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7
#66.
과시하다 (4)
“야, 강진호 저 새끼 짜증나지 않냐?”
“왜?”
“저 표정 봐. 즐기고 있는 것 같지 않냐?”
친구의 말에 강진호를 바라본 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즐기고 있다고? 저 표정이?
애초에 얼굴에 표정이라는 것이 없는데, 즐기긴 뭘 즐긴다는 말인가.
“그런가? 그냥 별 관심 없어 보이는데.”
“그럼 그게 더 짜증나.”
“너 왜 그래?”
“저 새끼, 골탕 한 번 먹이고 싶은데.”
“뭐? 어떻게? 쟤 장학금 받고 입학했다는데. 공부 잘하지, 잘생겼지, 게다가 돈도 많아. 뭘 어떻게 하려고?”
“내 친구 중에 동명고 나온 놈이 있거든.”
“응.”
“걔한테 물어보니까 운동은 못한대. 고1 때 같은 반이었는데, 운동은 거의 젬병 수준이라더라.”
“그래? 뭐, 운동이야 못해도 상관없지 않나?”
“엿 좀 먹여야지.”
황종인은 강진호에게로 다가갔다.
“강진호.”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황종인을 바라보았다.
“풋살 한 게임 할래?”
“괜찮다.”
“그러지 말고 한 게임 하자. 유민이도 같이.”
강진호는 가만히 황종인을 바라보았다.
알고 하는 말인가?
아니면…….
강진호는 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사건을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괜찮다.”
“한 게임 하면 좋을…… 텐데. 왜? 자신 없어?”
“그래.”
강진호는 깔끔하게 말을 잘라 버렸다.
이렇게 나오면 황종인이 더 파고들 구석이 없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황종인은 끈질겼다.
“야, 누구는 잘해서 하냐, 재밌자고 하는 거지. 그냥 이 대 이로 한판. 내기나 해서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면 그만이지.”
“괜찮다.”
“……아, 맞다.”
황종인이 미안하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유민이는 축구 못하지? 야, 미안하다. 내가 실수했네.”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왜?”
“준비해.”
“뭘 준비해? 게임하게?”
“그래.”
“오? 세게 나오시는데?”
강진호는 가만히 황종인을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서 황종인이 다시는 입을 놀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박유민이 받은 모욕을 풀 수 없었다.
방법은 하나.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응해서 철저하게 짓밟아주는 것뿐이었다.
“내기는?”
“내기할 거야? 진짜, 박유민이랑?”
강진호가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네가 정해.”
“응?”
“저것들이 무슨 꼴을 당하면 좋을지 니가 정해.”
“진호야, 난…….”
“나 못 믿어?”
박유민은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못 믿냐니?
박유민이 세상에서 가장 믿는 사람을 뽑으라면 누가 뭐라고 해도 강진호가 1순위 아니겠는가.
“못 믿기는. 믿지.”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해.”
박유민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진 사람은 팬티 바람으로 수업 받는 걸로 하자.”
“오! 괜찮겠어, 박유민?”
“난 안 벗을 테니까 괜찮지.”
황종인은 히죽히죽 웃었다.
“뭐, 우린 상관없는데, 괜히 나중에 못하겠다고 질질 짜지 마라.”
“걱정 마.”
“이 대 이야. 준비해. 다섯 골 먼저 넣는 쪽이 이기는 걸로 하자.”
“시간제한이 아니라?”
“이쪽이 더 빨리 끝날 테니까.”
자신만만한 황종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내내 축구부였고, 한때는 프로를 꿈꾸기도 하던 이였다.
공부도 잘했기에 장래를 위해 운동을 포기했을 뿐, 지금 당장 축구부에 가도 재경대 축구부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 황종인이 운동치와 절름발이를 상대로 축구를 하게 되었는데 뭐가 걱정이겠는가.
상황을 지켜보던 한세연이 강진호를 불렀다.
“야, 강진호.”
“말해.”
“너, 쟤 말하는 거 들었지?”
“그래.”
“얼굴 다시는 못 들게 박살을 내버려.”
“그럴 생각이다.”
한세연도 열이 받았는지 황종인을 노려보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황종인의 친구 정성구가 슬그머니 황종인에게 다가갔다.
“야, 말 너무 심하게 한 거 아냐? 애들 눈치가 안 좋은데?”
“걱정 마, 인마.”
“걱정 안 하게 됐어?”
“어차피 그런 건 멋지게 이기면 다 잊혀져. 내가 이런 거 한두 번 경험하는 줄 아냐?”
“……믿어본다.”
정성구는 떨떠름한 얼굴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인데 여기서 발을 뺄 수는 없었다.
“이 대 이야. 둘 다 손은 쓰면 안 된다?”
“알았다.”
축구장이라면 불가능한 게임이겠지만, 풋살 구장이기에 가능한 이 대 이 풋살이었다.
강진호는 천천히 박유민에게 다가갔다.
“골대 앞에 가 있어.”
“응?”
“내가 공을 주면 굴려 넣어.”
“……알았어.”
박유민은 천천히 걸어서 골대 앞으로 향했다.
그 걸음걸이가 절뚝이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점이 강진호를 더욱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평소에도 다리 때문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박유민이었다. 그런데 굳이 그 부분을 들먹거려서 신경을 쓰이게 만드는 것은 생각 있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다분히 고의적이고 악질적인 짓거리였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대상이 박유민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시작한다. 공은 너희부터 가져.”
황종인이 인심 쓴다는 듯 강진호에게 공을 차 주었다.
