에 따라 체력과 활기를 잃어가는 보통 사람과 다르게 무인은 나이가 들면서 내공이 쌓인다.
부족해진 응용력 따위는 무지막지한 내공으로 커버하고도 남는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지고, 한 번 잡은 주도권은 쉽게 놓지도 않는다.
노인이 아니라 노괴물이라 불러야 할 것들이 수두룩하다. 문제는 무인은 수명조차 일반인들에 비해 길다는 것이다.
지금 중국의 암흑가를 지배하고 있는 노괴물들은 다들 나라가 생기기 전부터 암흑가를 종횡하던 이들이다.
“또 잔소리로 귀가 아프겠군.”
왕첸이 귀를 후벼 팠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
“형님, 판 치울까요?”
안에서 나온 이가 소리치자 왕첸이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 지금 들어갈 거야.”
하던 판은 마무리해야지. 방금 제대로 재수 없는 일을 겪었으니, 이제는 운이 좀 붙을 것 같다.
슬쩍 고개를 돌려 우쉰이 뛰어간 곳을 본 왕첸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헛짓거리를 했는지는 몰라도, 한동안 심심하지는 않겠군.”
왕첸은 몰랐다.
이 별것 아닌 일이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지.
하긴 설사 지금 알았다 하더라도 왕첸 정도가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 * *
“……잘하는 짓이다.”
장시앙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저 새끼, 무슨 마약이라도 하고 온 거 아냐?”
그럴 일은 없겠지.
중국에서 마약을 한다는 건 죽는 걸 각오한다는 뜻이니까. 아편전쟁을 다시없을 흑역사라 여기는 중국은 마약을 한 이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형을 내렸다.
류웨이가 톱급 연예인이라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아니, 오히려 톱급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 강경한 처벌을 할 것이다. 수많은 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테니까.
그렇기에 온갖 비행을 저지르는 상류층들도 마약만은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다. 권력과 재력으로 커버가 잘 되지 않는 분야이니까 말이다.
류웨이가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중국 땅에서 마약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마약이라도 하지 않고서 삼 일 만에 저런 얼굴이 되어 나타날 수 있나?’
생기가 빠져 버린 것 같았다.
귀신에 홀려서 정기를 모두 쪽쪽 빨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단 삼 일 만에 얼굴빛이 저리 죽어버린단 말인가.
배우가 아니라 중환자실 환자 같은 낯빛이었다.
“메이크업팀!”
“예, 감독님.”
“저 새끼 얼굴 좀 어떻게 해봐!”
“예, 알겠습니다.”
메이크업팀이 우르르 몰려가 류웨이의 상태를 살피고는 굳은 얼굴로 그를 데리고 갔다. 메이크업팀이 팔을 잡아끌자 류웨이는 저항 없이 순순히 그들을 따라갔다.
장시앙은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배우가 겨우 돌아온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상태가 저래서 써먹을 수나 있겠는가.
“빌어먹을 놈.”
겨우 하나를 해결했다 싶었더니,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제 류웨이가 찍어야 할 장면들이 우울한 장면들이라는 것이다. 활기찬 장면이라면 답도 없겠지만, 서서히 죽어가는 여주를 바라보는 남주의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저런 얼굴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살짝 오버스럽기는 하지만, 연기력이 부족하니 저런 얼굴로라도 보완해야 하지 않겠는가.
‘좋게 생각하자, 좋게.’
어쨌든 간에 촬영을 재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개판으로 찍더라도 찍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진짜로 데리고 왔네?”
최연하가 모자를 눌러쓴 이에게 다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모자를 쓴 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별일 아니니까요.”
“……진짜 슈퍼맨인가 봐.”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장시앙이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저놈…… 그때 그놈이잖아?’
강진호라고 했던가?
그 무지막지하게 카메라발 잘 받게 생긴 그놈이다. 그런데 그 놈이 어떻게 류웨이와 함께 온단 말인가.
보면 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놈이었다.
‘아무래도 따로 자리를 한 번 만들어야겠어.’
원래 점찍어놓고 있던 놈이지만, 이런 일을 겪으니 관심도가 더 올라간다. 한국 놈이지만 중국어도 잘하니, 둘이 만나도 딱히 껄끄러울 게 없다.
최연하가 강진호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보며 장시앙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장시앙의 미소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컷! 컷! 빌어먹을! 컷!”
장시앙이 벌떡 일어나서 대본을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야, 이 새끼야! 지금 그걸 연기라고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빌어먹을, 어디 소학교 애새끼를 가져다 놔도 너보다는 연기 잘하겠다! 어디서 저런 놈이 굴러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빌어먹을! 5분 쉴 거야. 5분만 쉬었다가 다시 찍을 테니까, 대본 다시 보고 감정 다시 잡고 와! 알았어?”
“……예.”
장시앙이 머리를 움켜잡았다.
“으아아아아아! 빌어먹을!”
연기, 그놈의 연기가 문제다.
안 그래도 유치원생 학예회 수준이었던 장시앙의 연기력이 그새 더 망가졌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나름 사람 같았는데, 오늘은 목각 인형이 거걱대는 느낌마저 들었다.
발연기라는 말도 아깝다.
발로 하는 연기도 그 주체는 사람이 아닌가. 지금 장시앙의 연기는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 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 본 배우 중에 최악인 것은 달라지지 않지만,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계속계속 돌파하는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 말이다.
“최소한 써먹을 수 있는 장면은 나와야 할 것 아냐!”
연출로 커버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감독님, 여기 냉수 가져왔습니다.”
“줘봐!”
단숨에 냉수를 들이켠 장시앙이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장면만 이게 몇 컷째야?”
“최연하 분량 촬영한 다음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
하필이면 방금 전에 최연하가 역대급 연기를 보여준 뒤라 더 눈이 썩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지금 류웨이는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연기를 못하고 있었다. 연기 보는 눈이 전혀 없는 아마추어가 봐도 비웃음이 나올 만한 연기다.
‘저 새끼, 왜 저렇게 긴장했지?’
한 번씩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오디션장에 오디션을 받으러 온 신인 배우가 과도한 긴장으로 인해 마치 목각 인형처럼 삐걱댈 때가 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말이다.
긴장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이 일은 긴장을 이겨내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디션장 정도에서 긴장한다는 건 카메라 세례는 절대 버텨낼 수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탈락.
그런데 설마 그 광경을 촬영장에서 봐야 할 줄이야.
장시앙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촬영을 하는 와중에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게 그의 철칙이지만, 철칙이고 나발이고 스트레스로 기절하지 않으려면 담배라도 피워야 한다.
“준비됐어?”
“예.”
“다시 시작한다. 레디!”
어쩌면 지금, 장시앙이 류웨이보다 더 긴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