“내기 잊지 마라.”
“너희가 안 잊어야지. 왜 나한테 그래?”
“그렇군.”
강진호는 공을 툭툭, 차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킥킥.”
황종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볼을 차고 오는 꼴이 영락없는 운동치의 모습이었다. 인사이드나 아웃사이드가 아니라 발끝으로 공을 차고 오는 것만 보아도 강진호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더구나 골대를 텅 비워놓고 하나는 골문 앞에, 다른 하나는 공을 몰고 나오는 꼴이…… 이들이 풋살이라는 게임을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가.
‘망신 좀 당해봐라.’
그냥 다섯 골을 넣고 이길 생각은 없었다.
아주 농락을 해서 얼굴이 다 화끈거릴 지경으로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황종인은 천천히 뛰어 강진호에게 다가갔다.
“에비!”
“…….”
강진호는 그런 황종인을 슬쩍 바라보더니, 천천히 공을 몰아갔다.
“야, 공을 그렇게 차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어떻게 되는데?”
“이렇게 되지!”
황종인이 강진호가 공을 슬쩍 차내는 것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공을 뺏어냈다.
아니, 공을 빼앗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종인의 발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백스핀을 넣은 공이 강진호의 발로 다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어떻게 되는데?”
황종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 이 새끼. 지금 나 놀렸냐? 대충 해주려고 했더니.”
“내가 묻잖아.”
강진호가 천천히 말했다.
“어떻게 되는데?”
황종인의 얼굴이 뻘게졌다.
“이 새끼가!”
황종인이 강진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강진호는 그런 황종인을 보더니 태연하게 공을 몰며 앞으로 나왔다. 황종인의 발이 강진호의 다리 사이에 있는 공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뿐.
공은 마치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슬쩍 뒤로 구르더니, 다시금 강진호의 왼쪽 발을 향해 굴러왔다.
“……뭐, 뭐야?”
강진호는 황종인을 보고 말했다.
“그게 다야?”
“…….”
황종인은 인상을 살짝 썼다.
듣도 보도 못한 스핀이었다.
묘기 축구를 하는 애들이 저런 식의 스핀을 활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톱클래스의 축구 선수가 아니고서야 실전에서 순간적으로 공에 스핀을 넣어 상대의 컷을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우연인가?’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면?
황종인은 살짝 긴장을 했다. 만약 우연이 아니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나 진지하게 한다?”
“그러든지.”
황종인이 강진호에게 달려들었다.
강진호는 슬쩍 공을 뒤로 뺐다.
하지만 황종인이 노린 것은 애초에 공이 아니었다.
쿵!
190에 가까울 만큼 거대한 황종인의 몸이 강진호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어깨로 밀쳐 내고 공을 뺏을 생각이었다. 거칠지만 반칙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생각과는 반대로 나왔다.
“컥!”
마치 바위에 몸을 가져다 박은 충격이 느껴지며 황종인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
어안이 벙벙해 강진호를 바라보는 황종인.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동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쟤 왜 저래?”
“자기 혼자 와서 박더니 지가 넘어지네?”
“쟤 완전 허당 아냐?”
황종인도 귀가 있었다.
얼굴이 뻘게진 황종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뭐하는 거야?”
“뭐?”
“재미없잖아. 열심히 해봐. 장난치지 말고.”
“진짜 죽인다, 너.”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나쁘군.”
“욕하는 거냐?”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상황 파악이 그렇게 느려서야…….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무슨 개소리를!”
그때, 강진호가 천천히 걸어 앞으로 나갔다.
황종인은 자신도 모르게 빤히 강진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지?’
반응해야 했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꾸준히 축구를 해온 그의 몸이라면 지나가는 이를 들이받든 공을 걷어내든 알아서 반응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강진호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도 그의 몸은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가 소리 지르는 순간, 기와 기가 흐르는 아주 잠깐의 찰나를 강진호가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황종인이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어?”
그가 멍청하게 있는 동안 강진호가 느긋하게 공을 몰라 골대를 향해 다가갔다.
“쟤 뭐하니?”
“멍청한 거 아냐? 왜 보고만 있어?”
강진호가 다가오는 것을 본 정성구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각을 좁혀야 한다. 아니면 골을 먹을…….
그 순간, 강진호가 느릿하게 공을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그 공은 정확하게 빈 골대 앞에 서 있는 박유민에게 다가갔다.
“저거!”
박유민은 자신에게 굴러오는 공을 보더니 골대 안으로 차 넣었다.
하지만 공은 어이없이 뜨고 말았다.
“아…….”
박유민이 안절부절못하더니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미안.”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굴려.”
“응?”
“차지 말고 굴려. 네가 세게 찰 필요 없어.”
“어, 알았어.”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자연스레 벌어진 일이었다.
황종인은 기가 막혀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게?’
수많은 경기를 하면서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우리 공이지?”
하지만 정성구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지 태연하게 공을 주워 왔다.
“종인아.”
황종인은 자신을 향해 굴러오는 공을 트래핑하고 발 앞에 세웠다.
그의 앞에 강진호가 보였다.
“……너, 공 좀 차봤냐?”
“고1 이후 처음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오십 년의 시간이 있다. 딱히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나 진짜로 한다.”
강진호는 황종인을 가만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말은 잘하는군.”
강진호의 얼굴에 비웃음이 어리자 황종인이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얼굴로 강진호에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
하지만 강진호는 태연한 얼굴로 그를 맞이할 뿐이었다.